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 눔 씨키. 너 한 벙 마즈까?" 아이가 입을 앙다물며 나에게 삿대질을 한다. 허리를 굽히고 팔다리에 힘이 한껏 들어가 있다. 아이는 내가 이놈의 새끼. 너 한 번 맞을까?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민망해졌다. 아이는 상황극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저것이 바로 협박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화가 난 걸 알아채고 꼭 안아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매 번 그렇지 못하다. 아이는 자주 화가 나고 자주 답답하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답답하고 제가 키가 작아서 엄마가 닿는 곳에 닿지 못해서 답답하고, 리모콘 조작을 할 수 없어서, 마우스 조작을 할 줄 몰라서 답답하고, 글자를 다 몰라서 답답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 수 없어서 답답하고 엄마에게 꼭 뭔가를 해달라고 말을 해야만 해서 답답하다. 아빠도 누나도 주로 집에 없어서 섭섭하고, 기차의 연결고리가 자꾸 빠져서 화가 난다. 그건 고장난 거라고 거듭 설명을 해도 아이는 끝까지 연결을 해보려고 억지를 부린다.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들이 시비를 걸거나 제가 타고 싶은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운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다.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낸다. 언젠가 모든 일을 제 스스로 다 할 수 있게 되면 속이 시원해질까?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78년도에 찍은 나의 사진을 들여다 본다. 내가 37개월일때의 사진이다. 사진속의 나는 아이와 똑같이 무릎을 꿇고 식탁의자에 앉아 제 컵에 혼자 우유를 따르고 있는 새초롬하고 하얀 여자 아이였다. 아이가 나만할 때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를 돌이켜 본다.

내 소꿉장난에 흙이 묻는 게 싫어서 아이들과 놀지 않았고 혼자 집에서 가위질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며 집안에서만 놀았다. 혼자 구슬치기를 하고 미니카를 가지고 놀고 가끔 독수리 오형제를 보았다. 엄마가 가게에 나가면 나는 혼자 20원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자동차가 지나가면 벽으로 마구 뛰어가 몸을 딱 붙이고 섰는 일을 반복하면서 동네 문방구에 가서 종이인형을 샀다. 그리고 하루 종일 종이인형을 오리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사실 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속엔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다고 새겨져 있다. 엄마는 주로 소파에서 나에게 조용하게 말을 하다가 졸았고 곧 잠이 들었다. 나는 발치에 앉아서 바람이 흔드는 흰색커튼 사이로 들이치는 햇빛을 구경하며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그 날 산 종이인형은 그 날로 죽었다. 라면박스 하나 가득 매일 매일 산 종이인형들이 옷을 찾을 수 없어서 시체가 되었다. 다음 날이면 나는 새 종이인형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우겼다. 나는 매일 외로웠고 조금은 우울했다. 뭐든지 내가 하려고 했고 내가 발돋움을 하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화가 났다.

앞 동 사는 지혜네 집에 종이인형을 사러 가자고 초인종을 눌렀다가 지혜 아빠에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넌 매일 종이인형을 사니?

나는 그 다음날부터 혼자 종이인형을 사러 갔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잘 먹는다고 엄마에게 칭찬을 받았다. 아빠는 안방에서 장부를 정리하며 담배를 피우다가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때리기도 했다.




아이는 지금,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을 싫어하고 수퍼나 문구점, 서점에 가서 뭔가 하나씩 사들고 오는 것을 좋아하며 집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해가 지면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는 일을 좋아하고 매일 TV를 보고 은하철도 999노래를 열심히 연습한다. 혼자 펜으로 고래를 그리고 고래가족을 그린다. 그게 고래라는 건 나와 아이만 알아본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네 살짜리 이하나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도, 많이 외롭고, 힘들겠지. 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인생을 반복하는 일이다. 서른 다섯해를 고스란히 다시 살아가는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아니지만 나는 그 시절을 오롯이 다시 받아내어야 한다.

오늘은 잠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사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었다. 그동안 참았던 분리불안증세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다. 물을 달라고 하더니 배가 부르다고 하고 물을 달라고 하더니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당황스러워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변덕을 부린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자 아이가 갑자기 책을 읽어달라며 동화책 한 권을 끄집어냈다. 연필세밀화가 아름답게 그려진 흑백의 차분한 그 동화책을 소리내어 읽다보니 화난 목소리로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토끼의 목소리도 내어야 하고 산양할아버지의 위엄있는 목소리도 내어야 했다. 교활한 여우의 목소리도 내어야 했다. 아이는 붉어진 눈가를 잊었는지 금새 배시시 웃는다. 나도 아이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었다.



며칠 후면 주문한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가 올 것이다. 아이는 벌써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는 엄마 나 자전거 좀 타고 올께 하고 혼자 현관문을 열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엄마, 나 혼자 여행 좀 다녀올께 하고 큰 가방을 메고 집을 나갈 지도 모르겠다.



