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쿠호오 이야기 - 규슈 지쿠호오 탄광을 중심으로 한 격동의 민중사, 평화교육시리즈 03
오오노 세츠코 지음, 김병진 옮김 / 커뮤니티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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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쿠호오여! 지쿠호오 이야기

- 규슈 지쿠호오 탄광을 중심으로 한 격동의 민중사

- 조선인과 일본인의 삶이 깃든 지쿠호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우리가 모르는 일본의 숨은 민중사

- 조선인 탄광 노동자의 삶과 애환

오오노 세츠코 글/그림 / 김병진 옮김 / 아힘나운동본부 기획 / 커뮤니티 펴냄

평화교육시리즈 03



커뮤니티라는 출판사에서 펴내는 평화교육시리즈는 01 아래로부터의 한일 평화교육, 02 평화교육을 여는 또래중재가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작가가 쓰고 그린 책으로 한 편은 그림으로 되어 있고 한 편은 한글과 일본어로 되어 있다. 인문서적이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이 보기에도 손색이 없는 책이라 하겠다. 아힘나운동본부는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라는 단체의 약자로, 여기서의 아이들이란 약자와 소수자를 일컫는다 한다. 이 책은 규슈지방에 있는 지쿠호오라는 탄광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규슈지방은 일본의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지역이며,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붙는 돌이 발견된 지쿠호오는 일본의 공업화정책으로 순식간에 12-3만명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260여개가 넘는 탄광이 개발되었다. 그 와중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석유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쿠호오는 일본의 정책에서 배제되고 버림받기 시작한다. 이 역사책은 이러한 과정중에 있었던 일본의 가난한 탄광의 민중들과 거기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이 중에는 현 아소 아베 총리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악명 높던 아소탄광도 포함되어 있는데, 갱 폭파사고가 나도 사람들을 구하기 보다 탄광을 살리려 했던 그래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파리목숨처럼 죽어갔거나 아무런 안전장치도 되어 있지 않는 곳에서 목숨을 볼모로 붉은 굴뚝(탄광)을 찾아가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믿고 그곳에서 일을 했던 힘없는 자들의 이야기를 한다.

번역자는 이 책의 원문은 구수한 사투리가 들어있으나,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그 뜻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책은 단순한 일본의 역사가 아니라 당시 세계상이 그랬듯이 한국인들과의 얼킨 관계들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희생당한 것은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의 국민들뿐 아니라 일본의 무수한 민초들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지쿠호오의 탄생과정과 그의 성장과 몰락, 그리고 그 몰락 속에 숨어있던 국적을 초월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읽고 보기 쉬운 글과 그림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 외려 아이러니컬하게 보인다. 지금도 쌀밥을 찾아 헤매는 수없이 많은 힘없는 사람들은 국가의 정책에 이끌려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는 유민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역사를 뒤돌아 보면서 상처받는 곳들을 다시 더듬고 파헤쳐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솟아나는 생살을 기다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꽁꽁 싸매고 숨기면 곪아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 상처이듯, 이렇게 아름다운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근대사와 일본강점기의 역사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에게 선물을 해도 매우 좋을 만한 책이다.



