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화석

 

 

1

 

어머니의 말처럼 내가 웃는다면, 돌아간 아버지의 웃음으로 내가 웃는다면,

 

나의 웃음이 아버지의 웃음을 닮았듯이, 아버지의 웃음이 아버지의 아버지의 웃음과 또 닮았다면, 미소 짓는 입꼬리나 웃음의 끝소리를 붙잡고 한없이 하염없이 거슬러 올라 태초의 웃음까지 가 닿을 수 있을까. 말도 없고 불도 없던 시절에 인간이 지닌 단 하나의 도구였을 그 표정까지 미칠 수 있을까. 큰 나무를 미는 바람처럼, 큰 나무를 쪼개는 번개처럼, 인간의 눈가를 밀고 입가를 쪼개고는 한순간에 사라지는 그 신비한 전설을 만져볼 수 있을까. 돌아간 아버지의 웃음을 오래 기억하면, 많이 기억하면,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많이 웃게 하였더라면 좀 더 수월했을까.

 

많이 웃어야겠다. 행여 누군가 첫 번째 웃음으로 찾아가는 행로를 내 웃음에서 시작할지도 모르니, 최대한 많이, 오래, 웃음을 남겨놓아야겠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사는 이들의 마음에다 웃음을 총총 박아놓아야겠다.




 스페인 여행에서 어느 도시가 가장 좋았냐는 물음에 곰곰이 생각하다 마드리드를 꼽았다호안 미로의 작품이 지천이던 바로셀로나나 남부 스페인 바다를 파란 쟁반의 은구슬같이 품은 말라가가 근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마드리드를 선택한 이유는 그곳에서 많이 웃었기 때문이다.

 

 삶이 너절할수록 간절해지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한 꺼풀 벗겨보면 웃고 싶은 마음에 다름없을 것이다.

정은우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손에 잡히지 않아서이해할 수 없어서다 이해되지 않아서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이 세상엔 있다효율로만 평가하려고 하는 이 세상에 비효율로 남아 있어서 고마운 것들우리를 간신히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실 그런 비효율들이다너무 쉽게너무 자주너무 무심히모든 것에 효율을 들이대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단 한 번의 심벌즈를 위해 한 시간 넘게 준비하고 있고또 누군가는 0의 존재가능성을 밝히느라우주 탄생의 가설을 세우느라한 문장으로 우리를 구원하느라 밤을 새우고 있다라고 생각하면 마음 어딘가가 편안해진다따뜻해진다.

김민철하루의 취향


야마토, 내일도 만나자그리고 별것도 아닌 얘기를 날이 저물도록 하자.

카와하라 카즈네아루코내 이야기!! 2

 


 

 

 

2



초기의 대포는 가볍고 짧았으며튼튼하지 못했다무게가 130킬로그램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나무 받침대(포대)위에 대포를 올려놓고 쏘았다화통을 만드는 금속이 약해서 옮기다가 몸체가 깨지는 일도 다반사였다이 때문에 대포를 전쟁터로 옮기는 게 아니라 대포를 만드는 장인들이 전쟁터를 따라다녔다즉 전투가 벌어지면 장인들이 전장으로 가서 주변 지역의 종을 징발한 후 그것을 원료로 해서 대포를 만들었다전투가 끝나면 장인들은 대포를 녹여 다시 종을 만들어주었다.

정기문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종을 녹여 대포로 만드는 마음과 대포를 녹여 다시 종으로 만드는 마음의 간격에 대해서 생각한다. 수레에 실려 대장간으로 들어가는 종을 바라보는 마음과, 사람을 죽이거나 성벽을 파괴하고 돌아와 대장간에서 다시 나오는 종을 바라보는 마음의 간격에 대해서 생각한다. 마을의 종루에 걸려 하루의 끝을 알리던 종의 마음과, 한 사람의 끝을 알리고 돌아온 종의 마음 사이에 있을 간격에 대해서 생각한다.

 

인간은 대포 하나 만들 여유가 없어도 기어이 싸우고 무너뜨리고 죽인다.

 

 

 

3



 형단풍이 빨갛게 물드는 거 왜 그런지 알아?

 가을이잖아.

 노폐물이야.

 뭔 소리야.

 노폐물이라고.

 뭐라는 거야.

 나무가 죽어 가면서 배출하는 오물을 보고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관광하고 사진 찍고 그러는 거라고.

 야너는 쫌.

 한창 살아 있을 때푸를 때는 왜 아름답다고 하지 않지?

 말을 알아듣게 해.

 푸를 때는 왜 덥다고 짜증만 내냐고.

 여름은 덥고 더우면 짜증나지당연하잖아.

 다 푸르니까 모르지 사람들은살아 있는 그 함성을시끄럽다고.

 야최신우너도 그래.

 내가 뭐.

 시끄럽다고.

 ......

 너도 푸르고.

 ......

 아름답고.

 ......

 하루만 더 살아 줘.

 뭐 달라진다고.

 제발하루만.

 다를 게 뭐냐고.

 어떻게든 찾아볼게내가.

 뭘 해형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너한테 꼭 필요하다면.