2009. 6. 25.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교복가격에 대한 논란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매년 이 맘때쯤 교복가격이 문제가 된다, 는 설들만 난무할 뿐, 교복의 가격은 전혀 조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교복가격이 문제가 되면서 모 업체에서는 저소득층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공지사항까지 올렸지만, 실질적으로 이러한 대기업 교복업체에서 저소득층 가정 자녀에게 교복을 지원해 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현재 서울/경기도 일대 중/고등학교의 브랜드 교복가격은 약 30만원대 이상에 달한다. 이 가격은 동복만의 가격이다. 블라우스 + 치마/바지 + 조끼 + 자켓을 포함한 가격이고, 여기에 정해진 지정 코트를 구입하게 되면 15만원 정도가 더 추가된다. 블라우스는 업체마다 다르지만 대기업 브랜드 교복의 경우 장당 2-3만원에 이르고 이 가격이 부담스러운 학생들은 지마켓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만원대의 블라우스를 별도 구입하게 된다. 여기에 하복의 경우 약 10만원대에 이르고 체육복은 각 학교별로 3-5만원가량 일괄구매하도록 되어 있다. 학교에서 학생증을 달게 되어 있는 학교는 예외지만 학생의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교복에 부착하게 되어 있는 학교도 있는데 이런 경우 명찰을 약 1천원-3천원 대에 추가구매하도록 되어 있는데, 명찰은 동복 자켓과 하복 자켓, 체육복 상의에 필수부착하게 되어 있는 학교도 있다. 

 물론, 공동구매라는 대체 수단도 있다. 공동구매의 경우 15만원 선에서 동복세트를 구입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15만원에 체육복 추가 비용, 그리고 하복까지 생각한다면 이 역시 만만한 비용은 아니다. 

 대부분의 교복 가격 논란자들은 대기업의 마케팅 정책과 거기에 물색없이 따라다니는 10대 소비자를 비난한다.

브랜드 교복의 경우 10대 학생들이 좋아하는 스타들을 내세워 교복광고를 하고 있는데, 2009년 신학기를 겨냥한 브랜드 교복의 광고 모델들은 다음과 같다.

 

아이비클럽 - 원더걸스 & 김연아 & 슈퍼주니어
엘리트 교복 - 2PM & 소녀시대
스쿨룩스 - 빅뱅 & 다비치
스마트 교복 - 샤이니

 





 
이 중 일부 모델들은 2008년 모델과 겹치는 경우가 있고 한 그룹의 일부 멤버들이 주력 모델로 선발되기도 한다. TV 광고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회사의 홈페이지에서도 CF나 모델들의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브랜드 교복의 마케팅 전략은 단순하게 모델의 기용 때문은 아니다. 실제 이들 모델들이 입고 나오는 교복은 대한민국에서 존재하기 어려운 교복의 디자인이다. (하얀 치마 교복이 가당키나 하나 / 아니면 저 짧은 길이의 치마가 가능한가)

 
브랜드 교복은 단순하게 모델이 입었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브랜드 교복을 선호하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10대들의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

요즘의 10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오해는 브랜드 교복이 스타들이 광고하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아이들이 따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10대들은 단순히 스타가 입기 때문에 그 브랜드의 교복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요즘 10대들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실리적이고 영리하다. 그들이 브랜드 교복을 찾는 이유는 디자인의 차별화, 원단과 기능의 우수성이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그정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상품을 구매하겠다는 것이 젊은 이들의 사고방식이다. 

