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둘러보았으나, 버스 안엔 비슷하게 생긴 남자들이 몇 몇 있었고, 그 목소리는 30대를 넘긴 남자의 나즈막한 것이었다.

남자가 따라부르고 있는 노래는 이은미의 서른 즈음에였다.

나도 또 - 하루 멀어져간다. 부터 조용히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노래를 멈춘 다음에도 그 남자는 누구인지, 계속해서 노래를 조용히 따라부르고 있었다.

버스는 언덕을 올라 아직 남은 난곡의 판자촌을 내려다보고 바로 이어지는 국제산장아파트 단지 앞에서 섰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직 버스안에 있는 듯 했다. 삼성산 뜨란채 아파트 단지를 지나, 관악산 휴먼시아 1단지에서 나를 비롯한 예닐곱명의 남자들이 함께 내렸다.

남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생겼고, 같은 색깔의 코트를 입고 있었다.

같은 옷을 입은 비슷한 나이의 그 남자들 중 누군가가 서른 즈음에를 따라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누군지 알 지 못했다. 같은 색의 코트를 입고 밥벌이에서 돌아오는 남자들은 모두 다 다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2008. 12. 15.

Photo @여의도 환승센터 by 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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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파트에 산다.

산속에 지어진 이 곳은 오래전 어딘가에서 밀려온 사람들이 판자로 집을 짓고 살던 곳이었다.

그곳을 밀어내고, 그 사람들을 밀어내고 여기 거대한 요새를 대한주택공사가 지었다.

아직 몇 몇 집들은 저쪽 산 내려가는 길에 조금 남아있다. 이 아파트 단지의 길 건너에 예전 집 두 채가 남아있었는데, 그 집 옆에 거대한 교회가 그 거대한 몸집을 더 불리기 위해 교육관을 신설하면서 그 두 채의 집도 쓸어버리고 말았다.

이 곳의 주민들은 아파트 동호회 사이트에 예전의 이 곳의 모습 사진을 구해 올리며 찬란한 자신들의 자본주의 경제의 성취감을 자랑한다. 그런 사진들은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도 전시되고 있었다. 아무도, 이 전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산 어딘가에서 내려오던 들개들이 간혹 아파트 단지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 개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고, 개보다 생명력이 강한 고양이들은 주차장 여기저기와 건축대상인지, 조경대상인지를 받았다는 작은 수풀들 사이에 둥지를 틀고 봄과 가을이 되면 미친 듯한 발정소리를 내어 주민들을 호령하고 있다.

이 집에서 하루종일 문을 닫고 지낸 나는 저녁이 되면서부터 여기저기가 가려워지고 머리가 무거워진다. 몸이 가렵다는 내 말을 듣고 남편은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킨다. 이 집에 이사오고 나서 우리는 새 집 증후군에 지독하게 시달렸다. 남편은 없던 알레르기 반응이 여러 음식들에게서 나타났고 나 역시 아토피 비슷한 피부소양증에 시달렸으며 출생때부터 건조성 아토피가 조금 있던 아이의 아토피가 심해졌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말을 못했던 아이가 내내 울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환기를 시키고 나자 머리가 조금 가벼워졌다.

이 따위를 집이라고 지어놓고 사람보고 살라고 하는 이 나라에 분노가 일었다.

그들이 밀어버린 집들은 이렇게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예전에 살던 집은 남편이 대학시절 건축을 하시던 아버님의 소개로 직접 자갈을 지고 날라 지었던 집이었다. 그 집은 햇빛이 들면 뜨거웠고, 보일러를 꺼도 오랫동안 훈훈했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남편은 신혼 첫 집으로 그 집을 선택했었다.

우리가 이 곳에 온 이유는, 적당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체중이 월등히 많이 나가는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괴롭다는 나의 요구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유모차를 편히 몰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하다 보니 그 폭은 아파트로 좁혀졌고 그 중에 만만한 가격대가 여기였다.

우리는 이 곳을 나가면 집을 짓고 살기로 결심을 하였지만, 그 때까지 그럴만한 능력이 갖춰질까 하는 생각을 가끔한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허술한 단독주택을 사서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나는 제의하기도 했지만, 출장이 잦은 남편이 없는 집에서 어린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에 약간의 공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계약기간을 더 연장해 이 집에서 꼼짝없이 2년동안 더 새집증후군에 시달려야 한다. 아늑하고 따듯하고 나의 모든 것들이 늘어져 있는 편안한 집이며,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족처럼 새집 증후군에 시달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저 이건 우리 가족이 지나치게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내 탓이오"로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아마 이 집을 나가게 되면 멀리 지인의 공장으로 보내버린 거대한 비글 한 마리를 다시 데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아파트에 살지 않을 것만 같다.

천변이 보이고, 산책로가 있고, 재래시장이 가까운 곳,

그런 곳에서 시멘트 콘크리트가 뿜어대는 독성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며 살아야겠다.

+그래도 아파트를 선호하는 우리 모친은 이사 후 황토벽지를 구해 바르고 여기 저기 창호지를 덧붙여서 그나마 아파트의 악영향에서 헤어나왔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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