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성정치 - 여혐 문화와 남성성 신화를 넘어 페미니즘 - 채식주의 비판 이론을 향해 이매진 컨텍스트 68
캐럴 J. 아담스 지음, 류현 옮김 / 이매진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섹시하다’와 ‘맛있다’는 왜 둘 다 불평등할까? 깨달음과 앎으로 전율이 일어나는 책. 가부장제는 ‘인간/동물 관계 속에 내재돼 있는 젠더체계’이자 ‘착취’와 동의어이다. 고기가 어떻게 남성지배의 상징인지, 또 한편으로는 여성권리의 박탈을 뜻하는지 놀라울 정도로 치열하게 파헤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코스키, 아니 치나스키가 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랐지만 결국 위대한 작가가 된 ‘찰스 부코스키’와 그의 분신 ‘헨리 치나스키’- 술과 담배, 경마, 여자와 섹스, 그리고 책과 타자기만 있으면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던 이 남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해서 할리우드에 시나리오 작가로 입성한다. 세상 잣대로만 보자면 ‘루저 중의 루저’,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던 그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남들이 모두 탐내는 할리우드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 것이다. 치나스키는 그 성공을 마음껏 누리면서 할리우드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경마장에서 도박을 하고, 여자들에 둘러싸여서 인생을 즐길까? 아무렴, 할리우드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기대를 갖고 이 책을 펼쳤다면 당신은 부코스키를 모르거나 치나스키를 아직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리라.

<할리우드>에서는 늙은, 그런데 어쩌다 보니 성공한 치나스키가 등장한다.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 고양이 다섯 마리를키우며 돌보는 가정적(?)인 면모와 더 이상 여러 여자를 전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집으로 찾아오는 여자들 숫자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제 한 여자에게 정착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글을 쓰는 치나스키는 시와 단편, 장편을 벗어나서 시나리오까지 손대고 있다. 물론 그가 원해서는 아니었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 달려와서 시나리오를 써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요청할 정도로 성공한 작가 치나스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회계사의 조언을 따라서 검은 BMW 한 대를 사려고 하지만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그는 타자기 한 대와 술만 있으면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품에는 치나스키보다, 아니 그에 못지않게 독특하고 못 말리는 캐릭터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영화사업에 종사하는 감독, 제작자, 배우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벌이는 행태에 치나스키는 자기도 모르게 ‘내 과거의 삶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하면 그렇게 이상하지도, 거칠지도, 미친 것 같지도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할리우드>는 재미있다. 처음부터 큭큭 웃게 된다. 그런데 부코스키의 다른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이 읽다 보면 종종 드러나는 삶을 꿰뚫어보는 그의 시선에 공감하고 감탄하게 된다. ‘아는 방법이라고는 타자치는 것뿐’이라는 치나스키- 그는 자신이 아주 형편없는 시나리오를 쓸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그의 작품을 모두 읽었다는 감독이나 제작자, 몇몇 배우들은 자꾸만 그를 부추긴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과거지. 글쓰기 직업에서는 그 어떤 일에서보다도 한물가는 경우가 더 많아.”(91쪽). 더욱이 그가 생각하기에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궁극적으로 어리석은 짓 같다. 치나스키는 ‘영화 잡지나, 영화에 관심 있는 잡지가 그렇게 많은 줄 미처 깨닫지 못했고, 그가 보기에 그것은 질병’이었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쓰레기를 보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그게 쓰레기라는 것도 이제는 깨닫지’ 못한다. 영화 산업에 비판적이던 그이기에 어떤 시나리오를 쓸까 고민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 술 마시는 남자에 관한 시나리오를 써내려간다.


