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
김연자 지음 / 삼인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가만 보면, 이 언니들을 양공주라고 손가락질하는 인간들 중
이 언니들에게 뭐 하나 해준 이가 없다.
빚에 시달리면서도 한 푼 두 푼 모아 교회를 마련하고 목사님을 초빙하면,
이 목사님과 ‘일반 신도’가 그 교회를 접수한다.
병든 여성과 길에서 헤매는 혼혈아 들의 보금자리가 필요해
미국으로 간 여성들까지 공장에 나가거나 파출부로 일해 번 돈을 보태어
수양관을 지으면, 목사님은 수양관과 그 땅을 자기네 교회 재산으로
등록하자고 한다.
결혼해 미국으로 가서도 자신들이 살던 기지촌에
여성들과 혼혈아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려고
공장일, 파출부 일을 해 돈을 보냈다는 대목에서 코가 시큰해졌다.
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구한말 하와이나 아메리카 대륙에
노동 이민을 간 조선인들이 반노예처럼 지내면서도
독립운동 자금으로 10원씩 10원씩 기부한 것을 기록해놓은 자료를 보았다.
그러나 이 언니들에게는 독립운동을 이끌던 지도자도 없었다.
주한 미군 범죄 역사상 최초로 무기징역형을 이끌어 낸 것도
이 언니들의 힘이었지만,
이른바 ‘사회’라고 하는 것은 이들이 해놓은 일은 다 그냥 먹어버렸다.
이들이 해낸 일은 알려지지 않고 인정되지도 않았다.
그 ‘사회’란 곳이 별나게 고상한 동네도 아니면서 그랬다.
김연자 선생은 성매매에서 벗어나려고 기지촌을 떠나
병원에서 잡일을 하며 신학대에 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 산부인과 병원이란 데에서는 산모에게 줄
미역국에 고기는 안 넣고 기름만 쓰고,
간호사들은 휴가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참지 못하고 원장에게 시정 조치를 요구하는 편지를 쓰자
원장은 들어 넘기고 간호사 책임자는 주제넘는 일을 했다고 다그친다.
기지촌보다 깨끗할 것도 없는 세상.
‘매춘’은 불법인데 미군에게 성을 판매하는 여성은 ‘애국자’라며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성병 검진을 해준다.
성병 검진 카드를 둘러싼 부정과 비리가 일어나고,
그 와중에 성판매 여성이 불합리한 착취를 당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고 서울의 상담소 같은 데 가면, “여기는 적색 지대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며, 지도에다 빨간 줄을 그었다.(139쪽)
적색 지대.
그 말은 ‘국가가 법과 질서 유지를 포기한 지역’이란 뜻이 분명하다. 그렇지?
왜 누구는 적색 지대 안에 살고,
누구는 그 안보다 나을 것도 없는 밖에 살면서
그 안 사람들을 백안시하는 걸까? 도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