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국 학생비자 인터뷰 날이다.
반차를 내고 1시 반 경 미국대사관에 도착해 이것저것 수속을 하고 지문을 스캔하고 번호표를 받아 올라갔는데 비자 인터뷰 경험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빨간색 B구역'이다.
지루하게 1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내 차례가 되어 인터뷰를 했는데 어떤 이를 붙들고 10분을 했던 그 영사가 서류를 몇 장 뒤적이더니 경상도 사투리로 "이 시점에 미국에 가는 이유가 뭡니까?" 라는 질문을 했다. 어쩌고 저쩌고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바로 "비자 발급됐습니더." 하는 거다. 되게 깐깐한 사람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나한텐 1분도 안 되어 비자를 주다니...
지난 2주간 발품 팔아가며, 여기저기 전화하며 준비한 두꺼운 내 관련 서류들은 하나도 보지 않고, 겨우 맨 위에 있는 비이민 비자 신청서랑 I-20만 보더라. 허무했지만, 그저 기뻐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왔다.
30대 중반의 미혼 직장 여성에게 이렇게 학생비자를 쉽게 내줄 줄 알았으면 그간 걱정이라도 덜 했을 텐데... 이제 떠날 날이 2달도 남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어제는 '캘리포니아'라는 책을 다 읽었다. 나의 새로운 삶도 캘리포니아에서... 떠날 생각에 흥분이 된다.
비자 발급 기념으로 종로의 Caffe Themselves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5시 30분쯤 교보문고에 들어갔는데 리처드 용재 오닐 사인회가...
부랴부랴 책을 사서 사인을 기다리는 줄에 합류했다. 2006년 겨울에 예술의 전당에서 우연히 부딪혔을 땐 너무 놀라서 우리나라 말로도 버벅대며 말을 제대로 못했는데 오늘은 꼭 영어로 인사를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 때만큼 가슴이 벅차고 기뻐서 흥분됐지만,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다시 만나서 매우 기쁘다. 전에 만났었는데 기억하냐. 예술의 전당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그 후에 2번 공연에 갔었다. 작년 10월엔 아람누리에서 하는 '겨울나그네' 공연 갔었다."를 무사히 영어로 옮기고 사이에 악수도 하고, 옆에 있던 우리 엄마와도 인사를 했다.
사인을 받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인간극장 10주년 스페셜로 5월 초에 방영되는 리처드 용재 오닐 편에 인터뷰 좀 하자고... 오늘은 이래저래 인터뷰만 여러번 하네. ^^ 내 모습이 TV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10주년 축하한다고 하고 돌아섰다.
오늘은 행운의 신이 내 옆에 하루종일 붙어 있었나 보다.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다. 내 인생에 또 하나의 기념일이 생겼다. 2008년 3월 7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