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세계 SF... F.. C.
마거릿 캐번디시 지음, 권진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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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과학에 조예가 깊은 황후와 공작 부인이 다스리는 세계라니, 어쩌면 허랜드보다 앞선 그녀들의 유토피아. 기존의 관습적 담론을 완전히 허물어 뜨리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그런데 문제는 너무 지루하다는 거! 140쪽이 1400쪽처럼 느껴진다. 의미 있는 책이지만 작품보다는 작가가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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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8-1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백자평 앞부분에 오오 읽고 싶었는데 지루하다는 단어에 다시 뒤로 물러섭니다...

잠자냥 2020-08-15 17:58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지루해요..... 재미있다고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10여 년 전, 테니스라켓을 처음 잡았다. 신세계였다. 내가 왜 이걸 여태 배우지 않았을까 후회도 됐다. 운동 신경이 나쁘지는 않은 편이라서 포핸드, 백핸드, 발리 등등 금세 익혔다. 30도가 넘는 여름에도,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에도 레슨 받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실내 코트가 많지 않아서 한 겨울에도 실외에서 테니스를 배웠다. 몹시 추운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레슨을 빠지는데,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자 보다 못한 코치가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면 공이 제대로 튕기지 않으니까 나오지 말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테니스 레슨을 받으러 가니까 코치가 헛웃음을 웃었지.

그렇게 2년쯤 배우니까 제법 상대와 랠리도 되고, 같은 코트에서 레슨 받던 어르신들이 게임에도 끼워주더라(우리나라 테니스 코트에는 젊은이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 더 많다). 그 무렵에 다니던 회사가 쫄딱 망했다. 몇 년 치 퇴직금은 물론 몇 개월이나 밀린 월급까지 받지 못했다. 그것만 해도 몇 천만 원..... 휴.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월급 밀릴 때 생활하느라 적금도 깨버린 상태였고, 설상가상 빚까지 있었다. 한 번에 해결해주겠다던 사장 말을 믿은 내가 바보였다. 그때 내 직업은 카피라이터. 그 전에 다니던 회사도 망해서 이직했던 참인데, 또 망한 것이다. 같은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요즘 승승장구하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말하기를 말하기>의 김하나 씨도 있는데,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내가 카피라이터로 재직했던 회사는 지금도 건재한 첫 번째 회사 빼고는 다 망했다. 놀기 좋아한 나 때문인가? -_-?

아무튼 그렇게 거리로 나앉.....지는 않았고, 못 받은 돈에 빚까지 졌던 나는 실업급여를 받아서도 테니스 레슨을 받으러 갔다. 회사 다닐 때는 퇴근 후 한 시간쯤 레슨을 받거나, 가끔 주말에 테니스를 칠 수 있었는데 백수가 되니 남는 게 시간인지라, 아침 여덟시부터 코트에 나가 점심때까지 있었다. 오는 사람마다 상대해주며 마치 무림의 고수(?)라도 되는 듯이 랠리를 해주곤 했다. 물론 진짜 고수 앞에서는 깨갱. 주로 초보인 사람들을 상대했는데(코치가 시킴), 남자들은 (초보 주제에도) 좀 비웃는 듯한(?) 태도로 도전했다가 내 공을 받으면서 당황하곤 했다. 코트에 눈이 녹기 시작한 그 봄부터 한낮의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른 여름까지 쭉, 거의 아침 8시부터 점심까지 코트에 있었으니, 그때 내 얼굴과 몸은 농사꾼처럼 시커멨다. 다시 직장을 알아볼 생각도 안하고 백수 딸이 시커먼 얼굴로 테니스만 치고 다니니 그때 엄마 속은 내 얼굴보다 더 시커멨을 것이다.