2007.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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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를 통해서 본 여성성의 재발견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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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 중에 여성의 일곱가지 콤플렉스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내가 여성학이라는 관점과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대략 알 수 있게 해 준 최초의 여성성에 대한 서적이었다. 이 책은 그 책을 아직 잊지 못하는 내가 다시 한 번 숨어있는 여성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싶어 택한 책이라 하겠다. 여성성만을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혹 여성성에 대해서만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양성인데, 남성의 경우 무의식 내에 존재 하는 여성성을 아니마(anima)라고 하고 여성의 경우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남성성을 아니무스(animus)라고 한다. 이러한 내면의 이성성은 내면의 감정, 느낌, 혹은 감각과 열정, 무드, 직관력에 포함된다고 한다. 이러한 내면성을 이 책에서 저자 고혜경은 수많은 꿈들과전래동화들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녀가 이야기 해주는 전래동화는 심청, 콩쥐팥쥐, 해님달님, 나무꾼과 선녀, 공주와 바보 이반, 연이와 버들소년, 머리 아홉 달린 거인 등, 한국의 전래동화(민담) 다섯가지와 서양의 전래민담 2개를 가지고 계모와 처녀성, 어머니의 모습, 할머니의 상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봤다. 흑설공주 이야기를 읽고 난 뒤, 선녀는 죽었다 깨나도 선남이 될 수 없는 나무꾼을 견디지 못해 떠났을 것이며, 이몽룡은 한양에 본처를 두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따위 말이다. 이러한 나의 시나리오는 그저 엉뚱한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차근차근 실례와 꿈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친절한 상담을 해주고 있다. 그런 이유로, 자기의 정체성과 여성성, 자주 꾸는 알 수 없는 꿈에 대해서 궁금했던 사람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라 하겠다. 아버지를 향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상황은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심청의 이라는 성씨는 인당수와 같은 암흑의 인생을 상징하기도 하며, 자식을 보듬고 보듬던 해님달님의 어머니는 결국 호랑이를 아이들에게로 인도하는 아이러니에 빠지며, 과거를 잊지 못하던 나무꾼과 선녀는 더 이상 결혼생활을 영유할 수 없어 파경을 맞은 것이며, 계모가 어린 계집아이가 가진 생명력을 질투하는 일부 여성의 원형이라는 것까지 흥미진진한 해설들과 중간 중간 곁들여지는 심리학 적 꿈해몽이 아주 일품이다.

신화학 박사이자 꿈 분석가인 고혜경씨는 신화로 읽는 여성성과 신화로 읽는 남성성이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그녀의 꿈이야기와 신화이야기 속으로 다시 한 번 들어가 내 자신의 내면을 캐내어 보고 싶은 저자를 만났다.



2007.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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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 동양고전 슬기바다 14
노자 지음, 김학목 옮김 / 홍익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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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화두처럼 따라다니는 책들이 있다.

읽어야 했는데 부담되어 미뤄두었는데, 결국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었는데 결국 손에 다시 들어와 읽게 되는 책들.

나에게는 제자백가나 중국의 고전들이 그런 의미가 된다.

중국에서 한어언문학이라는 중국문학을 중국학생들 사이에서 전공으로 학부생활까지 했었지만, 나에게 중국고전은 빨리 진도를 따라가야만 하는 급한 숙제들뿐이었고, 깊이 통독하기엔 시간도 능력도 너무나 모자랐다. 현대 중국어로 풀이해놓은 것중 학교에서 배우는 강독부분만 읽어도 무릎을 탁탁치곤 했지만, 아, 이걸 읽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그 작품은 이미 학교진도에서 지나가 있었다. 한 학기에 중국역사의 반정도에 해당하는 문학작품들을 배우다보면, 글쎄, 나와 같이 공부하던 중국학생들 중에도 통독을 한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았을 법하다. 그저 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지겹게 들어왔던 이야기라서 대강의 이야기와 중심내용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우리에게 중국고전문학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논어뿐만 아니라 한비자나 좌전, 춘추정도만 읽어도 아, 이거 정말 재미있는데, 옳은 말 뿐인데, 읽어야 말텐데 읽고야 말테야 하는 욕심들은 그냥 세월속에 묻혀갈 뿐이었다. 그 때는 현대중국어로 풀이해 놓은 일부분을 따라가는 것만도 정말 벅찼으니까. 결국 지금 다시 영어영문학으로 돌아왔는데 1학기 레포트 중 하나가 동서양고전 서적을 한 권 읽고 서평을 쓰는 숙제가 주어졌고, 그 중 내가 택한 것이 노자였다. 노자의 도덕경은 사 놓은 지 거의 6년이 되어가는데 손도 대지 못했고, 논어집주나 논어금독(리저허우의 저서로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을 펴놓고 만지작거리면서 제자백가를 시작할 그 날을 기다리던 나에게 결국 평생의 화두 같은 제자백가 중의 한 권이 떨어진 셈이다.