 공동구매로 사게 되는 교복은 학교측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그대로 만들어 낸다. 펑퍼짐한 치마, 넉넉한 품등,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만들어 주는 넉넉한 형태, 몸매를 전혀 살리지 않는 - 쉽게 말해 어벙벙한 스타일이 된다. 특히 1학년의 경우 3학년때까지 입기 위해서 엄마들은 두 치수 정도 크게 입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보기에도 커다란 교복을 입고 옷속에서 아이가 헤매는 것처럼 보이는 1학년 학생들을 보면 -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물론 그런 모습이 귀엽게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어린이같은 귀여움이 아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초등학교 때 허리띠를 착용할 수 없는 고무줄 형태의 하의와 티셔츠를 입다가 정식으로 옷다운 옷을 만나는 첫 경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미 여학생의 경우 5-6학년 쯤 되면 브래지어 착용이 필요할 정도로 요즘 아이들의 성장속도는 무섭다. 버스 기사분들이 초등학생이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 성인인 줄 착각하고 왜 요금을 반만 내느냐고 따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아이들도 있다.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 그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몇 학년인지 명확하게 가려낼 수 있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미 몸매가 잡혀가는 상태로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 (특히 여학생들)은 이제 제 몸이 성인의 형태를 갖춰간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커다란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춘기 아이들은 외모가꾸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인지하고 또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단계에 있다. 아이들이 멋을 부리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학습해 가는 과정이다. 내가 가진 이미지와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무엇이며,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확인하는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아이들의 외모 가꾸기이다. 이 중 교복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하루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바쁜 스케줄로 학교가 끝나자 마자 바로 학원으로 직행하는 아이들이 많다. 학원이라는 곳은 아이들이 각자의 교복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또다른 경연장이 된다. 어느 학교 교복이 예쁘고, 어느 학교 교복은 촌스러운가를 확인하고 그 촌스러운 디자인도 멋지게 소화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나도 남보기에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브랜드 교복은 여기서 아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디자인적 강점을 가지고 있다. 적당하게 살린 라인과 소매와 밑단 끝에 숨어있는 여유분이 성장을 하더라도 고쳐서 입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있다. 교복대리점을 하는 분들은 아이들이 특별히 살이 찌지 않는 이상, 팔다리가 길어지지 몸통이 커지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남학생의 경우 고등학생이나 되어야 본격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고 이 때는 자켓이 넉넉해야 하지만, 여학생들이나 중학교 남학생의 경우 특별히 살이 찌지 않는 이상 팔과 다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그 때에 맞춰서 피트한 형태의 교복을 입고 자라게 되면 또 늘려서 입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브랜드 교복의 영리한 디자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동구매와 브랜드 교복은 원단의 차이가 있어서 브랜드 교복의 경우 자켓 하나만 입어도 방한이 된다고 설명한다. 공동구매 교복과 브랜드 교복을 모두 구매해 본 학부형의 입장에서 이 부분은 맞는 것 같았다. 공동 구매 교복 자켓보다, 브랜드 교복의 자켓이 훨씬 더  따뜻하다는 것이다. 또한 브랜드 교복은 매년 안감을 다르게 설계한다. 아이들은 휘날리는 자켓 속의 안감을 보고도 몇 학년인지 파악한다. 만약 전학생의 경우는 08년도에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09년도 신입생 교복을 입게 될 경우 친구들과의 동질감 형성에 실패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기성세대의 눈에서는 그게 뭐 대수라고 할 수 있지만, 기성세대는 정확하게 자신의 어릴 때 모습을 상기 해 볼 필요가 있다. 친구들과 유난히 다른 나의 모습이 그렇게 자신감 넘쳤는가? 아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 되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모순적으로 어느 정도의 동질감 형성과 그룹을 형성하길 원한다. 그게 10대의 마인드이다. 

 공동구매 교복을 구매해 세탁소와 수선집을 거쳐 브랜드 교복처럼 수선을 한다고 하더라도, 안감까지 바꿀 수는 없다. 또한 애초에 설계된 디자인이 다르기 때문에 수선에도 한계가 있다. 눈썰미가 발전하는 나이 - 10대들은 브랜드 교복과 공동구매 교복을 철저하게 구별할 수 있다. 

 브랜드 교복의 가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공동구매 교복이 디자인을 중시하는 10대들의 선택에서 밀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교복가격의 문제를 단순히 브랜드 교복의 과도한 마케팅 전략과 학생들의 맹목적인 따라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자인과 실용적 측면에서 공동구매 교복은 분명히 브랜드 교복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주먹구구식이 될 수 있겠지만, 교복가격을 통일화 시키려면 모든 브랜드 교복과 공동구매 교복의 차이점을 없애야 한다. 원단의 선택은 업체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학교측에서 지정한 정확한 디자인을 절대로 변경할 수 없도록 하거나, 안감까지 통일시키거나, 브랜드 교복의 디자인적 잇점까지 끌어와 정확하게 학교에서 디자인을 하고 그 지침을 각 교복제작업체에 내려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각 교복업체는 디자인을 절대적으로 변경할 수 없도록 법제화 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학생들에게 교복변형을 절대 금하도록 교칙을 확고히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브랜드 교복업체는 공동구매 업체를 뛰어넘을 방법이 오직 광고와 원단밖에 없어지고, 시장 점유율이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광고 모델에게 지불하는 모델료를 대폭 삭감할 수 있을 것이고, 과대 광고 역시 줄어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우격다짐식 대안은 교복이라는 제도 자체가 파시즘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개성이 없기를 강요받는 통일된 유니폼을 강제적으로 입히게 하고 그 안에서 변형을 추구하는 아이들의 의도까지 막지 못하는 이상, 교복가격의 문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교복자율화를 거쳐 다시 각 학교마다 교복을 입힌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나는 부활한 교복이 아이들에게 소속감을 주기 위한 순수한 의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탈선을 막고 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혹은 새로운 시장의 창출을 위해서, 여러가지 이유가 복잡적으로 작용하여 생겨난 것이 교복시장이 아닌가. 

 학생들은 학교 배정 역시 자유롭지 못하고, 그 학교에 들어가 원하지도 않는 교복을 입기를 강요받는다. 학생들 중엔 저 학교의 교복이 더 예쁘니까 그 학교로 배정받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본인이 입겠다고 동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교복의 파시즘에 자본주의가 결탁했다. 교복가격이 불안정하고 이 방대한 시장에 여러 경쟁자가 출현하는 것은 당연한 원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한 업체들 중 승리한 자들이 가격을 주도할 수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이다. 아이들은 교복의 차이가 가정형편의 경제적 형편의 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혹은 부모님의 완고함의 차이이거나, 자신이 가정에서 존중받는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척도로까지 확대해석 하기도 한다. 