사실 내 속은 더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때까지 광고일로 밥 벌어 먹고 살아왔지만 그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네버,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화려하지만 속빈 강정 같은 업계에 신물이 났던 참에 회사가 망했던 것이니 역시 내 탓인가? -_-? 그러다 보니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무작정 테니스만 쳤다. 공을 쫓는 눈, 라켓으로 공을 때릴 때 탕탕 울리는 그 상쾌한 소리. 공을 따라다니느라 땀에 흠뻑 젖어서 모든 걸 잊을 수밖에 없던 그때- 그렇게 몇 시간을 내리 테니스만 치다가 사람들이 다 돌아간 뒤에 코트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바라본 한낮의 평온한 하늘은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돌아간 뒤는 아니었다. 그때 그 벤치에 늘 함께 앉아 있던 사람이 애인이 되어서 지금도 여전히 곁에 있다...... 음, 테니스가 선물한 내게 가장 고마운 것 중 하나랄까. 백수라 시간이 남으니 그즈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절대 방영해주지 않는 온갖 테니스 중계도 인터넷으로 새벽 내내 찾아보곤 했다. 밤에는 테니스를 보고 아침부터 점심까지는 테니스를 하고. 그게 그 시절 내 일과였다. 어느 날은 코치가 “잠자냥 씨는 테니스에 미친 사람 같아”라고 했지.

테니스는 그때 내 마음속 절망을 잊게 해준 존재였다. 그렇게 일 년을 넘게 보내고, 그 후 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테니스 코트에 머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직업으로 돌아가지 않고도 밥벌이를 다시 하는 행운도 찾아왔다. 이것도 테니스 덕분일까? 가끔은 그때 한낮의 빈 코트에서 애인과 함께 나란히 앉아 보던 하늘이 그립기도 하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을 읽는 내내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 또한 테니스에 미친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는 친구와 함께 미치광이처럼 테니스에 몰두했던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아스팔트에서 최면에 걸린 듯 행군하는 둔주 상태, 밋밋하면서도 무성하고 멍하면서도 격렬하게 느껴지는 정신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젊었고 언제 그만둬야 할지 알지 못했다. 몸뚱이가 지긋지긋해서 다치게, 닳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52쪽)라고. 나 또한 어쩌면 그 시절에 그런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우울증이 심해서 몸뚱이를 다치게 하고 싶은 그런 상태.


테니스는 가만있지 않는 공을 가지고 하는 당구요, 생각할 시간이 없는 체스다. 미식축구를 보병과 소모전에 비유한다면 테니스는 포병과 공습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끈이론>, 30쪽)


이 책은 ‘끈이론’이라는 제목보다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라는 부제가 더 매력적이다. ‘끈이론’이라는 제목은 뭐랄까 내가 미치도록 싫어하는 수학이나 과학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테니스에 수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각도까지 헤아리면서 샷을 날린 모양인데, 사실 난 그런 거 절대 모르고 동물적 감각으로 공을 두들겼을 뿐이다.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약간 강박적인 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저 백수 시절 얼마나 우울했던가! 백수라서가 아니라,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음울한 어린(?) 양은 테니스에서 빛을 찾았다. 더욱이 테니스는 스포츠이면서도 상대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프로 테니스 선수들은 경기 중 코트를 바꿀 때에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경기 시작 전, 후로 나누는 포옹과 악수 정도가 전부랄까. 타고나기를 무리 지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스포츠의 거리두기는 정말 완벽에 가깝게 취향에 맞았다. 물론 이 좁은 땅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아마추어로서는 게임이라도 할라치면 대부분 복식 경기를 하자고 주장해서 ‘고독한’ 경기를 지향하는 나를 진저리 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와 애인은 오직 둘이서만 테니스를 친다. 동호회에 들어오라는 말도, 같이 복식을 치자는 낯모르는 이들의 제안도 모두 거절한다. 코트에는 저 너머 애인과 나 둘 뿐이다. 서로 상대를 너무 잘 알아서 우리 실력은 더 늘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 둘이서만 칠 것 같다.

