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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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믿음, 순교와 배교, 나약한 인간과 강한 인간, 그리고 신의 침묵… 아, 정말 엔도 슈사쿠는 언제나 나를 뒤흔든다. 그가 말하는 신의 모습이 정녕 이렇다면 진심으로 믿고 따라보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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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2-06-16 00: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7월 중에 다른 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일단, 이번 주말쯤에 <깊은 강>을 먼저 읽어보려고 해요 ㅎㅎ

잠자냥 2022-06-16 00:38   좋아요 4 | URL
아, 라파엘 님이 깊은 강을 어찌 읽으실지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2-06-16 08:55   좋아요 4 | URL
라파엘 님 깊은 강 읽으신다니 저도 따라 읽고 싶어지는데 가부장제의 창조가 제 발목을 잡네요. ㅠㅠ

han22598 2022-06-16 04: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사실..어느 인간도 신의 모습을 단정지을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매우 자신있게 말하고 있지만 말이죠...) 엔도가...침묵에서....말하는 신의 모습은...제가 이해하고 있는 신의 모습과 매우 가까워서...사실 위로가 되었습니다. 확신과 답을 지니고 있어 인간에게 그것을 딜리버리하고 싶은 신이 아닌, 우리의 함께 동행하며...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신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곧 침묵의 신에 가까울지도..

잠자냥 2022-06-16 09:59   좋아요 3 | URL
네, 정말 엔도 슈사큐가 생각하는 신의 모습은 <침묵>의 신의 모습과 가까울 것 같습니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 ㅠㅠ

다락방 2022-06-16 08: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신기해요, 잠자냥 님!
우린 분명 같이 읽었고 중간 감상도 같았는데 완독 후의 감상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이 책이 좋았다는 것은 같은 감상이지만 잠자냥 님은 ‘신의 모습이 이렇다면‘을 생각하셨고 저는 ‘결국 신의 존재에 앞서 인간의 믿음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크- 너무 좋네요.
잠자냥 님이 엔도 슈사쿠 다 읽으신게 좀 서운하네요. 저랑 엔도 슈사쿠의 다른 책들도 같이 읽어주신다면 좋을텐데요. 흑 ㅜㅜ

잠자냥 2022-06-16 10:01   좋아요 5 | URL
저도 어제 다 읽고 다부장 님 100자평 읽었더니, 아 맞아, 이 부분이 더 크게 다가올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슈사쿠 작품은 신을 말하면서 인간에게 신념이란, 믿음이란 무엇인가 계속 생각하게 하거든요. 그 점도 참 좋습니다. 슈사쿠 작품 중에 <깊은 강>은 아주 예전에 읽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다부장님 읽으실 때 또 읽겠습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2-06-16 10:12   좋아요 5 | URL
다부장님,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에 있는 <그림자>라는 작품 꼭 읽어보시고....
제목도 내용도 좀 신파 같지만 <내가 버린 여자>라는 작품도 꼭 읽어보세요.
<사무라이>, <바보>는 최근 나온 책들이라 당연히 읽어보실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바다와 독약>도 왠지 읽어보실 것 같고.... ㅎㅎㅎ

물론 한 번에 몰아읽기 하면 안 됩니다! 천천히 몇 년에 걸쳐 읽으시길 권합니다용...

라파엘 2022-06-16 12:24   좋아요 3 | URL
다부장님을 위해 재독까지 하시는 다정한 잠자냥님, 구체적인 작품 추천 정말 감사해요!!! 근데, 저는 <깊은 강>과 <사무라이>와 <침묵>과 <사해 부근에서>를 몰아 읽을 생각인데... 어떠할 것 같나요? ㅎㅎ

잠자냥 2022-06-16 12:49   좋아요 3 | URL
크학- 전 한 작가 책 몰아서 읽으면 좀 질리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감흥이 떨어지던데 연구가이신 라파엘 님이 연구하듯이 읽으시면 또 다른 감상이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라파엘 2022-06-16 15:48   좋아요 3 | URL
음... 그렇다면... 저는 쟝개구리님처럼 하지 말라는 걸 해보고 싶어하는 태도가 있으므로, 일단 계획한 네 권의 책은 몰아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 그리고 나머지 작품들은 자냥님 말씀대로 천천히 몇 년에 걸쳐 읽으면 되겠네요 ㅎㅎ

공쟝쟝 2022-06-17 01:34   좋아요 3 | URL
쟝개구리 왔다갑니다. 크흠흠. 깊은 강은 나도 읽을 겁니다. (언제?) 투비 컨티뉴,,,

그레이스 2022-06-16 2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침묵하는 신 앞에서 마음을 놓치기 쉬울듯요. 그런 인간의 갈등을 솔직하게 써 놓아서 좋았던 책요.

