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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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문학과 예술, 지성을 좇는 데 바친 열정적인 한 여성의 삶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손택의 일기와 비교해 읽으니 이 책의 미덕은 손택의 장점도 단점도 독자가 다 아울러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아닐지. 손택 본인은 소설가이길 그토록 바랐는데 내겐 역시 영원 불멸의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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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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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생활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역적으로 몰려 유배당하는 상황은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나 만날 법하고 그렇기에 그런 생활도 언뜻 그다지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옛 선비들은 유배지에서 안빈낙도하면서 그럭저럭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에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 유배 생활이 현대에, 그것도 한참 꿈꾸고, 한참 자유롭게 돌아다닐 나이의 젊은 여성에게 형벌처럼 주어진다면 어떨까? 고작 몇 평의 공간으로 한정된 감옥살이가 아니니 덜 끔찍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단지 저 머나먼 외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니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을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작품은 남녀의 말다툼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남자는 그런 여자가 짜증스러워 온갖 비난을 퍼붓다가 결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한다. 다른 나라라면 그런 비난을 할 리가 없는데, 이곳은 공산독재가 한창인 1980년대 후반의 알바니아. 그렇기에 “당신 정체가 뭐야, 스파이야?”라는 남자의 말은 여자에게도, 또 그 자신에게도 치명적이다. 남자의 이름은 ‘루디안 스테파’. 극작가인 그는 공산독재 치하에서도 그럭저럭 검열을 피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고, 작가로서의 명성도 인기도 얻고 있다. 말다툼을 벌인 여자 친구 ‘미제나’도 작가로서의 명성과 인기를 통해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출판 사인회에서 만났으니까.

그런데 루디안은 어느 날 문득, 아무런 설명 없이 당 위원회의 소환을 받고 불안감을 느낀다. 예술 심의회에서 검열중인 새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미제나가 고발한 것일까? 말다툼 중 “당에서 붙인 스파이가 아니냐”며 몰아붙인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그때 싸움 중 책꽂이에서 떨어진 책들 중 몇몇은 공산독재에 비판적인 책들이 아니었던가. 이래저래 불안한 마음으로 당 위원회 소환에 응한 그는 그곳에서 뜻밖의 사실을 맞닥뜨린다. 한 여성이 자살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언젠가 루디안이 ‘린다 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고 친필 사인을 해준 사람이다. 그렇게 사인을 해준 사람이 한둘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며, 심지어 그 여자의 죽음에 자신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루디안은 답답할 뿐이다.

알고 보니 이것 참, 문제이긴 하다. 죽은 여자, ‘린다 B’는 이 나라 유서 깊은 가문 출신으로, 그 집안은 군주제 시절 옛 왕실의 측근이었다. 그리고 현재 유배상태이다. 그런 상태였던 린다의 일기장에 루디안의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린다는 루디안을 향해 꽤 달콤한 감정을 키우고 있었고 당위원회가 보기에 그 감정은 단순한 팬 수준을 넘어섰다. 그렇기에 ‘린다 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는 루디안의 사인은 심상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당국은 유배당한, 옛 왕실 측근 여성의 자살에는 무언가 메시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석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알바니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음모소탕의 계기였던 총리자살사건 이후 당국은 아무리 평범해 보일지라도 모든 자살 뒤에 감춰져 있을지 모르는 것을 추적해왔다는 것이다. “자살을 통해 종종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는 것이 당국의 생각이다.

