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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먹은 대로 살아요 - 思うとおりに步めばいいのよ (2002)
타샤 튜터 지음, 리처드 브라운 사진, 천양희 옮김 / 종이나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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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서관 관외대출이라는 걸 해봤다.
음.. 아니, 상하이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엔 대출이라는 걸 해봤다.
그 때는 도서관도 종종 다녔었다. 뭐 학생이었으니까.
그러나 평소의 나는 모국어로 된 책을 단 한번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없다. 아니, 친구들이 굳이 빌려주겠다고 해도 마다한 적도 있었다. 후에는 빌려 읽을 때 아예 돌려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친구의 책을 빌려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책을 읽고 내 머릿속에 넣어두는 것을 영 못 미더워하는 사람인지라 꿋꿋하게 물질로 소유하려 했다. 나중의 나의 부재중에 집안식구들에 의해서 처리되는 책들이 발생하였을 때도 매우 불쾌해했고 상하이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논문 프린트 하나 버리지 않고 그 많은 종이들을 다 실어날랐다.
이런 나의 도서구매욕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살다보니 나도 한 발 양보하고 그도 한 발 양보하는 것으로, 그래서 일단 다독으로 읽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꼭 가지고 싶은 장서는 그 중 엄선하여 구매를 하도록 하자는 합의하에, 그것도 그 약속을 몇 번이나 어겨 몇 번을 싸운 끝에 결국 코앞에 있음에도 한 번도 책을 빌리기 위해서는 들어가지 않았던 석수 도서관에 갔다. 
 
대출증을 만들면 안양시내 5개 도서관에서 연동사용이 가능하고 대출기간은 2주일, 그리고 한 번에 대출할 수 있는 책은 6권이다. 그래서 욕심이 철철 넘치는 나는 아이가 자고 싶다고 잠투정을 하면서 끙끙 대는대도 관외대출실에서 꿋꿋하게 6권을 채워야겠다고 바둥바둥 거리고 있었다. 물론 집에서 읽다가 만 칼 포퍼의 인생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라는 책과 윤중호의 고향길이 펼쳐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자, 도서관에 첫 발을 디뎠으니, 일단 가벼운 책을 고르자. 집에 안 읽고 남아있어서 읽어치워야 한다고 제목들이 각을 잡고 나를 노려보는 책들은 너무 무거운 것들이라 머리를 식힐만한 단편소설들이나 독특한 에세이를 찾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내 예상으로는 좀 큰 판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집만한 크기로 매우 작았다. 내가 이 책을 사지 않았던 이유는 가격이 일단 12000원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에 분명히 글자가 몇 개 없는 거 같았고, 사진이 주를 이루는 데다가 분명히 빤한 아름다운 에세이가 펼쳐질 것이라는 편견에서였다. 개인적으로 처세술 책이나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어요 운운하는 빤한 이야기들에 매우 거부감을 갖는 편이다.

욕심만 많은 게 아니라 건방이 하늘을 찔러 약간 시니컬하고 튀는 사상에 관심을 가질 줄 알았지 보편적인 진리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뭐 언제나 그렇듯. 책들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나는 가끔 책을 통해 구원을 얻곤 한다.