아무튼 테니스는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을 보라. 그는 서브를 넣을 때 항상 하는 강박적인 버릇이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말을 한껏 순화해서 서브 넣기 전 나달이 엉덩이를 ‘꼬집는다’고 표현했는데, 꼬집는 게 아니다. 한 번이라도 나달의 경기를 본 사람은 알리라. 그는 똥꼬가 팬티를 먹은 것처럼 서브를 넣기 전에 늘 똥꼬에서 팬티를 뺀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똥꼬 언저리를 오간 그 손가락을 이용해 귀 뒤로 (이제는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정성껏 넘기고 상대를 쏘아보다가 서브를 날린다. 나달은 또 본인이 마시는 물병 세 개를 딱 나란히 정렬해 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물론 이런 강박증은 그 완벽해 보이는 페더러에게도 있다. 다만 페더러는 나달처럼 볼썽사납거나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조용히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파란 끈으로 묶은 라켓을 몇 번째에는 꼭 바꾸는 등등 그만의 강박이 있다.


단언컨대 테니스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힘겹다. 테니스는 신체 통제, 손과 눈의 협응, 재빠름, 최고의 속도, 지구력, 그리고 조심과 (우리가 용기라고 부르는) 놓아버림의 기묘한 조합을 필요로 한다. 두뇌도 필요하다. 수준 높은 경기의 한 포인트에서의 한 번의 공방에서의 단 하나의 샷은 역학적 변수의 관점에서 악몽과 같다. 네트의 (가운데) 높이가 91.4센티미터이고 두 선수의 위치가 (비현실적이게도) 고정되었다고 가정하면 샷 하나의 위력을 결정하는 것은 각도, 깊이, 속도, 스핀이다. 이 요인들은 각각 또 다른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끈이론>, 117쪽)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테니스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힘겹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테니스는 정말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무척 힘들다. 내가 이런저런 운동을 하면서 몸을 다친 적은 거의 없는데, 테니스 때문에 다리에 깁스를 두 번이나 했다. 왼쪽,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찢어져서 저마다 한 달 가까이 깁스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근육이 찢어질 때의 그 고통은................. 음. 종아리를 누가 총알로 쏘는(실제로 딱! 하는 소리가 들린다. 으으) 듯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테니스를 포기하지 못하니, 확실히 이 스포츠에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는 일정 수준 이상의 테니스는 일종의 기예라고 말한다. 진짜 최상급 선수들은 우리 앞에서 기예를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예를 펼치는 선수들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얼마나 잘 묘사하는지, 그 적절한 비유에 배꼽이 빠질 만큼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는 안드레 애거시를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렇게 말한다. ‘애거시는 깡말랐고 계집애처럼 생겼으며 밀어버린 머리와 베레모스러운 모자와 검은 신발과 양말과 듬성듬성한 염소수염 덕분에 소년원에서 갓 출소한 사람 같다’(141쪽). 마이클 창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얼기설기 꿰맨 모습’이라고 하며, ‘머리통은 버섯 모양이고 머리카락은 칠흑 같으며 표정에는 심각한 난치성 불행이 묻어난다.’고 말한다. ‘대학원 글쓰기 강좌를 제외하면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불행해 보이는 얼굴’이라나. 테니스 역사상 미남으로 따지면 상위권에 들고도 남을 선수인 마크 필리포시스를 스파르타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피트 샘프러스와 경기하는 그를 ‘크고 느린 기계와 같은 베이스라이너로 눈에는 싸늘한 적의가 감돈다’고 표현한다. 그에 비해 샘프러스는 ‘허약하고 지적이고 (슬기롭고 슬픈) 시인처럼 보이며 민주주의만이 그렇게 지칠 수 있는 듯한 방식으로 지쳐보인다’(158쪽)고 말하는데,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지 너무 웃겨서 미치는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2008년 4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의 테니스계는 지켜보지 못했는데, 그 후로 크게 활약한 노박 조코비치나 앤디 머레이 같은 선수들을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완벽한 비유를 하고도 남았으리라.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라는 글만 봐도 그가 얼마나 테니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과 특징을 잘 알고 있는지, 또 그리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페더러를 좋아하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를 거의 숭배하는 관점에서 묘사한다(그런데 테니스를 즐겨 보는 이가 페더러를 숭배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 그는 ‘아름다움은 경기 스포츠의 목표가 아니지만 높은 수준의 스포츠는 인간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최상의 분야’(194쪽)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최상급 운동선수의 아름다움을 직접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환기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는 하지만 줄곧 페더러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페더러의 포핸드는 거대한 액체 채찍이요, 백핸드는 한 손으로도 플랫 드라이브를 날리거나 톱스핀을 먹이거나 슬라이스를 깎을 수 있다.’(200쪽) ‘페더러는 나이키에서 올해(2006년) 윔블던에서 입도록 한 버터밀크색 스포츠 코트 차림이다. 페더러는 어쩌면 오직 그만이 스포츠코트를 반바지와 운동화에 받쳐 입어도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는다.’(198쪽), ‘고전적 스토아주의와 강한 정신력과 훌륭한 스포츠맨 정신과 어디 하나 흠잡을 때 없는 품위와 신중함과 아낌없는 자선’ 등등의 아낌없는 찬사에 이어 페더러의 경기를 보면 ‘지독하게도 종교에 가까운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을 겪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까지 찬양한다. 이 모든 주장에 104% 동의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내내 감동으로 복받쳐 올랐다.