루디안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린다 B라는 여성에게 직접 사인해준 기억이 없다. 게다가 자기를 향해 그토록 달콤한 감정을 키운 여성이라는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기억을 더듬던 그는 마침내 린다와 자기 사이에 미제나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랬다. 미제나는 친구에게 주겠다면서 루디안에게 사인을 받아갔던 것이다. “제 친구가 아주 기뻐할 거예요.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거든요,”라는 말을 남겼던 그녀. 눈부시게 아름다웠기에 그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던 루디안은 그때를 계기로 미제나와 연인 사이가 된다. 그렇다면 미제나는 정말 당국이 심은 스파이일까? 죽은 린다와는 또 무슨 관계일까? 단순히 친구일까? 이 작품의 재미는 무엇보다 이 세 사람의 관계를 밝혀나가는 데 있고, 두 번째로는 린다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는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좇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독자는 린다의 베일이 벗겨질수록 그 젊은 여성의 안타까운 삶에 연민하게 되고 그런 삶을 살게 한 공산독재 알바니아 현실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스탈린이라는 인물과 종교 금지, 또는 정치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적을 하면 군 장교나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는 감옥에 갔고 심지어 처형부대를 마주하게 되는 알바니아. 모든 전화는 도청되고 있으며, 넷 중 한 사람은 국가를 위해 감시를 한다는 소문이 진실처럼 여겨지는 알바니아. 이런 나라에서 옛 왕실의 측근 집안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유배생활을 하는 린다 B. 그런 그녀에게 저 멀리 떨어진는 수도 티라나는 그녀가 꿈꿀 수 있는 이상향과도 같다.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도시를 린다처럼 그렇게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미제나는 갈 수 없는 도시이기에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유배 법규를 알고 나자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린다는 매일 오후 정해진 시각에 경찰서에 출두해야 하며, 허락받지 않고 지정된 구역을 벗어날 경우 당연히 처벌을 받는다. 인근 도시마다 정해진 형벌이 있었는데, 더 먼 도시로 가는 경우엔 형벌이 가중된다. 수도 티라나는 최고형이었다. 무기징역 또는 사형. 그런 린다에게 미제나는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통로이다. 심지어 린다가 꿈꾼 루디안과의 사랑까지도 어쩌면 대신 이뤄줄 수 있는 존재.

사실 처음에는 루디안을 향한 린다의 맹목적인 애정이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에게 아름다운 여성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는 설정은 남성 작가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하는 내게 이 또한 조금은 그런 판타지로 보여서 우스꽝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린다에게 루디안은 단순한 애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년 전부터 신문의 연극 관련 비평이나 라디오 뉴스나 텔레비전 출연을 지켜봐온 남자.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토록 오래전부터 만나길 꿈꿔온 남자, 루디안은 린다에게는 갈 수 없는 도시 ‘티라나’와 같은 대상이다. 그 사랑마저도 결코 이룰 수 없는. 단 몇 시간의 정상적인 삶을 살고자 차라리 암에 걸리기를 바랐던 린다. 그런 린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강력할수록 자유는 크리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미제나는 티라나만 가면 자유가 있으리라는 린다에게 그 생각이 얼마나 헛된지, ‘알바니아는 감옥과 유배지에만 자유가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고. 티라나에도 자유는 전혀 없으며 다른 곳도, 그 어디에도 자유는 없다’는 말을 들려주지만 이토록 충격적인 말에도 린다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린다는 ‘모든 건 관점의 문제’라고 말한다. 거주지를 지정당한 채 평생 살아야 하는 린다에게 티라나는 그녀가 꿈꿀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였다. 그런 린다를 지켜보노라면 단 하루도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 어디에도 그 어떤 희망도 걸지 못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절망스럽고 끔찍한 현실인지 깨닫게 된다.


고마워, 프롤레타리아독재. 난 네가 얼마나 선하고 올바르고 완벽한지 알아. 학교에서 우리 머리에 그렇게 주입했으니까. 그렇지만 난 너무 지쳤어. 이런 삶을 더는 못 살겠어. (183쪽)


린다의 이 처연한 삶을 마주하게 된 루디안은 죽어서도 좀처럼 자유를 얻을 수 없는 저 지옥에 갇힌 린다를 상상 속으로 불러낸다. 지옥에 갇힌 에우리디케를 구해내고자 한 오르페우스처럼. 오르페우스와 달리 루디안은 린다, 그녀를 구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린다는 죽은 뒤에야 마침내 티라나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녕 자유일까. 그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묻어버리고 자기들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날조하는 당 관계자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린다는 그 알바니아에서는 끝끝내 자유로울 수 없음을, ‘떠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린다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오직 극작가인 루디안의 상상 속에서, 그러니까 예술의 품안에서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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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3-10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바니아 출신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스탈린
빠였다고 하더라구요 :>

린다의 루디안에 대한 끌림은 카다레 작가가
꼰대라는 사실의 방증이 아닐까 뭐 그런 생
각이 초큼 들었습니다.