최진영비상문 

 

잃어버린 친구가 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꼭 필요했을 그 친구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은 우리들은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 왜 그랬을 지에 대한 이런 저런 추측들은 금세 추문이 되고, 이내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가끔 깊은 밤이면, 잠 못 이루고 생각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그 추억에 가닿는 밤이면, 나는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 친구의 것이 되지 못한 이유는 내 것 역시 되지 못했고, 끝내 이유를 찾지는 못했으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으니 살지 말아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 전에 잠에 빠지는 통에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야 하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가 내 이유가 되지 못해서 결국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는 산다. 내가 이유라고 믿었던 것들 역시 불면의 밤을 만나 깊이 해부되다 보면 시체가 되어 새벽과 함께 시궁창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나는 다음날 아침 다시 이유 없는 하루를 위해 이를 닦고 수염을 깎는 것이다.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새로운 이유를 찾아 밖으로 나선다. 하루짜리, 운이 좋으면 한 달, 한 해를 기대고 살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불면의 밤은 언제나 다시 온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이유를 찾는 일은 계속 실패하고 궁극적으로 실패한다. 그렇다면 내가 친구를 잃은 까닭은, 그 친구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나갈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형은 최신우를 살려 놓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살아가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서라는 말은,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것을 찾지 못한다는 말로도 읽히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말로도 읽을 수 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건 모두 다르다. 그러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안다. 그건 대개 비슷하다.

 

 

 

-- 읽은 --



정기문,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월터 앨버레즈,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비상문

김상현, 이성의 운명에 대한 고백 순수 이성 비판



 

-- 읽는 --



박이문, 하나만의 선택

노회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유상균, 시민의 물리학

움베르토 에코, 0

마르셀 에나프, 진리의 가격

정철현,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8-11-27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을 위한 종을 만든 기술이 대포 만드는 기술로 전이 되었다는 아이러니요...^^

syo 2018-11-27 23:01   좋아요 1 | URL
되게 객관적인 문단이었는데도 이상하게 턱 걸려서 오래 읽게 되더라구요. 대포와 종이라니, 정말 아이러니의 극치 같죠?

북다이제스터 2018-11-28 22:39   좋아요 1 | URL
저도 얼마 전 읽은 <전쟁의 세계사>에서 동일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읽다가 동일하게 턱 걸렸습니다.
웬일인지 같은 느낌이셨나 봅니다 ^^

2018-11-28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8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1-28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만의 선택>이 <하나님의 선택>으로 보여 쇼님이 개종했나 싶어 깜놀~머 눈에 머만 보인다더만 ㅎㅎ

syo 2018-11-28 16: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알라딘의 신앙인1 카알님이 댓글을 다시고 신앙인2 스텔라님이 좋아요를 누르셨군요!

카알벨루치 2018-11-28 16:58   좋아요 0 | URL
신앙인3 달아도 된답니다~쇼님이!ㅋㅋ

syo 2018-11-28 17:57   좋아요 0 | URL
거룩한 숫자 3을 제가 가질 수가 있나요. 3000000번 번호표 뽑고 기다리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8-11-28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여기 종횡~!! ㅋ

syo 2018-11-29 00:04   좋아요 1 | URL
종횡놀이가 이어지고 있군요. 뿌듯합니다 ㅋㅋㅋ
 

 

추억 이면異面

 

 

1

 

이제는 없는 밤이 오늘은 있다. 수도꼭지를 열면 불이 콸콸 쏟아질 것만 같은 밤이 호수 주위로 겨울을 빙 두르고 있다. 사랑이 늘 그렇듯이 사랑의 추억 역시 아차 하는 사이에 마음을 데우고 태우고 얼른 재가 되었으나, 사람이 늘 그렇듯이 사람의 사랑 역시 그 재를 뒤지고 빚어 겨울처럼 밝고 하얗게 도시를 세운다. 새하얀 도시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날의 첫 키스를 영원히 반복한다. 46억 번, 137억 번의 첫 키스가 끝나면 도시는 다시 재로 무너질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귀를 파 주거나 새치를 뽑아주러 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날의 달뜬 고백이 달로 뜬 하늘을 뒤로하고 그림자 따라 아늑하고 슬픈 성냥갑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서로의 머리를 부딪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두 개비의 성냥으로 나란히 누울 것이고, 불이 쏟아지는 수도꼭지를 잠가 둘 것이다. 밤으로 녹을 것이다. 인화될 것이다. 재 될 것이다. 무한히 되돌아오는 겨울을 기다릴 것이다. 호수가 함께 기다려 줄 것이다.

 



 "좋아." 슈쿠마가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그 포르투갈 식당 말이야난 웨이터에게 팁 주는 걸 잊어버렸어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그곳으로 가서는 그 웨이터의 이름을 알아내서 지배인에게 팁을 맡겼어."

 "단지 웨이터에게 팁을 주려고 서머빌까지 그 먼 길을 다시 갔단 말이야?"

 "택시를 타고 갔어."

 "웨이터에게 팁 주는 걸 왜 잊어버렸는데?"

 생일 양초는 다 타버렸지만그는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또렷이 그릴 수 있었다약간 기울어진 커다란 눈도톰한 포돗빛 입술두 살 때 높은 의자에서 떨어져 턱에 생긴아직도 눈에 띄는 쉼표 모양의 상처슈쿠마는 한때 자신을 압도했던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전에는 불필요하게 보였던 화장품이 이제는 필요했다용모를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녀를 또렷이 드러내려면.

 "식사가 끝날 무렵당신과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묘한 느낌이 들었어." 그는 그녀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처음으로 인정하는 말을 했다. "그게 내 정신을 산만하게 한 것 같아."

