발견,『한서』라는 역사책 - 사계의 변화로 읽는 한나라 이야기
강보순.길진숙.박장금 지음 / 북드라망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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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너~무 좋아서 빌려 읽는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도서관이 아니었다면 그 책을 만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 도리어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 되기도 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거나 현란한 마케팅의 책이 아닌 경우 도서관은 책과 나의 소개팅(이건 우리 아들이 [아들, 뭐 읽어?] 책에 쓴 표현이다) 장이 되니 책을 적잖이 사면서도 도서관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겠다. 


그렇게 이 책 [발견, <한서>라는 역사책]을 발견했고, 첫 만남부터 헤어질 때까지 나는 이 책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작가님들 왜 [한서]를 읽으실 때 저는 안 부르셨어요?'라고 혼자 막 따지기도 했을 정도로. 도서관 서가에 열 몇 권이나 되는 [한서]를 뽑았다 꽂았다를 몇 번이나 했을까? 결국은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한나라에 관한 책들만 몇 권 읽었을 뿐인데 [한서]가 이렇게 재밌었다면 읽어볼 걸 그랬나 이 책을 보면서 괜히 아쉬워한다. 하지만 또 알고 있다. [한서]가 이 책 만큼 재밌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그 많은 내용을 한 권에 압축했을 때에야 얼마나 엄선했을 것인가? 그러므로 다시 [한서]를 읽겠다는 둥의 의지는 함부로 드러내지 않기로 한다. 다만, 이 책을 통해 [한서]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 책을 지은 반씨일가의 마음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꼭 기억하기로 한다. 


이 책은 전한(서한) 210년을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로 구분짓고 한고조부터 문경지치까지를 봄으로, 무제를 한여름으로, 선제 전후를 가을로, 성제를 한겨울로 구분짓는데 이것이 아마 반고의 [한서]가 주역의 괘를 따라 전한의 왕을 12대로 정리하고 이를 12달로 비유한 데에서 오지 않았나 싶다. 기존에 중국의 역사서라면 응당 사마천의 [사기]만을 떠올렸을 뿐 반고의 [한서]는 유득공의 [발해고]만큼이나 비대중적이었기에 그저 그런 책이 있었노라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사기]만큼이나 중요한 역사서가 [한서]로구나 한 꼭지 한 꼭지 읽으면서 마음 속에 저장해두었다. 


반고가 절반 이상을 완성했기에 반고의 이름이 붙은 [한서]는 그의 아버지 반표가 손을 댄 것을 반고가 다시 시작하고, 위기가 있을 때 쌍둥이 반초의 도움으로 이어가다 반고 사후엔 여동생인 반소가 마무리지은 책이라 반씨 일가 공동저작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한성제 때의 반첩여부터 여성이어도 매우 지적인 이 집안에 대한 호감도가 쑥쑥 올라간다. 반첩여가 성제 때 스스로 몸을 낮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듯 이 집안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때에 맞게 행동하자.'라 [한서] 곳곳에서도 때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실권과 죽음에 대해 경고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물론 난 한서를 안 읽었으므로 간접적이지만) 그러한 뉘앙스가 10여 권 동안 지속된다면 그 책을 읽는 사람 역시 그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나 역시 이 한 권의 책으로도 반고의 마음을 다 안 듯 하니까. 사람이 잘 나서 그 능력을 잘 키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쓰일 수 있도록 관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말이다. 한 고조 유방이 그러했고, 문제와 경제가 그러했고, 선제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중국 역사를 절반은 책으로 절반은 중국 드라마로 배운 나로선 뿔뿔이 흩어졌던 한나라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두의방과 왕정군, 특히 왕정군의 섭정과 여태후가 죽여버린 유씨 황족이 드라마에서 보는 것보다 많아서 놀랐고, 원제와 성제 등 한나라의 겨울을 맡은 황제들이 원래부터 방탕하고 무능한 것이 아니라 태자 신분일 때에는 어질고 총명했는데 외척(왕정군에서 시작한)의 힘이 너무 강해 그리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데에 안타까웠다. 그러나 반고의 말처럼 왕망이 아니고 외척이 아니었던들 한나라가 얼마나 더 갈 수 있었을까? 200년이면 짧지 않은 통일 제국이었고 꽃이 피고 지듯 나라가 지고 다음 나라가 나타나는 밭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관점에 동의가 되는 면도 있다. 어느 나라건 흥망성쇠의 패턴은 비슷비슷하니까. 중국같이 큰 나라에서 200년이라하니 봄여름가을겨울을 그보다 더 잘 보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며 '한나라'에 대한 매력이 생겼다.  항우에 비해 조건이 부족했기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빛난 유방부터 십여 년을 쥐 죽은 듯 움츠리며 살았지만 막상 왕이 되니 성군이 되었다는 문제와 선제, 안정된 나라에서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무리하였지만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고 도리어 한때의 영웅담이 된 한무제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른 궁금함이 생겼다. 다른 역사책이나 드라마에서 극적인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에만 관심을 가졌었는데(이를테면 장탕이나 위청) 그 외에도 곽광과 김일제, 장건 등을 보며 그들의 삶을 지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존경스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한나라에 비하면 진나라와 수나라는 여름 한 철만 보내고 타버렸고, 당나라도 여름과 겨울만 있는 느낌이 든다(물론 당나라에 대한 공부가 아직 미진해 확신할 수는 없다만). 200년 한나라 12명의 황제를 사계절로 보고 그것을 풀어나간 반고의 [한서]를 만나게 되어 무척 고맙다. 역사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감탄하게 만든 책이다. 