 처음 중학교에 진학한 딸아이에게 공동구매 교복을 당연하게 강요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입고 다녔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학교에서 자신의 교복이 다른 아이들의 교복과 기능성과 디자인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지한 아이는 교복 수선을 반복했다. 보다 못해 브랜드 교복에서 자켓을 하나 구입해 주었는데, 아침에 학교에 가는 아이의 모습이 참 달라보였다. 가격이 비싼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교복가격을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디자인 변경의 절대 불허 , 혹은 전국교복의 통일,  혹은 교복제도 폐지. 이 세가지로 함축된다.

물론, 브랜드 교복 업체에서 모델기용과 광고/마케팅에 쏟아붓는 비용을 대폭 줄이고 교육복지 사업에 투자하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브랜드 교복은 기업이 만든다. 기업은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그들이 과연 대한민국 교육복지에 투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대한민국 교복시장, 의류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 크게 욕심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아마 지금도 교복시장에 아직 진출하지 못한 것을 통탄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2009. 2. 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배울 만큼 배웠고, 해볼만큼 사회생활을 해 본 내노라 하는 여자들이 집안에 들어앉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가, 나의 시어머니가 그러했듯 어머니로서의 미덕은 희생과 봉사이니, 나도 그런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젊은 엄마들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 그런 그녀들은 이미 재능이 너무 뛰어나 와이블로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바느질과 요리, 인테리어 리폼에 프로폐셔널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실로 그녀들의 재능은 옹색하게 자기 집만 반짝이게 하기엔 너무 아쉬운 것들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발표하고자 블로그라는 매체를 선택했고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하며 지내는 파워풀한 엄마입니다. 라는 것을 지상에 공표하고 나섰다. 혹자는 와이블로거에서 시작해 진정한 프로의 길에 입문하여 경제적인 이익 창출에도 성공하였다. 대부분의 와이블로거는 이러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들은 요리블로그를 모아 책을 내거나 인테리어 리폼 기술을 가지고 잡지에 기사가 실리거나 리폼 교실을 운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자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들이 블로그를 굳이 운영하며 자기의 사생활을 드러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살림의 달인 마샤 스튜어트 이후, 살림의 달인들이 대한민국에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한 살림의 달인이라고들 하지만, 과연 그녀들이 가족을 위해 그런 기능들을 익히고 있는가는 의심해 볼만한 여지가 있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을 감추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거리를 만들고 스스로를 분주하게 만들어 집안에서도 충분히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역할론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그녀들은 옹색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톱질을 하고 먼지를 날린다.  

또래 친구들 중 인터넷 블로그 시스템을 잘 활용하고 있는 동기들은 대부분 음식을 한 사진이나, 뭔가를 꾸며낸 사진들을 전시하고 아이들의 사진으로 블로그나 싸이홈피의 메인사진을 장식하고 있다. 감정의 이입. 자신이 창조해 낸 창작물에, 자신이 창조해 낸 아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노력들이 보인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하는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된다.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직업에 성실하며 부인의 내조는 이제 더 이상 그림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조성을 필수로 한다. 살림과 가사노동에 영 취미가 없는 여자들은 또 다른 컴플렉스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남성들은 좋은 엄마가 집안에서 대단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사이 가정 외부에서도 대단한 창조력을 발산해 막강한 재력을 구축해야 한다.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는 모두를 죽이고 있다.

집안에서 하는 가사노동은 대부분 본인이 아니어도 해결될 수 있는 무방한 것들이기도 하지만 혹은 본인이 아니라면 제대로 되지 않는 난해한 것들이기도 하다. 주방은 주부의 전적인 독립공간이자 작업/직업 공간으로 모든 물건은 그 주인의 동선에 따라 맞추어져 있다. 남의 집에 가서 쉽사리 요리를 해 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과학적 동선 설계는 고난도의 테크닉엔 끼지도 못한다. 뛰어난 창작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가정주부는 그저 평범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는 아이의 유아기와 아동기에는 가사일과 발전된 가사의 형태로 발현되지만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좋은 엄마들은 성적이 좋은 아이와 특목고를 갈 수 있는 아이의 엄마, 영어를 잘 하는 아이의 엄마 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 (최근 모 영어학습지에서 아이가 영어를 잘하면 엄마가 자랑을 할 수 있다는 논리로 광고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누가 엄마들의 가치를 이런식으로 매김하고 있는가.  

어미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아비로서 살아간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본적인 아이의 욕구를 해결해 주고, 무엇을 더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상실"이 찾아왔을 때 아이가 어떻게 세상에 적응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풍요로운 시대속에 살고 있으므로, 풍요의 시대는 곧 상실의 시대이므로.  