줌파 라히리일시적인 문제축복받은 집


한 편의 그림을 이해한다는 건 우리가 그 그림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이 공간이 오히려 먼저 아주 특정하고도 다양한 곳들에서 돌진해 나오는 것이다이 공간은 우리가 아주 중요한 과거의 경험들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각도와 구석에서 자신을 열어 보인다말하자면 무언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모스크바 일기

 

연애 9결혼 후 1우리 부부는 많은 부분을 양보했고타협했고조정했다. '바깥세상'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결혼을 정말 잘했구나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건 저녁을 먹고 가볍게 동네를 한 바퀴 돌 때이다두 손을 마주 잡고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같이 바람을 맞고나눠 마시는 한 잔의 물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여서 다행이다새벽 3시에 나는 다른 이유로 깨어 있다피가 도는 사람이 옆에서 잠들고나는 책을 읽다 잠든다.

조안나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2



 교토대학의 중세철학 연구실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읽습니다라틴어로 쓰인 책인데그 내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합니다.

 “다 읽으려면 이백 년 정도 걸리겠지.”

 그렇게 말했던 교수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지금도 연구실에서는 그 책을 읽고 있을 겁니다정신이 아득해질 듯한 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한 행 한 행과 마주하는 시간이고 거기서 얻은 것들입니다다 읽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시미 이치로마흔에게

 

뭣이 중헌디는 인생의 화두 급 명언이 틀림없다. 인간은, 아니다, 인간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고, 그러니까 syo는 가만히 있을 때도 뭣이 중헌지를 모르고 가만히 있지 않을 때는 더더욱 모른다. 질문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질문의 의미가 아니라 질문이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순간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는 것, 지금 품고 있는 생각을 계속 품는 것, 지금 쥐고 있는 권리나 권위를 계속 쥐고 있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물어보는 순간이 자주 필요하다. 물어보는 순간 흩어지는 것들은 흩어지게 두어야 하고, 내가 중히 여긴 모든 것들이 결국 다 흩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꾸준히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지우고, 지우고, 또 지워나가다, 결국 중요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 자체가 중요하지 않게 되는 순간.

 

 

 

3



지금은 말이야거기 어른들이 많이 힘드실 수 있지 않을까힘드신데 너희들을 보면 강이 생각이 더 많이 날 수도 있어.”

도우는 우유를 마시지는 않고 손가락 끝으로 컵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러니까 나중에 가는 게 좋겠어.”

세영의 말이 끝나자도우가 있는 힘껏 컵을 잡았다.

나중에...... 언제요엄마시간이 없어요.”

정이현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오늘의 어려운 일을 내일의 어려운 일로 만들 수 있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을 속이곤 한다. 오늘 전해져야 했던 말, 오늘 나누어주어야 했던 체온, 오늘 지켜주어야 했던 마음, 오늘, 오늘, 오늘, 그 수많은 오늘들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곳으로 가 외로이 죽고, 우리에겐 내일만이 남는다. 결코 오지 않는 내일만이


사실 누구나 안다. 내일의 우리는 여전히 오늘의 우리일 것이고, 우리가 오늘 외면한 모든 것들은 내일도 외면 받을 것이며, 오늘의 내일은 내일의 내일로 한없이 지연될 뿐, 오늘을 대신할 내일 같은 것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일은, 내일 온다.

 

그리고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한 오늘들의 공백은, 점점 더 무거운 질량으로 쌓이고 덩치를 키워나가다 마침내 폭발하여 날카로운 파편처럼 우리의 일상을 찢어놓곤 한다.

 

그러니까 늦지 말자. 늦추지 말자. 놓지 말고 놓치지 말자.

 

 

 

-- 읽은 --



조홍식, 문명의 그물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

김정운, 에디톨로지

기시미 이치로, 마흔에게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 읽는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월터 앨버레즈,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유상균, 시민의 물리학

카롤린 엠케, 혐오 사회

정기문,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5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1-26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6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11-2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주에 도서관 가면 [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빌릴거에요. 마침 저희 도서관에 있더라고요? 헤헷.

syo 2018-11-27 09:3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다락방 2018-11-27 09:53   좋아요 0 | URL
[문맹]과 [아무튼, 방콕]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답니다? 으하하하하

syo 2018-11-27 10:45   좋아요 0 | URL
이제부터 막 막 막 읽는 것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1-27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횡!무!진!짜 넘한다 쇼님! 저만치 앞서 달려가시는구만유

syo 2018-11-27 09:38   좋아요 0 | URL
와, 종횡무진 그거 안 잊고 복수하신다 ㅋ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1-27 13:00   좋아요 0 | URL
아...뒷끝이...ㅎㅎ

프리즘메이커 2018-11-2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활의 노래에도 추억이면이라는 숨은 명곡이 있죠. 하루에 몇시간 정도 책을 읽으시는지 궁금해집니다.

syo 2018-11-28 18:05   좋아요 1 | URL
슬픈 노래 래디오로~ 흘러 비를 부르면~ 창 밖을 보오던 너의~ ♬ ㅎㅎㅎ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뭔가 읽고는 있습니다.
꼭 독서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말가락이 닮았다

 

 

1

 

피부가 더 칙칙하냐 인생이 더 칙칙하냐를 놓고 뇌내 논쟁이 한판 벌어졌는데 호각이다. 나이를 먹고 먹다 딱 어느 시점을 지나면 그때부터 한 번 망한 피부는 불로초에 우담바라를 갈아서 팩으로 처발라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번 망한 인생이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티핑포인트, 오늘은 비록 시원하게 망했지만 내겐 내일도 없다!고 외칠 수밖에 없는 구슬픈 지점은 몇 살쯤일까? 35? 40? 50? 500?