 2006년 윔블던 결승 이후. 보라, 페더러는 운동화에 반바지에 버터밀크색 스포츠 코트를 입어도 이토록 아름답다!


페더러는 천재, 돌연변이, 화신이라고 불릴 만한 유형이다. 그는 서두르거나 균형을 잃는 법이 없다. 그에게 날아오는 공은 실제로 그래야 하는 것보다 몇 분의 1초 오래 머물러 있다. 그의 동작은 운동의 동작보다는 무용의 동작에 가깝다. 페더러는 살과 빛의 몸을 입은 존재다. (<끈이론>, 208쪽)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는 2006년, 그러니까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쓰인 글이다. 그의 또 다른 에세이집인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에도 실려 있다. 이 글에서 그는 ‘페더러는 스물다섯 나이로 현재 살아 있는 테니스 선수 중에서 최고다. 영영 최고일지도 모르겠다.’(193쪽) 말하는데,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20년인 지금도 페더러는 최고다. 물론 이 최고가 1위를 뜻하지는 않는다. 현재 페더는 랭킹 4위이다. 그런데 그는 1981년생으로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마흔이다! 마흔의 나이에 여전히 톱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그는 정말이지 살과 빛의 몸을 입은 존재이자, 천재이자, 영영 최고의 테니스 선수일 것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살아있었다면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페더러의 경기를 보면서 종교적인 고양까지 느끼며 행복해 했을 텐데……. 같은 페더러 팬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지난 1월에 열렸던 호주오픈을 제외하고는 모든 투어 경기가 열리지 않고 있다. 페더러의 경기도 올해는 그때를 제외하고는 보지 못했다. 페더러가 더 나이 들기 전에 그 우아한 경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이 코로나가 어서 끝나야 할 텐데……. <끈이론>은 테니스와 관련해서는 가장 우아한 에세이임에 틀림없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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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8-14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테니스를 전혀 모르고 흥미도 없지만 이 글이 아름답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겠어요. 잠자냥 님이 테니스를 배우고 열중해 주어서, 그래서 결국 이런 글을 써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제가 항상 요가 3년 했는데 왜이렇게 다 못하는거야, 라고 얘기하지만 이 글을 보니 알겠네요. 저는 요가를 매일 하지도 않고 한다고 해도 삼십분이 전부이니..이래가지고 뭐가 되겠어요? 뭔가 이거다 싶은 결과물을 내놓으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충분히 많이 들여야 할텐데 말입니다. 저는 노력을 들이지 않고 결과만 가져가기를 바랐네요. 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잠자냥 님. 그 시절 잠자냥 님께 테니스가 있어서 너무 좋네요. 그리고 잠자냥 님이 사랑하는 스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좋고요.
애인이라는 건,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겹치는 것이 없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이이지만, 그러나 겹치는 게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축복입니까.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다니, 잠자냥 님 복 받으신 분.....

