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지랄이냐 하실 분들도 계시겠으나, 하루 한 권을 읽지 못하던 사람이 기를 쓰고 하루 한 권씩 읽는 일 만큼, 하루 한 권을 읽던 사람이 기를 쓰고 하루 한 권도 읽지 않는 일 역시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늘이는 일이 됐건 줄이는 일이 됐건, 오래 묵혀 세심하게 빚어 놓은 삶의 무늬를 건드리는 일은 일이다. 그 모든 버거움을 감당해야 할만큼 밥그릇의 무게는 치열하게 무겁다는 것을 깨닫고, 어차피 성에 차도록 읽지도 못할 거, 이제 앞으로 다섯 달은 책을 한 권도 안 읽어볼까 싶은데.



201802 : 20권



1.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

: 얼마나 읽으면 읽는 법 책을 내는 경지에 오르는 걸까. 어디에나 있는 저 무시무시한 책쟁이들...... 두 시간짜리 강연 듣고 난온 기분입니다.


2. 철학자와 하녀

: 철학을 버무린 생활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건져올 수 있는 것일까? 열린 눈? 먹어치운 책 더미? 치열한 문제제기와 투쟁의 경험? 철학이 작은 것 가운데 큰 것을 보여주는 돋보기일까, 아니면 반대로 작은 것 속에 숨어 있는 큰 것들이야말로 멀고 높은 곳에 있는 철학을 보여주는 망원경일까.


3.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고, 한두 해 지나자 그 손이 부러웠고, 또 한두 해 더 지나고 나니 그 눈이 더 부럽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운이 좋으면 신형철의 손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눈은 가지지 못할 것 같다.


4. 가벼운 나날

: 숨 막히게 아름다운 문장을 뿌려대는 작가를 만나도 질투하지 않는다. syo는 작가가 될 욕심 같은 게 더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나의 이 속 편한 방어병을 거침없이 무너뜨리고 속절없는 부러움과 달콤한 좌절감으로 육박하는 문장의 지배자들이 있다. 그가 죽고 이제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이름들이 있다.



5. 대통령의 책 읽기

: 더는 읽을 책 목록을 늘리지 말아야 할 텐데. 대통령까지 불러내니까 도저히 안 보고 넘어갈 도리가 없더라만.


6.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

: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다. 요즘 아이들 사는 거 보고 있노라면 대체로 이런 때 안 태어난 게 참 다행이다 싶지만, 그래도 이런 말랑말랑하면서도 딴딴한 책들이 있는 환경은 아무래도 좀 부럽다. 서른 넘은 지금이라도 읽으면 되지만.


7. 일인분 인문학

: 어쩌면 너무 무미한 문체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박홍순 선생님의 책이 덜 읽히는 이유는.


8.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 평이한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만, 평범한 것이 치명적인 단점. 약간 자기계발서처럼 읽힌다.



9. 이따위 불평등

: 읽을 책은 늘어만 가는데, 읽을 시간은 줄어든다. 쓸 시간은 눈꼽만큼 남았다. 이 시점에 이렇게 목록만 배불려가는 게 안타깝군. 경제적 관점이 중심이지만, 썩 다양한 측면에서 불평등을 다룬 읽을만한 책들을 소개하는 책 책이다.


10. 존 치버의 일기

: 35년간 거의 매일 썼다고 한다. 한글로 900페이지 되는 분량이 전체 일기의 20퍼센트라고 한다. syo 같은 게으름뱅이는 그저 엎드려 숭앙할 따름이옵니다...... 하루 하루가 치버가 썼을 법한(혹은 쓴) 소설의 한 장면이다. 때론 지루하고, 자주 편협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욕정에 몸부림치는 남자가 일상을 꾹꾹 눌러담아 던져 놓고 간 두꺼운 인생이다.


11.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 거장의 마지막 작품은 아름다움과 즐거움, 개인의 이야기와 공동체의 이야기가 어떻게 꿰매어 질 수 있는가를 능란하게 드러낸다. 그에게 시간이 좀 더 허락되었더라면. 그래서 이 이야기가 조금만 더 길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아마 꿰맨 자국조차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12. 번역에 살고 번역에 죽고

: 정말 잘 하는 번역가가 정말 좋은 에세이스트까지는 아닐 수 있다, 라고만 쓰고 말기에는더 재미있는 책이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전적으로 알맹이의 힘인 것 같다. 글맛은 덜하다.