잠자냥 2021-03-10 13:17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읽고 알바니아는 물론 엔베르 호자에 대해 많이 찾아봤어요. 요즘 알바니아에서는 호자를 그리워하기도 한다는군요.

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진짜 린다나 미제나나 그 이름다운 여성들이 루디안한테 끌히는 거 너무 ㅋㅋㅋㅋㅋ 아 진짜 그 설정이 못마땅해서 별 하나 뺐습니다. ㅋㅋㅋㅋㅋ (암만 생각해도 작가 판타지)

다락방 2021-03-11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다레 꼰대 입니까? ㅋㅋㅋ 저는 오래전에 <부서진 사월> 하고 그 뭐더라 .. <사고> 읽었는데 하도 오래전이라서 카다레 존재를 잊고 있었네요. 그런데 잠자냥 님의 이 리뷰를 보니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카다레 꼰대..라는 여러분의 댓글을 읽고 나니, 문득 이게 남자 작가들의 고질적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글은 쓰는 자의 몫이고 쓰는 자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든 자유지만, 남자 작가들은 남자 주인공에 자신을 반영해서 로망 실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걸 제일 심하게 느꼈던 게 박범신이었거든요. <은교> 에서 근육질 할아버지 만들어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교복 입은 소녀도 멋지게 생각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 하하하하하.

오늘 올리신 책 리뷰 읽는데 ‘밀란 쿤데라‘의 <농담>도 겹쳐 생각나요. 농담 한 번 잘못했다가 끌려가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아무튼 저는 이것도 장바구니에. 통 읽을 시간은 없지만 말입니다.

잠자냥 2021-03-11 09:42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꼰대까지는 생각못했는데, 너무 아름다운 젊은 여성들이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은 남자 작가를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동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내용은 좀 싫더라고요. 남자 작가들 판타지 같아서 보고 있으면 좀 웃기기도... 근데 또 찰스 부코스키의 화려한 여성 편력 경우를 보면 그게 완전 허황된 이야기 같지는 않고... 그래도 실제로 그런 것과 작품 안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설정을 하는 것은 좀 별개라고 생각돼요. 어우 박범신 은교 줄거리만 봐도 짜증나서 영화도 책도 다 패스한 그 작품.... 휴... ㅋㅋㅋㅋㅋ

<농담> 정말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죠. 공산독재 치하라는 설정이 공통점이네요.

모쪼록 바쁘신 시기 얼른 지나고 마음껏 읽고 쓰는 시간이 어서 돌아오길 바랍니다.

다락방 2021-03-11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좋아요 ☺️ (뜬금)