물론 재택근무의 형태로 남편의 사업일을 살짝 보조하고 있긴 하지만 그 일은 결코 내 사생활에 부담을 주는 정도가 아니고 오히려 내가 멍청해지지 않도록 윤활유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아무튼 일을 하고 있고 명함도 있긴 하지만 나는 전업주부이다. 이 전업주부의 인생이 이다지도 지리멸렬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신혼 때는 뭐가 달라 혼자 살 때도 다 이랬지. 라고 생각을 하였지만, 살다보니 그게 아닌거라. 내 입맛에 맞춰서 먹을 수도 없는 것은 남편의 입맛도 고려해야하고, 되도록이면 버리는 음식물이 없도록 식단을 잘 짜야하고 식재료를 지루하지 않게 잘 활용하면서 신선도는 유지해야 하고 내가 먹는 음식물이 바로 아기의 밥이 되기 때문에 그 역시 고려해야하며 가족들의 건강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혼자 살 때처럼 김이랑 스팸에 계란후라이 김치 한 쪽 놓고 밥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화분을 좋아해서 화분을 사 들였으면 골고루 잘 배치해 잘 자라게 해야하며 철마다 옷정리를 하고 세탁소에 보내고 청소를 해야하고 손빨래도 해야하는 육아와 가사노동. 지치기도 하지만 꼭 육체적으로 지치고 힘들다기 보다는, 별로 행복하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대부분 결혼한 지 5년이 되지 않은 여자들이 많이 느끼는
"나는 식모인가?" 하는 심각한 화두를 안고 오 밤중에 싸이질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책의 주인공은 아무리 봐도 선천적으로 시골생활을 즐기는 성격인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스스로 말하기를 주부라는 게 너무 좋고 시골생활이 너무 좋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주인공이 정말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인세가 장난이 아닌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주인공은 주로 맨발로 생활을 하며 정원을 가꾸고 그저 삽화를 그리는 일로 돈을 벌고 시골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남편과 헤어져 아이 넷을 혼자 키웠으며 양젖을 짜고 개를 키우면서 살고 있다. 녹색을 그리는 게 어려운 할머니, 상상의 세계에서 사는 자신이 현실도피일지도 모른다는 그녀, 그녀는 사는 게 다 그런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감동을 받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서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노라고. 그저 인생을 방학처럼 살아왔다고. 

 "나는 집안의 허드렛일을 좋아해요.
다리미질, 빨래, 요리,
설겆이까지도 즐겨 하지요.

누가 내게 직업을 물으면 서슴지 않고
'주부'라고 대답해요.
주부라는 직업은 정말 훌륭한 거예요.
주부라고 해서 학문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요,
딸기잼을 만들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수도 있잖아요.

만약 내게 생활을 뒷받침해주는 남편이 있었다면,
나는 정원 가꾸기와 요리, 그리고 바느질만 했을 거예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다리미질

이 부분은 솔직히 충격적이기 까지 하다.
요즘 세태에 비추어보아. 주부라는 직업이 비애 가득한 직업으로 추락한 이유는 가사노동이라는 것이 큰 부가가치가 없는 직업이라고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능력있는 엄마를 원하지 집안에서 살림잘하는 엄마를 원하지 않는다. 모든 엄마들은 슈퍼우먼이 되어서 살림도 잘하고 뭔가 하나정도의 특기도 있어서 그 걸로 돈도 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래서 주부라는 직업은 뒤로 쑥 빠지고 남편이 있더라도 절대적으로 정원 가꾸기나 요리, 바느질은 되도록 기계에게 맡기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 현재의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집안의 허드렛일이 어려운 이유는,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인데, 이 할머니, 혼자서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고 그래서 행복해 하는 법을 아는 분이다. 책에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다.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 하지만 이게 옳다고 할 수는 없답니다. 라고 하는 약간 보수적인 듯한 분위기의 귀엽고 아름다운 할머니의 자기 독백을 햇빛이 따뜻한 사진과 더불어 읽다보면, 아 - 삶에 지친 대한의 남녀노소, 또 한 명의 미국 할머니에게 구원을 받는구나. 

 욕심많고 거만하여 겸손할 줄 모르는 자가 가장 겸허하게 스스로를 낮추어 행복하게 사는 한 노인네를 오늘 처음 만났으니, 나 역시 이 책으로 인해 구원의 길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독서습관이 나를 구원으로 이끈 것인가? 과연 전업주부임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인가?

 2006. 10. 26. 

 + 타샤의 책은 이 외에도 월북에서 나오고 공경희씨가 옮긴 <타샤의 정원>과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가 있다. 이 역시 구해서 읽어보고 싶은 책.  