지금 - 여성으로서의 자아가치의 창출은 식민지 근대의 신여성론 보다 못하다. 여자들은 자아를 찾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뭔가를 만들어 내어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동정론에 가까워지고 있다. 살림을 못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을 수도 있다. 각자의 분야는 모두 다르다. 모든 엄마가 희생과 봉사의 엄마로 살 수는 없다. 조금은 이기적인 엄마들이 결국은 이타적인 삶의 말년을 보낼 수도 있다.  

왜 명절이 되면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집안에서 해 낸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음식을 하기 싫은 어머니가 가장으로 있다면 그 집은 시켜먹은 음식으로 명절을 지내서는 안되는가? 모든 어머니가 홍어회를 썰고 조기찜을 해 내고 사골국물을 우려낸 떡국을 끓여내야 하는 것은 성문법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만들어 낸 관습법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성문법보다 관습법이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이가 출생하면서 부터 젊은 엄마들은 병원에서 마련한 모유수유실에서 엄마가 미안해 라는 말로 아이와 대화를 시작한다. 뭐가 미안한가. 인간의 욕망에 기초하여 출산을 한 것이 왜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 되는가. 네가 다른 엄마를 가졌더라면 희생과 봉사로 무장한 엄마로 살았더라면 아이는 더 편안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게 싫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네 운명이라고 아이에게 왜 당당하지 못할까.  

 지금의 젊은 엄마들이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부모 봉양을 모토로 삼지 않을 지금의 어린 아이들이 자라나서 세대간의 갈등은 훨씬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형제가 적고 우리들은 오래 살 것이다. 아이 한 명이 6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되면 세대간의 갈등은 극에 달할 것이다. 좋은 엄마로 늙어가기 위해서는 늙어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자존심과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식은 스물이 되기도 전에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시작한다. 그 때 되어 절대 후회하지 말고 배은망덕하다 하지 말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아야 할 방법을 지금부터 수련해야 한다.  

루소가 말했다. 배은망덕이라 함은 그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분명히 어떤 댓가를 바랬기 때문이라고. 아무 댓가없는 희생과 봉사가 과연 있는가, 배은망덕이라는 것이 성립하는가에 대해서 루소는 물었다. 세상에 배은망덕이라는 것은 없을 지도 모른다. 조금은 이기적인 삶 - 나는 좋은 엄마 보다 좋은 사람이길 원한다는 욕망이 결국 말년엔 가족들의 속 뒤집지 않는 좋은 엄마의 기억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필수조건일지도 모른다. 

 PS. 

이글을 쓰고 난 뒤 알라딘 메인을 보니 남편을 사로잡는 101가지 요리라는 책이 오늘의 반값이다. 합의하에 결혼했으면 됬지, 매번 남편을 위해 시어머니의 요리솜씨를 모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먹기 싫으면 사먹고 들어오든지!  

혼자 놀고 즐기겠다고 귀가시간이 습관적으로 늦는 남편이 있다면 더 이상 같이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먹고 살겠다고 늦는 것과 이기적으로 놀고 즐기겠다고 늦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올해 아이가 만 3세가 됩니다. 지금은 놀이방을 다니고 있는데, 하루종일 두는 것이 아무래도 걸리고, 더이상 직장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 반일반 유치원/놀이학교/놀이방으로 돌려볼까 하고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근처 구립 어린이집/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병설은 203년전에 대기를 올려놓지 않으면 아예 꿈도 꾸지 말라길래 새로 생긴 곳들을 주로 알아봤어요.   

저희가 사는 곳은 관악구 신림동.재개발로 옛 동네를 밀어내고 새로 구축된 아파트 단지입니다. 근처의 유치원 및 교육기관을 알아봤습니다.

XXX 유치원 (정부허가가 난 유치원) - 아파트 단지 내  

5세반 (아이는는 4세인데, 생일이 빨라서 (3월 25일) 5세반에 낑껴넣어줄 수 있다고 함) - 유치원 4세반은 있지도 않음
보유시간 : 아침 9시 반 - 오후 2시

입학금 200,000원
가방및 체육복 44,000원
급식비 및 특활교육비 (6개월) 840,000원
매달 교육비 250,000원
1개월 평균 410,333원
(특활 : 철학교육, 영어교육 - 중점강화)
1년 4,923,996원  

+연장보육(오후 4시까지) 할 경우 월 150,000원 추가.  

종일반의 경우 얼마가 추가되는 지 물어보지도 않았음.