잠자냥 2022-06-17 10:56   좋아요 2 | URL
네, 인간의 나약함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침묵> 을 읽고 있다



나도 <침묵>을 읽고 있다. 어쩌다 보니 다락방 님과 함께 읽는 책이 되었는데, 다락방 님은 출근길에 읽는 것에 비해 나는 퇴근 후 방 안에 틀어박혀 조금 읽다가 잠들.....(기 일쑤이다). 이 책이 지루하다거나 해서는 아니고 요즘 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읽어도 금방 잠이 들고 있다. 이사 때문에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퇴근 후 이 집 저 집 보러 다니고, 그러고 나서 집에 오면 냥이들 챙겨주고 뭐 이런 다음 책 읽고 누우려면 10시가 넘는데 정신적으로 엄청 피곤해서 그런지 요즘 책이 잘 안 읽히기는 한다. 아무튼, 서울에서 책 많은 사람이, 거기다 고양이까지 여러 마리 있는 사람이 자가 아닌 전세로 집구하러 다니는 일은.... 오마이갓...... 주여,  제가 어찌 이 많은 책을 샀나이까? 주여, 저에게 딱 맞는 집을 내려주소서. 주여 어찌 계속 침묵하고 계시나이까?! 그렇다. 나의 주는 아직 침묵 중이다.... -_-;

요즘 같은 때 <침묵>을 읽고 있으려니 농담처럼 나의 하느님은 언제쯤 침묵을 깨고 응답해주시려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그렇다고 내가 하느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을 믿기는커녕 신의 존재를 나는 믿지 않는다. 불가지론자도 아니고 거의 무신론자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면(예를 들어 우리 둘째 고양이가 생사를 넘나들던 시기에) 나도 모르게 ‘하느님, 우리 땡땡이 좀 살려주세요.’ 빌고 있으니 나란 사람도 참 모순이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이루어지면 그래도 “하느님 감사합니다!” 정도까지의 인사는 하지만 혹시라도 그 간절히 바란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역시 신은 없어, 라고 냉소적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침묵>의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들, 그러니까 로드리고 등등이 생각하듯이 어찌하여 신은 침묵하고 계실까 생각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참 편리하게도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은 현재 절반쯤 읽었기에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나 또한 다락방 님처럼 신념과 믿음, 신의 침묵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 특히 나는 종교가 없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토록 깊이, 그토록 단단히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따를 수 있는지 거의 경이로움에 가까운 감정으로 로드리고 및 일본의 숨은 가톨릭 신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인간에게 신념이란 정말 무엇일까, 인간이 어떤 경지에 다다르면 저토록 모진 고문을 당해도 신념을, 믿음을 버리지 못할까? 나로서는 도저히 아직도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이다. 현재의 삶이 너무나 고달파 천국을 약속한 가톨릭을 믿게 되었고, 그렇기에 그 천국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박해받는 와중에도 신을 저버리지 못하는 일본의 신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현재의 삶이 이토록 고달프고 더 가혹해지는데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천국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배교하지 못하는 신념이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나처럼 나약한 사람에게는 이 작품에서 (아직까지는) 굉장히 기회주의적이고 비열하게 그려지는 ‘기치지로’ 같은 인물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박해를 받았기에, 눈앞에서 형과 누나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처벌을 받고 죽임당하는 것을 지켜봤기에 하느님을 저버리고 배교 행위를 한 그가, 도리어 로드리고처럼 굳세게 하느님을 믿는 이들보다 더 이해가 간다. 이럴 때 나라면 어땠을까(나보코프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하찮은 독자라 그렇게 하련다) 생각해 보게 되는데 발 아래로 바닷물이 밀려오면 바로 그 순간 자진해서 성화를 짓밟으며 지나가지 않았을까.... 아니 그 전에 이미 다 불어버렸을지도 모른다.....저기 가톨릭을 믿는 신자들이 뭉쳐 있다고.