나는 글을 쓰고 술을 마시고 싶어 하지만 오로지 술병하고만 성공하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젊은 남자는 과거의 나였다. 그 시절이 불행했던 때는 아니었지만, 대체로 공허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타자를 쳐 나가자, 어떤 술집의 인물들이 내게로 돌아왔다. (<할리우드>, 113쪽)


실제로 <할리우드>는 부코스키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던 영화「술고래Barfly」(1987)의 탄생을 다룬 소설이다. 이 작품에는 부코스키가 그때 만났던 영화감독, 제작자, 배우들의 면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시나리오 쓰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차례 이런저런 이유로 제작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한다. 제작비를 지원해주겠다던 이들이 갑자기 발을 빼거나, 애초에 물망에 오른 배우가 다른 배우로 바뀌거나 등등 온갖 문제에 부딪히면서 영화의 앞날은 암담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물론「술고래Barfly」가 만들어진 것은 알고 있기에 영화가 완성되느냐 마느냐 그 사실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만나는 할리우드, 그 화려한 무대 이면에서 펼쳐지는 기이하고 속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치나스키의 시선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치나스키는 스스로 인간 혐오자라고 말한다. ‘종종, 선하건 악하건 간에 인간과 함께 있으면 나의 감각들은 그저 뚝 꺼진다. 피곤해지고 나는 포기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술을 더 마신다. 그에게 “술은 은신처이자 자살의 느린 형태”(254쪽)이다.

그러나 이 인간 혐오자가 실은 인간을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에게 연민어린 시선을 지니고 있음을 <할리우드>를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뒤통수를 친 투자자에게 무려 전기톱을 들고 달려가는 감독 팽쇼나 게토에 살면서 닭을 지키는 데만 골몰하는 반쯤 정신이 나간 배우 프랑수아 등 자신만큼 기이한 인물들에게 그는 세상의 일반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런 이들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들과 친구가 된다. 인간을 대할 때 이만큼 예의와 애정을 갖춘 태도가 또 있을까. 더욱이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나는 삶에 관해 썼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경탄하는 것은 그 삶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용기였다. 그것 때문에 나는 계속 나아갔다.’ (308쪽). 이 구절은 치나스키가, 아니 부코스키가 언제나 작품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해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비루한 인간 군상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용기임을, 한없이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여자들>로 찰스 부코스키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내가 그의 작품을 기다리게 되고, 나오는 족족 읽게 될 줄은 몰랐다. 부코스키와 그의 분신 치나스키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는 위선에 사로잡히지도 않으며 허영을 떨지도 않는다. ‘무언가 된다는 생각은 소름 끼칠 뿐만 아니라 구역질까지 났다. 변호사나 지방 의원, 기술자나 뭐 그런 게 된다는 생각은 얼토당토않아 보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가족 구조의 덫에 갇히고, 매일 어디론가 일하러 나가고 얼토당토않았다. 단순한 일이라도 뭔가 한다는 것, 각종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 가족 소풍이나, 크리스마스, 독립 기념일, 노동절, 어머니날… 인간은 이런 것들을 견디기 위해 태어났다가 죽는 것인가?’(<호밀빵햄 샌드위치>, 275쪽)  ‘쓸모없는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그저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위대하고’ ‘훌륭하고’ ‘쓸모 있는’ 것들을 향한 역겨움을 쏟아내는 이 안티 히어로. 헨리 치나스키- 그는 모든 이들의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여기는 할리우드에 가서도 좌충우돌하지만 끝끝내 자신을 잃지 않는다. 

물론 부코스키 이전에도 성장이나 진보에 의문을 제기한 작가나 작품들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작품에 쏟아 부은 작가의 생각과 실제 삶이 일치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작품으로는 성장이나 발전, 진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실생활은 윤택하기 그지없어서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귀족 출신이거나 부유한 집 자식이거나 물려받은 유산이 많거나 등등 고등유민 작가들이 많았다. 그런 이들이 작품 속에서 아무리 그런 주장을 하더라도 실생활이 부유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어쩐지 배신감이 느껴지거나 공허한 말장난, 헛소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부코스키는 삶과 작품이 거의 일치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가 자신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를 통해 ‘무엇인가가 되기를 바라는’, 아니 ‘되어야만 하는’ 인간 존재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기를 들었을 때, 그 의문은  진실이자 진심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그 울림도 감동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치나스키를, 부코스키를 기다렸던 것 같다.

