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미끄럼틀

 

 

 

1

 

질문은 선명해야 한다. 특히 자신에게 물을 때는 잘 물으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첨예한 질문은 그 자체로 어떤 이해를 만드는 반면, 뭉툭한 질문은 스스로 하나의 오해가 되어 답을 구하는 이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좋은 글이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받으면서 실은 좋아하는 글이 어떤 것인지를 묻고 있을 때. 좋은 글을 쓴다고 착각하며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을 때.

 

글 쓰는 사람이라면 쉬지 않고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

 

 

 

2

 

이런 글을 내가 좋아한다는 인지와 이런 글이 좋은 글이라는 인식이 가져오는 차이는 크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 세상의 인정을 받으면 기쁘다. 주목을 받지 못하면 안타깝다. 하지만 크게 슬프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좋은 글은 어떨까. 그런 글이 세상의 인정을 받으면 크게 기쁘지 않고 당연하다.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글이 외면당하면 안타까움을 넘어서 슬프고 화가 난다. 이 미친 세상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저딴 책이 100만 부를 찍는 동안 이 좋은 글이 절판된다고? 어쩌면 이런 반응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내가 그 글을 좋아하는지아니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지를 구분하는 거친 기준이 될 수 있겠다.

 

 

 

3

 

필명을 가리고 글뭉치를 내놓아도 내가 썼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는 글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좋아하는 것이면서 그저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듯해서 바로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믿기로 한 모양이다.

 

부작용이 있다. 문장에 집착하게 되고, 사고의 독창성에 목을 매게 된다. 심심한 이야기를 슴슴하게 쓴 글의 가치는 인정치 않는 나쁜 버릇이 든다. A가 쓴 글에 B의 이름을 붙여 내놓았는데 그 글을 읽는 누구도 A를 떠올리지 못하고 어쩐지 B 같지 않다는 의심을 하지도 않는다면 그 글은 큰 틀에서 망했고,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된다면 AB는 아무리 멋진 말을 그럴싸하게 써본들 좋은 글쟁이는 아니라고 단정하게 된다. 잘 쓰시네요- 하는 칭찬과 좋은 글을 쓰시네요- 하는 칭찬을 미세하게 구분하게 되고, 독단과 오만으로 창조한 나름의 원심분리기에 글 쓰는 사람들을 넣고 빙빙 돌린다. 세상에서 사랑받는 글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슬픔과 분노가 비축된다. 사람이 삐뚤어진다. 좋은 글 알아보는 사람 나 말고 하나도 없구만- 하며 부당하게 사람들을 무시하고 싶어지고, 이게 좋은 글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싶어지고, 그런 짓을 통해 스스로의 안목을 인정받아 자존감을 드날리고 싶어진다. 자기가 감별사고, 기준이며, 객관성의 화신, 아니 그냥 신임을 보여주고 싶다. 왜냐면 그게 사실이니까!

 

메타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점도 있다. 좋아하는/좋은 이라는 주제는 그저 글 읽는 한 줌의 사람들이나 관심을 가질까 말까 하는 작은 논점에 그친다. 그런데도 자칫 잘못하면 저런 미친 생각까지 부드럽게 미끄러질 수 있다. 이제 그 논점이 이 아니라 사람이나 사상이 된다면?

 

미친놈 되는 공정이 이렇게나 부드럽다.

 

 

 

4

 

과연 이 미친놈의 미끄럼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syo는 여전히 미끌미끌하다. 좋은 글이 당최 뭔지는 언제나처럼 계속 모르는 중이고, 글 읽고 쓰는 공간이 알라딘뿐이어서 요즘은 좋은 리뷰가 좋아하는 리뷰가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고심 중이다. 질척거리지 않고 120살 쯤에 죽을 계획이니까 아직 80년은 알라딘에서 더 굴러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리뷰와 좋아하는 리뷰 사이의 넓은 간격이 그저 소소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5

 

