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쟝쟝 님의 그 재미난 페이퍼 ‘어떻게 읽으시나요?’를 읽다 보니 나도 몇 자 끼적이고 싶어졌다(이걸 노린 게야!). 알라딘 MZ 세대의 대표주자인 쟝쟝님은 그 세대에 걸맞게 온갖 신통방통 요상한(?) 신문물을 이용해 읽기와 쓰기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나가고 있다만, 한때 떴다가 이제는 저 우파 정치인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다가 그 우파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에게는 ‘전교조에 세뇌당해 이 나라 말아먹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X세대에 속하는 나는, 책읽기,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책과 이불 그리고 베개였으니, 참으로 세대차이랄까 내 나이듦이 오롯이 느껴지는 쓸쓸한 가을날이다.
그러니까 거의 이런 자세.......
이불과 베개만 있으면 딱이노라
그렇다. 독서를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이불과 적당한 높이의 베개, 그리고 읽을 책이었으니, 이 습관은 저 먼 유년 시절, 책에 빠져 살던 그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것이니, 참으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 무섭지 않은가. 봄가을겨울엔 도톰한 이불을 돌돌 말고서 똑바로 누워서 책을 들고 읽거나, 오른쪽으로 누워서 옆으로 들고 읽거나, 그러다 오른쪽이 베기면 왼쪽으로 누워서 책을 들고 읽는다. 어린 시절부터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은 적은 거의 없다. 책상은 숙제하라고 있는 용도이지, 책은 누워 읽어야 제 맛. 게다가 요즘은 허리 디스크 초기 증세로 정기적 치료를 받은 지 어언 2년여. 때문에 회사에서 앉아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앉는 자세를 피하려고 하다 보니 더 눕게 된다. 아아, 그러나 이 자세의 단점은 누구나 아시듯이 쉽게 잠들어버리기 일쑤라는 것. 요 며칠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어제도 옆으로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 응? 내가 잠깐,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했더니, 다행히 그건 아니고 내가 책 읽을 때 꼭 옆에 붙어서 잠자기를 즐기는 둘째 고영 녀석이 코를 골고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녀석 코고는 소리에 나도 슬금슬금 잠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 잠시 후. “야! 너 또 불 켜놓고 자냐? 그만 불 끄고 자! 눈 부셔 죽겠네! 츄르도 아니고 뭘 그렇게 그걸 허구한 날 들고 자니?”(옮긴이 잠자냥)라는 둘째 고영님의 “냐오야농야나아오오옹에에야냐옹” 잔소리에 눈을 떠보니 역시나 또 잠든 나, 그래서 황급히 냐옹님을 위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야, 불꺼! 불 끄라고!" 늘 이렇게 눈 가리고 자면서 무언의 압박을 주신다.
"빨랑 안 꺼?!"
"아, 진짜 쟤때문에 눈 부셔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밑줄, 그것이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독서가 생활화 되어 있던 터라, 밑줄의 역사도 좀 다양하다. 중학교 시절 읽던 책인 <회색노트>나 <생의 한가운데서> 따위를 오랜만에 펼쳐보니, 파란색 형광펜으로 좍좍 줄을 쳐놨더라. 다시 그 밑줄들을 보니 아, 그 어린 날 나는 이런 문장에 공감했던 것인가?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런데 그때 한참 읽던 시드니 셀던 소설에도 뭐 이상한 구절에 밑줄을 그어놨대? 어처구니없어서 웃음이 터진다. 뭔가 야한 구절에도 쳐놨어...? 어릴 때는 이렇게 밑줄을 쳐놓기도 했는데, 성장한 이후로는 밑줄을 치지 않는다. 나는 몇몇 믿을 만한 친구가 아니면 책을 빌려주는 일은 극히 드문데, 내 책을 빌려간 친구들이 책을 받아들고 하는 말 “너. 이 책 아직 안 읽었어? 너부터 읽고 빌려줘.” 아니, 다 읽었다. 읽었는데도 새 책인 것처럼 깨끗하다. 귀퉁이를 접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겉껍데기도 벗겨놓고 읽는다(을유문학, 열린책들, 문동 세계문학전집처럼 껍데기 있는 책은 껍데기 벗겨서 살포시 잘 보관하고 그 갈색, 노랑색, 검은색 책 그대로 읽는 편). 그래서 중고로 판매할 때도 항상 최상 등급 판정을 받는다.
