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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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7층]을 읽고 다시 선택한 책. 손가락 살점을 물어 뜯어 도망치듯 아빠에게 갔을 때 냉담했던 아주 쿨~ 한 반응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북유럽이라도 부녀관계가 이렇게 이성적일 수가 있단 말이냐! 가족이 너무 끈끈한 나라에서 살다보니 여기가 이상한 건가 했던 반응은 의외로 타당한 거 였다.


아무리 독립을 주장하는 나라들도 급한 상황에서는 손주도 기꺼이 봐주고 독립한 자식 집에 쳐들어(!)가서 빨래도 척척, 요리도 후루룩 해주는 게 꽤 만연한 정서였던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우리나라 엄마들이 자식한테 많은 편의를 제공하는 게 당연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작가 오사 게레반의 그림은 여전히 투박하다. 글 또한 너무 솔직해서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오사 게레반의 솔직함은 자신도 어느 정도 구원한 것 같고 독자의 지지도 많이 받는 것 같다. 일단 나는 지지! SNS에 자신의 순간적인 우울증을 드러내는 내 감정 스펀지들과는 다른 솔직함이다.

[그들은 등뒤에서는~]은 오사 자신이 어린 시절 '원가족'(이런 표현이 맞다면)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힘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굳이 거창하게 심리학 이야기를 할 것도 없지만 경험으로 어린 시절에 가족과의 애착 관계나 충분히 사랑받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안다. 모두가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별 큰 사고 없이 자라면 다행인데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행한 가정이 워낙 많기에 이런 가정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뤄져야 될 것이다. 


'정서적 방치'


생각보다 이런 경우 많다. 가정 폭력이 꼭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닌 언어 폭력도 포함하듯 이 또한 학대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인터넷 상에 이런 글, 생각보다 많이 올라온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래도 너희 부몬데..." 같은 인정적(?) 비전문가적 조언도 아직 많다. 이런 종류의 학대가 물리적인 폭력이나 굶기는 것과 같이 생명을 당장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데도 오래 걸리고 막상 가해자 쪽인 부모는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드러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물론 생명을 위협하는 학대도 나쁘지만 이런 정서적인 학대, 방치도 나쁘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누구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니.


오사는 운 나쁘게도 도리는 다하지만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주지 않는 부모를 만나서 그들의 등 뒤의 냄새를 맡고 자랐다. 인정과 애정을 바랐던 오사는 뭔가를 잘 한다는 칭찬에 꽂혀 모든 걸 스스로 깨치고, 질문하지 않았다. 그것이 상식이었던 오사는 친구네 집에가서 큰 충격을 받는다. 숲 속에서 커다란 뱀을 만나서 둘이 도망치다가 엄마를 만나서 마음껏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나서 오사의 상식은 깨진다. 뭐 뱀을 만난게 대수라고! 하지만 친구의 엄마는 친구를 끌어안고 달래면서 뱀이 누구보다 더 무서웠을꺼야~ 라며 간질간질한 말까지 해준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며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세요~'같은 말에 그럼 나는 못하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어린 오사나 아동법이 점점 강화되면서 자기보다 학대당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오사는 관심을 달라고 호소도 해보고 울부짖어도 보고 난리 부르스를 쳐봐도 오히려 부모는 겁을 집어 먹고 거리를 둘 뿐 더 가까워지지 않는다.


오사는 결국, 우여곡절 끝에 부모에게서 독립을 하고 아주 약간 마음의 안정을 찾는 듯 했다. 굶주린 영혼은 역시 어떻게 해도 잘 채워지지 않는다. 오사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방탕하게 섹스를 한다. 상대방의 영혼없는 '사랑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우연히 뱉은 '사랑해'는 단비와 같아서 오사는 그 말에 집착을 하고 '피곤한' 여자가 되어간다. 왜 사랑해? 빨리 또 말해줘, 어서! (전 작품 [7층]에 나와서 손가락 살점을 물어뜯긴 일이 단 한 페이지로 나온다.)