XX영재놀이학교 (놀이학교의 경우 어린이집으로 인가를 받거나 학원으로 인가를 받아서 변형운영하는 형태 : 여기는 학원인가로 변형한 듯) - 아파트 단지 내
보육시간 : 9시 30분 - 2시

늦은 5세반 (여기는 5세도 빠른 5세와 늦은 5세로 분류해서 교육)

입학금 120,000원
분기별 특별활동및 재료비 250,000원
매달 교육비 350,000원
(특별활동 : 오르다, 가베, 하바, 국악교육, 영어교육, 영어요리)
1개월 평균 430,666원
1년 5,167,992원

 

XX유아놀이학교 (여기는 어린이집으로 인가 받아 놀이학교로 변형운영) - 금천구에 소재 

보육시간 오전 10:00 - 오후 1:40 (그 중 밥 먹는 시간 1시간)

4세 반

입학금 50,000원
물품비 100,000원 (체육복, 가방, 보조가방)
영어교재비 수영장 관리비 6개월 70,000원
보육교육비 278,000원
특별활동비 198,000원
교복비 90,000원
우유값 따로 월 평균 10,000원 가량
월 평균 517,666원 

년 6,211,992원

_여기는 차량운행비 및 기타 행사비용/사진값은 추가로 더 내야함 

여기는 차량을 타고 운행해야 하는데, 난곡지역에서 금천구 시흥동까지의 길이 오르막 내리막이 매우 심합니다. 상담교사에게 아이들의 차량 안전문제는 어떻게 되느냐 했더니 지입차량이라 유아 전용 버스가 아니고, 어린 아이들인 경우 안전벨트가 오히려 더 방해가 되거나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사님들이 다 잘라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군요. 기사님과 보육교사 1명이 탑승한다고 합니다.

 그 외 민간어린이집  

보육비 278,000원  

특별활동 및 재료교구비 1개월 100,000원 (6개월 선불) 

입학금 50,000원  

앨범 및 추가 비용 적잖이 약 100,000원 정도 소요  

보육시간 12시간. (오전 7-8시부터 오후 7-8시까지 가능한 곳도 있음) 

월평균 400,000원 가량  

 

현재 다니고 있는 놀이방은 월 327,000원을 내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은 연령이 낮을 수록 보육료가 비싸기 때문에 내년이 되면 5만원 정도가 저렴해지죠. 그나마 어린이집은 정부 보조금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4세부터 대부분의 어린이집들이 특별교육을 실시합니다. (오르다, 가베, 하바 등 교구 활동과 원어민 및 일반 영어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운영하는 영어교육등) 

 아이 아빠는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저희가 중산층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 보육료를 받아들고 나니, 우리는 중산층에 못 미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1년이면 거의 600만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경기도 안 좋은탓에 유치원 교육은 내년이나 후년으로 미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유치원은 비싸다고 하길래 얼마나 비싸길래 그러는가 했더니 결국 이런 결과로군요.  

외국계 놀이학교나 영어유치원은 아예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관악구인 경우 지역 특색상 조금 저렴한 편이라 월 600,000원 선이라고 하더군요.  

같은 단지에 사는 맞벌이 부부중에 쌍둥이를 가진 부부가 있습니다. 이 집은 일체의 정부 보조금 혜택은 없고, 저소득층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 엄마는 일이 즐거워서 사회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보육비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더군요.  

대부분 형제를 키우는 집들은 큰 아이가 5-6살이 될 때까지 무조건 버티기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저희가 형편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부담이 되는데, 정말 생활이 어려운 분들은 엄두도 못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치원 세 군데를 다녀와서 허망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상대적 빈곤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을 끝으로 아이 놀이방을 그만 보내고 집에서 데리고 있기로 했습니다. 현재 저는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그 공부를 포기(연기)하기로 했고,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이러면서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논의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영재반 전문 학원을 다닌 아이들만 영재반에 뽑힐 수 있는 식의 제도가 지속된다면, 애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야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내내 씁쓸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 강남구청 역에서 점심약속이 있다. 

 남편은 9시 반쯤 출근을 했고 10시 반에서 1시 반 사이에 온다는 택배는 정확하게 10시 30분에 도착을 했다. 나는 어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으므로 생략하고 아침설겆이를 마치고 아이를 보행기에 태운채 옷을 갈아입고 구두를 신을 요량으로 스타킹을 신었다. 세수를 하고 렌즈 세척제를 사는 것을 자꾸 잊어서 렌즈를 세척할 수 없으므로 안경을 그냥 쓰고 나갈 생각을 하고 스킨을 바르고 수분크림을 바르고 아이크림을 바르고 SPF 30이라는 크림을 바른다.  

아이는 아까 세수를 시켰고 손과 발도 닦았다.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고 벌겋게 건조해서 일어난 부분에 새로 산 비싼 크림을 더 덕지 덕지 발라줬다. 아이의 기저귀와 물티슈와 가제수건과 수유패드와 구강티슈는 언제나 가방에 상비되어 있고 나는 지갑과 아이의 모자와 카메라와 지하철에서 아이가 잠들었을 때 읽을 내일이면 도서관에 반납해야 하는 책을 한 권 가방에 넣는다.