그냥 내가 좋아하는 대로 하면 되지 않나, 이게 뭐 그렇게 고민할 문제인가- 싶으시다면 1번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1번부터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은 것의 완벽한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 ‘좋은 것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서로를 지속적으로 침투하고 모양을 바꾸어나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봐. 그게 행복해.”라는 주제의 말을 생각할 때 우리는 통상적으로 어떤 사람이 갈림길에 서서 하고 싶은 일을 하러 떠날까 말까 고민하는 상태를 상정한다. 결단을 내리고 출발하기만 하면 그쪽 방향에는 더 이상의 고민거리가 기다리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하러 떠나고 나서도, 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중에도 당연히 그렇다. 내 안에 침투해 있는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들의 구분부터, 침투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내게 들어오는 저 외부의 어떤 것들 중 일부는 사실상 외부가 아니라 도래가 예정된 내부는 아니었을까 하는 식의 고민도 있고, 하여간 뭐가 잔뜩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고민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런 노정에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해- 랄지,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밀고 나가- 랄지 하는 말은 가끔씩 호의로 가득 찬 사정 모르는 말씀으로 들릴 때가 많다. 그러니까요, 나도 지금 그걸 알려고 낑낑대는 중입니다…….

 

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여긴 어디죠?

 

 

 

6

 

핵심은 필명을 가리고 글뭉치를 내놓아도 내가 썼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는 글을 갖고 싶었다.” 요거인 듯.

 

그러니까 빗대자면, 그냥 숨만 쉬어도 매력적인 사람, 내뿜는 이산화탄소조차, , 이건 여지없이 syoCO2로구나 싶게 만드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치지 않고 그런 인간이 되는 것.

 

 

 

--- 읽는 ---



293. 이름들

박훌륭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특별히 도전적이거나 역경을 잘 이겨내는 사람이어서가 절대 아니다. 나는 한없이 소심하고 낯도 가리고 역경의 ''만 보여도 일단 피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남들에게 '특이해' 보이는 일들을 할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일이라면 한번쯤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전'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할 필요 없다. 그냥 조용히 하면 된다. 시끄러울 필요가 없다. 그냥 하면서 즐기는 것,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

_ 박훌륭, 이름들

 

요런 글을 읽고 있으면 또, 내 고민이 지나친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뭐 대단한 거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박훌륭 선생님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일 관해서는 자신 있게 저런 말씀을 해도 괜찮은 훌륭한 선생님이시다. 책 팔고 약 팔고, 아니, 이렇게 쓰니까 굉장히 저렴해 보이는데, 그러니까 책방에서 약을 파는 것과 약국에서 책을 파는 것의 알록달록한 경계에서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찾아서 쓱쓱 해내시는 모범적 꿈찾러 박훌륭 선생님. 와중에 글도 잘 쓰신다. 에잇,

 

 

 


294. 사조영웅전 5

김용 지음 / 이지청 그림 /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 김영사 / 2020

 

두 사람이 함께 지낸 이후, 곽정은 황용에 대해 이런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어 스스로 놀라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다. 황용은 곽정의 얼굴이 갑자기 귓볼까지 붉어진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오빠, 왜 그래요?”

  곽정이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 갑자기…….”

  “갑자기 뭐예요?”

  “지금은 안 그래.”

  “아까는 어땠는데요?”

  곽정은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어 조용히 대답했다.

  “너를 안고 입 맞추고 싶었어…….”

  황용은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황용이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자, 곽정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용아, 화난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니…… , 구양극처럼 못됐지?”

  황용은 살포시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나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오빠가 나를 안고 입 맞춰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오빠의 아내가 될 거니까요.”

  곽정은 너무 기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황용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입 맞추고 싶어요?”

  곽정이 막 대답하려는데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주막으로 들어오는 듯하더니 후통해의 목소리가 들렸다.

_ 김용, 사조영웅전 5

 

아이고 통해야 통해야 임마! 진짜! 눈치 없어 후통해! 저 새끼 저거 이제부터 곽정한테 항룡십팔장 십팔초식 차례차례 순서대로 맞아 뒤진다. 백퍼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때릴걸?