잠자냥 2021-03-11 09:5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힘드시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봄눈 풍요의 바다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윤상인 외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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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는 나에게 불량식품 같은 작가이다. 굳이 먹지 않아도 되고, 먹어서 좋을 것도 없는데 너무나 맛있어서 자꾸만 손이 가는 그런 불량식품. 먹을 땐 그 맛에 탐닉하느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지만, 먹고 나면 어쩐지 공허한 기분이 드는 그런 불량식품. 그럼에도 다음에 또 먹고야 마는, 아니 기어이 먹을 수밖에 없는 그런 불량식품. <금각사>를 비롯해 <가면의 고백>, <파도 소리> 등 잘 알려진 작품은 물론,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등 덜 유명한 작품까지 국내에 출간된 미시마 유키오 작품은 다 읽었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미시마 유키오의 다른 작품이 출간되기를 늘 바랐다. 이렇게 매혹적인 불량식품이 또 있을까. 그런 중 <봄눈>, 그러니까 ‘풍요의 바다’ 1부에 해당하는 이 작품의 출간 소식은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였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찍이 “‘풍요의 바다’를 읽으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풍요의 바다’ 마지막 권인 <천인오쇠(天人五衰)>를 탈고한 날, 그 유명한 할복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여러 가지로 궁금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풍요의 바다’ 4부작은 <봄눈>을 시작으로 <달리는 말>, <새벽의 사원>, <천인오쇠(天人五衰)>로 이어지는데 저마다 시대 배경과 공간을 달리하는 독립된 이야기로, <봄눈> 말미에 미시마 유키오는 “‘풍요의 바다’는 <하마마쓰 중납언 이야기>를 전거로 삼아 꿈과 전생을 다룬 이야기”라고 쓰고 있다. 대략 이 4부작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메이지 시대 말기인 1910년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1970) 이후인 1975년까지를 그리고 있다. 작가 스스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한 이 대작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봄눈>의 줄거리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다이쇼 시대가 시작된 1912년, 14만평에 이르는 대저택의 주인인 마쓰가에 후작의 외아들 기요아키와 아야쿠라 백작의 딸 사토코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설정이 조금 특이하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사랑이 아니라 기요아키 스스로 금기를 설정하고 그 금기에 제 한 몸을 불사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기요아키의 특이한 성정도 한몫한다. ‘아름다운 용모, 우아함, 우유부단한 성격, 소박함의 결여, 노력의 방기, 몽상가다운 심성, 근사한 외양, 유연한 젊음, 상처받기 쉬운 피부, 꿈꾸는 듯한 긴 속눈썹’ 등등 빼어난 미모로 주위의 선망을 받는 기요아키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자기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는 탐미적 몽상가로,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사토코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사토코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기요아키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인간을 깔보고, 깔볼 뿐 아니라 냉혹하게 취급하는’ 좋지 않은 성향을 지녔는데, 기요아키의 유일한 친구인 혼다는 그의 ‘이러한 종류의 오만함은 열세 살의 기요아키가 자신의 아름다움에 보내는 사람들의 갈채를 알게 된 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길러 온 곰팡이 같은 감정’일 거라고 추측한다. 기요아키의 열세 살 때의 남다른 경험은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무렵 궁중 신년 축하연에서 시동으로 불려나가 황족 여성들의 옷자락 시중을 들던 어린 기요아키는 서른 살 안팎의 아름다운 가스가노미야 비(妃)의 새하얀 목덜미가 도드라진 옆얼굴이 한순간 눈에 들어오자 가벼운 현기증을 일으키며 걸음을 비틀거리는 실수를 한다. 그때 그것이야말로 눈이 멀 듯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동경을 품은 그의 첫 번째 기억이며, 이 금기의 대상에 대한 강렬한 동경의 체험은 <봄눈>에서의 기요아키 전 생애를 지배하게 된다.

기요아키는 손쉽게 사토코를 자기 사람으로 둘 수도 있었다. 집안에서도 백작의 딸인 사토코를 좋게 보고 있었으며 당사자인 사토코 또한 기요아키를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렇게 평범하고 손쉬운 것은 그에게는 아무런 매력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기요아키의 자유분방한 기질은, 자신을 좀먹는 불안을 스스로 증식시키는 성향도 함께 갖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아름다운 꽃보다는 가시투성이의 음침한 꽃씨에 기꺼이 덤벼’들기를 선택한다. ‘기요아키는 어느새 그 씨앗에 물을 주고 싹을 틔워 마침내는 자기 안 가득히 그것이 번성하기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모든 관심을 잃어’버리고 ‘한눈도 팔지 않고 불안을’(43쪽) 키워나간다. 사토코가 천황이 칙허를 내린 황가의 정혼자가 되자(금기가 만들어지자) 기요아키는 사토코를 유혹해 금지된 관계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기요아키의 모습은 저 먼 옛날 <겐지모노가타리>의 겐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금기의 대상에 빠져들기를 멈추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그러기를 기꺼이 선택하고 거기로 자신을 몰아가는 그들.