안티 히어로 치나스키의 탄생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호밀빵햄 샌드위치>는 치나스키의 성장담이다. 소년 헨리 치나스키는 빈민가, 가난한 집에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고, 한없이 약하기만 한 어머니를 연민하며 자란다. 학교에서도 마음을 둘 만한 친구를 만나기는커녕 이방인처럼 계속 겉돌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지도 않은 대통령 연설 장면을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지어낸 글이 선생님의 인정을 받는다. ‘독창적’이라면서. 거기에 또 우연히 친구 따라 마신 와인 맛에 빠지면서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만나게 된다. D.H.로렌스, 셔우드 앤더슨, 헤밍웨이, 헉슬리,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고리키 등등. ‘불 꺼!’ 고함치는 아버지 몰래 이불 밑에서 과열된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으며 헨리 치나스키는 점점 ‘마법’의 세계로 빠져든다. 숨을 만한 공간에서 술과 책과 함께 사람들과 떨어져서 홀로 있을 때 가장 평온해 하는 ‘헨리 치나스키’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헨리는 그 작고 누추한 공간에서 담배와 술, 책과 문학과 함께 성장하고 늙어간다. 어떤 사람들에게, 아니 이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이른바 ‘정상적인 삶을 사는’ 이들의 눈에 치나스키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술꾼, 주정뱅이, 룸펜, 한량, 실패자, 루저일지도 모른다. ‘쯧쯧 왜 저러고 사냐’ 손가락질 하며 동정할 만한 대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루저 치나스키가 안티-’히어로’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가 ‘독립된 개체로서 생각하고 행동할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우체국에서 일을 하게 될지언정 적어도 그러한 의식만큼은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 안티 히어로 치나스키의 웃기고도 슬프고, 쓸쓸하면서도 외롭고 어쩐지 뭉클한 성장담이 <호밀빵 햄 샌드위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른이 된 치나스키는 어떻게 살까? <우체국>은 그가 어쩔 수 없이 우체국에서 일한 10여 년 동안의 기록이다. “자기, 그건 초등학생 같은 생각이야. 어떤 바보 멍청이라도 구걸하면 일은 얻을 수 있어.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거지.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요령 있다고 하지. 나는 요령 있는 훌륭한 백수가 되고 싶어.” (<우체국>, 77쪽)라고 말하는 치나스키는 일하지 않고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함께 사는 여자들의 요구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우체국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치나스키는 일터에서 생지옥을 경험한다. 이 작품은 치나스키를 앞세운 부코스키의 작품이 거의 그렇듯이 그의 자전적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부코스키가 우체국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이다. 그는 30~40대 시절 10여 년 동안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했다. 우체국 시절 간간이 단편을 발표했던 그에게 출판사 측이 ‘글쓰기에 전념하면 매달 100달러를 주겠다.’ 제안했고 부코스키는 ‘우체국에서 미쳐 가느니 작가가 돼 굶기로 결심했다’며 전업 작가로 돌아선다.

그의 그 미쳐버릴 것 같은 경험이 <우체국>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치나스키는 우체국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서서히 망가져간다. 물론 사회적 잣대로 보기에 그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사람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우체국은 아예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우체국에서 그는 노동하는 기계일 뿐이며, 종일 감시받다 언제든지 버림받을 존재다. 노동이 과연 신성한가? <우체국>은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조직 생활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의 쓸모없음을 고발한다. 우체국이라는 획일적이고 위계질서로 짓눌린 공간을 통해 부코스키는 노동하는 인간, 노예처럼 사는 인간의 삶을 조롱한다. 나는 <우체국> 때부터 부코스키를 꽤 좋아하게 됐다.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다 좀 봐.” 나는 말했다. “저기서 철썩이며 올라왔다 내려가는 것 좀 봐. 그 밑에는 물고기들, 불쌍한 물고기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잡아먹지. 우리도 그 물고기들과 같아. 단지 뭍에 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 발을 잘못 디디면 끝장이야. 챔피언이 되는 게 좋지.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알아 두는 게 좋다고.” (<우체국>, 176쪽)