 

그나저나 문득, ’안고 입맞추는행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배워서 드는 것인가 그냥 생기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타인에게 멜로감정이나 에로감정을 느끼기 전부터 우리는 포옹과 뽀뽀가 어떤 마음의 표현임을 가족 등등을 통해서 배우는데, 그걸 배워서 저게 저렇게 되는 걸까. , 나이 스물 먹고 나서야 처음으로 저런 생각을 해봤으니 내가 알 수가 있나. 그때는 이미 인간이 뭐--뭐를 어떻게-어떻게- 어떻게 하는 동물인지 지나치게 많이 아는 상태였다…….

 

 

 


295.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2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

 


오기. 아내가 적국 사람이어서 장군을 안 시켜준다니까 저런다. 사기에 저런 막장 인성 널리고 널렸다. 무패라서 좋으시겠어요.

 

이희재 화백님 그림이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어서 책 읽기에 도움이 된다. 7권 다 읽으면 사기 읽어야지.

 

 

 


296.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뇌과학

가토 토시노리 지음 / 정현옥 옮김 / 갤리온 / 2021

 

아이디어가 고갈되거나 믿기 힘든 실수를 저질렀을 때는 요즘 너무 편하게 지냈나?‘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나?‘ 하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개중에는 나는 몇 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착실하게 일하고 있거든요.”라고 억울해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이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같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기만 하면 뇌는 쇠퇴한다. 단순히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땀 흘리는 것만이 뇌에 좋은 일은 아니다.

  정체되어 있는 뇌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을 소개하겠다. 패턴화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서 자신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거나, 극복해야 할 크고 작은 고난을 맞닥뜨리도록 상황을 설계해보자. 어차피 해야 하는 일에 현재 가진 지식이나 기술만으로는 완벽히 수행할 수 없는 정도면 적당하다. 이것이 업무 내용에 관계없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예비 장치의 역할을 한다.

_ 가토 토시노리,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뇌 과학

 

맨날 살던 대로만 살고, 새로운 일을 벌이기 무서워서 피하는 거면서 인정하기는 싫어서 귀찮아서 안 하는 척하고, 실은 그냥 게을러서 안 하는 거면서 안 할 핑곗거리를 5초에 7개씩 창조해내고,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일상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면 어버버버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예를 들면 이라든가, 아니면 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에게.

 

 

 


297. 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스티븐 러벳 지음 / 조은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 중 어느 한쪽에 더 정직하거나 열렬히 진실을 추구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다만 각자의 사실해석 즉, 진실에 대한 개념 자체가 기존의 충성과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둘 이상의 입장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결코 쉽사리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사건, 원칙, 동기, 필요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문에서 언급한 불독에서부터 위의 로버트 노박까지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자신이 말하는 진실이라는 것이 사실 자신의 경험과 선호도 그리고 목표에 따라 형성된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이 직접 그 진실을 본 것처럼 말한다.

  변호사와 법정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좋든 싫든 사법 체계는 모두의 입장을 완전하게 이해하려 하고 모든 이야기를 완전하게 알리려 하며 모두가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때때로 사법 체계가 진실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것같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사회에 내재한 논쟁적이고 모순된 견해를 수용하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다.

  법이 곧 진실이자 정의일 거라는 가정에서 벗어나자. 그것은 도착점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법은 진실을 담는 가장 안전한 그릇일 뿐이다. 급하다고 그릇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_ 스티븐 러벳,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이 책을 마무리하는 대목을 길게 따 와보았다. 이렇게 한 대목 옮겨오면 내 수준에서 더 보탤 말이 없는 책이 참 좋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좋은 책이다. 주장도 주장이지만 문장도 좋다.