아니, 성화를 짓밟는 정도는 나 한 사람의 믿음을 저버리는, 내 양심을 버리는 일이므로 수치스러움 정도에서 끝날 테지만 누군가를 밀고하는 일은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일이라 꽤 망설여질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 앞에 죽음이 닥쳤다면 내가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나는 기치지로처럼 나약하고 고통에 약한 사람이므로 아마도 기치지로의 길을 갈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로드리고보다 이 기치지로라는 인물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가 인간에, 아주 평범한 인간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만일 정말로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예수가 정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인물이라면 어쩐지 이런 나약하기 짝이 없는 기치지로 같은 인물도 저버리지 않을 것만 같다. 신의 침묵은, 하느님의 침묵은 그런 가련한 너희들조차 쉽게 정죄하지 않는다는 포용을 드러냄은 아닐까.

아무튼, 이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고 <침묵>에 관한 어떤 리뷰도 읽지 않았기에 이 책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만 기치지로 못지않게 로드리고도 신념으로 똘똘 뭉친, 그래서 어떤 고통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한 인간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은 든다. 엔도 슈사쿠의 그간의 작품들 속 인물들이 대부분 그러했기 때문이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 그렇기에 신을 붙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 하느님에, 종교에 의지해 삶을 부여잡고 이 힘겨운 세상을 버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삶이 너무 버거워져 믿음을 잃고 신을 저버리려 해도, 결국 그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는 신, 존재이기보다는 손길로 그 나약한 인간을 어우르는 양파와도 같은 신, 그런 신의 모습을 <침묵>은 보여주지 않을까.

그러니 양파와도 같은 주여, 저에게 제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어서 하사해 주시옵소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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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6-10 13: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ㅇ ㅏ ㅠㅠㅠㅠㅠ 주여 ㅠㅠㅠㅠㅠ 저도 🙏 함께 비나이다 (무신론자 2인 추가해서 비니까 구해지지 않을까?) 원래 집 토끼 보다 바깥 토끼가 더 절실…?

잠자냥 2022-06-10 13:09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바깥 토끼 ㅋㅋㅋㅋㅋ 우리 계속 바깥 토끼하자! ㅋㅋ

공쟝쟝 2022-06-10 13:10   좋아요 4 | URL
일단 필요할땐 기도하는 ㅋㅋㅋㅋ 비열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죽기 전에 회개하자 ㅋㅋㅋㅋㅋ (밀당 천재)

잠자냥 2022-06-10 13:26   좋아요 3 | URL
바로 그거야! (이 댓글 하느님이 못 보시게 가리자....)

공쟝쟝 2022-06-10 13:30   좋아요 3 | URL
보실 거 같긴 한데 우리 같은 사람 한둘이겠어? 하느님 미안🫶🏻 조금만 기다려… 언젠가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근데 그거 미리 알려주면… 좋겠… 그럼 고지…고지인가? -넷플릭스 지옥 참조-) 이 모든 회의론을 집어치우고 열렬히 깨달을게! (이로서.. 저의 믿음에 대한 이론은 비트코인에 대한 믿음-욕망-과 같은 것으로 결론 났..)

새파랑 2022-06-10 13:1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두 셀럽분들이 동시에 읽는 <침묵> 이군요. 신에게 제물을 바라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ㅋ 제물은 알라딘(요술램프)에게 비셔야 할듯 ^^

양파와 같은 신을 보니 왠지 반갑습니다~!!

잠자냥 2022-06-10 13:26   좋아요 5 | URL
저는 셀럽이라기보다는 셀프럽~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6-10 13: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과 잠자냥님에 뒤이어 저도 조만간 이 책을 읽을 작정입니다^^ 저도 무신론자지만 이 책이 종교와는 관계없이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지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집구하기 화이팅입니다!

잠자냥 2022-06-10 14:20   좋아요 4 | URL
저 또한 신을 믿지 않는데도(그리고 종교인을 좀 안 좋아하는데도;;), 엔도 슈사쿠의 작품은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거리의화가 님도 이 책 좋아하실 게 틀림없습니다!

집구하기 잘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2-06-10 13:5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저랑 비슷한 감상이셔서 너무 반갑네요. 비열하고 비굴하지만 저는 제 스스로가 기치지로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바닷물이 차오르는 데 묶여 있다면, 차오르는 걸 보게 된다면, 그걸 보면서도 내 종교를(그게 종교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저란 존재가 그렇게나 강할까 라고 생각하면 정말 자신 없습니다.
같이 읽으면서 중간에 이렇게 감상도 나누니 넘나 행복합니다. 저란 인간, 이렇게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인간.

