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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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의 리뷰 기한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참 힘든 시간이었다. 길게 고민했고, 길게 썼고, 길게 힘들었다. 다 쓰고 나니 진이 빠져서, 즉시 그날 하루를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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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을 노린다고 반 장난으로 떠들어댔고, 다정한 친구들도 너야말로 내 마음속의 1등이라며 아낌없는 오구오구를 주었지만, 솔직히 syo는 한 번도 1등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건 ‘리뷰’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뷰라는 단어가 어떤 글쓰기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독서가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마다 미세하게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합의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syo가 쓴 글은 syo의 개인적인 분류법 속 리뷰라는 장르의 형식에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봐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저런 글은 늘 형식에 대한 어떤 도전이 된다. 그런 시도 자체를 높이 살 수도 있겠지. 그런 뜻을 품었다면. 하지만 나는 특별히 뭔가에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틀을 깨려는 과분하다 못해 과도한 의도는 없었다. 나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가 쓰고 싶은 모양으로 썼고, 그건 늘 내가 하던 일이다. 개인적인 일이다.
전에도 이런 식의 리뷰를 써서 크게 망한 적이 있다. 그때 쓴 글도 거의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었다. 며칠을 그 글에만 매달렸다(그리고 그 글은 지금 봐도 잘 된 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혹은 그 이상이었다). 솔직히 그땐 지금보다 욕심을 좀 더 냈고 막 1, 2등짜리 김칫국을 마시기까지 했지만, 입선도 하지 못했다. 입선하면 책갈피를 줬다. 그건 받을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 김초엽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는 눈을 매섭게 뜬다. 흥, 나한테 책갈피조차 안 줬단 말이지? 이러면서.
같은 이유다. 리뷰 대회에 ‘리뷰’의 형식에 걸맞지 않은 글을 내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내가 출판사라도 이런 글에 1등을 줘서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해놓으면 마치 내가 못 써서가 아니라 형식 때문에 못 타는 거라며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게 그 말이다. 못 쓰는 것이다. 리뷰처럼 못 쓰기 때문에 리뷰 같지 않은 리뷰를 쓰는 것. 그건 비단 리뷰 대회에서만이 아니라 syo의 알라딘 서재 활동 전체를 관통하는 제일 큰 질문이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공간에서, 개인사, 잡소리, 개똥철학으로만 점철된 리뷰와 페이퍼를 써대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며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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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땅 리뷰를 쓰려고 아등바등하던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2021년 들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은 구간이었다. 이런 증언록 형태의 글을 쓰려 한다고 여자친구에게 말했을 때, 그녀의 입에서 제일 처음 나온 말은, “음,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 내지 않는 게 좋겠다.”였다. 바로 그게 처음 컨셉을 이렇게 잡은 직후부터 계속해서 나를 몰아치고 괴롭히던 문제였다. 두드려맞은 것처럼 놀랐지만 동시에 이런 말을 하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겪지 않았으며 그들이 그들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그들의 말을 듣지도 못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쓸 자격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낼 자격까지 있을까? 그런 자격이라는 게 세상에 있나? 있다고 해도, 그걸 적립금을 주는 리뷰 대회에 참가하는 데 함부로 쓴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 내가 가장 잘하는 방식을 택하는 사람은 용감하고 현명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잘하는 걸 하겠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려 드는 짓은 종종 무심한 폭력이 된다.
실제로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제동이 걸렸다. 한 줄을 쓰고 벌떡 일어나 집안을 빙빙 돌아다녔다. 다시 주저앉아 두 줄을 쓰고 또 벌떡 일어났다. 한 단락을 다 쓰면 집 밖으로 나가 산책했다. 빙빙 돌아다닐 때도, 산책 중에도, 계속 생각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를.
좋은 글일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글쓰기는 아니었다.
4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이거다. 내가 보통의 리뷰를 썼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블러드랜드 피해자들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미친 헛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 사이사이에서 생각했고 문단 사이사이에서는 더 오래 생각했으므로, 나는 이제껏 내가 해왔던 그 어떤 독서에서보다 더 오래, 깊이, 아프게, 등장인물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래서 내 눈에는 내가 써서 올려놓은 활자의 무게가 이전과는 달리 보인다. 글을 쓴 내 눈에만 발견되는 문장의 하중.
좋은 글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글쓰기였다.
5
실은 자체적으로 단점이 많은 글이다.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사실 책의 가운데 부분을 증언하는 증언자가 하나 더 있었지만 분량 문제로 삭제했다. 최종적으로 A4 여덟 장짜리 글이 나왔고, 그게 세 장 뺀 것이다. 어조가 성글다. 구어체다 보니 어미를 계속 순환하면서 써줘야 했는데, 했지, 했어, 했더군, 했더구먼, 뭐 이렇게 몇 개 돌리다 보니 쓸 수 있는 게 없어서 곤란했다. 비밀경찰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연기력이 부족했다. 인터뷰 중에 계속 술을 마시다가 결국 취해 가지고 어떤 울분을 드러내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갑자기 급발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력이 딸려서 그랬다. 멀었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어디로 가려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거기가 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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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이 쓰신 것을 훑어보았는데, 1등 후보로 세 분 정도를 점치고 있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내가 찍은 그 세 분이 1등과 2등에 다 포진되어 있다면 뭔가를 인정받은 기분이겠다.