<여자들>에서 치나스키는 우체국을 때려치우고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우체국>의 치나스키가 30대라면 <여자들>의 치나스키는 50을 훌쩍 넘었고, 작가로서 어느 정도 밥벌이를 하고 살 정도가 되었다. 아주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도 상당하고 시를 쓰는 치나스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낭독회를 하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고 그렇게 받은 돈으로 치나스키는 집세도 내고 좋아하는 술도 마음껏 사마시면서 살 수 있을 정도다. 이 작품은 부코스키의 분신인 치나스키가 여자들을 만나고 그녀들과 끊임없이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책 표지를 다 올려놓고 보니, <할리우드> 표지도 부코스키 얼굴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이제부터 부코스키 작품을, 치나스키의 일생(?)을 순서대로 읽어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호밀빵>부터 시작해서 <우체국>, <여자들>, <할리우드> 순으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이 2019-05-15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분의 ‘여자들‘ 이라는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무심코 펼쳐봤다가 그 안의 단어들 때문에 너무 깜짝 놀라서 바로 덮어버렸던 기억이 있답니다. ; 지금 생각해도 남사스러워 죽겠네요. ㅋ ˝작품으로는 성장이나 발전, 진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실생활은 윤택하기 그지없어서 먹고사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귀족 출신이거나 부유한 집 자식이거나 물려받은 유산이 많거나 등등 고등유민 작가들이 많았다.˝ 이 부분 읽으니 별안간 톨스토이가 떠오릅니다.ㅋㅋㅋ

잠자냥 2019-05-15 15:39   좋아요 2 | URL
처음부터 너무 쎈(?)걸 집어들었군요! 저는 <호밀빵 햄 샌드위치>하고 <우체국> 순으로 좋았어요. 케이 님에게도 두 작품은 한번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네요. <여자들>과 <할리우드>는 그 두 작품에 비하면 그냥저냥? ㅎㅎ <호밀빵 햄 샌드위치>라도 꼭 읽어보세요.

고등유민 작가의 대표적 케이스가 톨스토이지요. 그리고 뭐... 그 무렵 귀족 출신 작가들 중에 꽤 많은 듯해요. 부코스키가 그런 이들하고 동시대를 살았다면 틀림없이 피해다녔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19-05-15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은 정말 너무 센거같아 읽을 마음이 없었는데 호밀빵은 읽어보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19-05-16 09:41   좋아요 1 | URL
하하. <호밀빵>은 전혀 세지 않습니다. 제 친구 가운데 제가 부코스키 책 주구장창 읽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친구도 <호밀빵>만큼은 매우 좋았다고 인정했었지요. 다른 건 몰라도 <호밀빵>은 꼭 읽어보세요. 부코스키 그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부코스키를 처음 만나는 독자에겐 <호밀빵>이 가장 좋은 것 같거든요.

무식쟁이 2019-05-26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어린 헨리가 폭력(정신적 물리적)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 오히려 호밀빵을 읽어내기 힘들었어요. 얼마전에 우체국은 가볍게 읽었는데. 잠자냥님 말씀대로 부코스키는 웃기면서 아프고. 독자들을 불편하면서도 가슴시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건 분명한 것 같아요. 우체국을 읽고나서 부코스키는 잠시 쉬어야겠다 했는데. 잠자냥님 글을 보니 좀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 좋은 글 감사해요.

잠자냥 2019-05-26 18:58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의미로 <호밀빵>은 읽기 힘든 작품일 수도 있겠네요. <우체국>은 노동자라면 무척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던 작품 같고요. 잠시 쉬다가 읽으시면 또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시시프 2019-06-0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우체국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가장 먼저 쓴 작품이기도 하고, 노동이라는 상식적 숙명을 대하는 부코스키의 태도에 진정 안티 히어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체국 재밌게 못 보면 다른 책은 못 볼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19-06-07 12:1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시시프 님은 우체국부터 시작하기를 추천하시는군요. 노동을 대하는 부코스키의 진정 안티 히어로적인 면모를 지적하신 부분에 저도 깊게 공감합니다.
 