기요아키에게 환희를 안긴 것은 불가능이라는 관념이었다. 절대적 불가능. 사토코와 자신을 잇는 실이 예리한 날붙이로 끊어버린 거문고의 줄처럼, 솟구치는 단현(斷絃)의 비명을 지르며 칙허라는 빛나는 칼에 베여 버린 것이다. 그가 어린 시절 이후 오래도록 되풀이해 온 우유부단함 속에서 비밀스레 꿈꾸고 남몰래 바라 온 사태는 이런 것이었다. 옷자락일 들며 올려다본 봄의 흰 잔설 같던 비전하의 목덜미, 우뚝 솟은 채 접근을 거부하던 비길 데 없는 그 아름다움은 그가 품은 꿈의 발원지, 그가 지닌 바람의 성취를 똑똑히 예언하고 있었다. 절대적인 불가능성. 이것이야말로 더없이 뒤틀린 자신의 감정에 변함없이 충실해 온 기요아키가 스스로 초래한 사태였다. (235쪽)


스스로 금기를 만들어 그 금기를 범하고 도리를 어기는 기요아키. 그 우미(優美)한 손을 흙, 피, 땀 그 어떤 것으로도 더럽히지 않고 지켜내, 오직 감정만을 위해 쓰인 손을 지닌 기요아키. 무엇에든 유보적이며 그게 뭔지는 몰라도 “뭔가 결정적인 것”을 꿈꾸는 기요아키. ‘모독의 쾌락’을 즐기며 ‘쇠운’이라는 말과 ‘죽음’, 그것도 젊을 때의 죽음을 꿈꾸는 기요아키. 자신에게 단 하나 진실한 것, 방향도 귀결도 없는 오직 ‘감정’만을 위해 살아가는 일에 기꺼이 몸을 던진 기요아키.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상대가 안 되는 불가능한 상대를 고르고, 불가능하기 때문에 끌렸던 기요아키. 그런 불가능한 비극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기요아키를 지켜보며 혼다는 ‘그건 아름다운 일이지. 하지만 창가를 스쳐 지나가는 새 그림자 같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인생이란 희생물을 바치도록 내버려 둬도 되는 걸까.’(268쪽)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기요아키의 모습에서 미시마 유키오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바다의 조수와 기나긴 시간의 이행, 그리고 자신도 머지않아 늙으리라는 생각에 돌연 숨이 막혔다. 노년의 지혜 따위는 이제껏 한 번도 바란 적 없었다. 어떻게 하면 아직 젊을 때 죽을 수 있을까, 그것도 되도록 괴롭지 않게.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 둔 화려한 비단 기모노가 어느 틈에 어두운 바닥으로 흘러 떨어지는 것 같은, 그처럼 우아한 죽음. (162쪽)

