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푸른사상 세계문학전집 2
케이트 쇼팽 지음, 여국현 옮김 / 푸른사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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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쇼팽의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에는 수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들은 대부분 평범한 여성들로 유부녀이거나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사랑에 빠졌거나 누군가를 욕망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모성애를 발휘하며 강한 인간애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그녀들 가운데에도 <실크 스타킹>의 주인공 ‘소머스’ 부인은 조금 더 인상 깊다. 아니, 이 작품이 인상 깊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리라. 소머스 부인 자체는 평범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물만 놓고 본다면 <키스>의 주인공 ‘나탈리’나 <폭풍우>의 ‘칼릭스타’가 더 강렬한 편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욕망에 완전히 충실하기 때문이다. 무려 이 작품들이 쓰인 19세기에 말이다.

그에 비해 <실크 스타킹>의 소머스 부인은 결혼 전에 자신이 누리던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채 궁핍한 생활에 찌든, 평범한 여성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15달러라는 큰돈이 생긴다.  이 돈은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행복한 고민을 안겨준다. 그녀는 돈으로 무얼 할까 생각한다. 처음에는 보통의 ‘엄마’인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그녀 또한 아이들을 위해 돈을 쓸 생각에 즐겁다. 아이들 신발을 살까, 모자를 살까, 새 셔츠를 만들어줄 옷감을 사야지 등등 꿈에 부푼다. 그러다가 그녀는 때마침 세일 중인 실크 스타킹에 눈길이 간다. 아껴서 물건 사는 일에 이골이 난 그녀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녀는 실크 스타킹을 구입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녀 휴게실이 있는 위층으로 향한다. 후미진 곳에서 그녀는 면 스타킹을 벗고 조금 전 산 실크 스타킹으로 갈아 신는다. 그때부터 여느 날과는 완전히 다른 ‘하루’가 그녀 앞에 펼쳐진다.

실크 스타킹을 신었을 뿐인데, ‘힘들고 피곤한 일을 잊고’ ‘휴식하면서 책임감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을 이끄는 무의식적인 충동’에 스스로를 맡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이 아닌, 자신을 위한 새 신발을 사고, 결혼 전에 종종 들고 다니던 잡지까지 구입한다. 그러고는 마침내 늘 지나다니며 밖에서 쳐다보기만 하던 고급 식당에 들어가 매우 소박한, 그러나 평소의 그녀를 생각하면 전혀 소박하지 않은 식사를 느긋하게 즐긴다. 심지어 연극도 보러 간다. 실크 스타킹이 불러다준 완벽한 이 하루! 소머스 부인은 진심으로 행복해한다. 그 행복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전해오는 듯하다. 왜 아니겠는가, 궁핍한 결혼 생활로 ‘자신’을 완전히 잊고 남편과 아이들만을 위해 존재했던 그녀가 오롯이 자기만을 위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음악도 멈추고 관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듯이 이제 그녀도 돌아가야 한다. ‘마치 한 편의 꿈이 끝난 것’ 같다. 사람들은 곳곳으로 흩어졌고, 소머스 부인은 케이블카를 기다린다. 케이블카를 탄 그녀는 자신이 타고 있는 케이블카가 어디에서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계속 갔으면 하는 위험하면서도 강렬한 소망을 품는다. 그러나 그녀가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읽는 모두가 알고 있다.

열차 사고로 남편을 잃은 맬러드 부인의 사연을 그린 <한 시간 동안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남편을 잃었으니 슬퍼할 만도 한데, 아니 그게 당연할 것 같아 모두가 그녀를 위로하기에 바쁜데 그녀는 그 슬픔 속에서도 불현듯 이렇게 외친다. “자유, 자유, 자유!”- 남편의 죽음, 그 쓰라린 순간을 넘어 오직 ‘그녀 자신의 것으로만 지속될 앞으로의 기나긴 세월’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두 팔을 활짝 열고 그 시간을 반갑게 맞아들인다. ‘앞으로 다가올 세월에는 그녀를 대신해 살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그녀 스스로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맹신하면서 집요하게 그녀의 결심을 꺾으려는 그 어떤 강력한 의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짧고 강렬한 이 정신적 각성의 순간에 돌이켜 보면, 친절한 의도에서건 잔인한 의도에서건 상관없이 타인의 의지를 꺾는 그 행위는 범죄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었다. 이따금은. 물론 사랑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자기 권리가 인간 존재의 강력한 충동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 권리를 소유하게 된 마당에 불가사의한 미완의 사랑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222쪽)