저는 국내든 국외든 여행가면서 어떤 종교적인 장소에 가게 되면 다 들어가서 기도해요. 교회도 성당도 들어가면 기도하고요, 얼마전에는 일자산에 돌덩이들이 무더기로 쌓여있길래 저도 돌 하나 살짝 얹고 또 빌었어요. 보름달이 뜨면 보름달 보고도 소원을 빕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쪼록 집 문제는 잘 해결되시길 바랍니다. 얼른 고양이들과 발 뻗고 편히 주무시기를..

잠자냥 2022-06-10 14:25   좋아요 3 | URL
우린 넘나 나약하기에 많이 먹는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그것이 인간이니까요.
전 다부장님이 엔도 슈사쿠 작품 한 권도 안 읽었대서 좀 의외였는데요, 아마 계속 읽게 되시리라고 봅니다요~ ㅎㅎ

종교적인 장소마다 들어가서 기도하는 거 신기해요! 그것도 의외네... ㅋ
보름달 뜨면 보름달 보는 거 늑대인간 아닌가효?
늑대인간 다부장의 일자산 돌덩이! 그 소원 이뤄지길 바랍니다!
저도 집 문제 잘 해결되겠죠!

단발머리 2022-06-10 14:1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두 분이 같은 책 읽으시는 거 전 처음 본거 같아요. <침묵>을 6월의 픽으로 정해야 하는 거 아닌지요.
얼른 집 구하시기를, 저도 기도할게요. 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주님이 제 기도 들어주셨던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ㅋㅋㅋㅋㅋ 기도할게요.
근데, 잠자냥님! 저는 이 페이퍼에서 이 문장에 콕 꽂히네요.

(나보코프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하찮은 독자라 그렇게 하련다)

그럼 나교수님은 어떻게 읽으라고 하셨는지, 간단하게라도 알려주세요.
from 소설 읽을 때 감정이입하는게 잘 읽는 독자라고 생각하고 사는 1인

다락방 2022-06-10 14:20   좋아요 4 | URL
안그래도, 저도 그게 궁금하던 참입니다.

잠자냥 2022-06-10 14:31   좋아요 4 | URL
ㅋㅋㅋ 다부장님이 여성주의책 읽을 때 저도 읽으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해러웨이 선언문도 정작 그 책은 아직 안 읽고 있어요!
단발머리 님의 기도의 힘을 제가 잘 받겠습니다! ㅎ

나보코프 교수님은 훌륭한 독자를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고대로 옮겨 봅니다.

“주인공 중 어느 한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묘사를 생략’하는 일반 독자와 달리 소설을 대할 때 그런 유치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훌륭한 독자는 “자신을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이나 소녀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구상하고 구성하고 있는 사고와 동일시”한다. 또한 훌륭한 독자는 “보편적 관념보다는 개별적 상상을 좋아한다. 특정 그룹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작품의 섬세한 디테일을 흡수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즐거움을 즐길 줄 알고, 내면과 온몸으로 빛을 뿜을 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위조의 달인, 상상의 달인, 마술사, 예술가가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에 전율을 느끼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 그렇기에 “위대한 작가가 창조하는 최고의 등장인물들은 바로 독자.”이다.

단발머리 2022-06-10 14:43   좋아요 4 | URL
사건 중심으로 읽기 때문에 ˝주인공 중 어느 한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묘사를 생략’하는 일반 독자˝가 바로 저라서요 ㅋㅋㅋㅋㅋ 저도 훌륭한 독자가 되고 싶기는 한데요. 작가의 구상과 그걸 구성하는 사고를 파악한다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작가랑 같이 책을 ‘만들어가는‘ 독자가 되라는 건데, 오호호... 전 그냥 읽어야 되겠어요.
훌륭한 독자가 되는 길이란 너무 험난한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6-10 15:07   좋아요 2 | URL
저도 사실 묘사 왕 싫어함;;; 발자크.... 플로베르..... -_-;;;;

독서괭 2022-06-10 16: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야 주여,, 우리 잠자냥님에게 어서 딱 좋은 집을 하사하라!! (저 역시 신을 안 믿기 때문에 약간 건방짐..게다가 내 일이 아니라서 부탁하는 주제에 더 건방짐 ㅋㅋ) 저도 신을 안 믿는데, 저는 불가지론자에 더 가까운가..? 어차피 인간이 인식가능한 존재라면 신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신이 있건 없건 절대 이 먼지같은 인간의 하찮은 부탁같은 걸 들어줄 의지는 없을 것이므로 나랑은 상관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ㅋ
저도 나교수님 말씀에 따른 좋은 독자 되기는 글렀네요.. 쩝쩝