 

 

 


298. 마음의 평온을 얻는 법

플루타르코스 지음 / 임희근 옮김 / 유유 / 2020

 

리라나 활의 조화처럼 세상의 조화도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것들로 이뤄져 있네. 세상일에 완전히 순수하게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것은 없다네. 음악에 장중한 음조와 날카로운 음조가 있듯이, 또 문법에 모음과 묵음이 있듯이 말일세. 그러나 음악가와 문법학자는 이러저러한 음조나 이러저러한 문자를 배제하지 않고 그 모두를 쓰임에 맞게 사용하고 구성하려 애쓰지. 마찬가지로 모순으로 가득 차고, 에우리피데스의 말처럼

 

   선과 악이 따로 떨어질 수 없고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 완벽해지는

 

  것이 세상일진대, 그 이면을 보고 낙담하거나 투쟁을 단념해서는 안 되네. 음악가가 그러하듯 우리는 항상 가장 낮은 음표를 가장 높은 음표와 조화롭게 배치하고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잘 포장해 삶이 조화로운 연주회가 되도록, 그리하여 우리를 만족시키도록 해야 하네.

_ 플루타르코스, 마음의 평온을 얻는 법

 

최대한 마음을 덜 긁히면서 이놈의 21세기를 통과하려면. 주기적으로 스토아 철학을 읽어줘야 한다. 한 권 읽는다고 바로 평온을 얻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얻은 평온이 영원까지 가는 것도 아니어서, 스토아 철학자들의 목록을 만들어놓고 짬을 내서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스토아 철학, 영혼의 홍삼 엑기스. 당신의 면역을 위해, 챙겨 드세요.

 

 

 


299.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김경준 지음 / 생각정거장 / 2015

 

보통 고전이라고 하면, 직접 접해 명확히 이해한 사람들은 물론 대략적으로 제목 또는 내용 일부만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좋은 인상으로 이야기하게 마련이다. 물론 내용 자체에 대한 공감도 있겠지만, 일종의 허위의식이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소위 명망가나 지식인들이 거론하는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에서 적당한 품격과 과시의 냄새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군주론의 경우는 좀 다르다. 대개 읽지도 않고 비난부터 하곤 한다. 섣부른 고정관념으로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피아 철학정도로 간단히 폄하해 버린다. 심지어 직접 읽고 내면적으로 공감한 경우에도 공개적으로 군주론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군주론에 담겨 있는 불편한 진실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에게 착하고 정의롭고 공정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허위의식이 어느 정도 잠재해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_ 김경준,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김경준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syo의 부족한 경험 내에서 군주론을 읽고 비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일단 군주론을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서 표본이 확 깎여나가지만, 읽은 사람들은 다 좋아한다. 선생님은 군주론까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말하지만, 요즘은 군주론빠는 쪽이 더 힙해 보이는 게 현실이라, 조금 있으면 오히려 이쪽에다 허위의식을 물어야 할 판이다.

 

그런 것과 별개로 군주론은 재밌다. 처세나 경영에 실용적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냥 그 자체로 재미가 있는 책이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역사나 마키아벨리의 인생에 대해 알고 보면 훨씬 더 좋다. 입문서 개론서도 딱히 필요 없다. 판본도 많으니까 이걸로 한 번 저걸로 한 번 반복해서 읽다 보면 정치철학에 관심도 생긴다. 여러모로 좋은 책이다. 자기계발 장르의 대장인전도서의 공격을 너끈히 받아넘긴다!

 

 

 


300. 치유하는 나무 위로하는 숲

마르코 멘칼리, 마르코 니에리 지음 / 박준식 옮김 / 목수책방 / 2020

 

위대한 치유력을 지닌 자연이 제공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정말로 매우 많다. 이 책에 기술된 여러 기법들을 통합하는 일은 우리와 자연환경 사이에서 진행되는 상호작용의 질을 높이고 양을 늘리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새로운 연구를 활용하면 건강 문제(특히 우리 사회에서 부상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건강 문제)와 관련해서 기타 접근법들이 제공하는 편협한 구식 방식인 증상 치료 모델을 극복할 수 있다. 자연이 우리를 완전한 존재, 모두가 공유하는 환경의 자식, 진화의 산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인식한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안다. 우리가 몸과 마음에 건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더 많이 표현하기만 하면, 그런 필요에 자연이 응답하는 정도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_ 마르코 멘칼리, 마르코 니에리, 치유하는 나무 위로하는 숲