그래서 맬러드 부인은 “자유! 육체와 영혼의 자유!”를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남편이 사고로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자유를 외치다니, 참으로 비정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그녀가 결혼 생활에서 남편으로부터 속박 당해왔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떠올리며 공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오롯하게 그녀만의 나날들이 될 봄, 여름의 그 나날들.’ 이제야 그녀는 삶이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오래 지속될 삶을 생각하며 몸서리 쳤던 그녀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 달콤한 꿈 또한 한낱 백일몽으로 그치고 만다. 실크 스타킹을 신은 소머스 부인이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하듯이, 맬러드 부인 또한 진정한 자유를 이루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술이나 퍼 마시고 돈 한 푼 가져다주지 않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셀레스틴’ 부인이 가족과 친구들 모두가 완강히 이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남편의 이제부터 달라지겠다는 말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면서  결국 이혼하지 않는 것처럼(<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말이다. 결국 유부녀인 그녀들은 기존의 가부장적인 삶에서 벗어나기를 꿈꾸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그렇다 해도 그녀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안다.

한편 <바이우 세인트존의 여인>의 ‘딜라일’ 부인은 그 꿈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멀리 떠난 남편 때문에 홀로 외로운 생활을 하던 그녀는 젊은 청년 ‘세핀쿠르’의 구애를 받고 처음에는 거절한다. 유부녀이니 어쩌면 당연한 도덕적 선택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의 거듭된 구애에 마침내 자신의 욕망을 따라 관습을 거르는 결정을 내린다. 그녀를 도와줄 요량인지 때맞춰 날아온 남편의 사망 통지가 날아온다. 그녀는 이제 세핀쿠르와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다.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세핀쿠르가 다시 청혼을 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왜일까? 죽은 남편을 기리며 ‘정숙한 여인’으로 살아가려는 예속적인 결정일까? 그보다는 주체적으로, 홀로 자기 삶을 누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제 다시는 남자와 함께 하는 삶, 그러니까 ‘결혼제도’ 안에 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작은 저항을 엿볼 수 있다.

철저하게 자기 욕망에 충실한 그녀들도 있다. <키스>의 주인공 ‘나탈리’는 부유하지만 매력 없는 ‘브랭탕’과 매력적인 청년 ‘하비’ 사이에서 결혼 상대자를 골라야 할 순간이 오자 당연하다는 듯, 경제적으로 안정된 브랭탕을 택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한 다음에도 하비와 은밀한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런 자신이 ‘마치 체스 게임을 하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체스 판의 말들을 교묘하게 조종하면서 정해진 수순에 따라 게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체스 기사.’ 물론 그녀의 선택은 비윤리적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당당하게 그러지 않는가? 여전히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는 사회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왜 ‘나탈리’라고 그러면 안 되는가? 때문에 이런 그녀의 욕망은 일부일처제를 철저하게 비웃는 듯하다.

‘나탈리’와 달리 <정숙한 여인>의 ‘바로다’ 부인은 ‘정숙’하게도 자신의 욕망을 다스린다. 목장을 찾아온 남편 친구에게 점점 이성적 매력을 느낀 그녀는 ‘정숙한 여인’이라는 자신의 평판을 생각하며 가까스로 자기의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 것을 참는다. 홀로 그 마음이 다 정리된 뒤에 다시 그를 초대한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당신도 아시게 되겠지만, 저는 다 이겨 냈답니다. 이번에는 저도 그분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 드릴 참이에요.”라고 말한다. 유부녀임에도 다른 남자에게 욕망을 느낀 그녀는 정숙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 욕망을 스스로 제어하고 다스렸기에 정숙한 걸까? 이 작품은 ‘정숙하다’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사회적 잣대를 이렇게 되짚어보게 한다.


