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루어 Allure 2015.8
얼루어 편집부 엮음 / 두산매거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속이 붸붸 꼬여서 나 스스로도 참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지만 툴툴거리기 전에 칭찬을 한다면.. 수향에서 나온 서울의 초는 향기가 매우 좋다. 풀향기가 향긋하면서도 진한 향이 맘에 쏙 든다. 대만족!


부록을 위주로 잡지를 사는 사람이라 부록은 중요하다.


좋은 비누나 향초는 쓸 때는 기분이 좋지만 왠지 스스로 사기는 좀 그렇고 선물받으면 기분이 훨훨 날아가는 아이템이라 딸기 우유빛의 작은 향초를 받았을 땐 기분이 야호-! 했다. 물론 스스로 있는 시간을 아주 소중히 해서 초를 몹는 사람도 있지만.. 난 스스로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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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루어는 화장품을 위주로 다루는 여성지. 바자나 보그가 조금 어깨에 힘이 빠졌나 했더니 나름 친근했던 요 잡지에는 어느새 힘이 팍 들어가있다. 그도 그럴 것이 K뷰티가 급 승승장구하면서 갑자기 이들의 프라이드에도 힘을 팍 실어주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은 일이다. 10년 전만해도 확실히 불란서제나 미제 화장품과 국내 화장품과의 차이는 어마어마 했으므로.


전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면서 읽었던 얼루어에는 K뷰티에 대한 냉정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화장품 질은 괜찮고 비비크림, 에어쿠션을 위시한 눈길을 끌만한 아이템은 있지만 막상 제품력은 덜하다는 것. 뮤즈나 신기한 아이템 개발하는 것 보다는 스테디 셀러가 될 만한 제품력과 브랜드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 박수칠 때도 겸손한 것을 보니 뷰티 시장의 미래는 밝..겠지? K 뷰티에 종사하는 자랑스러운 내 친구가 주말까지 불려가서 일하는 것을 보면 부디 밝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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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8월호로 돌아와서, 나는 '서울에서 여고를 나온' 말 그대로 '서울여자'다. 실제로 이들이 정의하는 '서울 여자'답게 화장도 곧잘 한다. 주위 사람들은 제발 정도를 지키라고는 하지만. 


당연 에어쿠션도 있고, 진동 파운데이션이니 버블 클렌져니 도화살 화장법이니 윤광이니 물광이니 피부를 모찌모찌하게 표현하는 것이니.. 하는 왠만한 뷰티 용어나 제품을 거의 알고 남들하는 거 열심히 따라 써보았다. 국내 최대의 화장품 커뮤니티에는 당연히 가입되어 있는 상태.


피부는 밝은 편이고 결도 좋은 편이다. 왜? 나는 피부에 시간과 돈을 많이 쓰니까. 실제로 아픈 시술도 받아보았고 직구는 기본이다. 서울에 인구가 몇인데 이 정도면 그들이 정의하는 '서울 여자'에 손쉽게 들어간다.


게다가 나는 남들 꾸미는 정도를 성의라고 판단하는 영혼의 얄팍함, 혹은 속물 근성도 갖고 있어 화장품 회사를 먹여살리는 콘크리트 화장품 족이기도 하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화장품 광이지만.. 왠지 화장품 브랜드 간부(?)들의 '서울여자론'을 읽고 있으니 처음에는 코가 마구 높아지지만 끝에는 발끈하게 된다.


톰 포드의 교육 디렉터인 패트릭 아이슐러는 "서울 여자들은 유독 자신의 얼굴에 관심이 많아요. 드러내야 할 부분과 감춰야할 부분을 영리하게 간파하고 있죠. 자신의 얼굴 구조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의미예요. (중략)서울 여자가 얼마나 세련된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중략) --컬러의 립스틱은 서울 여자들의 얼굴을 구조학적으로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죠.'


그리고 옆 페이지에는 톰 포드의 셰이드 앤 일루미네이터 광고가 있겠습니다.


슈에무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이렇게 말했다. " 1990년대에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고 그 후 한국 여성과 한국 셀러브리티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어요. 한국 여성에 관한 제 인상은 그들이 '아름다움'에 관해 끝없는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거예요. 미묘한 부분까지 매우 세련된 메이크업을 추구해요. 몸매를 가꾸는 것에서부터 헤어 스타일, 메이크업까지, 종합적인 미를 추구하죠. 그만큼 아름다움에 민감해요. 촉촉한 피부에 매트한 입술 등 얼굴 위에서 질감을 과감하게 믹스매치하는 능력도 뛰어나고요. 가장 큰 특징이 아름다운 광 피부. 이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죠. 건강하면서도 자연스러움 두툼한 눈썹 그리고 본연의 입술에 생기간 약간 더해주는 코랄 핑크 립까지. 아무것도 안 바른 것 같지만 완벽한 아름다움. 이것이 바로 서울 여자들의 뷰티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완벽함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가 아닐까요? 슈에무라에서도 내년에 한국을 겨냥한 빅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서울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있는 제품이라면 전 세계 여성을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내년에 한국을 겨냥한 빅 프로젝트를 꾸미고 있는 슈에무라는 <강남핑크>라는 립스틱을 출시했다. 


맥의 글로벌 부사장인 고든 에스피넷의 서울여자 평도 들어보자. 