오사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절대 먼저 오지 않는 부모에게 전화를 하고, 병원도 주기적으로 가보고, 술과 클럽을 모두 끊고 끝내 끔찍한 결과를 맞았던 스스로를 고립시켜보는 실험까지... 


모든 시도의 결과로 자신이 얼마나 특이하고 슬픈 환경에서 성장했는지를 확인했을 뿐이었다.

 

오사는 현재, 다행히 남편을 좋은 사람을 만나 귀여운 아이도 둘을 낳고 열심히 사랑을 주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어릴 때의 상처는 깊어질 뿐이었다. 사랑스러운 손주에게 여전히 관심조차 주지 않는 부모, 게다가 아이들의 방을 꾸미면서 자신이 쓰던 어린 아이 침대에 온통 손톱 긁은 자국으로 지저분했던 걸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 등이 갑자기 그녀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돼!"라는 각성이 든 그녀는 또 상담센터로 전화를 한다. 지금은 조금 흔해진 '정서적 방치'라는 진단을 내려준 상담사를 믿고 오사는 열심히 치료를 하고 스스로 상처받은 기억의 시점으로 가서 어린 오사들을 안고 데리고 가서 휴식을 취한다. 


물론 그 과정은 아주 힘들었지만 부모가 자고 있었을 때 몰래 그들의 등 뒤로 가서 좋은 향기를 맡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도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녀로서는 아주 아름다운 발전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들은 전혀 기억이 없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부모 자격증'이라도 발급해야 하는 건 아닐까? 모든 상처받을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은 '제니'다. 쓰다가 작가의 자전적인 얘기라고 해서 그런지 오사라고 해버렸다..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오늘 학교에서 티나가 나한테 침을 뱉었어.. 여기, 내 팔에다가."
"바보같은 소리 하지마. 그랬을 리 없어."
"정말이라니까. 선생님한테도 말했는데 내 얘길 안 들어주셨어."
"어머, 제니! 그런 거 가지고 선생님을 귀찮게 하면 어떡하니!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이 많으실텐데!"
"....?"
"그 애가 정말 너한테 침을 뱉었다고?"

갑자기 내가 진짜 그런 일을 당했던가 의심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설사 그렇다고 치자. 네가 먼제 뭔가 잘못했으니까 그 애가 그랬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티나가 나한테 침을 뱉은 게 사실이더라도 어쨌든 잘못은 내게 있다는 얘기였다.(37-38p)

나는 저주스러울 만큼이나 늘 다른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했다.
한밤중에 깨어나면 나는 엄마 아빠가 깊이 잠들었을 걸 알고 아주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나와...
엄마 아빠의 침대로 살금살금 기어들어가서는 그 사이에 누웠다.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 친밀감의 욕구를 채웠다. 에너지를 충전하듯이.
몇 해 동안이나 나는 거의 매일 밤 이런 행동을 반복했다.
엄마 아빠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74-75p)

하지만 나에게 "사랑해"라고 말한 사람은 여태껏 아무도 없었다. 그가 처음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
이 말은 내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나의 세계가 통째로 뒤집어 엎어지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기 위해 나는 20년이란 세월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야 드디어 만났다. 날 사랑해 줄 사람...
(중략)
의지할 데 하나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난 그저 매달리기만 햇다. 매달려도 잘 안 되자..
... 나는 그 주문을 외워줄 새로운 남자를 찾아 필사적으로 해매 다니기 시작했다.
이 남자 저남자 닥치는 대로 잠자리를 같이 했다.(123-127p)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과 나란히 내 안에서 무언가가 점점 더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학대 받는 어린 아이가 관심을 갈구하며 내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매일매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가 내가 갖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아물었던 상처가 또다시 벌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 안에서 울부짖는 아이가 차츰 나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나는 끝내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163-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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