기존의 관습적인 눈으로 보자면 <폭풍우>의 ‘칼릭스타’ 만큼 정숙하지 못한 여인도 없으리라. 농장주 ‘라발리에르’의 열정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다. ‘라발리에르’ 또한 가정이 있다. 그런데 폭풍우 치던 어느 날, 칼릭스타와 라발리에르는 격렬한 육체적 사랑을 나누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칼릭스타는 정숙하지 않은 여인인가? 그렇다면 라발리에르는? 간음한 여인 칼릭스타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시 인습으로는 벌 받아 마땅할 텐데도(아니 지금도 여전히 여자에게는 그런 잣대가 주어진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 평온한 날이 찾아오듯, 그녀는 일상으로 복귀한다. 케이트 쇼팽이 살았던 19세기 사람들이 보기엔 놀라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케이트 쇼팽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데지레의 아기>도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여성 문제뿐만이 아니라 인종차별문제까지 다룬다. 그토록 사랑한다고,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하고도 아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흑인 피가 섞여있음을 알자, 남편은 가차 없이 아내를 가혹하게 대한다. ‘데지레’는 낯설고도 두려운 남편의 태도 변화와 그의 애정이 사라진 것을 슬퍼하고, 영문도 모른 채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그녀는 남편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볼 엄두조차 감히 낼 수 없다. 남편은 집을 자주 비웠고, 집에 있을 때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나 아기와 함께 있는 자리를 피했다. 게다가 이 치졸한 인간은 노예를 다루는 태도 또한 갑자기 ‘악령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듯’ 무자비해진다. 그런데 이 작품의 반전은 맨 끝에 있다. 이 반전을 알게 되면 독자는 모두 가부장제의 화신과도 같은 이 남자를 통렬하게 비웃게 될 것이다. 케이트 쇼팽은 이렇게 여성만이 아니라 크리올, 물라토 흑인 등등 다양한 인종을 다루며 타자의 관점에서 성(性), 인종, 계급 문제까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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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4-04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일단 진심으로 좋아요 버튼을 누른 뒤에,

리뷰를 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잠자냥 님. 그리고 케이트 쇼팽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져요. 이런 작품들을 써내다니 말예요. 역시 제가 좋아하는, 신간 소식을 알자마자 사고 싶어했던, 바로 그 작가네요!

남편의 죽음에 자유를 외치는 여인에 대해서라면 저도 할 말이 있어요.
그 전에 속박을 강하게 했든 안했든과 상관없이, 일단 남편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목줄에 매인거지요.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콜레트]에서 콜레트가 그러거든요.

˝내 남편은 내게 자유를 줘!˝

그 때 그녀의 동성애인 ‘미시가 말해요.

˝목줄을 느슨하게 맸다고 목줄을 안맨 건 아니지.˝

저 역시 마찬가지. 연애하는 동안 그가 나를 구속한다고 딱히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오히려 꽤 착한 남자였는데도 저는 헤어진 후에 조금 슬퍼하고 곧이어 ‘자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 케이트 쇼팽 만만세입니다. ㅠㅠ

잠자냥 2019-04-04 11:10   좋아요 0 | URL
케이트 쇼팽, 더 많은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지는 작가예요. 영화 <콜레트>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곧 보러 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 대사 정말 인상적이군요. ˝목줄을 느슨하게 맸다고 목줄을 안맨 건 아니지.˝
정말 공감합니다. 영화 볼 때 더 두 눈 부릅뜨고 볼게요. ㅎㅎ

구속이 마치 연애, 또는 결혼의 필수적인 양념(?)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요. 마치 그게 없으면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에게 완벽한 자유를 줄 수 있고 또 그러고도 100% 신뢰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저도 생각처럼은 잘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하하하하)

목나무 2019-04-04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단편집에 부쩍 관심갖고 있는 건 어찌 아시고 이런 멋진 단편집을 소개해주시는 건가요. 잠자냥님~~ ^^
잠자냥님 덕분에 알게 된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도 지금 재미나게 읽고 있는데 말이죠.
전혀 모르던 작가를 소개받아 아침부터 기분이 엄청 좋습니다. ㅎㅎㅎㅎ
잠자냥님 아니었으면 존재조차 몰랐을 뻔한 책이었어요! 오늘도 엄청 감사해요. 잠자냥님.. ^__^

잠자냥 2019-04-04 11:14   좋아요 1 | URL
설해목 님은 원래도 단편집에 관심 많으셨잖아요? ㅎㅎ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 그 책 참 좋죠? 제 친구도 영업당해서 읽고는 정말 좋았다고 했는데, 제가 다 뿌듯했습니다. ㅎㅎ

케이트 쇼팽 작품은 이 출판사에서 계속 번역할 예정인 것 같더라고요. 기대됩니다. ^_^

레삭매냐 2019-04-0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외 인스타 부끄러버들에게
인기가 있는 작가 케이트 쇼팽
에 대한 관심이 가던 차에 새로 나온 책
에 대한 소개를 보니 나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도전 !