잠자냥 2020-08-14 10:26   좋아요 0 | URL
테니스 정말 아무리 오래 배워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은 다다르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순간 정말 1cm 정도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테니스 배우면서 글쓰기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진짜 꾸준히 해도 좀처럼 늘지 않는데,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날 조금 늘어난 걸 발견하는 기분. 그러다 또 슬럼프 오고.... 요가를 전 잘 모르지만, 아마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스포츠나 글쓰기나 정말 꾸준히 하다 보면 아주 쪼오금 상승한 게 보이는. 그렇지만 정말 꾸준히 해야 한다는 거. ㅎㅎ 다락방 님은 글쓰기와 책읽기는 정말 꾸준히 하는 분이니까 요가도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날 살짜쿵 실력 향상이 된 걸 느끼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테니스는 파트너가 있어야만 가능한 운동인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 너머 코트에 있으니 참 행운이죠. ㅎㅎ 그러니 다락방 님도 요가장에서 파트너를.........? 응(?) ㅋㅋㅋㅋ

Falstaff 2020-08-14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 잠자냥 님이 테니스 (아마추어로는) 고수시군요! 스매싱 하듯 휘두르는 손바닥으로 귀싸대기 한 대 맞으면 참으로 볼만 하겠습니다. 후다닥.....

잠자냥 2020-08-14 10:45   좋아요 0 | URL
무림(?)의 고수들에 비하면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무림의 고수 아줌마들 테니스 대회가 있는데(‘진달래부‘,‘국화부‘라고 합니다), 국화부 아줌마들 대회 동영상 보면 정말 장난 아니에요. ㅎㅎ 스매싱은 생각보다 어려운 기술이라 귀싸대기 잘못 날리다가는 제 어깨가 먼저 나갈 수도 있지요. ㅋㅋㅋㅋㅋ

박균호 2020-08-14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십년 테니스에 빠져 살았는데 테니스의 묘미는 단식인 것 같아요. 그나저나 마이클 창 참 오랜 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저는 고란 이바니세비치의 팬이었어요. 윔블던 결승전에서 우승한 순간이 아직 생생하네요. 그 양반이 사용한 헤드 프레스티지660도 생각나고...

잠자냥 2020-08-14 11:27   좋아요 2 | URL
단식이 짱이죠. 문제는 우리나라 코트 여건상 단식 치기 참 힘들다는 것이죠. ㅎㅎ 마이클 창 정말 오랜만인 이름이죠. 이 책에서는 아무래도 정말 오랜만인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이바니세비치 이야기도 나와요.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는 그가 잘생겼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냥 호락호락(?) 인정해주지는 않지요.ㅋㅋㅋㅋㅋ

박균호 2020-08-1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저도 테니스를 좋아해서 저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하긴 했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읽다가 집어 던졌어요. 다시 테니스로 돌아갈려고 준비중인데 반가워서 댓글 남겨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잠자냥 2020-08-14 11:3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저자 말이 좀 현학적인 면은 있죠? ㅎㅎ 저도 다리 다친 뒤로 한 1년 테니스 쉬었는데, 이 책 읽고 나니 암튼 다시 코트에 나가야지! 불끈불끈하더군요. 테니스 즐겁게 치세요~!!

페넬로페 2020-08-1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테니스경기 시청하는걸 참 많이 좋아했어요~~
경기를 볼 때마다 테니스를 배우고 싶었는데 운동만 하면 몸에 탈이 생기는 저에게는 무리이다 싶더라구요!
그나저나 잠자냥님의 훌륭한 필력의 출처를 알게 되었네요^^

잠자냥 2020-08-14 12:17   좋아요 1 | URL
테니스는 보는 것도 직접 하는 것도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스포츠이지요.
몸에 탈이 나지 않는다면 한 번 직접 해보시라고 권유하고 싶은데 아쉽네요. ㅎㅎ
회사는 망했어도 필력은 챙긴 것일까요?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20-08-1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께서도 테니스를 좋아하시는 군요. 겨울철에도 돌멩이 같은 테니스공을 치실 정도면, 정말 좋아하시는 분이시라고 여겨집니다. 저도 예전에는 테니스 경기도 즐겨보고 보리스 베커와 나달을 좋아했던 기억도 납니다. 한동안 테니스를 안 쳤는데, 조만간 딸아이와 함께 라켓을 잡을 날을 기다려 봅니다. 잠자냥님 덕분에 테니스에 대한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0-08-14 12:48   좋아요 2 | URL
와, 이 글이 알라딘의 숨은 테니스 팬들을 소환했군요. ㅎㅎ 겨울철의 돌멩이 같은 테니스공을 아시는 거 보니 겨울호랑이 님도 테니스를 꽤 좋아하셨나 봅니다. 딸과 함께 치는 테니스는 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꼭 연의랑 함께 테니스 치는 날이 오기를 바랄게요!
 
