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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ㅣ 김영주의 머무는 여행 1
김영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나도 때로는 쓸데없이 소심하고 걱정이 많지만, 이 책의 저자에 비하면 나는 대범 그 자체인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겨우 2시간 거리의 자동차 여행을 떠나면서 특별히 잘 점검해달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하고, 운전자라면 꼭 한 번은 손수 운전해서 다녀봐야 한다는 태평양 해안도로 여행을 떠나기 전 코스를 꼼꼼히 점검하는 것도 모자라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어서 화를 내듯 상대방을 다그쳐서 다시 확인하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이 저자 정말 트리플로 소심한 성격이구나. 이래서 마흔도 넘은 나이에 무슨 혼자서 '머무는 여행'을 하겠다고 하는 건지... 게다가 두번째로 캘리포니아를 찾을 때는 하루 일과를 분 단위까지 따져서 짰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물론 그 고시생 공부 계획 같은 여행 계획은 첫 날부터 보기 좋게 어그러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곧 갈 곳이라 그런가? 이 소심한 여성의 여행기가 흥미로워서 책을 놓을 수가 없는 거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서만 가끔 꺼내보며 미소를 지을 만한 솔직한 내용이 이 책 곳곳에 포진해 있다. 또한 두 번에 걸친 여행 모두 LA 근처의 산타모니카를 베이스캠프 삼아 북쪽의 산타바바라, 빅서, 몬터레이, 샌프란시스코와 서쪽의 데스 밸리, 요세미티 등지의 여행기를 떠나기 전의 긴장감과 흥분, 여행 중에 느낀 감흥 등과 꼼꼼히 잘 버무려놓아 읽는 재미가 대단하다. 그리고 그 중 백미는 데스 밸리 이야기다. 주변의 유명인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데스 밸리 이야기는 당장 거기 누워서 그 기묘한 경험을 하고 싶게 만드니 친구 잘 사귀어서 꼭 자동차 여행을 떠나야 겠다.
여행, 길을 떠나는 게 대체 뭔가 싶었다. 비록 미천한 경험이지만, 몇 번의 해외여행과 대학시절 꽤 많은 단체여행을 통해 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벅찼던 기억이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넉넉하게 일주일은 잡고 떠나야 했던 울릉도, 같은 조 친구와 의가 상해 마음고생을 했던 우울한 기억의 여행지,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선명하게 바라본 한라산 백록담, 배를 타고 가다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버린 사건, 일본 니이가타현에서 탄 신칸센 안에서 겪은 약진의 지진 등등 여행은 언제나 오랫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 준다.
이 책의 저자는 20여 년간 매여 있던 일에서 벗어나 인생의 반을 정리하고 싶어서 떠난 것이었고,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여행 중에 만난 이들도 그 목적 달성에 한 몫 했다. 산타모니카 남쪽 지역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호기심은 이만큼 자극되었으면 충분하다. 캘리포니아가 아니면 어떤가. 길을 떠나는 그 자체가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참, 잘못된 맞춤법은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