잠자냥 2019-04-04 14:19   좋아요 0 | URL
해외 인스타 부끄러버 ㅎㅎㅎ 그들에게 인기 있는 작가였군요!
ㅎㅎ 레삭매냐 님도 조만간 그 대열에 동참하세요!

다락방 2019-04-04 14:3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끄러버가 뭔지 한참 생각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쓸 수 있을까 - 77세에 글을 잃어버린 작가 테오도르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지음, 신견식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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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글을 쓰던 작가가 문득 은퇴를 결심한다. 작업실을 정리하고, 글을 쓰지 않는 아침을 맞이한다. 이 낯선 나날 속에 인생을 돌아보는 그. ‘그래도 여전히 달콤한 삶이 있는‘ 쇠락한 고향 그리스에서 그는 깨닫는다. ‘시야‘와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 글쓰기를 위한 화해와 치유의 과정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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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푸른사상 세계문학전집 2
케이트 쇼팽 지음, 여국현 옮김 / 푸른사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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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꿈꾸고 사랑하고 관습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관습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마는 일도 잦지만 그럼에도 여기 실린 작품들이 19세기에 쓰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상당히 급진적이다. 비단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 계층, 전쟁 문제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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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4-0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잠자냥 님은 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제가 읽고 싶어한 책들을 언제나 저보다 한 발 앞서 읽고 이렇게 후기를 남기시다니 말입니다!!

잠자냥 2019-04-02 22:55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은 여성학젠더부분 마니아 1위를 향해 달려가시느라 바쁜 틈에 제가 먼저 읽었습니다.... 이 책, 사두신 거 봤는데 조만간 읽으시겠죠? ㅎㅎ

단발머리 2019-04-04 14:26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 정말 어떤 분이십니까!
다락방님이 1위를 향해 달려가는것도 아시고, 다락방님이 이 책 사두신것도 알고 계시고.... (띠용!)
정말 궁금하단 말입니다!!!!

잠자냥 2019-04-04 14:53   좋아요 0 | URL
syo 님과 단발머리 님이 다락방 님 서재 핵인싸라면 저는 그저 락방 님 서재 숨은 정독자일 뿐입니다. ㅎㅎ

다락방 2019-04-04 14:56   좋아요 1 | URL
숨은 정독자라니...아, 너무 낭만적이에요. ♡

(낭만적이라는 단어를 쓰고나니 오래전 본 외화 <천사들의 합창> 생각나네요. 하핫)

잠자냥 2019-04-04 15:02   좋아요 0 | URL
(그 소녀는 라우라~)

다락방 2019-04-04 15:04   좋아요 0 | URL
오! 아시는군요, 잠자냥 님! 반가워요!! >.<

저는 ‘라후라‘로 알고 있었는데 라우라 였군요. 후훗.

단발머리 2019-04-04 16:42   좋아요 0 | URL
라우라, 라우라, 라우라....

그녀는 어디에 사는... 누구.... 어떤 여인인가.
라우라, 라우라, 라우라..... ㅎㅎㅎㅎ
 

때로는 소소한 에세이에서 더 큰 감동을 얻는다. 유명한 작가의 글도 아니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이 아닌데도, 그 어떤 글을 읽었을 때보다 마음이 흔들린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 바로 그런 책이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라니, 제목부터 왠지 숙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는 순천 할머니들의 일기라면, 이 책은 강원도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의 글이다. 할머니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기를 쓰셨다. 삐뚤빼뚤한 글씨체에 맞춤법도 곧잘 틀리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그 어떤 글쟁이의 글보다도 읽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순천 할머니들처럼 이옥남 할머니 또한 어려서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도 글씨가 쓰고 싶었다는데, 할머니의 아버지가 배우지 못하게 했단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홀로 글을 배우신다. 아버지가 글을 못 배우게 한 게 ‘원이 돼서’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부지깽이로 재 긁어서 ‘가’ 자와 ‘나’ 자를 써보며 글을 읽혔다. 그러나 시집살이하는 동안은 글을 안다는 표정조차 지을 수 없던 할머니는 남편이 저 세상 간 뒤에야 적적함을 달래고자 도라지 까서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거기에 하루하루 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특별히 ‘일기’를 쓴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글씨를 좀 더 예쁘게 써볼까 글자 연습을 한다고 시작한 것이 어느덧 30년에 이르렀다.