잠자냥 2022-06-10 17:01   좋아요 5 | URL
ㅋㅋ 괭님의 기운까지 받아서 꼭 좋은 집을 찾고야 말겠습니다!
나 교수님 말 진리는 아니에요. ㅋㅋㅋ 참고만 하세요~

유부만두 2022-06-10 1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는 ‘침묵’을 안 읽고 있습…

잠자냥 2022-06-11 01:4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러다 이제 드디어 지금!

mini74 2022-06-11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도에 동참합니다 자냥님과 고양이님께 은혜로운 집을 내려주세요 !!!

잠자냥 2022-06-12 02:27   좋아요 4 | URL
와…. 알라딘 요정 여러분의 기도가 힘을 발휘한 것 같습니다. 진짜 마음에 들고 조건도 잘 맞는 집을 발견했고 월욜에 계약하기로 했어요! ㅎㅎㅎ

coolcat329 2022-06-14 09:46   좋아요 1 | URL
오! 구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

coolcat329 2022-06-14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교수님이 인물에 감정이입하지 말라셨군요! 왜죠? 러시아 문학강의에 나오나 보네요. 찾아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잠자냥님 집 구하시느라 힘드시겠어요. 고양이들에 책까지 ㅠㅠ
건강 잘 챙기시고 꼭 좋은 집 찾으시길요!

잠자냥 2022-06-14 09:42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다 좋은 집 가려는 과정이겠죠. ㅎㅎㅎ

coolcat329 2022-06-1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위에 댓글에 이유를 써놓으셨군요.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2-06-14 09:42   좋아요 0 | URL
넹넹~
 
청부 살인자의 성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5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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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콜롬비아에 여행 가고 싶었던 마음이 싹 가실 정도로 비참한 콜롬비아 현실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죽음, 살인, 폭력이 아닐까. 지옥이 따로 없는 콜롬비아 현실에 관한 분노 어린 폭로. 헌데 문학은 고발 그 다음의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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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02 1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학에는 고발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는 데 적극 동의합니다.

잠자냥 2022-06-02 11:21   좋아요 1 | URL
분노에 찬 고발만 있어서 나중엔 좀 읽기 힘들더군요;;;; -_-;;;
200쪽도 안 되는데....-_-

레삭매냐 2022-06-02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주문했다가 지연
돼서 잽싸게 취소하고 다른
책으로 주문을 -

이 책은 도서관 희망도서로
보려고 합니다.

맛보기로 조금 봤는데 아주
유혈이 낭자한 것이...

잠자냥 2022-06-02 11:20   좋아요 2 | URL
여러 면에서 좀 호불호가 갈릴 작품 같습니다.....

새파랑 2022-06-02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전 최신판 민음사군요~! 표지랑 제목은 맘에 드는데 좀 호불호작품 인가 보네요 ㅋ

잠자냥 2022-06-02 12:25   좋아요 2 | URL
네 완전 따끈따끈 신간입니다. 분량이 얊아서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독서괭 2022-06-02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오로지 고발만 있나보군요. 그럼 소설이 아니라 르포 아닌가요😵‍💫

잠자냥 2022-06-02 12:26   좋아요 1 | URL
르포라고 하기엔 좀 뭐한데.... 화자가 아주 분노에 차서 콜롬비아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합니다. 화자와 연인 사이의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요.

coolcat329 2022-06-03 0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이 책 벌써 읽으셨군요. 콜롬비아 무슨 다큐에서 봤는데 참 엄청나더군요. 여행 공짜로 보내줘도 전 못갈거같아요. ㅠ
이 책 얇군요.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습니다.