"서울 여자를 떠올리면 강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어도 잘 꾸민 것처럼 보이는 세련된 여자가 생각납니다. 한마디로 공들이지 않은 듯 시크한 룩이죠. 아름다운 피부와 밝은 컬러로 물들인 입술, 눈에는 하이라이트가 가장 중요한 특징이에요. 이 모든 걸 망라하는 것은 바로 '글로우'이고요. (중략) 색조 화장 전 12단계나 스킨 케어를 한다는 사실은 분명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전 정말이지,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이런 노력을 기울인다는 사실이 좋아요. 저에게 서울이 너무도 매력적인 이유죠. 특히 피부에 공을 들이는데, 이 모든 것이 어려 보이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되어요. 덕분에 서울 여자는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죠. 맥은 이미 한국에서 영감을 받은 수많은 컬렉션을 내놓았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올 어바웃 오렌지 컬렉션이에요. 올가을에도 서울 여자의 취향을 반영한 크림쉰 라인의 출시를 앞두고 있어요. 미묘한 색감의 차이, 질감의 차이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는 서울 여자는 분명 가장 훌륭한 뷰티 인사이더예요."


어반 디케이의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웬디 좀니르는 이렇게 평했다. 


"서울 여자 하면 개성 넘치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요. 또 한편으로는 메이크업을 즐기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뷰티 정키이기도 하죠. 유행에 민감하고 늘 새로운 메이크업, 새로운 제품에 열광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스럽고 대범하며 재미있는 메이크업을 추구하는 어반 디케이의 브랜드 철학과 서울 여자는 서로 닮은 부분이 많아요. (중략) 발칙한 보라색 입술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은 서울 여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에도 피부는 언제나 완벽하게 촉촉하고 탄탄하게 유지해요. 정교하고 단아한 서울 여자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중략) 대담하면서도 잘 정돈된 룩을 고집하는 서울 여자는 저에게도 분명 매력적인 존재예요. 머지 않아 서울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을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아직 서울에서 영감받은 제품은 없지만 약간 영감받을 생각이 있는 브랜드의 수석 디렉터 역시 서울 여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쟁쟁한 화장품 그룹들로, 물론 제품력도 뛰어나긴 하지만 마케팅에도 엄청 능한 그들이, 특히 엄청난 위치에 있는 간부들이 이렇게 '서울 여자'론을 펼치는데 당연히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난 약간 화가 났다. 얄밉기도 하고. 그리고 한 편으론.. 이들이 마케팅을 잘 하는 이유를 알겠다. 말이 진짜 청산유수야. 감탄스럽다. 서울 사는 나에게 '서울 여자'의 메이크업에 대한 평을 하라면 저렇게 말을 줄줄 할 수 있을까.


저들의 '서울 여자' 예찬론을 읽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는 발 밑에서 미친 듯이 물장구를 치지만 그건 사실 미운 오리 새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들이 정의하는 '서울 여자'가 되려면 앞으로도 노력을 멈출 수가 없다. 참 서울여자 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다 틀리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화가나는 이유는 분명, 지금도 '서울 여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고 나는 앞으로도 그들이 말하는 '서울 여자'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걸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당히 '서울 여자'라는 직함을 얻으려면 노력 뿐만 아니라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그들의 '호갱님'인 걸 내 스스로도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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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여자들이 예쁘다는 소문, 겨우 일주일 다녀온 파리 여행이라도 소문이 가짜가 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다. 원체 이목구비가 이쁘기도 하지만 관리된 날씬한 몸매(혹자는 전형적인 파리 사람의 몸은 '신경질적으로 말라야' 된다고 표현한 것도 있는데!!), 메이크업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는 공들여 한 화장, 꼿꼿한 자세를 보고 있자니 예쁘다고 부러워하는 마음도 한편, 뭔가 피곤이 몰려 오기도 했다. 아, 얘들도 진짜 힘들게 사는 구만.


[프랑스 여자처럼]이라는 책도 있고 프랑스 여자들을 예찬하는 그런 류의 책은 무지 않지만(읽지 않았고 읽지 않을 생각), 패션지에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파리지앵 여자들은 사실 엄청나게 부럽지는 않았다. 결국 그렇게 되려면 시간과 돈, 노력을 엄청나게 투자해야하므로. 


어떤 여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온전히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화장하고 꾸민다고.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꾸미는 것도 실력으로 평가되는 게 직장이고, 일자리를 얻으려면 외모도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 게 현실이므로. 클레오 파트라나 주술사들이 요란한 화장으로 자신의 힘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화장이란 현대사회에서는 생존과 결부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서울 여자처럼 피부는 촉촉하게, 새련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색을 쓰는 화장은 그것만으로 그 여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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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서울이란 도시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얼루어답게 '서울 단상'이란 사진 기사는 멋졌다. 통계자료도 재밌고 유익했다. 서울의 평균 연령은 39.7세로 좀 올드하고, 여자가 남자보다 14만 3697명이나 더 많다.(맙소사). 그리고 치킨집은 1만 1000여개나 된다.(타임진가 어디서 치킨집이 한국 경제를 망친다고 했었었는데.. 사실 일지도) 평균 전세가가 3억 2696만원으로 남자가 적은 척박한 현실에서 시집을 어떻게 어떻게 가지 않는 이상 독립할 가능성은 몹시 희박하다. 으휴.


서울여자인 내게 서울은 애증의 도시다. 그렇지만 볼거리도 없고 개성도 없다고 그저 비난하는 것 보다는 뭔가, 보물을 찾듯이 가치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좋아보인다. 서울은 역시 나의 달콤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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