그런데도 리뷰 쓸 때 어떻게 인용구절을 찾아서 쓰느냐?! 궁금할 텐데, 알라딘 서재 이웃들, 만인의 사랑인 ‘플래그’를 나 또한 이용한다. 공쟝쟝 님의 페이퍼를 읽다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책 옆에 플래그를 붙인다는 점. 나는 플래그를 옆에는 붙이는 일이 드물다(책장 넘기는 데 방해됨). 책 위쪽에 가지런함과는 동떨어진, 마구마구 스타일로 붙여두는데, 그러다 보면 우리 냥님들 털도 같이 붙어있다. 공쟝쟝님도 아시듯, 플래그 쓰는 알라딘 집사들은 다들 이 플래그에(특히 재활용 시) 고영희님들 털이 송송 붙어 있는 거 뭔지 아시리라.
암튼 나도 플래그는 (고영들 털 때문에) 접착력이 떨어질 지경이 될 때까지 재활용하는 편인데, 그것도 syo님처럼 냉장고에 좍- 붙여놓는 그런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멀고 읽은 책에서 인용 구절이나 메모해 둘 만한 구절을 옮기고 나면 하나씩 다 떼어서 다음에 읽을 책 맨 앞(표지 안쪽)에 붙여둔다. 그런데 이렇게 책 맨 앞에 붙여둔 플래그가 종종 수거를 게을리 해 그대로 붙은 채 책과 함께 책장에 꽂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플래그가 어느덧 점차 사라진다. 한번은 알라딘에 책을 팔러갔는데 맨 앞 안쪽에 이렇게 붙어 있는 플래그 뭉치를 점원이 발견하고는 “이거 처리해 드릴까요?” 하고는 내가 “네, 저 주세요.” 대답하기 전에 휴지통으로 버려버려서 굉장히 당혹했던 적이 있다. 아, 아까워라.... 내 플래그 뭉텅이!
그런데 내가 밑줄 긋는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계기는 돌아보니 이렇더라. 우리 집은 형제가 많은데(딸 넷 중 내가 둘째), 형제들끼리 책 하나 사면 돌려 읽다 보니, 내가 밑줄 그은 걸 다른 형제가 볼 수도 있는 거라, 근데 그게 뭔가 민망했다. 같은 형제라도 왠지 나의 취향과 감성을 알려주기 싫은 그런 거? 결정적으로 내 바로 아래 동생(지금은 드라마 작가이십니다)이 그 어린 날 막 밑줄 긋고 자기 감상 써놓은 거 볼 때마다 오그라들어서(미안하다 동생아;) 아, 난 이러지 말아야겠다 하고 정신을 차린 것 같다. 그 이후로 책에 흔적을 되도록 남기지 않는다.