 

그러거나 말거나 날씨가 추워지면 역시 읽는 것뿐인데, 아니 작년까지는 분명 그랬었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자꾸 책 집어 던지고 찬바람 면담하러 나가고 싶어진다. 어디 딱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두꺼운 옷 걸치고 나가도 동네 한 바퀴 휘 돌고 오면 얼굴이 김장김치가 될 만치 추위에도 약한데, 그래도 괜히 꾸역꾸역 기어나가고 싶다. 엄마는 너 이제 그러다 감기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 나이라며 핀잔을 주는데 그 표정이 사뭇 엄숙하고 진지해서 이쪽은 더 빡친다. 앉아서 머리 말리고 있는데 뒤에 서서 내려다보다 흰머리를 발견하고는 또 쓸데없이 근엄한 표정으로, 너 그 흰머리 뽑지 말고 염색해라, 뽑으면 머리 안 난다, 너 가뜩이나 머리숱도 적은데, 이러면서 걱정하는 척 돌려깐다. 어디서 주워듣고 온 비과학적 발언으로 아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다니 이 엄마가 내 엄마가 맞는지 과학적인 의구심이 생겨난다. 엄마, 내 머리숱 적은 거, (동생) 머리숱 적은 거, 그거 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면 거울 한 번 보소서. 그러자 엄마 역시 와, 저게 내 아들인지 후레아들인지 과학적인 의구심이 생겨난다는 표정인데, 그 순간 이쪽에서는 역시 우리는 모자관계일 확률이 99.98% 라는 과학적인 확신이 드는 것이다.

 

완전한 삶이란 없다그 조각만이 있을 뿐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생각을 없애야 한다결의가 굳고 눈이 멀어야 한다무엇을 하건무엇을 하지 않건 그 반대는 하지 못한다행동은 그 대안을 파괴한다이것이 인생의 역설이다그래서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고선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을 뿐이다바다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제임스 설터가벼운 나날

 

그래서 침묵이 강요된 이 시간 동안나는 일종의 일기 같은 것을 쓰기 시작하고심지어는 아무도 읽지 못하게끔 비밀 문자를 만들기도 한다나는 일기에 나의 불행나의 고통나의 슬픔나를 밤마다 침대에서 소리 죽여 울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적는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문맹

 

손님 혹시 직업에 대해 설명한 책이 있나요딸한테 동기 부여를 해주고 싶어요.

직원 따님이 입시를 앞두고 있나요?

손님 아니요아직요우리 딸 저기 있네우리 공주님이리 와봐. (네 살 배기 아이가 온다우리 딸여기 친절한 언니랑 잠깐 얘기하고 있어나는 어떻게 의사나 과학자가 되는지 알려주는 책을 찾아보고 올게너도 의사나 과학자 괜찮지?

(아이는 아무 말도 없다)

(직원에게금방 갔다 올게요.

(손님은 논픽션 서가로 간다)

직원 이름이 뭐니?

아이 세라요.

직원 세라이름 예쁘다.

아이 고맙습니다.

직원 세라이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

아이 : ...꿀벌요.

직원 참 멋진 꿈이구나.

젠 캠벨그런 책은 없는데요 



 

2



 

오은의 시를 읽으며, 이 사람은 천재적인 데가 있구나, 하고 느꼈던 적이 많다. 성 농담과 쌍벽을 이루며 아재 개그의 영토를 크게 양분한다고 알려진 글자 조작’(말장난?)의 미학을 최대치까지 밀어붙여 시로 만드는 쉽지 않은 재능이랄까. 이런 걸로도 시가 되는구나, 대단하구나, 생각하게 하는 시가 그의 시집 속에는 많았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갑자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정쩡한 시가 툭 튀어나오기도 했다. 바로 이런 거.

 

어젯밤 꿈에는 네가 나왔다. “잘 지내?”라고 차마 묻지 못했다. “잘 지내라고 서슴없이 대답할까봐누구보다 네가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이렇게나 나쁘다꿈속에서도 나아지지 않는다.

오은 표리부동전문

 

syo가 나이 열다섯에 저런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그날 일기에 오늘도 한 편의 시를 썼다.” 라고 기록하곤 했다. , 흑역사.

 

혹시 syo가 뭔가를 똑바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무려 오은인데. 어쩌면 저 안에 뭔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래 곱씹어 읽으면 그제야 보이는 뭔가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렇게 오래 곱씹어 비로소 저 시가 아름답게 된다면, 그때 저건 오은의 시가 아니라 오은 반, syo , 반반시가 되는 것은 아닐까?

 

 

 

3



하지만 서점에서의 현실은 다르다.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평론가들이 열광적으로 논평한 대부분의 책들은 몇 달 동안 먼지가 쌓인 채 서가에 꽂혀 있다가 결국 휴지조각으로 전락해버리는 반면, 미처 평가도 받지 못하고, 토론이나 추천의 대상도 되지 못했던 그 밖의 다른 책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문득 나는 이런 책들에 관심을 쏟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정말 제대로 된 리뷰를 써보겠노라 결심했었다. 각각의 작품들을 문예사조에 따라 분류하고, 책의 성격이나 경향을 규정하고, 이 책이 다른 책보다 나은지 못한지 독자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리뷰를 쓸 줄 모른다는 걸, 게다가 그다지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나는 독자로, 아마추어로, 그리고 뭔가의 가치를 끊임없이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애호가로 머물길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_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 줘서 고맙고, 무려 쉼보르스카와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서 영광이다.