할머니의 일기는 때로 시(詩)와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산골에 홀로 사는 할머니의 삶과 함께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저 잠만 깨면 밭에 가서 세월을 보내고 이 나이 되도록 이때까지 살았다.’며 일복을 타고 났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는 정말 사계절 내내 매일 같이 일하느라 편할 날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이란 일을 해야지만 힘이 생기고 용기도 나게 매련이지 가만히 누워 있으면 바보와 같지 뭐니.’ 말씀하신다. 밭일 하고 나물 캐서 장에 내다팔고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책 읽고 이렇게 일기도 쓰신다. 들판에 나가 종일 일하니 꽃이 피고 새가 울고 개구리가 울고 등등 자연의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그 변화에 따라 삶에 대한 통찰이 가득 넘치는 문장들을 빚어내신다.

봄에는 ‘사람은 춥다지만 풀과 꽃은 때를 놓칠까 바쁘게 서둔다.’ 쓰기도 하고,  ‘봄이 오면 새소리 이상하게 들리고 산에는 진달래꽃 동백꽃이 만발하고 대지에는 각색 사물이 봄을 맞아 즐거운 듯 시간을 다투면서 나오는데 사람은 왜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가.’하며 곁에 없는 이들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백합 향기를 맡으며‘하얀 백합이 보기에도 깨끗하고 즐거워서 사람도 그와 같았으면 좋겠다.’ 하신다. 그 마음은 나도 본받고 싶어진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을 바라보며 눈이 아주 즐겁다고 느끼다가도 ‘당분간 있다가 곱든 나뭇잎도 말라서 우수수 떨어지게 되겠지. 사람도 나뭇잎과 같이 나이 많고 늙어지면 나뭇잎 떨어지듯이 자연히 섭섭하고 슬퍼지고 우울해지게 마련이지.’ 하며 가을을 사람의 인생과 비유하기도 한다. 멋진 글을 쓰려고 애써서가 아니라, 자연스레 써나갔지만 소박하고 깊이 있는 표현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고추 말리는 기 애 보는 것 같다. 하나씩 만져봐서 바싹 한 건 골러서 넣고 누굴누굴한 건 뒤집어 말리고 방이 달궈놓으면 뜨거워 못 있는다. 뜨겁기 전에 얼른 뒤집고 나간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116쪽)


그러나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씨. 작은 짐승들까지 걱정하는 그 마음씀씀이에는 자못 고개가 숙여진다. 할머니는 날이 추워지자 그렇게 많던 새도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며 ‘어디 가서 뭘 먹고 겨울을 나는지 그것도 궁금하구나. 집도 없이 어디 가서 의지하고 있나 싶다.’며 겨울 날 새들을 걱정하고, 소나무 가지에 앉아 울고 있는 뻐꾹새를 보며 ‘가만히 앉아서 우는 줄 알았더니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운다’며 ‘일하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우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그렇게 힘들게 우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는 것이 다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 생각하신다. ‘힘들게 운다고 누가 먹을 양식이라도 주는 것도 아닌데 먹는 것은 뭣을 먹고 사는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우느라고 고생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하신다. 때로는 방게를 잡아와서 간장에다 끓이다가도 문득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죄가 될 것 같아서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 전에 공수전 갑북이 할멈 살았을 땐 개구리를 구워서 다리를 들고 몸에 좋다고 이거 먹어보라 해서 내가 그기 입이냐고 개구리를 먹는 기 입이너 하고 내밀어 쐈는데, 그 할멈재이도 오래 못 살고 죽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18쪽)