갱장히 단순한 나의 도서 관련 앱.... ㅋㅋㅋㅋㅋ
어릴 때부터 독후감이 특기(?)였어라
MZ세대 공쟝쟝 님이 각종 신문물을 이용해 밑줄 그은 내용을 정리, 체계화, 구조화해서 리뷰도 쓰고 자기만의 아카이브도 만드는 데 비해, 나는 신문물에 둔감하기도 하고 크게 기기 욕심도 없는 편이다. 스마트폰도 굉장히 늦게 개통했고 아이폰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카메라와 SNS 용도일 뿐. 남들 다 듣는 그 흔한 팟캐스트도 무청취, 남들 다 본다는 그 흔한 유튜브도 보지 않는다(사람이 떠드는 소리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텔레비전 없이 산 지 거의 15년째). 그러니 공쟝쟝님처럼 뭔 앱을 써서 텍스트를 구조화하는 건 거의 해본 적이 없고 북플의 밑줄 긋기(?) 사진찍기(?) 이런 것도 써본 적이 없다. 그런 기능 있는지 쟝쟝님 페이퍼 보고 깨우침. 아무튼 그래도 착실히 독후감을 남기고 기록을 하기는 했는데, 책 읽고 독후감/리뷰 남기는 것은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는 편이다. 쟝쟝님 왈 “유명한 알라딘 적립금 플렉서 잠O냥”인 나는 어릴 때도 독후감 쓰고 상 받는 일이 많았는데(알라딘 서재활동 하는 분들 대부분이 그럴 것 같다), 중학교 때였나? 텔레비전 보다가 비평(판)하는 글을 모일보 독자투고란에 보냈다가 그게 뽑혀서 우편환으로 5만원인가 받은 게 내 생애 최초의 원고료였다. 물론 그 돈으로 다 책 샀다. 그때부터 적립금 플렉서의 기질이?
독후감 때문에 한 가지 재미난(?) 일화는.... 지금 애인을 만나는 데 이 독후감도 얼마쯤 역할을 한 것 같다(로맨스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마련했습니다. 책 읽기랑 무슨 상관이야, 하는 분들은 다음 단락으로 건너뛰십시오). 지금 애인은 테니스장에서 테니스 치다가 만났다는 걸 다부장님처럼 아는 분들은 다 안다. 그 아주 초반에 그 사람하고 랠리(공주고받기)를 하고 나는 짐을 싸서 가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덕분에 너무 재밌게 쳤다.”면서 커피를 한 잔 사드리고 싶다는 게 아닌가. 난 테니스 센터에 있는 자판기나 매점에서 캔커피 사주려는 거겠지 싶어서(같이 운동하고 서로 음료수 사주는 일은 다른 사람들도 흔했다) 흔쾌히 좋다고 하고 매점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 사람이 갑자기 멈칫거리면서 “아, 아니, 제가 잘 가는 괜찮은 커피전문점이 있어서 거기 가실래요? 여기서 멀지 않은데.” 한다. 나도 이 사람이 싫었다면 바로 이때, “아니 괜찮아요, 매점에서 사주세요,” 했을 텐데.... 그게 아니니까 또 흔쾌히 “네, 그래요.”하고 따라나섰다. 그렇게 좀 같이 걸어서 도착한 커피숍. 커피 주문하고 앉았는데 테니스 이야기 좀 하다가 이 사람이 “궁금해서 그러는데 전공 뭐하셨어요?” 하고 묻는다. 본격적 사적 질문. 국문학 전공했다니까 이 사람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자기도 책 좋아한다면서(아니, 난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는데;) 국문학과 가고 싶었다고(나중에 안 가길 잘했다고 내가 칭찬해줬다) 이야길 한다. 그러면서 헤세의 <지와 사랑>을 어릴 때 참 좋아했다고(속으로 <데미안>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 되니까 좀 헤세는 못 읽겠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나는 “아, 저는 <지와 사랑>으로 중학교 때 독후감 쓰고 상 받으러 연단 위에 올라간 적 있어요. 교지에도 실렸는데.” 하고(아 정말 무슨 이 자뻑질이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했더니 이 사람은 나의 자뻑은 잘 무시해주고는 “와, <지와 사랑>” 이러면서 둘 다 <지와 사랑>을 읽고 감명 받았다는 ‘공통점’에 방점을 두고는 기뻐하는 게 아닌가.