아이의 옷을 벗기고 기저귀를 갈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아이가 입을 두툼한 카디건도 가방에 넣고 무릎담요도 돌돌 말아 가방에 넣고 빵빵하나 어깨끈은 애매하게 짧은 가방을 준비하고 아이를 안고 띠로 졸라맨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창문을 닫고 현관앞에서 열쇠를 챙기고 유모차를 들고 문을 닫고 좁디 좁은 문앞 현관에 서서 문을 잠근다. 구두를 신으면 키가 갑자기 커지기 때문에 계단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 위험함이 있다. 아이를 안았을 때 내 발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계단 한 칸 한 칸은 그야말로 낭떠러지와 같다. 그 계단을 나는 한 참 내려가야 한다. 우리집은 7층의 고도를 지닌 5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는 커녕 유모차를 들고 내려가기도 좁은 계단과 계단 뿐이다.

집앞에서 운 좋게 택시를 바로 잡아타서 트렁크에 유모차를 싣고 근처 지하철역까지 간다.

손주가 10개월이라던 택시기사아저씨는 친절하게도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꺼내주셨다.

나는 아이를 안고 유모차를 들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두 번 돌아 개찰구가 나오고 개찰구를 지나 또 계단을 내려간다. 유모차를 들고. 아이를 안고, 가방을 들고.

승강장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기다린다. 지하철이 오면 유모차를 들고 가방을 들고 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안에 사람이 적지 않아 마땅한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으나, 노약자 석이 없는 열차의 끝자리쯤에서 유모차를 펴는데 그 쪽에 서 있는 등산복 차림의 여편네들은 발끝하나 비켜주지 않았다. 유모차를 펴고 가방은 바닥에 내려놓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는데 건너편 노약자석에 버젓이 앉아있던 양복입은 젊은 남자가 자리를 양보해준다. 그는 자리를 양보해주기 위해 거기에 앉았던 걸까. 아무튼, 나는 아이의 유모차를 나를 보게 돌려놓고 아이와 눈을 맞춘다. 내 옆에 앉은 할머니는 나의 아이를 보고 "네가 꽃이다"라고 말하며 계속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어준다. 자리를 양보했던 남자는 몇개월이냐고 묻고 아이의 볼을 살짝 만져본다.

나는, 고운외모가 사람의 심성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의 아이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웃어주고 예뻐해주며 감탄한다. 모두들, 아이를 보고 귀엽다 예쁘다. 라고 말을 해준다. 아이는 자기를 보고 인상을 쓰거나 미워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모르지만. 호감가는 외모를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유리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갈아타는 역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수역에서 내려야 할 것을 이촌역으로 착각했고 다행히 이촌역에는 개찰구까지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채로 다시 이수역으로 돌아갔다. 예전엔 이수역에서 7호선을 갈아타려면 두 번의 엘리베이터로 끝났던 것 같은데 뭔가 잘못되었는지 내가 길을 잃은 것인지, 이번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수번씩 갈아타야했고, 배낭여행할 때 10시간동안 쉬지 않고 달리던 버스가 펜스도 없는 낭떠러지 산길에서 트럭을 추월하며 달리던 것처럼, 나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쉼호흡을 했다. 다시 아이를 일으켜서 안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유모차에 가방을 던져놓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기를 몇 차례 반복하여 나는 무사히 7호선으로 갈아탔고 강남구청역에서 내렸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다시 나는 아이를 안아올리고 유모차를 접어야 하나 망설이던 차에, 꼭 희정이의 남자친구처럼 생긴 총각이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더니 들어들이겠다고 하며 번쩍 유모차를 들어 환한 출구까지 올려주었다. 그 청년은 여자친구를 거기서 만나기로 했는지 유모차를 들 때는 혼자였는데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한 머리긴 여자의 어깨위에 팔을 두르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강남구청역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하였는데 식당의 통로가 매우 좁아 동행이 아이를 안고 나는 유모차를 들어 올려 사람들이 다리 사이를 비켜가며 식당의 안 쪽 방으로 들어갔고 밥을 먹는 내내 답답한지 보채는 아이를 외면하고 내내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와 길을 건너 스타벅스에 들어갔는데 뭔가에 성질이 난 바리스타라는 알바생이 내가 주문한 까페모카 두 잔과 에스프레소 두피오를 찍다말고 사라져버렸으며 그는 우리가 내내 앉아있는 동안 커피 수저를 거칠게 두들겨 저자가 지금 단단히 뭔가에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스타벅스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나온 나는 동행에게 아이를 안게 하고 나는 가방을 유모차에 얹은 채 계단을 두 바퀴 돌아 개찰구로 내려갔고 개찰구에서 아이를 안아 띠로 묶고 유모차는 동행에게 들게 하여 승강장까지 내려갔다. 동행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릴 예정이었고 나는 다시 이수역으로 가야했다. 지하철이 들어왔고 동행은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먼저 내렸고 나는 이수역에 내렸는데 이번에도 아까처럼 반복된 길을 다시 걸어야했다. 키가 작은 할머니 두 분이 4호선 갈아타는 길을 물어서 나도 4호선을 갈아타야 하니 이쪽으로 가시면 된다고 했다.