도대체 서평이라는 것은 어디까지 쓰고 어디부터는 안 써야 하는 물건인지를 고민하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잠깐인 이유는, 통용되는 의미로서의 서평장르가 요구하는 함량을 채울 역량이 애당초 syo에게 없었음을 금방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고민을 1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잘 된 서평은 그 솜씨가 부럽고, 부럽다보면 가질 수는 없더라도 알기라도 하고 싶어서 꼼꼼히 읽게 된다.

 

쉼보르스카의 이 서평집은 한 편 한 편의 분량으로 미루어보건대, 아마도 syo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치에 가까운 서평의 원형이라고 봐도 되겠다. 꼼꼼히 읽고, 어차피 서평인 듯 서평 아닌 서평 같은 것들만 쓸 팔자라면 이렇게라도 쓰고 싶다.

 



반면 이명현 선생님의 이 서평집은 서평에 과문한 syo의 입장에서는 논문급이다. 학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있으시겠지만. 과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세하고 친절하며 그 와중에 다정하다. 오죽하면 이명현의 서평을 읽으면 원전을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드니 읽지 말라는 말이 추천사로 붙었을까.

 

 

 

-- 읽은 --



이명현, 이명현의 과학책방

이영문, 고인돌, 역사가 되다

박병상,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역사미스터리클럽,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사 명장면

오은, 왼손은 마음이 아파

 


 

-- 읽는 --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

월터 앨버레즈,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기시미 이치로, 마흔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김상현, 『이성의 운명에 대한 고백 순수 이성 비판』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하라 2018-11-2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흰머리 따위는 그냥 새치로 치세가 세월에 대한 마음가짐입니다ㅠㅠ

syo 2018-11-24 00:37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는 붙어있기만 해준다면 희든 검든 그저 땡큐라는 마음가짐이랄까요.

비로그인 2018-11-24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학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있으시겠지만.’ ㅋㅋㅋ 저는 요런 소소한 멘트가 왜 이렇게 웃기죠? ㅋㅋ

syo 2018-11-24 09:19   좋아요 1 | URL
소소한 멘트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사람은 다정한 사람^-^

단발머리 2018-11-24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찬바람 면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11-24 12:07   좋아요 1 | URL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세상 사람들의 웃음 포인트를. 그래서 그냥 되는대로 던져 본다!!

warmsoul 2018-11-2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서 뭐가 될거냔 질문에 ‘꿀벌‘요 하고 답한 내용을 읽고 갑자기 눈물이 핑도는데 제가 이상한건가요?^^;

syo 2018-11-24 15:56   좋아요 0 | URL
전 그거 읽고 너무 귀여워서 빵 터졌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정말 눈물이 핑돌 수도 있겠어요.
막, 네살 짜리 여자애가 꿀벌 옷 입고 있는 걸 상상했거든요ㅎㅎㅎ

stella.K 2018-11-2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가족이란 그런 거예요.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어요?ㅋ

지난 목요일(정확히는 금요일일텐데) M본부에서 하는
<문화사색>이란 프로에 이명헌 씨 나왔는데 맨정신으로
봤어야 하는 건데 한 잠 자고 봤더니 다음 날 기억 나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이명헌 씨 인상 좋더군요. 털북숭이라서 그렇지.ㅋ
과학엔 잼병인데 저 책은 정말 읽고 싶어지더군요.

눈도 왔는데 애인은 안 만나시나요?ㅎ

syo 2018-11-24 15:59   좋아요 0 | URL
대구는 눈 안 오고 비왔어요ㅎㅎㅎㅎ 여긴 그런 곳이지요.

그나저나, 천문학자 이명현 선생님이요. 저도 저 책을 읽으면서도 이명‘헌‘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심지어 저 책이 제가 읽은 이명현 선생님의 첫 책도 아닌데. 이제껏 계속 이명‘헌‘으로 알고 있다가, 페이퍼에 이 책을 추가하려고 이명헌을 검색했는데 책이 안 나온다??? 알고 봤더니 이명‘현‘ 선생님....

심지어 어제 알쓸신잡에서도 자막으로 천문학자 이명‘헌‘이라고 나오더라구요. 두 번이나.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이‘병‘헌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이렇게 된 걸까요?
이병헌 이병헌 이병헌 이병헌 이병헌 이명헌......

stella.K 2018-11-24 16:37   좋아요 1 | URL
헉, 그러고 보니 제가 오타한 건데...
저도 이명현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 아니었단 말입니까? 허허.

아, 그러고 보니 스요님 대구에 있죠?
전 서울에 눈이 오면 대한민국 전체가
눈이 오는 줄 순간적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이건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야하남요...ㅠ

붕붕툐툐 2018-11-24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syo 2018-11-25 00:43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붕붕툐툐님의 독서생활에 보탬이 되었다니 뿌듯하네요^-^
 

 

겨울름뱅이

 

 

날이 춥다. 슬픈 노래 들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불 속에 숨어서 귤 까먹고, 침대 위에 흘릴까 조심조심 커피나 홀짝이고 싶다. 책 같은 건 다 집어 던지고는 그저 눈 꼭 감고 누워있고 싶다. 누가 듣지 못하게 방문을 꼭 닫고는, 내가 얼마나 다양한 톤과 표정으로 사랑해하고 말할 수 있는지 세어나 보면서. 얼굴 붉히고 이불이나 쾅쾅 발로 차면서.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표정으로 뒹굴고 싶다.