 

단순히 나무 만세, 자연 만만세 하는 책이 아니다. 그냥 연구 결과의 나열만으로 한 꼭지를 가득 채운 부분이 있는가 하면 나무를 껴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데도 있다. 숲과 나무의 치유효과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의 목적이라기보다 수단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 같다. 도를 아십니까- 라고 말할 것같이 다가와서는 뇌하수체에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분비되면 부신피질에서 코르티코이드를 만드는데 그것이 당질코르티코이드와 무기질코르티코이드로 나누어지는 것을 아십니까- 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301. 울은 그렇게

임혜연 외 지음 / 폴앤니나 / 2021

 

임혜연, 최종희, 김민정, 이빛나리, 김준희, 여진아. 죄 처음 들어본 이름(김민정 선생님은 김민정 선생님이 아닙니다). 이러면 큰 기대를 안 하고 읽게 되는데, 그러면 또 큰 즐거움을 만나게 된다. 모든 작품이 다 저마다의 느낌으로 괜찮았다. 여섯 선생님의 문장이 다 달라서 이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보통 이런 구성이면 누구 한두 명은 좀 빠지는 작품을 내놓던데, 여긴 그런 게 없네요.

 

가장 취향을 때려 맞춘 작품은 단연 김준희 선생님의 아이유가 유 퀴즈 온더 블록에서 말했다. 본인은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써서 또래들보다 몸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그와 달리 나는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이제서야 뭘 해보려고 하는데 왜?였다. 딱 봐도 syo가 왜 마음에 들어했는지 짐작된다. 제목이 벌써 하나의 자기 주장. 이런 작가라면 문체도 평범치 않겠지 싶었는데 거기서도 대만족. 앞으로의 편의를 위해 그 새끼를 그 새끼라고 부르겠다고 선언해놓고 그 즉시 십새끼라고 불러버리는 호기가 있다. 이러다 또 사랑에 빠지겠다.

 

나는 그림을 그렸다. 뭐라도 해야 했는데 손맛이 나는 일이 좋았다. 종이 쪼가리나 박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구도 제대로 없어 삼색 볼펜과 검은색 매직만 사용했다. 다 그린 그림은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거나 작업실 벽에 붙였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것들을 완수하면 하루를 나쁘지 않게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알게 모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꿈에서 그 새끼를 보는 일은 점점 적어졌고 언젠가부터는 아예 나오지 않게 되었다. 긍정적인 신호지만 한편으로 불안했다. 이제 사람답게 살게 되나? 사람? 사람들은 다 븅신인데요.

_ 김준희, 아이유가 유 퀴즈 온더 블록에서 말했다. 본인은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써서 또래들보다 몸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그와 달리 나는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이제서야 뭘 해보려고 하는데 왜?

 

 

 

--- 읽는 ---

라이브 경제학 / 강성진

시처럼 쓰는 법 / 재클린 서스킨

그래스호퍼 / 이사카 고타로

내 마음과 거리 두기 / 설기문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 이희재

완전사회 / 문윤성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 민이언

블루의 과학 / 카이 쿠퍼슈미트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 버지니아 울프

파이썬으로 시작하는 데이터 분석 / 강지영

소설의 정치사 / 낸시 암스트롱

디아스포라의 눈 / 서경식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 임혁백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 하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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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8-19 17:0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syo 님의 글은 이미 syo의 CO2로 가득한 줄 아뢰오.

저는 syo, 폴스타프, 다부장 글 섞어놓고 이름 가리고 골라보라면 셋 다 맞힐 수 있습니다요. 아, 이건 너무 쉬운 건가요? ㅋㅋㅋㅋㅋ 아무튼 세 분은 저마다의 CO2가 가득가득함-

좋은 리뷰와 좋아하는 리뷰 이 문제도 어렵네요. 전 일단 둘 다 진실해야 한다고 봅니다요.

syo 2021-08-19 17:25   좋아요 4 | URL
사실 syo가 CO2의 약자라는 소문이 있습니......까?