아무튼 그 사람은 그 이후로 테니스장에서 책 이야기 나눌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면서 기뻐하고는 책 이야길 종종했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몇 권의 책을 선물하게 되었고, 그 선물한 책들의 면면을 보고 이 사람은 나를 좀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훗날 고백했다. 그때 당시 선물한 책들 중 그 사람을 그냥 내게 반하게 만든 책(나중에 털어놓음)은 E.M. 포스터, <전망 좋은 방>,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하워드 진, <역사의 힘>이었다. 그걸 선물하면서 내가 이 사람들(수잔 손택, 하워드 진)처럼 글 쓰고 공부하고 행동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고, 당신이 이런 사랑(잘 꾸며진 응접실에 가두기보다 좋은 ‘전망’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을 하길 바란다고(나는 그때 사귀는 사람 있었고, 이 사람은 전 사람과 굉장히 나쁘게 헤어지고 난 후였다) 말했다는데 그 말에 진심 반했다고. 아무튼 님들아, 독후감도 열심히 쓰고 책도 열심히 읽다 보면 애인도 생깁니다. 응?
아, 그러니까 기록은 어떻게 하느냐고?
20대 이후로 쭉 홈페이지, 블로그를 운영했다. 20대 때는 내가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꽤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는데, 사실 그때는 내가 문학책을 지금처럼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관련한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니(아니 그보다는 국문학 한다는 그 치기어린 자들의 치기에 치이다 보니) 문학이 또 너무 오글거리고 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20대에는 지금의 쟝쟝님처럼 사회과학/인문과학책 위주로 읽었고, 그때 그 시절 직업이 카피라이터였던터라 그와 관련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내가 쓴 글들을 차곡차곡 모으기도 했고, 그 글을 보고 이런저런 지면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와 몇몇 잡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광고와 관련된 칼럼을 프리챌(아, 이게 어느 고릿적 사이트냐?)에 연재하면서 구독자 수가 많아졌는데, 그걸 보고 모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었다. 근데 또 이때 자뻑이 발동해서 “아직은 제가 그럴만한 수준이 아니니, 좀 더 좋은 글을 쓸 실력이 갖추어졌을 때 책을 출간”하겠다고 답장을 써 보낸 것이 아닌가! 그 출판사에서는 무척 아쉬워했는데...... 몇 년 뒤 나도 너무나 아쉬워서 땅을 치고 후회했다. 내가 미쳤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넙죽 고맙습니다! 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물건너감.
아무튼 그렇게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내가 도메인 사서 운영하는 블로그가 따로 있다)로 갈아타고 난 후로도 리뷰 쓰고 기록하는 일은 블로그에 꼬박꼬박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데 20대 때와 달리 점점 은둔자 기질이 발동해서 내 블로그는 검색도 막고 노출도 안 되고 소수의 몇몇에게만 알려주고 운영해왔는데, 그걸 보고 안타까워하던 후배가 어느 날은 “언니 글, 네이버 같은 데 올리면 이미 책 나오고도 남았을 텐데... 좀 해봐요.”한다. 근데 또 내 성격상 그게 안 돼서; 못하겠어서 말았다. 네이버에 가끔 책 리뷰 올리기도 하는데(그건 주로 문학동네 리뷰대회용), 여전히 뭔가 좀 어색하다. 아무튼 내 아카이브는 무식하게 책 펼치고 일일이 타자 쳐서 기록해 놓은 내 블로그라능. ‘내가 어느 날, 예고 없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 오거든 내 블로그도 함께 삭제해주세요… 부디… 열어보지마…’(공쟝쟝, ‘어떻게 읽으시나요,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102줄)
그러다가 어느 날 발견한 알라딘