13. 내 이름은 빨강 1

14. 내 이름은 빨강 2

: 아 진짜, 대작이란 이런 건가 보다 한다......


15.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

: 부드럽게 먹어나가기에는 목구멍에 덜컥 걸리는 문장이 꽤 있다. 물론 벤야민이 원래 그렇게 썼을 수도 있으나...... syo의 읽는 힘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으나......


16. 1인분의 삶

: 웃기긴 한데, 웃긴 것 말고는 특출나다 할 게 없는 글 치고는 충분하달만큼 웃기진 않는다. 그래도 최소 syo보단 웃기다. 그러나 이 말은 칭찬으로서는 대충 "이야, 너 콧구멍이 정말 두 개구나?" 정도의 수준이라 송구스럽다.




17. 사라지는 번역자들

: 나도 번역자가 되어 사라져 보는 것은 어떨까, 택도 없는 욕심을 불러내는 책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단정하고, 화를 내지 않고도 단호한 문장이 모여 그런 책을 만들었다.


18. 철학하는 날들

: '철학'하는 날들 보다는 철학'하는' 날들, 혹은 철학하는 '날들'을 말하는 소담한 책이므로 부담없이 집어들고 읽고 지나갈 수 있겠다. 철학은 작고 날들이 커서, 사실 철학 지식은 1도 늘지 않았다.


19.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 아, 이 쓰레기 새끼들......


20.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

: 뭘 이새끼야 뭘. 아오...... 이 쓰레기 새끼들 2




앞으로 딱 150일이 남았는데, 그 이야기는 syo의 집중력과 끈기와 체력에 비추어 보아 아무리 용 빼는 재주를 부려 보아도 총합 2000시간 공부하기 힘든 시점에 돌입했다는 이야기고, 어디선가 폭망의 스멜이 스멜스멜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이야기고, 그런 이야기는 이제 독서는 접어야 한다는 이야기고, 또 그 이야기는 알라딘도 접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아, 이게 다 뭐하는 이야기야......




댓글(29) 먼댓글(0) 좋아요(6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게혜윰 2018-02-28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르한파묵 소설 읽으면 딱 저 생각이 들어요!

syo 2018-02-28 09:54   좋아요 1 | URL
그쵸? 역시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ㅎㅎㅎㅎ
<내 이름은 빨강> 추천했다가 욕 들어먹은 적이 꽤 있어놔서 쫄았습니다.....

그렇게혜윰 2018-02-28 13:49   좋아요 0 | URL
전 빨강 안읽고 검은책 읽었는데 그 문화를 몰라 속상했지만 대가의 매력에 퐁당 빠졌습니다만 다행히 남에게 권하진 않았습니다 ㅋ

syo 2018-02-28 13:50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면 빨강이랑 검은 놈 말고 하얀 녀석도 있었죠? ㅎㅎㅎ
색깔 좋아하는 파묵이

북프리쿠키 2018-02-28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좋긴 하지만 저도 가끔 책디톡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ㅎ 책보다 소중한걸 챙겨야될때 말이죠. 응원합니다^^

syo 2018-02-28 09:5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응원을 너무 많이 받아먹어서 이러고 사는 게 민망할 지경이에요 ㅎㅎㅎ^-^

몰리 2018-02-28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합격을 기원합니다.
하하하. (‘합격‘이 좋은 결과인 게 맞는 무엇이죠....?)

syo 2018-02-28 11:37   좋아요 2 | URL
하하하하 모든 합격은 최소한 불합격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책읽는나무 2018-02-28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이름은 빨강!!!!
오랜만에 들어 보는...하지만 님의 완독 서적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그나마 읽은 책이네요ㅋㅋ
읽는 동안 재미나게 몰입했었던 기억은 있는데 책 내용은 또 가물가물하구요.ㅜㅜ