이런 명고전들은 선뜻 시작하기에 매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공자가 아니고 고전을 읽고 논문을 쓸 것도 아니므로, 스스로 취할 부분만 취하면 그만이다. 내가 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를 1독한 방법은 이러하다. 일단 중국어를 전공했으므로 노자의 본문부분은 한 번 읽어주고, (사실 한국 한자의 독음보다 중국식 독음에 더 강하다. 한국식 독음은 헛갈리는 부분이 부끄럽지만 아직 많은게 사실) 왕필의 주는 넘어간다. 그리고 한국어로 된 부분만 읽어주는게지. 그러다보면 한국어로 된 번역과 해설부분중에 가슴에 팍팍 꽂히는 부분은 다시 한자부분도 같이 봐주는게다. 이렇게 하여 나는 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라는 어마어마한 산을 한 번 넘었다. 물론 이 책을 한 번 읽고 서평을 쓸만한 것은 아니고, 노자 도덕경에 대해서 어떤 논을 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제자 백가나 동서양의 고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재미가 있다. 세상의 모든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에게서 나왔다는 말도 있듯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고전에 있다. 이것들이 왜 고전이라 칭해지는지는 읽어봐야 안다. 아니 몇 천년전에 인간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니, 이렇게도 진보적일 수가 라는 생각부터, 그 때와 지금은 과학기술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닥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게다. 사람 사는 꼬라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비슷비슷한지도.

노자의 도덕경을 가장 잘 해석했다는 위진남북조의 학자 왕필의 주가 가장 보편적으로 읽힌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선정되었고 노자 전문가인 김학목 선생의 해설도 같이 읽을 수 있다. 한글로 풀이된 부분만 쏙쏙 뽑아읽어도 무방하며, 노자의 가장 큰 사상인, 무가 존재함으로 유가 존재한다는 것 – 즉, 쉬운 비유로 아름답다는 정의는 추한 것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라는 간단한 중심사상만 알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 간혹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정도가 아닐는지. 대신 이런 고전을 읽을 때는 되도록이면 사서 밑줄을 그어가며 침을 발라가며 감탄을 해가며 한 줄 읽고 하늘보고 감동을 느껴주면서 천천히 읽어주는 것이 미덕일 것이다. 이 책의 서평을 써야하는 숙제를 하기 전에 책장에서 6년동안 먼지를 먹으며 한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탄 소나무 출판의 도덕경도 다시 읽어야겠다.



2007.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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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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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나 카톨릭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밥을 먹기 전에 기도를 한다. 그리고 의례히 이 밥상을 위해 수고한 농부와 열매를 맺기 위한 그들의 수고와 그리고 이 밥을 지은 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이 기도의 문제점은,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종종 빼놓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간혹, 자연이나 땅의 도움없이 순전히 인간의 능력으로만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안되면 시골가서 농사나 짓지라는 도시사람들의 푸념에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농사꾼이거나 농사꾼의 자식이거나 농사라는 것이 어떤 일인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농사라는 것이 가만히 있어도 절로 나는 석기시대의 수렵이나 채집 활동따위로 착각을 하기도 한다.



집에서 풀 한 포기 키워본 사람만이 조금은 알 것이다. 싸구려 화분을 사면 꽃이 죽는 이유는, 화분이 싸구려라서가 아니라 담긴 흙의 질이 좋지 않아서 일때가 많다. 물론, 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싸구려 화분이거나 눈가림으로 보내온 양란 따위의 화분은 매우 가볍다. 들어보면 톱밥이 절반이다. 그리고 화초가 숨을 쉴 수 있는 옹기나 사기에 담기지 않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는 경우, 그 화분은 키우는 사람이 기대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작년에 상추를 키워 뜯어먹어보겠다고 상추씨를 샀었다. 서비스로 봉숭아씨도 오고 해바라기씨도 왔는데,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상추씨는 너무 촘촘히 심어 다 엉겨 버렸고 해바라기 씨는 길다랗게 자라다 화분이 너무 작았는지 말라버렸고 봉숭아는 꽃 한 번 피우고 시들고 꽃 한 번 피우고 또 시들고 했다. 나는 아직, 아직이구나 싶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아직은. 내 주제엔 남이 곱게 키워놓은 모종이나 살려내면 다행이겠구나 했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먹을 것들은 모두 땅에서 난다. 그 땅에서 나는 것들을 길러내는 사람들은 농부들이다. 공업이나 상업이 없더라도,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농업에서 채워질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농업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하루빨리 산업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다. 여기 알제리 출신의 한 농부가 있다. 그는 인간과 대지를 연결하는 철학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다. 이 책은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되어 프랑스 문화를 접하고 도시 노동자 생활을 겪은 피에르 라비가 땅을 지키고 가꾸는 것에 대한 르포르타주다. 작가인 장 피에르 카르티에와 라셀 카르티에 부부는 25년간 프랑스의 잡지 <파리마치>의 작가로 일하며 위대한 사상을 가진 인물들을 찾아 글을 쓰고 있다. 그 중의 한 작품이 바로 이 책,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이다.