말씀하신 닉네임들은 저도 구분이 가능합니다. 아마 다 될 걸요? 귀엽게 웃기는 글 찾으면 다부장님이고 능글맞게 웃기는 글 찾으면 폴스타프님이고 그러고 남은 거 찾으면 syo고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 리뷰왕 잠자냥님께서도 역시 리뷰 문제가 어렵군요. 어려운 와중에도 다 쟁취하는 걸 보면 명불허전 리뷰왕!

다락방 2021-08-19 21:07   좋아요 5 | URL
어? 자존심 상하는데요? 글의 획기적 변신을 시도하겠다!!! 으르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8-22 11: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변신하겠다는 이 댓글조차 완전 다락방이지? 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8-19 17: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을 빼어나도록 예쁘게 쓰는 사람은 대개 미친 새끼 라는 편견을 심하게 가지고 있는데요. syo님은 제가 아는 글 예쁘게 쓰는 사람 중에 제일 덜 미친 사람입니다…칭찬이 되려나 욕이 되려나…

반유행열반인 2021-08-19 17:21   좋아요 2 | URL
그리고 나 자두 마니아1위였는데 쇼님한테 밀려서 2위 됐다요…힝…

syo 2021-08-19 17:27   좋아요 4 | URL
이야! 칭찬 같은 욕인지 욕 같은 칭찬인지 모르겠어서 신나는 거 보니까 미친 놈이 맞긴 맞네요! 이야!
🤪🤪🤪🤪🤪🤪🤪🤪

자두는 죄송합니다.....

독서괭 2021-08-19 17:1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이번주 넘 바빠서 제가 PC로 정독하는 분들 글을 잘 못 읽고 있어요 ㅜㅜ 곧 읽을거야! 위에 잠자냥님도 포함!

syo 2021-08-19 17:28   좋아요 5 | URL
바쁠 때는 syo를 거르세요..... 저는 늘 여기에 있을 테니까..... 저 같은 건 내다버리시고 일에 집중하세요..... 제가 뭐 그렇죠......

잠자냥 2021-08-19 17:47   좋아요 4 | URL
바쁠 때는 저도 거르세요. 나 주제에 너무 길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8-19 22:34   좋아요 1 | URL
syo님의 엄살쇼 땜에 피씨 포기하고 일단 북플로 읽었습니다. Co2얘기가 뭔가 했는데 이거였네요 ㅋㅋㅋ

새파랑 2021-08-19 17: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필명을 가리셔도 그냥 Syo님글인지 대부분 사람들은 알거 같아요. 일단 글이 재미있어요 😆 예전에 피에젖은 땅 리뷰가 생각나네요 🙄

syo 2021-08-19 18:19   좋아요 4 | URL
피땅 그건 그런 희한한 짓을 하는 놈이 syo밖에 없으니까 구분이 가능한 것 아닐까요 ㅎㅎㅎㅎㅎ😂

mini74 2021-08-19 1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글 속에 유머? 위트라는 게 참 표가 나더라고요. 여기 북플에 글 잘 쓰시는 syo님 포함 다들 좀 독특한 유며감각이 글에 담겨 있는데 그게 참 매력적입니다 ㅎㅎㅎ

syo 2021-08-22 11:1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사실 저게 은근히 풍겨나오는 유머감각은 아니고, 웃겨 볼려고 아주 그냥 용을 써서 겨우 뽑아내는 게 저렇습니다....

Falstaff 2021-08-19 20:4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쒸, 아쒸, 301 <서울은 그렇게>가 올해들어 301번째 읽은 책이라 이 말씀이지요?
ㅋㅋㅋㅋ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딸꾹. 전 올해 목표가 작년에 이어 2백권 미만입니다. 근데 쉽지 않을 거 같아요. 흑흑...