잠자냥 2022-06-03 10:44   좋아요 2 | URL
네 이 책 자체가 독자를 여행자로 상정하고 화자가 콜롬비아 현실을 날것 그대로 이야기하는 형식이라 더 생생하게 그 나라의 혼돈스러운 상황이 잘 전달된 것 같아요.

mini74 2022-06-03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제목이 확 끌려서 장바구니에 담아놨는데. 갈등이 ㅎㅎ

잠자냥 2022-06-05 00:44   좋아요 1 | URL
읽어보셔도 괜찮겠지요?! ㅎㅎㅎ

박영민 2022-06-04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발다음에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게 무슨 뜻일까요??무엇이라는게 뭘 뜻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잠자냥 2022-06-05 00:49   좋아요 2 | URL
저는 문학이나 예술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문학을 읽을 때 슬픔이든 비극이든 웃음이든 감동이든 또는 어떤 상징을 통한 깊이 있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데 이 작품에선 그런 걸 느끼기 좀 어렵더군요.
 
창백한 말 페이지터너스
보리스 사빈코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빛소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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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빈코프의 <창백한 말>은 좀 신기한 소설이다. 이 작품의 명성(?)만 듣고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나는 이 작품을 좋아할 수 없는 독자 중 한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다. 주인공 ‘나’가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자아도취적인 모습도 거슬렸고 어떤 면에서는 조금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을 10대나 20대에 읽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 같은데, 지금 내 나이에 읽기엔 테러리스트이자 혁명가인 ‘나’의 뜨거움과 허무, 냉소가 공존하는 삶의 태도와 그러면서도 자기만 혼자 지나치게 비장한 모습이 종종 중2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200쪽 남짓 이 짧은 소설을 후딱 다 읽고 나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문장을(거기에 담긴 작가의 생각을) 다시 곱씹어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창백한 말>은 ‘어느 테러리스트의 수기’라는 부제를 달아도 어울릴 만큼 테러리스트이자 혁명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나’- ‘조지 오브라이언’은 사회주의자로서 러시아 황실의 압제에 핍박받는 민중들을 해방하기 위해 테러를 행한다. 그의 이번 암살 대상은 모스크바 총독이다. 그와 함께 이 위험한 일에 뛰어든 단원들로는 ‘바냐’, ‘표도르’, ‘하인리히’, ‘에르나’가 있다. 표도르, 바냐, 하인리히는 마차의 마부들로 신분을 위장한 채 끊임없이 총독을 따라다니며 각자 관찰한 정보를 ‘나’에게 가져다준다. 에르나는 화학자로 총독을 암살할 폭탄을 만든다. 그들이 이 암살 행위에 가담한 이유는 제각각이다. 하인리히는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 표도르는 아내가 살해당했기에, 에르나는 사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바냐의 이유는 조금 복잡하고, ‘나’는 자신이 왜 테러의 길을 가는지 알 수 없다고 읊조린다.

‘나’는 불법적인 삶에 익숙하고 고독에도 익숙하다. 미래를 알고 싶지 않으며 과거를 잊으려 애쓴다. ‘나’에게는 조국도 이름도 가족도 없다. ‘나’는 단지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사람들이 노예가 되는 것 또한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혁명을 원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실존적인 고민이 늘 따라다닌다. ‘사람들은 살인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장관을 죽이는 것은 괜찮고, 혁명가는 죽이면 안 된다’고 한다. 혹은 그 반대로 말하기도 한다. 나는 어째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째서 ‘자유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것은 좋고 독재 권력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것은 나쁜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14쪽)

그는 테러가 아니면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안다. 그 자신이 평화로운 삶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아편을 피우지도 않고 행복한 꿈을 꾸지도 않는다. 그러나 테러가 없는 자기 인생은 상상할 수가 없다. ‘투쟁이 없다면, 세상의 법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즐거운 자각이 없다면’ 그 자신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문득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법을 어기고, 그저 투쟁하는 것, 오직 테러를 위해 테러를 자행하는 것인가? 대의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사실 그는 그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살인을 자행하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나’와 달리 ‘바냐’는 ‘사랑’을 위해 테러에 가담한 사람으로, 조지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위해, 테러를, 그러니까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에 몸을 던지다니 이 또한 모순이다 싶어지는데 바냐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봐, 만약 자네가 사랑한다면, 많이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러면 살인도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정말로 할 수 있나?”
나는 말한다.
“살인은 언제나 가능해.”
“아냐, 언제나 가능한 건 아냐. 살인은 중죄야. 그러나 기억해 둬. 타인을 위해서 자기 영혼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어. 목숨이 아니라 영혼 말이야. 이해해 봐.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결단해야 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서라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다시 스메르댜코프야. 스메르댜코프를 향해 가는 길이야.”(20쪽)