 
<봄눈>는 뜻밖에도 기요아키와 혼다가 러일 전쟁 전사자 위령제 사진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금기의 사랑을 나누는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왜 전쟁 사진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 것일까. 게다가 혼다는 훗날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러일 전쟁 사진을 떠올린다. ‘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흙먼지로 뒤덮인 평야의 풍경이’ 겹쳐지는 것이다. 그때 혼다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혼다는 이 ‘풍요의 바다’ 4부작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관찰자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기에 그의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며, <봄눈>을 통해 미시마 유키오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메이지 시대와 함께 웅대한 전쟁의 시대도 끝이 났지. 이젠 옛날이야기가 된 전쟁 이야기는 살아남은 감무와 부사관들의 시골 난롯가의 자랑거리로 전락해 버렸으니까. 이제 젊은이가 전장에 나가 전사하는 일은 많지 않을 거야. 하지만 행위로서는 전쟁이 끝난 대신 이젠 감정의 전쟁을 치르는 시대가 시작됐어. 둔감한 놈들은 보이지 않는 이 전쟁을 전혀 느낄 수 없을 테고,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믿으려 들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이 전쟁은 분명히 시작됐고, 이 전쟁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젊은이들은 틀림없이 싸우기 시작했어. 넌 분명히 그중 하나고. 행위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감정의 전장에서도 역시 젊은이들이 전사해 간다고 생각해. 그게 아마도 널 대표로 하는 우리 시대의 운명이겠지. 그래서 넌 그 새로운 전쟁에서 전사하기로 각오를 굳힌 거야. 그렇지?”(263~264쪽) 행위로서의 전쟁 대신 감정의 전쟁을 치르는 시대. 이런 감정의 전쟁에서 기요아키는 전사하기로 각오한다. 봄눈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말 사랑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아무리 찰나일지라도 그 덧없는 아름다움에 비할 것은 없기에.

혼다는 이 ‘풍요의 바다’를 관통하는 환생에 관한 생각도 의미 있게 밝힌다. “인간의 품는 모든 사상을 미망(迷妄)이라 생각한다면, 전생에서 현생으로 환생한 한 생명의 전생의 미망과 현생의 미망을 각각 식별해 낼 제삼의 견지가 필요합니다. 그 제삼의 견지에서만 환생을 증명할 수 있을 뿐, 다시 태어난 당사자에겐 모든 것이 영원한 수수께끼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제삼의 견지란 아마도 깨달음의 견지일 테니 환생이란 생각은 환생을 초탈한 인간만이 파악할 수 있겠지요. (....) 환생이란 건 우리가 생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과 반대로, 그저 죽음의 측면에서 생을 바라본 것을 표현한 데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었을 뿐인 겁니다.”(304~305쪽) 환생이란 우리가 생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과 반대로 죽음의 측면에서 생을 바라본 것을 표현한 데 지나지 않을 거라는 말이 인상 깊다. 앞으로 2부, 3부, 4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꽤 기대된다. 무엇보다 <봄눈>은 너무나 아름답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읽는 내내 절로 탄복하게 된다. 그 문장을 눈으로 삼키며 그 아름다움에 푹 빠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있다. 책을 덮고 나면 그 아름다움은 봄날의 눈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말아 왠지 공허해지고 허기가 지지만 다음에도 또 그 아름다움에 기꺼이 빠지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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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7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7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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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B라는 여인의 죽음의 원인을 캐는 과정을 통해 자유도 희망도 꿈꿀 수 없는 독재국가 알바니아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불완전하고 한정적인 자유를 얻고자 질병에 걸리기를 바라는 삶이라니, 린다의 삶이 참 처연하다. 알바니아 역사를 좀더 알게해주는 문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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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풍요의 바다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윤상인 외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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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좋아할 수 없는, 좀 혐오감이 드는 작가인데도 작품은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진짜 이 인간 붓에 신이라도 달린 게 아닐까? 어쩌면 이런 표현, 이런 문장을 쓰는지! 좋아하거나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인데도 결국 아름답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풍요의 바다’ 4부작도 다 읽겠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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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6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1-03-06 11:31   좋아요 2 | URL
ㅎㅎ 여러 가지 의미로 참 미친놈입니다.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3-06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금각사>를 읽다가 말았습니다. 책 자체보다 그냥 이 작가 싫은데 글 잘 쓰는걸로 유명하다고 읽어야 하나...그런 마음에 그냥 덮어버렸죠. 자꾸 ‘영숙이‘도 생각나고요...도서관에서 보이면 다시 들고와봐야 겠습니다.

잠자냥 2021-03-06 18:08   좋아요 1 | URL
ㅎㅎㅎ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지요. 그런데 저는 이 작가 책 나오면 다 보긴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