식물이나 동물 생각하는 마음도 이러하시니, 사람에 대한 애정은 오죽할까. 할머니의 자식 사랑, 손주 사랑은 애절하다. 모진 시집살이에 바람만 피며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던 남편.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면서도 ‘자식들이 멀리 살지만 다 착해서 행복하다.’ 말하는 할머니는 ‘자식이란 무엇인지 늘 궁금하니까 늘 기다려진다.’ 한다. 자식들 아픈 게 당신 몸 아픈 것보다 더 걱정이고, 자식들이 용돈을 주고 가면 고마우면서도 맘이 아프다. 삶은 모질어서 할머니보다 14년이나 어린 동생이 치매에 걸린 모습을 봐야만 하고, ‘며칠 전에도 풋콩을 까서 안쳐 먹고 일어나라고 주고 왔는데, 그런지 삼사일밖에 안 됐는데 하나뿐인 친구가 그새 저세상으로 가’ 버린다. ‘하룻밤 새 친구 한 명 떠나고 이제는 정말 나 하나 외로이 홀로 다니게 되었네. 맘 같아서는 나도 빨리 친구 따라 갔으면 한 생각이 불현듯이 드는구나. (...) 나도 얼마나 더 살까. 나도 머지않아 따라 갈 거다. 될 수 있으면 친구 뒤를 따라서 갔으면 싶다. 언제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볼까.’라는 구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어든다.

사람을 향한 할머니의 애정은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이들로 한정되지 않는다. 할머니는 대구 지하철 화재 뉴스를 보고 눈물을 흘리다가 이장님 차를 얻어 타고 양양군청까지 나가서는 성금 십만 원을 보태고 오신다. ‘없이 사느라고 남의 신세만 지고 좋은 일 한번 못 해 보고 그게 한이 돼서’ 조금이나마 보냈다는 할머니.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는 게 내가 눈물이 난다. 아이 옷 벗어 논 걸 껴안고 아이 엄마가 그렇게 우니 사는 게 숨이 붙었으니 살지 사는 게 사는 거 같겠나. 텔레비전 보면 맨 속상하기만 하다.’ 말씀하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읍내에서 불난리 난 사람들에게도 선뜻 당신의 옷을 꺼내 보낸다. 며느리가 선물해 준 남방, 아직 한 번밖에 입지 않은 외투, 예쁜 치마, 추리닝 등등.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마음은 야박하기 짝이 없는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필요 없는 걸 주면 그것도 죄여, 내가 아까워하는 걸 줘야지.”(222쪽)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온통 이렇게 감동적이고 숙연해지는 글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할머니의 소소한 행복이 전해지는 글들도 많다. 손자가 준 용돈으로 믹서기를 사서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며 ‘ 이제 콩을 담가서 갈아봐야지.’ 마음먹는 모습에서는 왠지 할머니가 귀여워서 웃음 짓게 된다. 또 ‘바깥은 춥고 냉냉해서 나가기도 싫고 방에 그냥 있으니 심심해서 그저 책이나 있으면 읽고 싶다.’는 할머니의 소박한 바람에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다음과 같은 글에서는 누구라도 크게 웃을 수밖에 없으리라.



-오래 살다 보니-
밭에서 김을 매는데 젊은 여자가 보건소에서 나왔다면서
치매 조사를 하고 갔다. 나 사는 동네 아냐고 해서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리라 했더니 올해 무슨 년이냐고
물어서 2014년이라고 대답했다.
오래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59쪽)


-왜 자꾸 뛰나가너-
올해도 산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졌다.
날마다 도토리 까는 게 일이다. 망치로 깨서 깐다.
안 깨면 못 깐다. 반들반들해서.
돌멩이 위에 놓고 망치로 때리는데 자꾸 뛰나가서
에유 씨팔 뛰나가긴 왜 자꾸 뛰나가너 하고 욕을 하고는 내가 웃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141쪽)


강원도 양양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를 담은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과 순천 할머니들의 일기를 담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이 두 책은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의 더없이 평범한 삶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도 이 두 책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 꾸밈없는 소박한 진심을 담은 글, 자기의 아픔과 고통스러운 삶마저도 숨김없이 써내려간, 그래서 읽는 이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가닿는 그 진솔함에 있을 것이다. 이런 글들은 ‘글’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을 마음에 새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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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매 - 어느 사랑 이야기 쏜살 문고
글렌웨이 웨스콧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어느 부부와 그들 사이에 끼어든 아름다운 매 한 마리. 이 기묘한 삼각관계를 통해 사랑의 한계와 비극성, 결혼 제도의 불합리함, 인간 관계의 모순 등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은유와 상징이 넘치는 문장들, 그 깊이를 헤아리는 것은 모두 독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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