시골생활, 무소유적 삶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스콧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책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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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력결핍 과잉행동 클리닉 - 산만한장애공감 2080 3
콜레트 소베 지음, 한국아동상담센터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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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의해 읽게 된 책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클리닉

최근들어서 알려진 이론인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는 줄여서 ADHD라고 한다.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예전엔 우리가 그저 "좀 산만한 편"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의 행동이 사실은 신경계통의 이상이나 선천적인 이유로 인하여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이렇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성향들이 뇌의 문제로 인한 장애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아직 확실한 규명이 어렵고 뇌의 장애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거나 이론의 80%정도만을 믿을 수 있다. 말하자면 환경적 요인인지 물리적 요인인지는 사실 명확히 알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자폐나, 정신지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얼마전 읽은 책에서 밝힌 하이퍼그라피아나 블록 현상등, 우리가 성향으로 규정했던 성격이나 행동들, 그리고 광기등이 모두 신경계통의 원인으로 유전자의 힘이라는 것을 과학자들이 밝혀내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많은 엄마들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엔 아이가 자폐증상, 언어장애등을 보이면 부모가 잘못키워서 어미가 잘 못 키워서 라는 말들이 쏟아졌지만 지금은 환경적 요인보다 물리적 선천적 장애를 더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최근들어 나타나는 ADHD는 우리가 어릴 때 알고 있던 "쟤는 좀 산만해"와 그 급이 다르다.

ADHD는 몇가지 성향으로 나뉘는데, 주의력 결핍이 주를 이루는 ADD 성향과 과잉/충동 행동이 주를 이루는 성향과 둘 다 병행되는 성향으로 나뉜다.

이 책에서 말하는 ADHD 아동의 특성를 꼬집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 달리는 오토바이인양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에너지가 넘치고

● 새 것은 뭐든지 환영하지만 싫증만큼은 그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고

● 조작이 고장 난 장난감마냥 무조건 멋대로 움직이는 팔, 다리 등의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기 힘들며

● 중심보다는 주변에 더 관심을 보이며

●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마력적인 집중력을 보이며

● 규칙은 NO, 내 맘대로 O.K

● 행동보다 말이 앞서고 자기 얘기에는 종달새처럼 조잘조잘거리며

● 주변의 물건은 늘 위태위태하며...윽, 또 실수,ㅡ 앗, 또 다쳤네 !!!

● 글씨와는 원수지간, 그래서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쓰기

● 계획은 따분하고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 엄마 아빠의 말이나 훈계는 종종 이상한 나라의 말처럼 들리고

● 충동적인 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며

● 완벽한 것과는 거리가 먼 아이...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주어 너무나 안타깝게 느끼는 아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위와 같은 행동들은 예전에는 좀 산만하거나, 지나치게 활동적 적극적이라 그렇거나, 어려서 그렇거나, 버릇이 없어서 그렇거나, 누가 닮아서 칠칠치 못해 그렇다고 오해했던 것들이다. 우리는 모든 것들이 다 나이들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교육체계 아래에서는 종종 고쳐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교련시간이 있는 학교를 다니지 않으며, 부모의 강압으로 아이들이 버티는 시대도 지났다. 조기교육과 잘못된 부모들의 오버액션으로 아이들은 더욱 엇나갈 수 있다. 집중력 좋은 아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ADHD의 아이들은 집중력의 결여로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결국 생활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반복되는 스스로의 실수에 좌절하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시기에 사춘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세상이 변한 만큼 사람들도 변하고 그래서 아이들이 변한다.

방법은 언제나 극진한 사랑과 애정과 현명한 보살핌이겠지만, 책 한 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또 아이들의 교육이기도 하다. 한국에 소개된 다른 책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ADHD에 대한 진단과 대처방법등은 이 책 한권에서도 충분히 많이 소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뒷부분에는 한국의 실례들을 추가하여 설명한 부분과 ADHD 아동을 기르고 있는 부모들이 궁금해 할 만한 사항들 (약물치료등)에 대해서도 잘 설명이 되어 있어, 얄팍한 책이지만 정말 실용적인 부분에서는 큰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세월이 변하면서, 우리 모두가 이상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이상한 것이라고 자꾸 단죄를 하는 것일까..