 

그러고 싶지만 그래도 읽은 게 있으니 또 기록은 한다이런 게 다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언젠가는 그 의미를 알게 되면 좋겠다.


 

 얼마 전 동갑내기 피아니스트와 함께 시와 음악이 있는 콜라보 공연을 했다.

 나 다음 주에 리사이틀인데 아직도 연습을 못 하고 있어.

 차를 마시다가 그 친구가 문득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매일 치잖아그럼 연습 아니야?

 그건 레슨이고공연에 칠 곡들은 몇 달 전부터 연습해야 해이제는 어느 정도 스킬이나 방법을 알고 있잖아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알고 있으니까 요령만 늘어서 더 피할 수 없을 때 할 수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예전엔 서툴고 거칠더라도 진심을 담아 피아노를 쳤거든매번 그래야 했거든그런데 그 마음이 한 번씩 사라져.

 나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은행잎에 시선을 두고 대답했다.

 모든 걸 쏟아부어도 계속 가난하고 외로우니까.

 우리는 좀 지친 게 아닐까.

손미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이상합니까?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한강

 

삶은 살면서 우리가 쏟은 노력의 헛됨으로 정의된다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두려울 정도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산적한 제약들과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은 단순히 삶의 공허함을 덮으려는 행위가 아니다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텅 비었을 무언가에 온기와 형체를 부여하는 행위다.

로만 무라도프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 읽은 --



마이크 비킹, 그들은 왜 더 행복할까

요한 록스트룀, 마티아스 클룸,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엔도 슈사쿠, 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요조, 오늘도, 무사

 


 

-- 읽는 --



박병상,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역사미스터리클럽,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사 명장면

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오은, 왼손은 마음이 아파

정기문,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김정운, 에디톨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 있으면 나 좀 살려줘요, 보르헤스

  

 

1

 

알라딘이 자꾸 작년에 썼던 글을 들이밀어 사람을 빡치게 한다. 이야, 웃긴데? 이야, 날카로운데? 이야, 여기가 킬링파튼데? 이야, 얘가 나보다 훨씬 잘 쓰는데? 이야, 이야?

 

누군가 책을 왜 읽느냐고, 독서의 효용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이제는 당당하게 대답을 해줄 수가 있다. , 책은 글을 못 쓰기 위해서 읽습니다. 퇴보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요. 조금 무리해서 1년에 700권쯤 아득바득 읽고 나면, 정말 몰라보게 글 못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장하죠! , 작년의 제 글을 한번 보시고, 올해 글을 한 번 보세요. 정말 눈부시게 못썼죠?

 

실제로 요즘은 내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너무 커서, syo 같은 자는 그냥 입 다물고 손 묶고 사는 게 인류공영과 세계평화에 기여하지 않나 싶다. 책에 대해서 쓰는 것 역시 그렇다. 견해는 애초에 믿을 수 없는 것이니 나는 그저 책 속에 든 개념만 옮기는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우선 개념이라는 것이 되게 잘 정제되었을 뿐, 실제로는 나 아닌 누군가의 견해에 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설령 책 속에 든 것이 정말 개념다운 개념이고 그것을 거의 그대로 옮긴다 하더라도 책을 통째로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느 부분을 옮길지 나는 선택해야 한다. 선택이 그대로 견해가 되므로, 결국 보르헤스의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제국과 동일한 크기의 제국 지도처럼, 책을 그대로 옮겨 오지 않는 이상 책에 관한 어떤 글도 견해가 아닐 수는 없다. 심지어 어느 책의 첫 활자부터 마지막 구두점까지 그대로 옮겨온다고 해도 견해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보르헤스의 다른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활자 하나 다르지 않은 <돈키호테>를 써낸 피에르 메나르라는 인물을 제시하며 그의 <돈키호테>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보다 얼마나 더 오묘하고 풍부한 작품인지를 설명한다. 결국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가 쓴 글은 내 견해고, 나는 내 견해가 내 견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못마땅한 인생의 겨울을 보내고 있으므로, 백스페이스와 딜리트 빼고는 자판 위의 모든 공간이 꼴도 보기 싫은 중이다.



 

예를 들면, 며칠 전에 syo는 나까야 쪼우의 헤겔중 한 부분, 그러니까 헤겔이 신비주의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연수의 비례와 혹성의 거리를 대응시켜,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어떤 혹성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논문을 제출했지만, 실제로 이미 그해 1월에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소혹성 세레스가 발견되었다는 대목을 인용한 적이 있다. 그 아래에 syo는, 헤겔조차 깝친다, 제발 깝치지 말자, 뭐 이런 글을 띡 써놓았다. 그런데 테리 핀카드의 헤겔은 그에 관해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헤겔은 수열의 힘에 대한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사변들을 논하고 이런 서술을 덧붙인다. “만일 그 수열이 자연의 참된 질서를 보여 준다면, 넷째 자리와 다섯째 자리 사이에는 큰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 찾아야 할 행성은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헤겔은 실제로 화성과 목성 사이에 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수열이 자연의 참된 질서를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사변들에 대해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았으므로 헤겔이 취한 애매한 태도는 일견 공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적들에게 물어뜯기 좋은 부위를 내준 꼴이기도 하다. 어쨌든 테리 핀카드에 따르면, 자신의 교수자격방어논문에서 헤겔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 혹성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명확히 주장한 적은 없는 듯하다.

