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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ㅣ 대담 시리즈 1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도정일 최재천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의 지나간 두 권의 대담집 "오만과 편견",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를 읽은 사람들은 아마 휴머니스트의 세 번째 책을 기다렸을 것이다.
대담집이라는 것은 아주 자주 등장하는 형태의 책은 아니지만, 휴머니스트의 지난 두 작품들은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매우 우수했으며, 그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또 비슷한 대담집이 나오길, 그래서 지적 허영심을 가득 채워주길 분명히 기다렸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오자 마자 교보문고에서 바로 인터넷 구매를 했는데 (인터넷 교보문고에 거의 매일 접속함)두께의 압박으로 두 달여를 미루고 있었다. 장장 600페이지에 이르는 이번 대담집은 부제 그대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였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는 황우석 교수의 파문이 있기 전이었는데, 책을 사고 난 다음에 난리가 나기 시작했으며, 그러면서 빨리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욕구곡선이 상승을 하다가 황우석 교수 파문의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책을 외면하고 싶어지는 하강곡선을 타기도 했다.
4년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시기를 만났고 그래서 세상에 빛을 봤다.
이만큼 시기적절하게 출판되는 책도 많지 않으리라.
영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 도정일, 그리고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최재천 교수가 만나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그리고 동물행동학으로 풀어본 사회구조와 동물행동학으로 해명될 수 없는 인간의 이해못할 행동들에 대해서, 신화와 과학의 타협점은 없는가, 이 복잡 다단한 세상을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부터, 우리가 기대하고 혹은 두려워하는 미래사회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 동물행동학이나 혹은 신화학, 혹은 인문사회학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사전 상식이 있으면 책을 읽기가 수월할 것이며, 특히 레비-스트로스나 리차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제러드 다이아몬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의 책을 읽었거나 이론을 알고 있거나 혹은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재미가 훨씬 더 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대담은 과연 미래 사회는 어떻게 될까부터 시작한다.
빅 부라더가 출현할 것인가, 조지 오웰이 예견한 1984년은 이미 지났고, 그의 예견은 너무 빨랐던 반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27세기를 예지했는데 보아하니 21세기 말정도가 되면 인간복제가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물론 이는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조작임이 밝혀지면서 뒤로 좀 후퇴한 감이 있긴 하지만.
그리하여 우리가 유전공학을 가지고 논 할 수 있는가, 인간복제 줄기세포 운운해도 될만큼 인간이 유전자나 DNA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복제가 가능하다면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철저히 다윈의 진화론에 의거하여 세상을 풀이한다면 동물행동학이나 진화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행동들은 어떻게 규명하는가 하는 것들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유인원중에 인간과 보노보만이 마주보는 섹스를 한다는 것, 진화나 번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입양이라든가, 이기적 유전자 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살, 전혀 쓸모없는 예술의 행위 (내가 대학다닐 때도 우리 문학이론 교수가 문학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렸었다, 그 말의 뜻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등은 그 어떤 동물행동학으로도 진화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신화론은 과연 자연스러운가에 대한 의구심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동물행동학이 초기발생시절 여성폄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신화역시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 교회의 권력자들이 철저하게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역할이 더 컸던 창조론 등에 대한 민감한 이야기까지 간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대담은 절대 외람되지 않고 건방지지 않으며, 어쩌면 이렇게 토론이 자연스럽게 오고 갈 수 있느가에 대해서 경이로움이 느껴질 정도.
진화론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는 전제하에, 세상은 약육강식과 자연도태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진화론의 원리로 인해 태국의 닭들이 죽어나간다고 전세계가 긴장하고 유럽의 소가 나자빠진다고 전세계가 긴장하는 등 이미 자연도태로 인해 남은 유전자들이 자연스럽게 복제되어 버린 상황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언어와 문화와 습관도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도태되어 가고 있는 현 시대에, 더 이상 인문학은 과학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아 그는 과연 완벽한 인간이었던가) 과학과 예술과 인문의 경계는 인간이 국가를 발전시키고 제도라는 것을 만들면서 경계지워진 바 다시 융합하는 시대의 필요성에 의해서, 학문을 하건 하지 않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철학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휴머니스트의 대담 기획과 같은 도전이 일상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책이라면 고등학교 졸업이후 손도 대지 않았던 내가 8개월짜리 태아를 품에 안고 그냥 궁금해서 요즘은 자연과학 / 교양과학 서적을 기웃거리는 것처럼, 이제 모든 것을 두루 아우르지 않으면 우리도 또 "도태"되는 유전자로 가득할 지 모르는 일이니까.
2006.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