할리우드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아무것도 아니길 바랐는데 어쩌다보니 성공해버린 헨리 치나스키. 늙어버린 헨리 치나스키, 세상에 조금 부드러워진 치나스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치나스키이다. 여전히 술마시고 경마장에 가고 타자기 위를 내달린다. 조심하라! 이 책 읽다 보면 심하게 술이 땡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드 스쿨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드 스쿨>을 읽노라니 옛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다 보니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어 문학이 던지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받아들이던 그 시절. 그때가 생각난다. 그 무렵 학교에서는 다양한 문학 관련 행사를 벌이곤 했는데, 그중 ‘작가와의 만남’ 같은 시간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과에서 진행한 소소한 자리였던 지라 좀 더 내밀했던 그 만남들…. 소설 쓰고 시 쓰는 이들은 어떤 생각에서 그런 글을 쓰고 또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때 어느 작가가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되고 나서 가장 불편한 일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물었을 때, 그이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가 없어지더라는. 친구들은 그이가 작품 소재로 자신의 이야기를 쓸까봐 꺼려져서 점점 자기를 멀리하게 되었고, 또 어떤 이는 출간된 작품을 읽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고 화를 내며 멀어져갔다는 그런 이야기들. 얼마쯤 수긍이 가는 이야기라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일까.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들을 찾아가서 토론을 벌이곤 했던 문학기행도 기억에 남는다. 전국 곳곳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 시절 나는 딱히 원해서 그 전공을 선택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글을 쓰며 산다던가, 또는 문학을 업으로 삼겠다던가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삶을 꺼려했다. 어디 그 뿐인가. 문학한답시고 젠체하는 그들의 허영, 위선, 가식 등이 소름끼쳐서 멀리했다. 그랬음에도 그 시간만큼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문학하는 사람들,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은 싫었어도 문학 그 자체는 사랑했던 것일까.

학교를 졸업하고 밥벌이를 시작했다. 그 밥벌이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글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소설이라는 것을 끼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었다. 내 이야기도 제대로 쓰지 못하겠고, 그렇다고 남의 이야기는 더더욱 쓰지 못하겠는 그런 문제. 내 이야기는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여전히 부족해서 쓸 수 없고, 남의 이야기는 윤리에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에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끼적거리다가 나오는 글은 성에 차지 않았다. 문학을 업으로 삼거나, 그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삶조차 꺼렸으면서도, 결국 그 주변을 맴돌고, 이제는 그토록 혐오하던 세계였을지도 모르는, 소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결국은 그 문학의 세계가 내게 빛과 음영을 모두 던져주었기 때문일까.