 

2006.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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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그라피아 - 위대한 작가들의 창조적 열병
앨리스 플래허티 지음, 박영원 옮김 / 휘슬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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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은 간혹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 그것이 꼭 어떤 "저지른다"의 의미이기 보다, 묘한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신내림, 예술적 소양, 환청과 신의 계시, 천재적인 창의력, 틱장애, 간질증상등,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뇌 문제에 기원한다고 한다. 잘 알려진 예로 잔-다르크의 신의 계시는 측두엽 간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예술가들 중 정신착란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 예술이라는 창조적 작업이 그만큼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착란증상을 가진 자들이 해낼 수 있는 것이 그 뿐인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이 책은 산후 우울증으로 저자가 직접 겪었던 하이퍼그라피아라는 증상과 블록 현상에 대해서 말한다.

저자는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이자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신경과 의사로서 아이를 사산하고 다시 출산을 하면서 산후 우울증을 겪는다. 그러면서 그녀가 겪었던 증상은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겨나는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증상과 글을 쓰고 싶으나 쓰지 못하는 블록현상(Writer's Block)을 겪는다. 글에 대한 다른 증상중의 하나는 그라포마니아(Graphomania)라고 책을 쓰고 인쇄를 거쳐 미지의 독자를 갖고 싶어하는 욕구를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겪은 경험이 발단이 된다. 왜, 사람들은 미친듯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증상을 겪게 되는가와 그와 유사한 정신적 문제는 무엇이며, 창의력과 예술적 계시들은 어디에서 기원하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도 느낄 수 있는 현상일 수도 있다. 나는 내 스스로 이런 증상을 겪고 있다고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글쎄 전문적인 진단을 받아본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이것은 싸이월드나 블로그등을 통해 더 많이 발현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이퍼그라피아를 겪고 있던 사람들이 그라포마니아로 발전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가벼움이랄까. 마치 어떤 사람들은(나를 포함하여)수다를 떨듯이 끊임없이 글을 쓰는 증상을 겪곤 한다.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지 않으면 냉장고를 열고 스트레스를 풀 듯 마구 뭔가를 입에 쳐넣는 듯한 욕구불만을 해소하듯이, 글로써 그런 욕구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본인의 경우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전에는 장편의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한 번 펜을 잡으면 3-4장은 기본이고 편지 역시 3-4장은 기본이었다. 그러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내가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전에 각종 게시판을 넘나들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절대고 있었으며 홈페이지라는 것을 구축하면서는 이제 거기에다가 배설을 하기 시작했다. 배설이라는 표현이 거북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몸속에 가득찬 가스를 내놓는 것처럼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고 그 말을 하고 싶어서 말보다는 글로 쓰고 싶어서 자다가 벌떡 벌떡 일어나는 증상이므로 본능에 가까울 정도라 배설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매우 적합하다 하겠다.

 

가끔 나는 싸이없으면 어째 살았어? 인터넷 없으면 어떻게 살꺼야? 하는 조롱을 받기도 할 정도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엄청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일단 그것이 음성을 통한 말이 아니고 문자를 통한 글이라는 것을 기본전제로 한다고 치면, 나는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간혹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가 하루에 쓰는 글들을 모두 모아서 한 가지의 주제로 통합을 한다면 몇 권의 소설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소설쓰기와 수다떨기류의 글은 또 다른 것이라 쉽게 통폐합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 책은 혹여 이러한 증상, 혹은 스스로 예술적 광기에 시달린다고 생각하거나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끼는 증상을 느껴본 사람이거나 그런 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팍팍 와닿는 내용일 수도 있다.

 

저자는 꼭 어떤 증상을 규명한다는 의미이기보다, 과학이 인문/예술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공존하는가에 대해서 알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녀 스스로도 이 책 역시 하이퍼그라피아로 인해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하이퍼그라피아가 측두엽의 문제로 인해 논리성이나 타당성까지 결여시키는 증상은 동반하지 않는 것인지 책은 매우 조리있고 재미있으며 흥미진진하다.