그는 도시 노동자로 살다가 이건 아니다싶은 삶의 회의를 느끼고 다행히 그와 사상을 같이 하는 부인과 결혼해 귀농을 결심한다. 그리고 황무지를 개간해 비옥한 땅을 만든다. 그는 지금에서야 이름 붙여진 친환경 농법을 1972년에 이루어낸다. 퇴비를 만드는 법, 그리고 그 땅을 살리는 법을 알아가면서 그동안의 풍부한 독서와 깊이 있는 성찰로 세계의 농업이 죽어가는 이유에 대해서 분노한다. 거대 기업들의 뿌려대는 화학비료와 그 비료를 배분하는 각 나라의 성미급한 정부와 그들 아래서 착취당하는 가난한 농부들의 악순환에 대해서 그는 분노하고 저항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그는 1981년 자신의 친환경 농법을 프랑스를 비롯 유럽과 아프리카의 농부들에게 알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하여 철학을 가진 농부가 되었으며 그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저자의 서술과 피에르 라비의 인터뷰가 아주 자연스럽게 융해되고 있다. “그는 세상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악들을 알고 있으며, 인간 사회가 가진 불균형과 불공평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자주 나무 한 그루와 강, 그리고 석양을 바라보며 반짝인다. 자연은 언제나 그의 친구이며 영감을 주는 존재인 것이다.”라고 저자들은 그를 소개한다. 분노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하는 일은 자신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광우병에 대해서 놀라고 두려워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일이 벌어진 대에는 동물성 사료를 먹여 소를 키우는 공장형 사육에 있다는 것을 알고 분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비난할 수 있는가, 육질 좋은 소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알면서 푸줏간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고기를 고르며 송아지 고기를 즐겨 먹는 자가 광우병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 분노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미국산 소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됐기 때문에 그래서 한우 값이 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로 나처럼.



항상 이런 책을 읽다보면 과연 육식을 즐겨하는 내가 괜찮은 것인가에 대해서 늘 고민하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에도 이런 화제가 있었는데, 그건 육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동물들을 사육하고 가공하는 단계에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명확하게 밝혀준 나로서는 매우 고마운 저자도 있었다. 그런 문제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커피 농장의 아이들이 저임금으로 착취를 당한다고 해서 커피를 거부하거나 혹은 커피를 쓸데없이 많이 사거나 하는 것은 그 어떤 보탬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인지하고만 있으면 되는 일인지, 우리가 그 방법을 개선할 수 있기 위해 할 수 있는 생활속의 실천은 무엇인지. 도시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저 감사할 뿐, 그 외의 것은 없을 지도 모른다.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야채를 골라 산지와 직접 연결해 농사꾼들을 살려주는 단체에 가입을 하거나 그러한 작물들을 팔아주는 것도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실천이 될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조화로운 삶이라는 출판사의 이름대로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매우 촉촉하게 젖어오는 흙냄새 같은 책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양심의 가책과 끊임없는 반성이 스스로를 괴롭힐 지도 모르겠다. 풍족하고 풍족하여 사다놓고 조리하지 못한 음식과 해놓고 다 먹지 못한 음식들을 들고 밤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미련없이 부어버리고 돌아서는 나 같은 독자라면 말이다.



+번역을 맡은 길잡이 늑대는 번역공동체이다. 대리 번역등으로 시끄러웠던 세상에 한줄기 빛 같은 이름이라 생각되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나무를 껴안고 동물과 대화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리라

숫자 계산이나 맞춤법보다는

첫 목련의 기쁨과 나비의 이름들을

먼저 가르치리라.

성경이나 불경보다는

자연의 책에서 더 많이 배우게 하리라.

아, 나는 인위적인 세상에서 배운 어떤 것도

내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를 내 아이가 아닌

더 큰 자연의 아이라 생각하리라.



조안 던컨 올리버 (뉴에이지 저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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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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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석학, 최고의 미래학자, 미래를 예견하는 지식인 앨빈 토플러의 신작, 부의 미래.