여기서 스메르댜코프는 <카라마조프 형제들>에 나오는 악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즉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그 모든 행위는 악(惡)을 향해 가는 길일뿐이라는 것이다. 바냐는 사랑하기 때문에 살인하지 않을 수 없어 살인의 길을 가고 그럼에도 그 때문에 그의 영혼은  죽음과 같은 비탄에 잠겨 있다. 이때 그의 이 사랑은 개인을 향한 사랑이 아니다. 사람들이 노예가 되는 것이 싫어 테러를 한다는 조지처럼 바냐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암살하는 일에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바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연 세상에 사랑이란 있는가?’ 반문하며 스스로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수도 없고 그 방법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사랑 따위는 할 가치가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에르나를 곁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차갑게 말하면서도 그녀를 안는다(이런 모습도 싫다). 에르나를 보면서 ‘언젠가 오래전에 그녀는 마치 여왕처럼 내게 몸을 맡겼다.’고 하더니 이제 ‘그녀는 마치 거지처럼 사랑을 구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에르나 앞에서 대놓고 자기는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한다(쿨병 걸린 놈). 그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엘레나’는 유부녀이다. 그는 엘레나를 1년 전에 처음 보았고,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녀 곁에 다른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 괴롭다. 그런데 내가 조지, 그가 엘레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고 표현한 까닭은 그는 정말 누군가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엘레나를 향한 열정은 있지만 그 사랑이 과연 정말 사랑일까 의문이 든다. 그리고 그의 그 사랑은 뜻하지 않은 결말을 불러온다. 이 작품의 재미 는 테러리스트 저마다의 생각과 그 삶을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렇게 조지와 에르나, 엘레나, 그리고 그녀의 남편 네 사람의 관계 변화를 지켜보는 데에도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대신 멀리 있는 사람들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주위 사람에 대한 사랑도 없는데 어떻게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나? 진흙 속에 피투성이로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거 아나,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거, 사람들에게 자기 죽음을 바친다는 건 쉬워. 삶을 바치는 쪽이 더 어렵지. 매일, 매일, 일 분 일분을, 사랑으로,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산다는 거 말야. 자기 자신에 대해 잊어버리고, 자기를 위해 혹은 멀리 있는 누군가를 위해 삶을 구출하지 않는 것.” (45쪽)


자기 가까이 있는 사람, 즉 엘레나도, 에르나도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몰랐던 에고이스트, 조지 오브라이언- 그의 혁명은 그래서 기술적으로는 성공할지는 몰라도 사상적으로는 실패일 수밖에 없다. 그의 이런 모습은 함께 테러를 자행하다 목숨을 잃은 동료를 생각할 때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바냐는 그런 조지의 빈틈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너는 진심으로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조지의 그런 텅 빈 마음에 사랑의 중요성을 불러일으키고자 애를 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말하면서….

이런 바냐와 조지의 모습은 작가 사빈코프 그 자신의 양면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사빈코프는 귀족 집안 출신이었음에도 일찌감치 사회주의를 접하고 혁명 활동에 들어섰다. 열여덟 살에 처음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고 그 이후로도 석방과 체포를 거듭하던 중 감옥에서 탈출해 제네바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활동 중이던 러시아 혁명가들을 만나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테러에 뛰어들었다. 러시아로 돌아와 1904년 재무장관 플레베 암살, 1905년 당시 모스크바 총독이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왕자 암살에 성공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이런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대의를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으면서도 늘 윤리적으로 그 행위가 정당한지 끊임없이 스스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 그의 고뇌가 <창백한 말>의 바냐와 조지의 대비를 통해 형상화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사빈코프 그 자신은 암살을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을까 늘 주저하던 ‘바냐’의 모습에 더 가까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진흙 속에 피투성이로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던 혁명가, ‘사람들에게 자기 목숨이 아닌 삶’을 바쳤던 혁명가 ‘바냐’의 모습에서 사빈코프의 모습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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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5-31 12: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음 인용하신 20쪽 읽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절대 살인은 안돼‘는 제 생각이나 다짐, 관념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주어진다면 거기에서는 또 제 신념과는 다른 행동을 어쩔 수 없이 하게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20쪽 인용문 보니 ‘이사카 고타로‘의 <골든 슬럼버> 생각이 뜬금없이 나네요. 거기서 남주의 아버지가 남주에게 그러거든요. ‘살인은 명분이 있을 수 있지만 성범죄는 명분이 있을 수 없다‘고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서 고개 끄덕인 경험 때문인지, 20쪽 인용문에,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살인이 나쁘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말입니다.

