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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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년은 어려서부터 뚱뚱했다. 그에게 살은 유년시절의 아픔이기도 하고 일상이기도 할 것이다.(나도 이런 사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 뚱뚱해봤던 그녀는, 오히려 뚱뚱한 사람을 경멸해 마지 않는다. 그리고 반성한다. 철저히!)

그는 어떤 일요일에 전화를 받고 갑자기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정말 急다이어트를!) 그의 어머니는 묻는다. 갑자기 누구에게 잘 보일 일이 있느냐고. 그렇다. 그는 그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살을 빼는 것이다. (어떤 애증의 관계인 것 같은데, 사랑이 더 큰지, 증오가 더 큰지 난 잘 모르겠다. 막연히 추측할 뿐.)

살을 단기간에 빼야하기 때문에, 탄수화물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의 유전자가 우수한 유전자라는 걸 확인한다. 다만 현대에는 맞지 않을 뿐. 계속 지방을 쌓아두는 몸은 현대에 적합하지 않다.

그는 몇 주일 동안, 꽤 많은 살을 뺀다. 살을 빼고 나니, 그의 인생은 꽤 달라진 것 같다. 이제 주변 사람들이 그를 더 인정해주고, 그간 '뚱보'로서의 삶에 약간의  보상을 받는다. 비너스 형상이 빌렌도르프에서 보띠첼리로 변화해 왔듯이.

그러나 끝끝내 아름다움은 그를 멸시하고 만다. 너는 이제껏 뚱보로 살아왔잖아, 살 좀 뺐다고 뭐가 달라지니, 같이. 그는 탄수화물이 필요하다는 뇌를 진정시키느라 몇 주간 고생했다. 그리고 이제 그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을 죽어버린다.

그 '누군가'는 그를 항상 뚱보로 기억할 것이다. 한번도 날씬한 적이 없는.

초상집에서 그는 국밥을 미친 듯이 먹는다. 몇 주 동안 섭취하지 않는 밥알, 즉 탄수화물이 너무 달게만 느껴진다. 그는 그 자리에서 미친듯이 두 그릇을 해치운다. 그 처절함이란.

 

은희경의 글은 정말 재밌다. 유머러스하다. 그런데 뚱보들의 현실을 기술하는 건 재밌지만, 너무 슬프다. 코미디는 비극에서 시작한다고 그랬던가. 뚱뚱한 사람들의 현실은 어쩌면 슬프지만 또 웃긴건지도 모르겠다.

" 막 닫히려는 만원 엘리베이터를 향해 헐레벌떡 달려가 한쪽 발을 들이밀려는 순간 그 안에서 누군가 닫힘버튼을 눌러버리는 모욕을 더이상 겪지 않아도 되었다. 신발끈을 맬 때마다 변기에 앉았을 때처럼 얼굴이 빨개지며 또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방귀가 나와버릴까봐 걱정하는 일에서도 해방이었다. 뚱뚱한 사람은 인상이 비슷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간혹 엄청나게 못생기고 지저분한 뚱보에게 내가 주문한 음식을 날라다주는 식당 아줌마를 큰 소리로 불러 세울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구겨진 자존심을 내색하지 않아야하는 고통도 없어지게 되었다."  (p. 86)

현실은 이렇듯 잔인하다. 뚱뚱한 사람들에게 맞는 옷이 없는 것 처럼. 작은 사람은 언제나 바지를 잘라야하는 추가비용이 더 붙는 것 처럼.(작은 사람들의 권리도 인정해 줬으면ㅠㅠ)

 

ps. 책을 안 읽은 사람에게 그 '누군가'를 밝히는 것은 잔인한 짓인 걸 알기에 밝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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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네 고만물상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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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소설은 정말 가볍다.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언니는 좀 비하하는 편이다. 너무 일본소설만 읽지 말라고.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이 책은 소설 '공중그네'에 딸려온 부록으로,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 없다. 그냥 말 그대로 잔잔한 일상을 그린 듯. 읽을 때는 간간히 웃음이 나왔는데, 읽고 나서는 또 무슨 내용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이건 일본소설의 단점이랄까.)

배경은 제목대로 나카노 아저씨의 만물상인데, 오래된 물건을 보듬는 만물상처럼 작가도 세련되진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러하듯이.

인물들은 전혀 새련되고 튀는 사람들이 아니다. 약간 코믹하고 모순되며, 그냥 내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와 전혀 다를 게 없는. 또 생계를 위해서 일하며 살아가는.

소설은 '특별'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만물상의 주인인 나카노와 그의 누이, 그리고 점원 히토미와 마사요가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듯이. 별로 상관관계가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만물상에 모여서 추억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물상에는 오래된 물건들이지만 쓸모없는 것이 없다. 난로든 문진이든, 고테츠든 오래되어 오히려 편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들은, 혹은 사람들은 고물상에 있는 물건들과 닮은 구석이 있다. 시간을 간직하고 포근함을 주는 물건. 확실히 사람도 시간을 오래 간직한 사람이 더 성숙하고 편하다는 느낌이 있다. (물론 좋은 추억이다. 만물상에 오는 물건들은 좋은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오래 보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소설 특유의 건조한 느낌은 있지만, 일상이 지겨울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간간히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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