그나저나 다섯 달 동안이나 안읽는다는 계획은 좀 슬프네요?^^
하지만....정 그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ㅋㅋ

syo 2018-02-28 11:39   좋아요 1 | URL
저도 이게 두 번째 읽는 거였는데, 심지어 살인자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여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ㅋㅋㅋㅋ 망각이란 뭘까요 ㅎ

말은 이렇게 해놨지만, 금단현상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장소] 2018-02-2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 거장의 마지막 작품은 ㅡ을 오독해서 거지같은 천국인가 ㅡ 로 그러면서 혼자 크큭 , 아 , 이 쓰레기 새끼 ㅡ에 푸하핫 ~!!^^

syo 2018-02-28 11:40   좋아요 1 | URL
한번에 많은 글자를 읽어들이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발생할 수 있는 오독이로군요 ㅎ

한 줄평이지만 쓰레기 새끼들은 좀 과했으려나요 ㅎㅎㅎㅎ

[그장소] 2018-02-28 11:49   좋아요 0 | URL
아뇨~ 과함(?)이 주는 즐거운 시간였네요. ㅎㅎ 한번에 많은~ 이 아니고 어쩌면 스크롤 탓에 발생한 오독인지도 ... ㅎㅎㅎ 아 덕분에 웃고 갑니다 . 2월 마지막 날 멋진 마무리 하시길요!!^^

비연 2018-02-2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르한 파묵 좋아하는데. ㅎㅎㅎ syo님 생각에 동감.

syo 2018-02-28 13:37   좋아요 0 | URL
파묵은 사랑입니다♡
무슨 성만 써 놓으니 무슨 중국인 이름같네요. 요리 같기도 하고. 파묵.

다락방 2018-02-28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좀해욧!! 😡

syo 2018-02-28 14:46   좋아요 1 | URL
😴 Zzz......

이하라 2018-02-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독서량이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독서하셔도 어마어마한 독서량이니까 티도 안날꺼 같네요. 시험 좋은 결과있기를 바랍니다^^

syo 2018-02-28 15: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무슨 굿바이 스페셜처럼 되어 버렸네요. 별 것도 아닌데 ㅎㅎㅎㅎ

서니데이 2018-02-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부터는 더 열심히 하시겠군요.
syo님,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syo 2018-02-28 15:34   좋아요 1 | URL
비와서 참 좋네요. ㅎ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오후, 열심히 하시는 3월 되세요.

단발머리 2018-02-28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파묵 좋아해요. 근데, 검은 책은 끝까지 못 읽었네요. ㅎㅎㅎㅎㅎㅎ
찜해둔 책은, 1번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 랑 9번 이따위 불평등이예요.
아무렴, 저는 2번 고병권을 존경합니다.

근데, 갑자기 화가 나려고 해요.
아니, 왜!!! syo님은 이제 다섯달이나 책을 안 읽으려고 해요? 왜 책을 안 읽어야해요? 읽고 요렇게 페이퍼를 써야지요. 왜요? 왜????

syo 2018-02-28 17:05   좋아요 1 | URL
저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먹고 살기가 싫은 것은 아닌데, 먹고 살기가 또 싫기도 하고 막 막,

목하 인생 방랑 중이옵이다.....

독서괭 2018-02-28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syo님의 다섯달동안 한 권도 안 읽어볼까 싶은데. 를 싫은데. 로 해석했는데요ㅋ
다섯달동안 잠수타시면 기다리다 환영하겠고, 당장 몇시간 뒤에 글 올리셔도 환영하겠습니다^^

syo 2018-02-28 23:11   좋아요 0 | URL
역시 독서괭님은...... b

짜라투스트라 2018-02-28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글이 재미있어요 그런데 이번 달 저랑 똑같이 20권 있으셨군요^^

syo 2018-03-01 00:52   좋아요 0 | URL
그러나 짜라님은 스무 권을 알차게 읽고 글을 남겼으나, 저는 그저 권수 채우기에 급급하였지요^^

짜라투스트라 2018-03-01 00:55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제대로 글을 안써서 3월달부터 열심히 써보려구요^^;; 어쨌든 syo님 글의 열혈독자로서 다시 돌아오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ㅎㅎㅎ

psyche 2018-03-03 0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화이팅! 앞으로 다섯달만 꾹 참으시고 좋은 결과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