잠자냥 2022-05-31 12:56   좋아요 3 | URL
성범죄는 정말 살인에 비해 더 명분이 없는 것 같아요.... 음. 계속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댓글로 지성미 뿜뿜 다부장. 오늘은 네 가지 메뉴를 허하노라 ㅋ

공쟝쟝 2022-05-31 13: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 리뷰 굉장히 묵직하게 읽었어요. 소설 <밀크맨>도 생각 나구요. 좋은 소설일 것 같다는.
대학 다닐 때, 어떤 사람들의 죽음에 빚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난 후에 사는 게 되게 무거워졌던 기억이 있어요. 전 거리 두기가 잘 안됐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가 잘 안되더라고요. 왜 그랬는 지 모르겠는 데 그땐 그랬어요. 그러다가 누군가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는 것을 구실 삼아 내 삶의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소설 속의 삶을 바치는 쪽이 더 어렵다는 말에 조금 더 많이 동의해요.
지금은~ 삶이든 순간이든 꼭 바칠 필요가 있나 싶다고 보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연결되는 이야기인 데) 천착해야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요. 어떤 것에 귀의하거나 바쳐야 하는... 천착해야만 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아요. 뭐랄까 저는 아직 그런 사람들이 서글픈 데, 나중에는 힘껏 응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고 싶습니다!

잠자냥 2022-05-31 14:16   좋아요 3 | URL
이 리뷰를 핸폰으로 누워서 읽는 내내 쟝쟝 님 배 위에 홉스가 올라가 있던 것은 아닙니까? ㅋ (자냥, 썰렁해 하지마!)
죽음보다는 삶을 바치는 쪽이 더 어렵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것에 삶을 바치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 보통 인간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는 것이겠지요?
쟝쟝 님은 지금 단단해져가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공쟝쟝 2022-05-31 15:51   좋아요 3 | URL
썰~러엉~ 일하려고 대왕 모니터 앞에서 안경까지 끼고 pc로그인으로 진지하게 읽었사옵니다. (오늘 죙일 집중안하고 딴짓 중이네요 ㅋㅋㅋ) 보통의 쟝쟝은 단단한 허벅지의 잠자냥을 좋아합니다..* 😭

바람돌이 2022-05-31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가 좀 뻔하지 않을까 싶은 소개글을 보다가 이 소설이 작가의 실제 삶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는 말에 또 급관심이 가네요.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언제나 한 면만을 가진 일은 없잖아요. 보기에 너무 단순해 보이는 결정이나 사람의 경우에도 그 내면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왜인지 이 소설 끕 땡겨요. ^^

잠자냥 2022-05-31 16:58   좋아요 2 | URL
네, 뻔할 수 있는 내용인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 진솔함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5-31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논책!
얼른 읽고 싶네요^!^

잠자냥 2022-05-31 22:18   좋아요 1 | URL
오, 사셨군요. 즐겁게 읽으세요.

독서괭 2022-05-31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바치는 것보다 삶을 바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참 맞아요.
모든 걸 육아서로 읽는 단발머리님처럼 저도 모든 걸 육아와 관련짓는데,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상황이면 기꺼이 바치겠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앞에서 고집부리며 난동부리는 아이를 보면 도망가고 싶단 말입니다...ㅋㅋㅋ
주인공 ‘나‘가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게 아니라서 ‘나‘의 비호감이 자냥님의 점수를 덜 깎아먹게 된 것일까요?

잠자냥 2022-06-01 09:19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모든 걸 육아서로 ㅋㅋㅋㅋ
네 아마도 작가의 모습이 ‘나’ 그대로였다면 이 책을 덜 좋아했을 거 같습니다…. (싫었을지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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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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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맛은 거의 없다. 처음에는 묵직하게 입안을 감도는 쓴 커피의 향, 그리고 그 뒤에 잔잔하게 올라오는 고소함과 단맛의 조화. 나는 이 커피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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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5-31 0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후르츠가 더 좋아요 ㅎㅎ

잠자냥 2022-05-31 10:53   좋아요 1 | URL
그건 제가 안 먹어봐서...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05-31 1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받았습니다
기대되는데요!
산미를 안좋아해서 저하고 맞을듯요

잠자냥 2022-05-31 22:17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아이스로 마시니까 초큼 맛이 덜하네요. 아이스는 역시 산미가 초큼 있는 게 좋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