한나라에 대하여 나처럼 파편처럼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 한나라 역사를 정리할 수도 있고, 황로사상과 유가와 법가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기에도 좋은 책이다. 또한 나라가 잘 되고 못 되고에 사람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지금 우리의 현실에 비춰보는 의미도 있다. 또 나의 사람됨됨이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도 적지 않게 있다. 이런저런 의미들이 언젠가 내가 [한서]를 읽지 않겠느냐 예언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빨리 당송으로 넘어가야 하는 입장(?)이라 왔던 길을 이젠 그만 돌아봐야하기에 일단은 이 책으로 마무리 짓지만 십 년이 흐른 후 내가 불쑥 [한서]를 찬찬히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런 예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반고는 운명을 아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조건을 이해하는 행위라 여긴다. - P27

배우기를 싫어한다는 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혼자 싸워서는 천하를 통일할 수 없는 법이다. 경험과 지략이 부족한 스물네 살의 젊은이 항우는 나날이 배워 나날이 새로워져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좋아하는 건, 금방 배우는 건, 끝까지 배우는 것만 못하다! - P45

고조의 때에는 통일을 위해 전쟁을 해야만 했고, 고후 또한 안정을 위한 권력 투쟁이 불가피했다는 생각이 든다. - P91

무제가 재물과 성과 중심으로 다스림의 형세를 만들자, 성과 내기에 지나치게 몰두한 자들이 혹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위세를 떨쳤다. - P202

공감이 없는 재능은 위험하고, 개발된 재능이 출세를 향할 땐 더 위험하다. - P211

일제의 결단은 자기에게 엄격해야 가문에 엄격할 수 있고, 가문의 도가 바로 서야 비로소 치국을 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 P316

왕망, 그는 누구인가? 반고는 기록한다. 왕망은 인자한 모습으로 칭송을 받았으나 속은 불인한 자라고. 그는 경전을 줄줄 외웠지만 은밀하게 간사한 주장을 펴는 자였다. 그가 태평 시대에 태어났다면 겉과 속이 다른 놈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나라가 극도로 쇠약한 시기에 등장했다. -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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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9-22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찜해 둘게요. 혹시 켄 리우의 초한지 sf 리메이크 3부작 (번역본은 1부, 제왕의 위엄 까지만 나왔어요) 혹시 시작하셨는지요? 전 궁금해서요. .^^

그렇게혜윰 2021-09-22 21:03   좋아요 1 | URL
몰랐어요 찾아봐야겠네요
당나라 이제 넘어가려는 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