책 좀 빌려줄래? - 멈출 수 없는 책 읽기의 즐거움
그랜트 스나이더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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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너무 컸나? 조금 싱거운 느낌. 기발하거나 완전 재치 넘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반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 빙고’부터 키득키득 웃음 터지면서 조금씩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진다. 책읽기 만큼 글쓰기에 대한 위로와 격려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읽기 환자들은 결국 쓰기로 나아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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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8-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딱 그랬어요. 앞 절반은 뭐 이런걸, 싶었고요. 후반부에 피식 웃으면서 공감했어요.
(읽고 팔았습니다)

잠자냥 2020-08-22 14:10   좋아요 0 | URL
저도 (읽고 팔았습니다....) ㅋ

lotos 2021-04-12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마지막 문장이 저를 구원해주네요.

잠자냥 2021-04-13 09:3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저도 그렇습니다. ㅎㅎ
 
낙천주의자의 딸 - 유도라 웰티의 소설
유도라 웰티 지음, 왕은철 옮김 / 토파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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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군가는 죽어도 또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인생을 살아나가야 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사랑과 상실, 추억이 잔잔하고 섬세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어쩐지 코끝이 시큰해지는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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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대산세계문학총서 159
엔도 슈사쿠 지음, 김승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으면서도 어쩐 일인지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읽노라면 신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가톨릭 신도였고, 종교적 색채의 작품을 많이 써왔던 엔도 슈사쿠. 이런 소개만 보면,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잘 모르는 이들은 그가 신이나 믿음, 종교적인 구원의 문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작품들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는 참으로 묘한 작가이다. 나처럼 종교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에게조차 엔도 슈사쿠의 작품은 별 거부감 없이 읽힌다.  게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면 또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싶어진다.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신이 정말 존재할까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하고, 믿음이라는 게 무얼까 고민해 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엔도 슈사쿠가 작품 안에서 강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을 통해 종교적 믿음을 설파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의 작품에는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바보>에는 더 그런 인물이 나온다. 너무나 순수해서 ‘바보’처럼 보이는 인물.

<바보>는 엔도 슈사쿠의 작품 중 조금 특이하게 느껴진다. 첫 장면부터 색다르다. 평범한 일본의 가정집을 배경으로 아침부터 입씨름하는 남매의 모습이 그려진다. 똑똑하고 빈틈없을 것 같은 누이 ‘도모에’와 게으르고 철없는 ‘다카모리’가 아침부터 남매간에 흔한,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말다툼을 벌인다. 그런데 그날따라 다카모리에게 뜻밖의 편지가 오고, 편지 속에는 놀라운 일이 쓰여 있다. 오래전 다카모리가 잠시 펜팔 친구로 사귀었던 프랑스의 한 청년이 무턱대고 일본에 온다는 내용이 아닌가. 그렇다면 생면부지의 외국인 청년을 이 집에서 머물게 해야 한단 말인가? 도모에는 못마땅하다. 다카모리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자기 앞으로 편지를 보낸 이 친구를 외면할 수도 없어서 그를 마중 나가기로 한다. 생각해 보니 그의 이름은 ‘가스통 보나파르트’로 무려 나폴레옹의 후손이다. 이 이야기에 도모에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은 호기심이 증폭한다. 나폴레옹의 후손이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온다고?