 

그러면 내가 뱉어 놓은 말은 이제 뭐가 되지?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떤 말을 뱉기 위해 어디까지 깊이 뒤지고 찾아내야 하지? 그러면 말하기보다 입을 다무는 쪽이 인생을 훨씬 더 쉽고 덜 피곤하며 공연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사는 길이라는 게 결론이 되나?

 

그런데, 그런다고, 내가 안 쓸까?

 

정말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쓰지 않아야 되느냐고 쓰고 앉았으니......

 



그러나 나름대로 정말 치열한 독서를 했던 1년이었다그동안 나는 또다른 사람이 되었다그저 독자로 머무는 것에 점점 자족하게 되었다세상에는 정말로 훌륭한 책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그걸 다 읽으려면 시간이 많지 않겠다는 것도 알았다내 글그 속에 담겨 있는 알량한 사유와 감성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것도심지어 그런 알량한 것들을 정말 아름답고 멋있게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도처에 너무나 많다는 것도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나보다 더 잘해주는 사람이 이미 충분해서 나는 옛날처럼 그냥 내 삶의 자존을 위해 독서만을 충실히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조오늘도무사


골짜기를 굽어보니 인간이 한 일이 바람과 물이 한 일에 비해 너무 작아 보였다앨런은 너무나 자주 보이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사람들은 여기 살며 안 돼하는 생각이었다사람들은 물이 없고 비가 오지 않고 바위가 많은 지형에 정착하면 안 되었다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디에 산단 말인가자연은 어디에서든 인간을 죽이겠다고 말한다평지에서는 토네이도로 죽인다해안가에 살면 쓰나미를 보내서 인간들이 수백 년 동안 만들어놓은 것을 지워버린다지진은 모든 공학과 모든 영속 관념을 비웃는다자연은 죽이고죽이고또 죽이고 싶어하며우리 일일 비웃고자신을 깨끗이 닦아내고 싶어한다그러나 사람들은 어디든 원하는 곳에 살았다그들은 여기이 대책 없는 골짜기에서도 살았고이곳에서 번창했다번창그들은 그냥 살았다사람들은 생존했고재생산했고아이들을 도시에 보내 돈을 벌게 했다자식들은 돈을 벌어가지고 돌아와 언덕 꼭대기를 깎아내고 똑같이 대책 없는 골짜기에 성들을 지었다인간의 일은 자연 세계의 등뒤에서 이루어진다눈치를 채고 에너지를 그러모을 수 있으면자연은 그 서판을 다시 깨끗하게 쓸어낸다.

데이브 애거스왕을 위한 홀로그램 

 

  권위에 의한 진실의 핵심 문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우리는 전문가의 의견을 따를 필요가 있지만전문가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어떤 전문가를 따를지 결정할 경우우리는 신뢰할 만한 전문가를 결정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에 합당한 전문가를 또 골라야 하는 난감한 역설에 빠지게 된다.

  결국 전문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어쩔 수 없이 실제로는 우리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바탕으로 한 것이 된다그 판단이 온전한 정보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요컨대 우리는 누구의 판단이 권위 있는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우리 자신이 내리는 판단의 권위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줄리언 바지니진실 사회

 

 

 

2

 

이러구러 읽어 나가고는 있지만 쉽지가 않다. 어느 분은 이 책의 단점으로 전기적 요소에 지면을 많이 할애해 헤겔의 사상에 대해서는 분량 대비 아쉬운 데가 있다는 식의 평을 남기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덩치의 찰스 테일러 저 헤겔은 정말 사상으로 1000쪽을 꾹꾹 눌러 담았다는 느낌이다. 확실히 이 책은 헤겔의 을 조금 더 상세하게 다룬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렇지만 그마저도 syo에겐 철학의 융단폭격 같은 느낌이라 도무지 페이지가 뻗어나가지를 않는다. 헤겔의 인생이 그다지 재미있지 않은 걸 감안해보면, 이나마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엉클 테리의 솜씨는 축복이다. 정말 좋은 책이다.

 

아무튼 헤겔은 지금 좀 외롭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일자리는 변변찮고, 열심히는 쓰는데 하나같이 맘에 안 들고, 인민의 삶에 개입하는 대중철학자가 되겠다고 깝쳤으나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으니 부끄럽지 않은 출구전략을 마련해야겠고, 그 와중에 베프 1 셸링은 나이도 어린놈이 열라 잘나가다 못해 아예 학계를 씹어 먹는 중이고, 베프 2 횔덜린은 하루하루 조금씩 더 미쳐가며 후세 사람들이 익히 아는 그 크레이지 횔덜린이 되는 중이고, 셸링 시다바리 소리 들어도 참고 또 참으며 예나 대학에 겨우 엉덩이를 들이밀었더니 그때부터 어쩐지 이놈의 학교는 하루가 다르게 망해가는 추세고, 유부녀랑 사랑하다 도른자가 된 횔덜린을 보고 느낀 것도 없는지 셸링 저 어린노무자슥은 기어이 유부녀 이혼 시켜서 결혼하더니 그 여파로 대학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고, 결국 나는 또 혼자 남았고, 만나는 여자도 하나 없는데 나이는 자꾸자꾸 먹어가고, 아버지가 남겨 놓은 유산은 하루하루 줄어드는데 앞길은 여즉 깜깜하고...... 에라이 빡친다, 울분을 꾹꾹 눌러 담아 책이나 써야지...... 이렇게 헤겔은 목하 눈물 젖은 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혹은 그런 이유로?) 우리는 곧, 읽을 수 없는 책의 지명타자, 정신현상학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빠밤