 

생활비가 없어서 돈이나 좀 벌어볼까 하고 신춘문예에 응모했다는 이외수작가나, 월세 내려고 글 썼다는 도스트예프스키나 어떻게 그렇다고 글이 그렇게 쉽게 써졌을까 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그들은 쉽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두다 하이퍼그라피아를 겪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 하이퍼그라피아를 생산적으로 변형해 좋은 글을 써내는 것은 각자의 취향과 성향이겠지만.

 

2006.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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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 선택하면 반드시 후회하는 이들의 심리탐구
배리 슈워츠 지음, 형선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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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런 비슷한 제목을 가진 책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선택의 심리학, 유혹의 심리학, 설득의 심리학 등등..

다른 책들을 읽어보지 않았으나, 웬지 그 쉬운 듯한 제목에서는 책의 내용이 별 어려움 없이 대중적으로 접근한 마케팅 기법 서적의 냄새가 많이 난다.

제목이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축약해서 표현해야 하는 것이 룰이라면, 이 책의 제목은 좀 잘못지어진 듯 하다. 내용이 쉬워보이는 선택의 심리학이라는 제목과 달리, 선택의 심리학은 그리 쉬운 책도 아니고 마케팅 전략서도 아니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하면 고객의 선택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라고 하는 마케팅 전략서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샀다. 그러나 책은 조금 대중적인 주제를 잡았을 뿐, 소비문화와 넘쳐나는 물건들로 둘러싸인 현대사회에서의 선택이라는 중요한 결정에 대한 복잡한 인간의 심리와 , 어떻게 하면 선택하고도 만족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철학서의 내용까지 접근하고 있다. 

 저자는 청바지를 사러 한 옷가게에 들어가서 혼란스러웠던 일로 글을 시작한다.

예전에는 "그냥 청바지요"라고 하면 될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 스타일도, 워싱 기법도, 색깔도 너무나 다양해져서 청바지 하나를 고르는데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쇼핑이라는 것 자체에 엄청난 피로를 느낀다. 끊임없이 선택해야하고 끊임없이 흥정해야하는 특히 재래시장의 쇼핑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이제 선택의 컨설던트가 각 개인마다 필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 특히 잘 알지 못하는 품목을 고르려면 한숨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주변의 친구들의 경우도 캠코더를 하나 사려고 하는데, 혹시 최근에 니가 구입을 한 게 있다면 그걸 사려고 한다는 얘기들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인 현상은 이 책에서 말한대로 상대방과 동일한 물품을 구입하여 손해를 보더라도 공동손해를 볼 것이라는 보상을 원하는 심리에 기초한다고 한다.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거나, 기대치를 낮추면 사람들의 삶은 행복하거나 풍요로워지기가 매우 쉽다. 영화를 볼 때도 우리는 항상 말한다. 기대하지 않고 보면 재미있다고. 그리고 한 번 구입한 물건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 가격을 묻지 않으며 그 물건을 만족하며 쓸 수 있다고.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그 선택의 심리와 선택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심리작용들에 대해서 저자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선택의 심리작용을 분석해서 우리가 조금 더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재조명하게 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야망을 버리고 항상 기대치를 낮추면서 산다면, 그 역시도 행복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2006.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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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 개정판
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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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녀관계의 바이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 책은 이제 꾸준한 스테디 셀러로 자리 잡혔고, 그 이론에 대해서 반박하는 사람도 없다.
그야 말로 남녀관계의 바이블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별로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흠흠;;

 젊고 아리땁던 스물 셋 아가씨였던 시절에 남자친구가 생일선물로 이 책을 선물한 것이다.
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그놈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에게 선물한 것일까?
나보고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같이 잘해보자 였을까. 
그리고 나서 일주일이 되지 않아 나는 그노마와 헤어졌다.
그리고 이 책의 겉커버를 박박 찢어서 쓰레기통에 쳐박았었다.
"너나 잘하세요"지 뭐야. 하면서 -_-