잠자냥님의 오류. 제 독후감엔 CO2 대신에 CH4, 메탄, 방귀 냄새가 폴폴..... ㅋㅋㅋㅋㅋㅋ

syo 2021-08-22 11:1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댓글 역시 닉네임 가리고 알아볼 수 있습니다! 폴스타프님이시죠? 저 닉네임 안봄.

독서괭 2021-08-19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입맞추는 거 그거요, 제가 얼마전 <조선의 퀴어>에서 봤는데 1920-30년 무렵에만 해도 “키쓰”는 없었다고 합니다. 서구문물의 하나로 들어와서 유행했다고 하네요. 그냥 생기는 건 아닌가봐요😚
Syo님 페이퍼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Co2 많이 발산하십셔 팍팍!!

syo 2021-08-22 11: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키쓰 말고 뽀뽀는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나저나 지구를 위해 탄소배출량을 좀 줄여야 합니다.

초란공 2021-08-19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길에서 걸어가면서 syo님 글을 읽다가 먼가를 잘못 눌렀는데 몇 년 동안 모아둔 장바구니가 사라졌어요... ㅜㅜ syo님처럼 80년은 더 살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가지고 있는 책도 다 읽지 못할꺼 까짓꺼 시원하다 이러고 있습니다 ㅋㅋ 그런데 정말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은 묘한 기분이네요... 조만간 사고 싶었던 책이 있었는데 한 권도 생각이 안나고 ㅋㅋㅋ 설마 알라딘에서 서버 부하가 크다고 제 장바구니를 지운건 아니리라 믿어요 ㅜㅜ

syo 2021-08-22 11:22   좋아요 1 | URL
아, 장바구니가...... 참담한 상황을 맞아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까짓거 시원하다 하신다니 드리는 말씀인데, 그것은 제가 그런 것도 알라딘이 그런 것도 아니라, 하늘이 그러신 게 아닐까요? 이제 처음 같은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장바구니가 터지도록 담으시라고....

붕붕툐툐 2021-08-20 0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syo님 글은 완전 찾아낼 거 같은데용? 이미 그런 글을 쓰고 계신 거 같아요~ㅎㅎ
그리고 우리의 삼님은 이 공간에서 이렇게 유명한 걸 아시려나 궁금해집니다~ㅎㅎㅎ

syo 2021-08-22 11:23   좋아요 0 | URL
제가 매번 이야기합니다. 넌 이미 셀럽이라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널 좋아한다고.


그래서 내가 짜증난다고 ㅋㅋ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21-08-20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썼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는 글을 갖고 싶었다.”
- 저는 이와 반대입니다.
(페크가 이런 글도 쓸 줄 안다고? 레알? 페크의 향이 전혀 안 나는데...
페크가 썼다는 걸 믿을 수 없어. 페크는 도대체 얼굴이 몇 개야?)라는 반응을 보고 싶어요. ㅋㅋ
연기자로 말하면 다양하게 변신할 줄 아는 사람, 이 되고 싶은 거죠. ^^

syo 님은 이미 님답게 쓰는 문체가 있는 줄 아옵니다.**

syo 2021-08-22 1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페크님 말씀처럼 ‘페크가 이런 글도 쓸 줄 안다고? 페크의 향이 전혀 안 나는데‘ 라는 말을 들으려면 일단 사람들이 페크의 글이 어떤 글인지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페크님은 이미 제가 원하는 단계를 달성했고 그 다음을 보시는 것이로군요!

얄라알라 2021-08-20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좋아하시는 춤으로 빗대면, 손끝만 봐도 ** 스톼일하는 그 느낌 syo님께 있죠.^^ 흉내낼 수 조차 없어 감탄하며 시샘하며

syo 2021-08-22 11:2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북사랑님 언제나 감사합니다.
저는 제 것이 딱히 마뜩치 않아서 계속 찾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ㅎㅎㅎ

공쟝쟝 2021-08-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어디죠? ….
🤨

syo 2021-08-22 11:26   좋아요 0 | URL
정신 차리세요, 여기 어딘지 아시겠어요? 여기 스튜디오 빠꼼이에요.....