할머니 둘에게 방향을 알려드리고 나는 내 갈길을 갔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잠이 들어 다시 안아올렸다가는 심하게 보채며 울 듯 하여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에스컬레이터를 타기로 대단한 결심을 하였다. 한 번 시도를 했다가 다시 에스컬레이터에서 급하게 내리고 다시 숨호흡을 고른 채 인적이 드물어진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나는 뒤로 돌아서고 아이의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여 거꾸로 든 채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으며 다시 올라가야 할 때도 아이의 발을 위로 향하게 하여 아래쪽에서 내가 유모차를 받쳐든 채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보기에는 매우 쉬워보였겠지만,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수번의 에스컬레이터 타기로 나는 마치 밤늦게 도착한 둔황역에서 2시간동안 가로등 하나 없는 자작나무길을 달리던 택시안의 어둠속에 다시 들어온 것 같았다. 

 이수역 4호선 승강장에는 창동역에서 사상사고가 있어서 사당행 열차는 늦게 들어온다는 메세지를 전했고 아까 그 할머니 두 분도 옆에 서 있었다. 그 양반들이 나보고 어디로 가느냐 물었고 그 분들은 사당으로 간다고 했다. 다시 이촌역으로 가서 루브르 박물관전을 볼까 했던 고민은 오이도행 열차가 너무 빨리 들어온 탓에 그냥 접었다. 그리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인덕원 역에서 내려서 아이를 다시 안고 유모차를 이번엔 접어 어깨에 메고 가방을 메고 한참을 한참을 걸어서 안양방면 버스 정류장쪽으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이 눈에 보였고 그 전에 가판대가 하나 있었는데 목이 매우 말랐으나, 음료수를 하나 사면 그 역시도 짐이 될 것이라서 참았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오늘의 에스컬레이터 전을 기억하며 버스를 타겠다고 다짐했고 집근처 버스 정류장에 가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대답한 버스기사의 버스를 탔다. 나는 한국에 들어온 이래 내내 이런식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고 있다. 번호는 외우지 못하고 있다. 왜 버스 번호를 외우지 못하는가는 나도 모르겠는데, 수도권 도시라 그런지 11-1이 있으면 11-5까지 있는데다가 그중 일부는 빨간색 파란색으로 구분되어져서 너무나 어렵다. 게다가 버스는 그 번호를 기억했다가 늘 잊어버린 후에 다시 탈 기회가 생기므로.

아까 한 대는 집근처에 가지 않는다고 하여 보내고 집근처에 갈 것으로 기억되는 버스기사에게 방향을 물어 올라탔다. 버스카드로 버스비를 내고 2인용 자리에 앉아서 옆에 가방과 유모차를 세워두었다. 아이는 창밖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안양시내로 들어왔을 때 라디오에서는 원미연의 "이별여행"이 흘러나와서 나는 아이에게 조용히 그 노래를 불러주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사는 꽤 많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 같이 내리는 50대 아주머니가 계속 나를 흘끗거리며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미소를 건넸고 나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버스에서 내려 유모차를 펴고 아이를 다시 유모차에 태워 정류장 앞 슈퍼에서 콩나물과 바지락, 오렌지 주스 하나를 사서 아이의 유모차 아래짐칸에 싣고 오는 길에 바람이 많이 불어 낙엽이 휘날렸는데 아이가 그걸 보고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에게 모자를 씌우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 로 시작하는 가을이라는 동요와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 를 부르고 나니 집앞에 도착했다.

유모차를 밀어 올려 1층 현관에 들어와서 아이 유모차의 짐칸에 실린 슈퍼의 까만봉지를 꺼내고 가방을 꺼내들고 아이를 안아서 띠로 묶고 유모차를 접고 어깨에 메고 계단을 한참 올라 집에 도착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오늘 아침 티비프로에서 은행의 친절에 대해 이야기 하자 어제 거래은행에서 밥먹었냐는 인사를 세 번이나 들었다면서 사무실 이전식때 꼭 불러달라고 지점장이 그러더라는 남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그 은행에 가면 어깨에 띠를 멘 아줌마가 되도록 창구로 가지 않고 기계에서 일을 해결하도록 유도당한다고 말을 했던 것까지 자꾸 떠오른다. 남편의 그 얘기는 오늘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내내 떠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떠올랐다. 그리고 예전에 엄마는 은행에 가지 않고 지점장이 가게로 찾아왔었다는 얘기를 왜 하지 못했는가 내내 후회하고 있다. 하루종일. 
 

2006. 11.  

(이 때 내 아이는 약 7개월쯤 되었을 때다. 워낙에 몸이 좋으시어;; 당시 11kg 정도 나갔었다.) 

 

 

당시 내가 외출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던 유모차와 아이의 모양새,  그리고 저 뒤에 있는 기저귀가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