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전>에서 <낮은 목소리2 제작노트>까지
8명의 영화인이 말하는 내 인생의 영화책
“관객의 지성과 감성을 바탕으로 작품이 주는 충격을 최대한 연장시키는 것(앙드레 바쟁)”이 비평가의 지고한 임무라면, 영화감독은 보들레르가 말한 대로,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는 사람”을 꿈꾸는 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이런 염원을 품도록 한 영감의 태반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 실린 8명의 필자들은 한결같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첫 번째로 꼽는다. 현재 감독과 비평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의 시작은 영화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은 상이한 사유의 궤적을 거쳐 지금 이곳에 이르렀으며, 그 여정에서 평생 가슴에 품을 만한 책 한권씩을 발견했다. 그 중에는 <영화사전>처럼 영화를 ‘넓게’ 보도록 안내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히치콕과의 대화> <낮은 목소리2 제작노트>처럼 개별 영화와 작가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책도 있다. 이 추천서들은 우리가 영화라는 영토를 순례하는 데 중요한 지도가 돼줄 법하다. 또한 평론가라는 혹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한 그들의 자의식적 고민은 우리가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유념해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단초들을 던져준다.

1. 앙드레 바쟁의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평론가 김영진
60년대 이후 영화비평이 과학을 주장하면서 바쟁은 후배 영화이론가들의 주된 공격대상이 됐지만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일깨우는 비평은 바쟁이 죽고 나서 이미 끝났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세상에는 바쟁만큼 훌륭한 비평가가 얼마든지 있다고 내가 만난 어떤 감독은 주장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허세없는 지성으로 표현하는 비평가는 고금을 통틀어 그렇게 많지 않다. 지금도 나는 가끔 글쓰기가 힘들어지면 바쟁의 <영화란 무엇인가>를 꺼내든다. 존 버거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와 더불어 바쟁의 책은 유연하고 세심하고 정확한 비평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아마 나는 평생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2. 수잔 헤이워드의 <영화 사전 이론과 비평>
영화평론가 심영섭
이 책을 무척 좋아하고 읽기도 많이 읽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책에서 다루어진 내용 자체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눈’에 대한 어떤 통찰을 얻게 된다.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을까? 아마도 무성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움직인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정지된 화면에 에너지를 부여하기 위해 배우들이 쉼없이 움직였어야 했을 것이란 것이다. 버스터 키튼이나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처럼.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영화라는 유한의 마법상자를 돌리는 사회적·심리적 축들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영화가 들려주는 또다른 소리를 듣는 것, 무성에서 유성으로 영화의 속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발견’의 길이 열리는 순간의 아찔함이기도 했다.

3. 스티그 비에르크만의 <우디가 말하는 앨런>
영화감독 정지우
‘일정한 예산만 넘지 않는다면 최소한 1년에 한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며 시나리오, 연출, 배우 스탭의 캐스팅 권한, 최종 편집권 등 모든 자유를 확보하고 있는’ 우디 앨런은 하고 싶은 영화와 할 수 있는 영화가 일치하는 희귀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디 앨런의 영화와 인생에 대한 인터뷰로 이루어진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생존해 있는 거장들 가운데 우디 앨런만큼 ‘행복’한 감독은 없는 듯하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우디 앨런이 누군지 모르는 독자가 있다면 책보다는 먼저 그의 영화를 권하고 싶다. 한편이라도 그의 영화를 본다면 이 책은 자연스레 읽고 싶어질 것이다.

4. 로저 코먼의 <나는 어떻게 헐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영화평론가 김봉석
<나는 어떻게…>를 읽으면, 영화‘산업’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영화보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느낄 수 잇다. 로저 코먼의 영화는 관객의 흥미거리 하나에 맞추어 만들어낸 영화가 많다. 그런데 영화란 늘 그런 것이다. 코먼이 말도 안 되는 영화의 앞뒤를 짜맞추기 위해 내레이션을 쓴 것이나, 왕가위가 시나리오도 완성되지 않은 채 일단 찍고 난 뒤 내레이션으로 채우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조너던 카플란의 말대로 코먼은 ‘영화가 무엇인지를 아는 경영자’였고, 조 단테의 평가대로 “좌파 성향의 포스터들이 붙어 있는 사무실에 들어앉아 돈다발을 세고 있는 인습 타파주의자”였다. 그것이 코먼을 이상한 유형의 영화작가이자, 장사꾼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코먼은 샌드라 불럭의 인기이 힘입어 그녀가 무명 시절에 출연한 영화를 대충 편집해 개봉하려 시도한다. 그게 바로 로저 코먼이다. 그의 자서전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다양한 얼굴을, 현실적인 코미디로 보여주고 있다.

5. 시드니 루멧의 <영화 만들기>
중앙대 연구교수 한상준
타인의 삶과 체험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관심없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사랑없이 진정으로 큰 인간이 되는 것이 가능할까. 구로사와 아키라, 장 르누아르, 베티 데이비스는 단순히 일본 감독, 프랑스 감독, 미국 배우가 아니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그들은 훌륭한 인생 선배, 자랑스러운 영화 선배이기도 하다. 적어도 영화 학부생들에게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 관한 메마른 이론보다는 이같은 서적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시드니 루멧의 책은 그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 프랑수와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 주은우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치는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이 공히 가진, 영화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흔치 않은 책이라는 데 있지 않을까? 히치콕은 순수한 영화적 방식 그 자체의 구현에 가장 근접한 작가다. 그는 인물의 감정 및 그가 처한 상황과 관계를 순전히 시각적으로만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런 점에서 배우란 부차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그리드 버그만이나 그레이스 켈리 또는 티피 헤드런의 아름다움(이른바 쿨 뷰티)을 그보다 더 잘 포착해낸 감독이 누가 있는가?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결국 영화 그 자체에 대한 그의 애정 덕분이 아닐까? 바로 그런 그가 영화사랑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트뤼포와 만난다. 히치콕이 영화사상 역시 손꼽을 시네필 트뤼포와 만난 것은 그로서는 또한 행운이었다 할 것이며, 이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우리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인 것이다.

8.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
영화감독 김지운
C.D를 넣다 꺼냈다, 긴팔 재킷을 넣다 뺐다 갈팡질팡이었다. 매사 이렇다.
시나리오와 콘티마저도 넣다 꺼냈다 하는데 유독 가방 안쪽 한구석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차 뒷자리에 자리잡은 아이들처럼 딱 버티고 있는 두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과 <체 게바라>였다.
<중략>
그런데 무슨 이유로 크랭크인 전날 게바라 평전을 가방에 곱게 모셔놓았을까?
내가 이 지면을 통해 내 영화관에(냉정하게 검토할 필요는 있겠지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수많은 예술서적을 뒤로 미룬 채 게바라 평전을 강추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꾼”으로서의 기질을 통해 어떤 처연한 미학 같은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씨네21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이 기획기사를 발견했다. 2000년 4월에 실린 건데 이제서야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어쨌든 반갑다. 참, 김지석 PIFF 프로그래머가 추천한 <낮은 목소리2 제작노트>도 있었는데 책 이미지조차 찾지 못해서 그냥 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