나비종 2021-08-2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 범주에 대한 바람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좋아하는‘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되기를 원하는가.

나만 좋아한다면 ‘좋아하는‘으로 그칠 수 있고, 너와 그 등 사방 몇 m 범주의 인간들이 좋아한다면 비로소 ‘좋은‘글로 여겨질 가능성도 높아지겠죠.
‘좋은‘이라는 게 참으로 애매하단 말이죠. ‘좋은‘에게는 주어가 없잖아요. ‘좋아하는‘은 내.가 혹은 네.가 좋아한다는 명확함이 있는 반면, ‘좋은‘은 나.에.게 혹은 너.에.게 좋다는 것이니 그에게 좋은 걸 내가 무슨 권한으로 판단하냔 거죠. 100%의 객관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같은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음을 %로 수치화할 수 있다 해도 파고 들어가면 또 애매한 게 진짜 이거 좋다고 생각하는 게 니 생각 맞냐 하는 거죠. 다른 인간들이 좋다고 하니 덩달아 생각하는 따라쟁이일 수도 있거든요. 홍세화 님의 <생각의 좌표>가 생각납니다. ‘니 생각이 진짜 니 생각?‘ 이런 주제였거든요. 내 입으로 하는 말도 알고 보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마치 내 안에서 나온 생각인 양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까요.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글을 너도 쟤도 좋아하면 좋겠어. 걔까지 바라지는 않아, 훗!~ㅎㅎ‘ 여기서 ‘훗‘은 마지막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집약된 표현입니다..

6. 질문은 선명해야 한다는 말씀을 공감하니 굳이 원하신 바 없으신 답변도 선명하게 드리자면,
그냥 숨만 쉬어도 매력적인 인간인지는 일찌기 뵌 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만,
글만으로 syo님의 매력 지수를 생각해본다면, 제가 알라딘에서 읽는 글 들 중 가장 매력적인 글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필명 가려도 알 수 있을 정도로요. 날카로운 본질을 버리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맛있는 글입니다. 복숭아처럼 단단한 씨를 중심으로 말랑한 과육과 육즙이 배어나옵니다. 19금도, 다큐도, 건조한 논리도 경쾌한 유머로 승화시켜버리는 syo 님만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syo님의 글은 저에게는 좋은 글입니다.

296.의 인용문, 바지지-->빠지지
297.의 인용문, 모슨된-->모순된

301. <서울은 그렇게>는 e-book으로만 나온 건가 봅니다. 인용하신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검색해보았거든요. 페이퍼로 된 책을 선호하는지라 구입 여부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개인적인 정리를 위한 목적이 크시겠지만 읽는 책에서 인용하시는 문장들도 잘 읽고 있습니다. 다독이 어려운 저로서는 이렇게나마 다양한 책 속의 문장을 접할 기회를 얻으니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정독하고 있습니다.^^

syo 2021-08-28 15:39   좋아요 1 | URL
저는 ‘니 생각이 진짜 니 생각‘에서 그게 진짜 내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내 생각을 구성하고 있는 원료가 남의 생각이고 그 함유율이 0~100%사이를 왔다갔다 할 뿐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내 생각‘이라는 것은 물론 ‘내가 창안한 생각‘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의미하는 거구요. 저는 어차피 우리가 새로운 것을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라서, 내가 처음 해낸 생각만이 ‘내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내 생각‘이라는 것은 진작 멸종했다고 보거든요. 그냥 ‘내 생각‘이 ‘남이 해낸 생각들의 비빔밥‘이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사는 수준에서 ‘내 생각‘이라는 용어를 인정하고 그칩니다.

제 글에 대한 평가는 늘 몸둘 바를 모르게 하네요. 읽는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조금이라도 좋은 글로 다가갈 수 있는 거겠지요. 늘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꼼꼼한 오타 체크입니다..... 나중에 커피라도 한잔 사드려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