<올드 스쿨>은 나의 이십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시절 과방에는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1번부터 몇 백 번 대까지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그 시들을 읽고 술자리에서 읊어대는, 지금 생각하면 오그라들기 짝이 없는 그런 짓들을 그때 그들은 천연덕스럽게도 해대곤 했다. 작품을 써 와서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고, 소설가이자 시인인 교수들에게 보여주면서 좋은 평가를 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때로는 그렇게 초빙한 작가들에게 자기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라던 20대의 그들. 누군가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문학 경연대회에서 상이라도 받으면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로 가득해서 그 입상한 사람의 작품을 몰래 뒤에서 헐뜯곤 하던 못난 그들의 치졸함. 그 모든, 문학으로 이루어진 순간들이 떠오른다.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거기 속한 사람들을 싫어했던 것은 그들의 속성을 잘 알아서였을까. 어쩌면 나 또한 그런 속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로버트 프로스트와 헤밍웨이라니! 진짜 대박이다! <올드 스쿨>을 읽다가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 작품은 그 어떤 재능보다 문학적 재능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미국의 어느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 학교는 학기에 한 번씩 유명 작가를 초청하는 전통이 있다. 문학 경연대회를 열어 우승자는 초청 작가와 개인 면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프로스트와 아인 랜드가 다녀갔고, 다음 대회에서는 무려 초청 작가가 헤밍웨이란다. 이게 정말 현실이라면 엄청난 일이 아닐까? 내가 대학생이던 그 시절, 학과에서 문학 경연대회를 열고, 우승자에게 헤밍웨이와 개인 면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아마 그때 나는 문학을 꿈꾸지 않았어도, 한번쯤은 불나방처럼 몸을 던졌을 것이다. 프로스트와 헤밍웨이가 내 작품을 읽고 코멘트까지 해준다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문학에 경도된 이들은 ‘살아 있는 소설과 시를 써낸 손, 다른 작가들의 손을 만져보았던 손이 내 어깨를 짚어주는 일’ 그런 ‘누군가 내게 향유를 부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학생들은 모두 그때부터 소설쓰기에 매진한다. 꿈은 오로지 하나, 헤밍웨이로부터 평가받고 그를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를 얻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이 학교에서 거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이다. 인기가 사그라지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그 명성이 날로 커져만 가는 그런 존재. 헤밍웨이 자체가 이 학교에서는 문학의 상징 그 자체이다. 주인공 ‘나’는 헤밍웨이를 신처럼 받든다. 그는 과연 경연대회에서 우승하고 헤밍웨이를 만나게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 작품에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헤밍웨이와 연관된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와 얽힌 문제가 작품 후반부에 드러나면서 헤밍웨이로 상징될 수 있는 ‘문학’이 과연 인간에게, 아니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헤밍웨이와 얽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올드 스쿨>의 흥미로운 요소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때문에 이 글에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문학에서 높이 사는 진정성이나 진실함이 작품을 쓴 작가의 허위나 기만, 이중성과 연결될 때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이 작품은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편, <올드 스쿨>은 작품 자체로 하나의 문학 강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 곳곳에서는 문학, 그러니까 시나 소설을 어떤 자세로 써야하는지가 종종 나타나는데, 그러한 구절을 읽노라면 오래된 문학 교실, 즉 ‘올드 스쿨’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문학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아주 춥고 청명한 날 눈을 밟으면 어떻게 끽끽 소리가 나는지, 한데 얽힌 검은 가지들 너머로 보이는 낮게 뜬 백색 태양은 어떤 모습인지, 방금 기름칠 해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소총 개머리판의 느낌과 어느 여자가 따분해하며 난로 앞에서 긴 머리를 빗을 때 나는 쥐어뜯기는 듯한 소리는 어떤지. 빌의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을 제외한 모든 요소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었다.’(31쪽) 같은 구절이나 ‘모든 사람에겐 문제가 있었다.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인간의 현실의 포착해내지 못한 것이야말로 아인 랜드의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170쪽) 같은 구절에서는 좋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올드 스쿨>이 인상적인 이유는, 허위와 가식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나’가 문학을 통해 진실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그는 어쩌면 문학 때문에 더 허위와 위선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명문 사립학교의 부유하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동급생들 속에서 자신만이 뒤떨어진다고 느꼈기에 자신이 속했던 세계를 똑바로 볼 수 없었던 그. 때문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직시하고 ‘난장판, 소음, 냄새, 그 모든 게 토요일 아침의 우리 집과 똑같’은 시를 쓰기 보다는 전혀 동떨어진, 때문에 엉뚱하기 짝이없는 작품인 엘크 사냥꾼이 등장하는 시 ‘붉은 눈(雪)’을 쓸 수밖에 없던 그. 아인 랜드의 비현실적인 작품에 열광하던 그가 그녀의 말이 틀렸음을 서서히 깨달아, 그리하여 자신의 평범한 삶, ‘부모님을 무뇌아, 더러운 여자, 절망감에 빠진 천치들’이라고 보는 아인 랜드의 만화적 관점이 역겹다고 말하기까지 되고, 마침내 ‘인간이 궁지에 몰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런 처지의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극적인지, 그 모든 실망과 아픔, 탈출에 대한 희망을 이겨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168쪽)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문학을 통해 한 인간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해 벅찬 감동이 일기도 한다.