오빠 다카모리를 비롯해 자기 또래 일본 남자를 모두 한심하게 여기던 도모에는 나폴레옹의 후예라는 말에 솔깃해한다. 나폴레옹 황제의 후예라면 왠지 우아하게 잘생긴 얼굴에, 어딘가 늠름한 매력을 발산하는 남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가장 낮은 등급의 선실을 이용해서 저 먼 프랑스에서 일본까지 온 나폴레옹의 후예 ‘가스통’의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옷차림이야 그렇다 쳐도 생김새가 영 아니올시다. 모든 점에서 꽝이다. 완전히 한 마리의 말을 닮은 기다란 얼굴. 꼭 도깨비 모양의 참마처럼 생겼다. 굳이 외국 배우와 비교해야 한다면 희극배우 ‘페르낭델’과 닮았다고나 할까. 게다가 행동거지는 또 얼마나 굼뜨고 어리숙한지 지켜보노라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다. 가스통을 자기 집까지 불러들인 체면도 있어서 다카모리는 계속 가스통을 과대평가하려고 애쓰지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딱 어린 아이 수준의 정신 연령이다. 나폴레옹은 무슨 나폴레옹의 후예,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어쨌든 먼 나라에서 찾아온 손님이니 다카모리 집에서는 가스통을 환대해주고 그에게 일본의 재미난 곳을 소개해주고자 늦은 밤 환락가로 그를 이끈다. 그런데 그는 참 이상하다. 유흥에도 도무지 재미를 못 느끼는 데다가 일본을 찾은 외국인이라면 마땅히 호기심을 느끼고 좋아할만한 도쿄타워 같은 관광코스도, 가마쿠라의 대불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그가 일본에서 흥미를 느끼거나 관심을 갖고 쳐다본 것은 주인 없는 길거리의 불쌍한 개 한 마리나 어린애들 밖에 없다. 환락가에서 괜히 시비 거는 일본인들에게 두들겨 맞고도 그는 바보처럼 웃기만 한다. 덩치는 산만 한 이가 자기보다 작은 일본인들에게 맞으면서도 한 대 때릴 줄 모른다. 그는 정말 바보가 아닐까 의심이 들 즈음에 뜻밖에도 가스통은 다카모리네 집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일본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다고, 여러 종류의 일본인을 만나고 싶다는 이유가 전부이다.

그렇게 가스통은 다카모리의 집을 나와서 떠돌이와 다름없는 생활을 시작한다. 가진 돈이 많지 않아 주로 허름한 여인숙을 찾아다니다 보니 뜻밖의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주로 하층민들과 얽히면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그의 삶은 흘러간다. 다카모리와 도모에 남매는 가스통이 집을 떠나니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그 어린아이 같은 외국인이 일본에서 잘 버텨나갈지, 대체 왜 일본에 왔을지 궁금해 하면서 그의 행적을 뒤쫓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스통의 뒤를 쫓으면서 도모에와 다카모리는 그에게 서서히 ‘엄마가 불구의 자식에게 느끼는 애련함’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을 갖게 되고 조금씩 연민을 느끼게 된다. 다카모리의 경우에는 조금 더 이 감정이 남달라서 가스통 같은 순수한 남자를 세상이 망가뜨릴까봐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바보>는 가스통이라는 이 말도 안될 만큼 순수한, 그래서 때로는 백치처럼 보이기도 하는 남자의 행적을 쫓으며 신과 인간, 믿음과 구원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가스통의 삶의 추적하는 형식으로 썼어도 됐을 법하다. 그런데 다카모리와 도모에라는 너무나 평범한, 도저히 소설 속 주인공으로는 삼을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엔도 슈사쿠는 이렇게 평범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들보다) 못나 보이지만 어쩌면 그런 그들이 지니지 못한 고결한 속성을 지녔기에 예수 또는 신의 모습을 닮은 가스통이라는 인물을 뒤쫓게 한다. 그들은 차츰 이 못난 바보 가스통에게 감화 받는다. 이런 구조로 작가는 보통의 인간 안에 깃든 선한 본성이라든가 믿음의 문제를 촉발해 나간다.