--- 읽은 ---
143. 심신 단련
이슬아 지음 / 헤엄 출판사 / 2019
이슬아 선생님도 고민이 많은 것이다. 한낱 잡글 쓰는 syo조차도 틈만 나면 글쓰기란 무엇인가, 쓰기란 무엇인지? 쓴다는 건 산다는 것인가 싼다는 것인가, 이러면서 데굴데굴 구르는데, 글쓰기와 그를 둘러싼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선생님의 고민은 오죽할까. 어쩐지 『이슬아 수필집』보다 더 묵직한 느낌이 드는 건 아무래도 그런 고민의 질량이겠지. syo는 전작이 조금 더 귀엽고 그래서 조금 더 좋지만 그건 내 취향의 문제고, 선생님의 글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겠다. 나는 늘 이슬아 선생님을 응원하는데, 실은 나나 좀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알아서 잘만 살고 계신다. 여전히 잘 쓰고 계신다.
폐에 관을 꽂은 하마가 높은 침대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프지 않은 쪽의 팔을 뻗어 내 이마를 만졌다. 익숙한 손에 쓰다듬어지자 나는 속수무책으로 잠들었다. 아픈 애보다 먼저 잠다는 것에 대해 해명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잘 먹고 잘 자야 된다고. 그래야 내일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병원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입이 안 열렸다. 집에서처럼 하마가 나를 재워서 병원인 걸 까먹은 채로 잤다. 우리는 적당히 서로의 언덕에 기대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_ 이슬아, 『심신 단련』
144. 열과 엔트로피는 처음이지?
곽영직 지음 / 북멘토 / 2021
이 책에 대해서 이 책의 제목보다 더 잘 설명하긴 어렵겠다.
과학 장르에 뛰어들기 위해 시동을 거는 중이다. 일단 물리부터. ~는 처음이지? 시리즈, 그리고 그와 유사한 제목들을 단 여러 귀요미 책들을 읽으면서 몸에 물을 묻혔다. 이제 슬슬 연습장과 연필을 손에 들어야 할 시점이 오는 것 같다. 과학 공부, 수학 공부는 결국 그렇게 귀결이 되는 게 아닐까?
145. 책Chaeg 2021. 4
(주)책(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1
이 잡지에 대해 평을 남길 때마다 나는 전지윤 선생님 이야기를 한다. 대단하다. 매달 세 편 정도의 아동도서 리뷰를 싣고 계시는데, 아, 대단하다.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것을 실감하며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또 돈을 버는 방식도 점점 변하고 있음을 직시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많은 돈을 갖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왜 그토록 많은 돈을 갖고 싶은 것입니까?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싶은 것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행복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_ 〈책Chaeg 2021. 4〉
146.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야마구치 다쿠로 지음 / 김슬기 옮김 / 유노북스 / 2021
원체 다변인 편에, 했던 말에 약간의 변주를 줘서 하고 또 하는 스타일이다. 친구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혓바닥의 진동수를 감쇄시키고 싶은 다른 입장도 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우리 과장님이 그랬으니까. 과장님은 늘 똑같은 말하기를 구사했는데도 회사 안에서는 그게 엄청 별로인 반면, 껍데기 집에서는 또 괜찮았다. 그러니까 이런 기술은 필요하다. 똑같은 사람이 모든 자리 모든 입장에서 한 가지 말하기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
물론 최악은 회사에서 껍데기집처럼 말하고, 껍데기집에서 회사처럼 말하는 사람이겠지만.
현재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지금까지 받아들인 ‘모든 정보’를 요약한 결과입니다. 어느 학교에 갈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디에 살지, 누구와 결혼할지, 무엇에 돈을 쓰고 투자할지, 어떤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길지 등 하나하나가 모두 요약이고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당신의 인생입니다. 이 책을 손에 든 일도 빼놓을 수 없겠죠.
지금은 초정보화 사회입니다. 멍하니 있으면 맹렬하게 덤벼드는 정보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한순간에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래서 요약력은 시대가 갈수록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_ 야마구치 다쿠로,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147. 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
리뷰도 썼겠다, 리뷰 후기까지 쓴 마당이다. 더 무슨 말을. 리뷰 대회의 여파(?)로 이 책에 대한 양질의 정보는 이제 널리고 널렸으니 더욱 편한 마음으로 입을 다물겠다. 하지만, 이 한 마디는 기필코 덧붙여야겠다.
글항아리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규 공무원 교육 때 기억이 나는군. 그때 syo가 이렇게 외쳤었다. “구청장님 사랑합니다.” 사랑이 때론 이렇게나 간편하고 간단하다.
--- 읽는 ---
아무튼, 장국영 / 오유정
노멀 피플 / 샐리 루니
200년 동안의 거짓말 /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안나 카레니나 2 / 레프 톨스토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 / 존 버거
니체 / 정동호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 박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