자, 앨빈 토플러의 21세기를 논하는 신작이 나왔으니 다들 읽어보세요. 라고 간단하게 리뷰를 적어도 될 만큼 어떻게 보면 변화하는 세상에 관심 있는 모든 자들에겐 필독서일지도 모를 앨빈 토플러의 책이다.

그의 지난 저작들인 제 3의 물결, 미래쇼크, 권력 이동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었고 어쩌면 그가 예언자인지 지도자인지 모를 정도로 그가 예측한 미래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딱딱 맞아 떨어졌다.

문제는 앨빈 토플러의 책은 출판과 동시에 읽어야 그 값어치가 더하다는 것이다. 2006년도에 출간된 이 책은, 예전 다른 저작들 보다도 급변하는 세계정세 때문에 몇 달이 지난 다음에는 그가 예견한 사회의 중요한 요소들이 변화해버리곤 한다. 어쩌면 그가 책을 집필하고 있는 중에도 1장을 쓰고 있다가 3장의 초고를 고쳐야 하는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기업들과 국가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1년이 지나면 기술 분야엔 엄청난 진보가 따른다. 2006년도에 출간된 이 책이 PROSUMER의 정의를 내렸을 때 미국에서는 TIVO라는 선택형 TV 시스템이 보편화되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막 하나 TV나 스카이라이프가 시작되기 시작했고 삼성 전자는 2006년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했고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던 2007년 1월 후세인이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만큼 이 책은 속도가 생명이라 매우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명쾌하게 실었다. 저자의 핵심은 이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심층 기반이 변화하면서 부의 대한 가치가 재정립되는 것에 대한 미래 레포트이다. 저작의 원서제목은 Revolutionary Wealth 인데, Wealth란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의 풍요로움을 말하기 보다는 한자어인 富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풍요로움, 풍족함, 그리고 가득한 그 어떤 것. 단순히 경제적인 것, 혹은 화폐경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가 될 수도 있고 물리적 가치가 될 수 있는 것. 그 부의 미래의 심층기반의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바로 “지식”이라는 것이다. 지식은 어떤 단편적인 사실들의 기억이나 암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을 판별해낼 수 있는 것, 그런 진실을 또 관리하는 것, 정보의 관리의 유통의 능력, 추정과 단편적 사실들의 조합등을 이른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시대는 시간이 재정렬되는데 기존에 정해져 있던 시간들의 단위는 매우 복잡하게 세분화되고 재정립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날짜 변경선을 날아서 왔다 갔다 하는 비행기속에서의 시간처럼, 시간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상에서의 시간처럼 말이다. 또한 동시에 공간도 시간처럼 재정립하고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미래사회에서 가장 큰 변화는 프로슈밍의 시작이고 로마 멸망기에 해당하는 데카당스와 같은 시절이 도래한다. 최대의 권력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어느 한 순간 몰락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고, 미국의 종말, 혹은 유엔의 재편, 한 국가의 붕괴나 몰락등으로 인하여 일파만파 변화할 수 있는 여러가지 위험요소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저자는 자본주의가 과연 영원할 것인가, 화폐 경제가 과연 무궁할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한다. 그리고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빈곤 은행 설립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빈곤의 미래와 빈곤의 해소 방향에 대해서, 에너지의 재분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책은 그리고 우리의 빈곤을 해소하고 난 후 세계의 지각변동에 대해서 논한다. 세계의 질서가 재편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땅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반도와 유럽의 미래, 미국의 내외부를 통해, 그리고 국가간의 경계를 초월한 각 단체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책은 그 순서마저 기승전결이 논리정연하여 이렇게 리뷰를 쓰는 나로서도 너무나 편안하기 그지없다. 그저 이 책이 두려운 것은 너무 두껍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나 정확하기 때문에, 도대체 앨빈 토플러가 학자인지 무당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의 그의 정확한 예측에 대해서 나는 매우 놀랍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것은 역시나 인간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가 신이 내려 작두를 타는 무당이 아닐진대 (그렇게 알려진바 없으므로 그것을 진실이라 한다면), 과거와 현재의 자료만을 가지고 이렇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딱딱 맞춰내는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지 3일이 되었는데 여의치 못하여 이제사 리뷰를 쓰니 감흥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멋지게 살고 싶은 인생의 욕심이 남은 사람이라면 절대적으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면, 당신의 인생의 미래도 별 볼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2007.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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