나폴레옹의 후예라는 가스통은 왜 고국을 떠나 일본에 왔을까? 언뜻 그의 과거가 스치듯 그려진다. 가스통이 태어난 사부아 지방에서는 얼간이 같은 사람을 포플러나무라고 부른다. 포플러는 성냥 만드는 데만 쓰일 뿐, 재목이나 기둥으로는 쓰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스통의 친구들은 그를 포플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런 세상에서도 가스통은 사람들을 믿고 싶어 한다. 지상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나폴레옹처럼 영리하고 강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이 세상이 영리하고 강한 사람만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나 자기를 따르는 늙은 개와 같은, 약하고 슬픈 사람에게도 무언가 보람이 있는 삶의 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이 낯선 땅에서 그런 삶의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가스통은 일본 곳곳을 떠돌며 어떤 사람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만의 계율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인간의 믿음이란 그리 강하지 않다. 번번이 흔들린다. 흔들릴 때마다 그는 믿자고, 속는다고 해도 믿자고 자신을 다그쳐 나간다. ‘의심이 너무나도 많은 이 세계, 서로 상대방의 속마음을 캐려 들고 절대로 상대의 선의를 인정하려고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 문명이나 지식’을 가스통은 먼 바다 저쪽에 버리고 일본에 왔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을 믿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스통의 이 인간이라는 변하기 쉬운 존재를 ‘믿고자 하는 일’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도모에는 우리 인생에서 바보와 위대한 바보라는 두 가지 말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꾸밈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꾸밈없이 모든 사람을 믿으며, 비록 자기가 속고 배반을 당해도 그 신뢰와 애정의 등불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사람, 그 사람은 요즘 세상에서 바보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위대한 바보인 것이다.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발산하는 작은 빛을 사람들의 인생에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비추는 위대한 바보이다. (<바보>, 254쪽)


가스통을 지켜보노라면 답답해진다. 너무나 바보 같아서 울화통이 치밀기도 한다. 사람을 믿는 일이 그렇게 쉬울까? 믿을 만한 사람을 믿어야지! 속으로 소리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믿을 만한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한다. 가스통 같은 사람은 분명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은 그러하니까. 왜 사람을 믿지 않느냐는 가스통의 말에 “내가 믿지 않는 게 아니야. 다른 놈들이 나로 하여금 사람들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거지.”(165쪽)라고 말하는 살인청부업자 ‘엔도’의 말처럼 나 또한 이 세상에 무언가를 믿는다는 말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바보 같은 일인가 마음속에서는 자꾸 반감이 치솟는다. 착한 사람이라든가 호인이라는 말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이 사회에서는 결국 바보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하는 도모에의 말에 더 공감이 간다. 엔도의 말처럼 세상은 선의가 온전하게 통하는 세상이 아니고, 애정이라든지 신뢰라든지, 이런 말들은 그저 쓰기 편하니까 쓰는 표어 같은 말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살인청부업자 엔도가, 도모에가 가스통에게 서서히 감화되듯이, 아니 감화라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가스통의 그 무엇에 이끌리듯이 나도 이 <바보>라는 작품에서 울컥 무언가 느끼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어? 이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인가 코웃음을 치다가도 바보 같은 이 남자, 인간의 나약함과 모자람에 한없는 연민의 마음을 품고 그 못난 인간을 끝까지 믿어보고자 애를 쓰는 이 바보 같은 가스통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가스통 자체가 위대하지 않기에, 위대하기는커녕 걸핏하면 울어대고 겁쟁이에다가 남들이 다 무시할 만큼 어리숙한 인간이기에, 그럼에도 그 약함을 짊어지고서 열심히 제 나름대로의 삶을 아름답게 꾸려가려는 모습에 끝내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다가 끝내 이 가스통의 모습이 신이 인간에게 품는 마음과 같다면, 신의 아들 예수가 인간을 향해 품은 마음과 같다면 신이라는 존재는 한번쯤 조용히 믿어 봐도 괜찮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내 마음속에서도 희미한 믿음 같은 게 싹트기도 한다. 엔도 슈사쿠의 문학의 힘은 늘 이처럼 조용조용 속삭이는데도 깊고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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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8-1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부터 읽기 시작합니다.

잠자냥 2020-08-12 22:18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