 세월이 한참 지나, 이제 내가 가진 것을 빼앗아가지 않을 남자를 찾고 있던 아줌마 다 된 서른 한살의 노처녀? 이제 막 골드미스로 진입하고자 열심히 밥벌이를 하던 그 여자, 웬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기 전 그 남자에게 서른이 넘은 여성의 심리를 연구해보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냅따 서점으로 뛰어가 이 책을 샀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했다.
남편이 이 책을 다 읽고 나의 심리를 너무나 잘 이해해주어서?
헹~ 전혀 아니다.
남편이 읽다가 접어놓은 책장은 (Doggy Ear)은 책을 여는 글에 멈춰있다. -_-;;

 별 기억도 좋지 않은 책, 게다가 남편은 읽다가 만 책,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 동굴이론에 대해서 이제 모든 사람이 듣고 웃을 수 있는 세상,
이 시점에 내가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은 이유는 단 하나.
부부싸움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결혼전 연애중인 커플을 위한 책이 아니고 (그런 커플에게는 차라리 작업의 정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혼 후 갈등에 휩싸일 수 있는 커플들을 위한 책에 가깝다.
함께 살면서 느끼게 되는 것들 여자들이 생각하는 섭섭함, 그리고 남자들의 피로.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 온 여자가 함께 살면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말했듯이 "이 책을 읽으며, 아. 이건 내 얘기야"라고 생각되도 놀라지 말라, 는 것처럼 이 책은 미국사람이 미국사회에서 히트를 친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메 이건 내가 어제 했던 말 아녀"라고 화들짝 놀랄 수 있다. 베스트셀러는 모든 이들의 공감을 필요로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미안해라고 말하지 않는 남편과 고마워라고 말하지 않는 아내로 구성된 우리커플의 문제점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베스트셀러와 이 책의 부흥회 스러운 분위기에 부합하자면 존그레이에게 "당신덕에 우리는 부부싸움을 잘 마무리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답니다."라고 편지라도 써야할 판이었다. 
이 책이 부부관계에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는 것은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사실 어느정도의 비지니스 감각도 가지고 있어서 이 책의 독자는 여자가 훨씬 많을 것이며, 끝까지 읽을 사람도 여자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여자독자가 아주 행복해할만한 101가지 남자에게 하는 충고가 책 뒤쪽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1. 집에 들어오면 우선 아내부터 찾아 가볍게 포옹하라.

6. 꼭 무슨 날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불쑥 꽃다발을 건네 아내를 놀라게 해주어라.

7. 금요일 밤이 되어서야 그녀에게 주말에 뭘 하고 싶냐고 묻지 말고 며칠 전부터 미리 데이트 계획을 세워 두라.

24. 하루에 네 번은 아내를 안아 주어라.

26.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라.

 

등등..

 내가 남자독자라면 여기까지 읽고 책을 살며시 덮고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역시 여자랑 같이 사는 건 힘든일이야.. 내 적성에 맞지 않아.."라고 생각하게 될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리하여, 이 책이 약간 부족하다고 뭔가 더 명확한 답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 그레이의 다른 책들
"화성 남자 금성 여자의 침실가꾸기 /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 사랑의 365일 / 결혼지키기 / 관계 지키기 / 사랑의 잠언록"..등등.. 계속해서 읽어야 할 도서 목록이 책 날개에 펼쳐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은 개체만으로도 충분히 다르고
남자와 여자는 정말 어떻게 공존하는가 싶을 정도로 다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나름대로의 명확한 이유 때문에 상대방이 이해못할 행동들을 반복한다.

그럴 때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생각날 것이다.

이 책만으로도 물론 분명히 답답해서 존 그레이의 다른 책이나 다른 관계개선 책들을 읽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이미 우리는 외계인과 함께 살기로 작정했는 걸.

 

2006.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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