<올드 스쿨>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작가와 작품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그러나 나는 헤밍웨이의 이미지와 닉의 이미지를 분리할 수 없었다. 나아가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 작가가 자신과 등장인물의 혼동을 의도했다는 느낌도 받았다. (...) 헤밍웨이 단편소설들 속 인물은 모든 면에서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의 정신 활동으로 인한 두려움을 포함해 온갖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 가끔은 도저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 (175~176쪽) 주인공 ‘나’는 토바이어스 울프의 어느 한 모습, 아니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울프 자신이 작품 속 인물과 혼동하도록 의도했다는 느낌도 든다. 문학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때문에 거기에 열중했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었던, 그래서 때로는 그 안에서 길을 잃어버렸던 사람, 그렇지만 결국 그 문학 때문에 다시 진실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사람. 그게 바로 주인공 ‘나’이자 토바이어스 울프 그 자신이 아닐까.



이 소설은 양심으로 쓴 이야기예요. 정직하게 쓴 이야기는 언제나 또 다른 사람의 양심에도, 나처럼 늙어빠진 노인네한테도 무언가 배울 만한 것을 제공해줍니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진짜로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 말은, 지면상에서 진실하게 보인다는 거죠. 아마 다른 방식으로도 진실할 거라고 믿습니다. (<올드 스쿨>, 238쪽)


양심으로 쓴 이야기, 정직하게 쓴 이야기. 진짜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 지면상에서도 진실하게 보이고, 아마 다른 방식으로도 진실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 또한 <올드 스쿨>의 ‘나’처럼 진실을 마주할 각오를 먼저 해야 하겠지. <올드 스쿨>은 학생들의 문학잡지가 돌풍을 일으킬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매번 그럴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의 신념을 믿거나 지지하는 사람들, 램지 선생의 말처럼 ‘소설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 ‘글을 쓰면 세상과 분리되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정말이지 좋을 게 하나도 없다’(288쪽)고 생각하더라도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9-05-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런 내용의 책이군요. 잠자냥 님 리뷰 읽을 때마다 장바구니에 책 담아서 큰일이에요.
그나저나 역시나! 글 관련 전공이셨군요. 아아 눈 밝은 나여...(자기가 자기한테 감탄함)

잠자냥 2019-05-13 14:23   좋아요 1 | URL
이 작품에는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남성중심 문학판에 대한 비판 및 일종의 조롱도 담겨 있는데요.그래서 아마 다락방 님은 그 부분에서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나저나 글 관련 전공자라는 사실을 밝히기에는 이곳(알라딘 서재)에는 글 잘 쓰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아 참 그렇더라고요. 하하하.

2019-05-13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3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19-05-1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작가가 스스로 양심으로 쓴 이야기라고 한 작품은 어떤건지 안 읽을수가 없네요. 휴..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억해둬야지요.글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19-05-16 09:38   좋아요 1 | URL
ㅎㅎ 출간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책이니 챙겨두셨다가 나중에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세요~
 
Vampire Weekend - 정규 4집 Father of the Bride
뱀파이어 위켄드 (Vampire Weekend)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년 만의 새 앨범! 들어보지도 않고 믿고 무조건 샀다. 6년 동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멜로디 뽑아내는 능력은 여전히 탁월하다. 그런데 너무 달다. 너무 달콤한 사탕이라 손이 자주 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1~3집에 비해서 조금 아쉽구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9-05-1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홀~~ 처음들어보는 가수인데 잠자냥님 이런 리뷰보았으니 저는 오늘 퇴근길 지니에게 부탁해서 들어보렵니다~ ^^

잠자냥 2019-05-13 10:03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앨범은 뱀파이어 위켄드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꽤 좋게 들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