난 다부장님처럼 알라딘 빅유저도 파워서재 운영자도 아니다. 전에는 예스24와 교보를 더 이용했었다. 서재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 알라딘에서 산 건 책보다 음반이 더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올린 글에서 몇 십 원씩 쌓이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내가 알라딘에 처음 글 올린 건 2008년 4월 11일로 수잔 손택,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과 데루오카 이츠코, <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 -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가> 이 두 책의 리뷰였다. 아니, 이 좋은 책을 사람들이 이렇게 모르다니! 하는 마음에 내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갖다 놓고는 잊고 있었는데, 알라딘에 앨범 사러 들어왔다가 계정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돈이 들어와 있어서 이게 뭐야? 하고 보니, 이 글들에서 몇 백 원 씩 쌓이고 쌓인 게 아닌가? 그때도 난 이 시스템이 이해가 잘 안됐는데, 나중에 보니 이것이 그 유명한 Thanks to 였다는! 신세계였다. 아, 내 글을 읽고 누가 책을 샀어! 기분이 꽤 괜찮았다. 그러다가 또 잊고 지내다가 2015년 11월부터 슬슬 그동안 내 블로그에 올렸던 리뷰들을 알라딘 서재에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랬더니 덜커덕 2016년 1월에 올린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의 리뷰가 이달의 당선작에 뽑히면서 돈 맛(적립금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적립금의 노예가 되어 ㅋㅋㅋ 리뷰와 페이퍼를 줄창(?) 써대기 시작했고, 알라딘에서 북플 시스템을 내놓으면서 이 개미지옥을 더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알라딘에 정착한 이후로 책 사는 양이 확실히 엄청 더 많이 늘었다. 서른에 집에서 독립하고(엄마 집도 같은 서울이라 서울에서 서울로 독립한 걸 웬만한 사람들은 이해 못한다....) 원룸 전전하면서(이젠 투룸이야! 주방 겸 코딱지만한 거실도 있어!) 책을 안 사려고 그렇게 노력했건만 늘어나는 양을 감당할 수 없고. 저 많은 책을 싸들고 이사할 생각하면 평생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엄마집의 내 방이 엄마보다 가끔 그립긴 하다. 엄마 미안...;
책 읽기 좋은 시간
이렇게 북플과 알라딘의 노예가 되어 이제는 내 블로그보다 여기에 먼저 글 올리고 블로그로 옮기는 주객전도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바. 알라딘 100자평은 순전히 내 기록용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 읽은 책은 무조건 100자평을 남기는 편이고, 그 가운데 사람들에게 “이 책 한 번 읽어 봐!” 하고 싶은 책은 따로 시간을 들여 리뷰를 남겨두는 편이다. 리뷰를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고 넘어가게 되는 책도 있는데, 확실히 그런 책은 나중에 보면 기억이 더 희미하다.
누워서 책 읽기 좋아하는 게으른 잠자냥은 오늘밤에도 누워서 책 읽다 잠들고, 그러다 고영님 잔소리에 화들짝 깨어날 텐데, 그러다 보니 내가 책 읽기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주말이나 휴일 아침, 방 안에 햇살이 가득 들어올 때이다. 그때는 잠을 푹 잔 뒤라 졸지도 않고, 주말 아침이라 조용하고 여유롭고 냥님들도 숙면 취하느라 책 읽기를 방해하지 않는, 독서를 위한 가장 좋은 시간이다. 이런 때 커피 한잔 마시고 다시 누워서 책 읽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아, 이틀만 참으면 다시 그 시간이 온다!
책 읽다 자는 나 따라하는 고영님1
책 읽다 자는 나 따라하는 고영님2
이분은 아주 그냥 순차적으로 날 따라하면서 조롱하신다?!
"저 닝겐, 츄르도 아닌 것을 왜 맨날 들고 있다가 잠드는 것인가?"
"오늘 밤에도 읽다 잠들면 이걸로 때려줄테야!"
아무튼 알라딘과 책과 고양이라면 행복한 삶~
그나저나, 신문물로 점철되어 책 읽기 ‘노하우’에 중점을 둔 공쟝쟝님의 페이퍼에 비하면 온통 추억과 갬성팔이로 점철된 이 페이퍼는 저물어가는 X세대의 쓸쓸한 그 무엇이 느껴지는 결정체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