 

 

 

-- 읽은 --



손미,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

팀 플래너리, 지구 온난화 이야기

윌 듀란트, 위대한 사상들

이근식, 애덤 스미스 국부론

 

 

-- 읽는 --



테리 핀카드, 헤겔

마이크 비킹, 그들은 왜 더 행복할까

조홍식, 문명의 그물

고병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이영문, 고인돌, 역사가 되다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이명현, 이명현의 과학책방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8-11-1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반갑기는 한데, 고병권 선생님 책 벌써 읽는거예요? 부럽다ㅠㅠ

<정신현상학> 비하인드 스토리 넘 재미나는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18-11-19 21:14   좋아요 0 | URL
전 1권에 이름 박힌 사람이니까요! 2권도 나온 즉시 샀는데 이제야 읽는 거니까 오히려 늦은 셈이죠 ㅎㅎㅎㅎ

단발님은 백래시 읽잖아요, 그 두꾸어어운 거.

syo 2018-11-19 21:15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종종 헤겔이 소식 전해드릴게요. 헤겔이가 요즘 무슨 생각하는지, 요즘 무슨 고민 있는지 이런 거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11-19 21:17   좋아요 0 | URL
제가 담주쯤엔 2권 사서 이번에는 확실히 맞춰드릴려구요.
그 다음에는 핸폰 번호를.
그 다음에는 주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11-19 21:18   좋아요 0 | URL
헤겔 이야기 기대할께요. 헤겔의 고민 그게, 특히 궁금해요^^

syo 2018-11-19 21:24   좋아요 0 | URL
아쉽게도 2권부터는 이름이 찍히지 않습니다. 후후후후.

단발머리 2018-11-19 21:26   좋아요 0 | URL
어머머~~~!!!
내가 캡쳐는 해 두어서 다행이지 뭐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11-19 21:29   좋아요 0 | URL
치밀한 사람😣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11-1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겔 비하인드 스토리 엄청 재밌네요!!!

syo 2018-11-20 00:50   좋아요 0 | URL
헤겔이 의외로 사랑받고 있네요. 것참.....ㅎㅎㅎ

비로그인 2018-11-20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견해의 수렁’과 ‘쓰지 않아야 되느냐고 쓰고’야 마는 인생의 아이러니, 그리고 뒤이은 옮겨적기들이... 아, 너무나 와닿는 동시에 무람하네요... 무릎 꿇고 읽고 갑니다... 쇼님 계속 써주세요...

syo 2018-11-20 00:52   좋아요 0 | URL
으하하 막상 저는 제가 무슨 말을 한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많이 많이 읽으면 더 잘 쓰게 되거나 최소한 더 굳센 마음으로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영 그렇지가 않고 ㅎㅎㅎㅎ 독서란 참 어렵고 오묘한 일이네요.

감은빛 2018-11-20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예전에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 엄청 잘 썼거나, 엄청 못 썼거나 둘 중 하나일까요? 제 경우 중간은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언급하셨듯 헤겔의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그런 삶을 살았군요.

저는 책을 읽는 것도 글쓰기의 일종이라고 느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니,

내 방식의 해석을 담은 새로운 책을 쓰는 과정인 것이지요.

syo 2018-11-20 10:08   좋아요 0 | URL
예전에 쓴 글을 보고 잘 썼다고 느끼는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더라구요 ㅎㅎㅎ 그저 열심히 읽을 뿐 뭐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헤겔은 그 답을 알까요? 알았으면 좋겠어요. 저 1000쪽 다 읽으면 저도 덩달아 알 수 있게끔...

카알벨루치 2018-11-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해할수없다네 그대가 글쓰기에 대해 고민한다니...그것도 변증법적으로 풀면 합이 나올 것이라네 ㅋㅋㅋ이란다

syo 2018-11-20 13:38   좋아요 0 | URL
헤겔벨루치 선생님이 나타났닼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1-20 13:50   좋아요 0 | URL
댓글쓴거 지워져버렸다 아 ㅎㅎㅎ이것도 변증법적으로 룰루랄라~ 기대합니다 쇼님의 글, 독서내공에서 뿜어져나오는 글 기대기대~부담갖지 말고 쓰심이 가한줄 아뢰오!

뒷북소녀 2018-11-2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완전 공감해요. 몇 년 전 글을 읽다보면... 우와! 내가 이렇게나 글을 잘 썼어? 이런 생각과 함께... 요즘은... 더 많이 읽고 싶은 마음에 꾸역꾸역 밀어넣기만 하고... 아웃풋도 없고...아웃풋이 있어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쓰고... 막 그렇더라구요. ㅠㅠ

syo 2018-11-20 17:13   좋아요 1 | URL
ㅎㅎㅎ 뭘까요, 이 기현상은..... 읽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