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봉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일단 펭귄 클래식의 뛰어난 표지 디자인으로 읽는 기쁨도 배가 된다. 이런 세련되면서도 고풍스러운 디자인이라.. 가히 클래식은 클래식이다. [보바리 부인]은 이런 허영심을 갖고 읽기에 적절했다.


150년 보다도 전의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뉴스에 나온다면 욕을 줄줄이 얻어먹을 이 사건을 요약하자면 "의사 부인의 간통과 독극물 자살, 그 후 남은 빚 때문에 실의에 빠져 죽게된 의사"의 이야기다. 당시 시골 개원의의 부인이 여러 남자들과 정사를 벌이다 독약을 먹고 죽은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쓴 소설이 [보바리 부인]이라고 한다. 어쩐지.. 신문 기사 보듯이 생생하더라니. 


얼마전 간통죄가 폐지 되었다. 이제 이슬람권과 대만에만 존재한다는 이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기사에는 우려의 목소리를 한 댓글이 엄청나게 달린다. (워킹맘이었던 우리 엄마도 이제 가정주부들은 어떻게 위자료를 받는 거냐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왜 여자를 위한 대출 광고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기사에도 '누리꾼'들은 변함없이 격한 반응을 보인다.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여자 잘못 '들이면' 개고생이란 게 저런거다.. 라느니 언제들어도 뻔한 댓글은 일종의 '좋아요' 수를 많이 받는다. 사실 그보다는 어음이 더 큰 문제인데... 결혼과 생활, 권태란.. 인생이란 도무지 쉽지 않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보바리즘'이라는 말까지 낳은 이 소설의 주인공 보바리 부인, 엠마는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집에서 태어났다. 머리도 어느 정도 좋고 외모도 예쁘게 타고난 그녀는 별 탈없이 의사인 보바리와 결혼을 한다. 문제는 드라마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꿈꾸는 드라마는 그녀의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힘들만큼 거창하다는 것. 교육은 독이 될 수가 없다고 알려져있지만 어설픈 교육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엠마는 수녀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꽤 똑똑하게 교리 공부도 했다. 종교에 심취하는 것이 자신을 구워해주리라 생각하며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런 자신에 모습에도 잠시 빠지기도 했으나 이내 염증을 느끼고 아버지가 있는 시골로 돌아온다. 수녀원이 있던 곳은 시골보다는 번화한 곳이어서 곧 시골 생활에 염증을 느낀 엠마는 잠시 결혼이, 가사일이 이 지루함에서 자신을 꺼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저 변함없는 한적한 시골 생활이 이어질 뿐이었다. 안목이 높아서 예쁘게 꾸몄던 집안은 엠마의 정신이 실망하고 무기력해지자 어수선해지고 만다. 부인을 너무도 사랑하는 보바리는 이런 변화를 눈치채긴 하지만 신경증인 엠마를 배려할 뿐이다. 엠마의 머리속은 이 둔하고 촌스러운 남자에게 이미 정이 떨어졌고 죽을 날만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부잣집의 파티에 참석한 엠마는 모든 고급스러운 음식, 인테리어 용품, 옷감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춤에도 푹 빠지게 된다. 하지만 달콤한 하룻밤은 그렇게 끝나고 여전히 변화없는 시골 생활만 지속된다. 권태에 빠졌다가 갑자기 신경질만 내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그곳보다 번화한 곳인 용빌에 있던 의사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보바리 부부는 용빌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용빌은 그 전보다야 편의 시설이 많지만 화려한 파리에 비하면 한적한 곳이다. 촌스러운 사람들에 의사인 남편에 붙어서 커리어를 더 좋게 만드려는 욕심쟁이 약제사에.. 용빌이 그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엠마의 기대가 실망감으로 바뀌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얼마후 출산을 하게 되었지만 출산조차도 드라마 없는 인생을 바꿔주지 못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세들어 사는 하얗고 잘생긴 레옹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정숙한 부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서로 애만 태운다. 법 공부를 하고 있던 레옹은 그대로 파리로 가버린다.  


다시 드라마를 놓친 엠마 앞에 나타난 사람은 로돌프라는 돈이 많은 남자. 이미 여자를 '아는' 로돌프는 엠마의 아름다운 미모에 반했지만 현재 애인도 귀찮게 굴기도 하고 이미 다른 남자의 성을 딴 마담 보바리를 처음부터 '쉽게' 만날 생각이었다. 레옹과의 플라토닉 러브와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이미 망신창이가 되어 있던 엠마는 자신의 패션 센스를 알아주고 지겨운 시골 생활에 같이 염증을 느낀다며 공감해 주는 로돌프에게 홀딱 넘어가고 만다. 승마를 핑계로 남편을 꼬드겨 당당히 로돌프의 집에 드나들며 애정 생활을 즐긴다. 로돌프와의 연애는 재미있었다. 엠마는 로돌프가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줄 수 있는 남자라고 확신하고 '사랑의 도피'를 계획하지만 이미 엠마가 지겨워진 로돌프는 "사랑하니까 당신을 떠나요"같은 개드립을 들어놓은 편지를 보낸다. 다락에서 편지를 읽던 엠마는 순간적으로 거의 죽을 뻔 한다. 힘이 빠진 엠마는 그날 밤 마차로 자기 집 앞을 순식간에 도망가는 로돌프의 얼굴을 보고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다. 실연에 사경을 헤매던 엠마는 깨어나서도 반 미치광이처럼 정신을 놓고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누군가의 권유로 영국 오페라를 보러 가게 되는데 거기서 레옹을 만난다. 엠마는 다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다. 레옹도 파리 생활을 하면서 여자와 노닥거리며 경험을 쌓았고 이미 엠마는 부인으로서의 정숙을 버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둘은 사랑하게 된다. 엠마는 다시 활력을 찾고 남편에게 돈을 받아 레옹이 있는 곳에 피아노 강습을 배우러 다닌다. 물론 피아노 강습을 받지 않고 레옹과 애정행각을 벌인다. 둘은 사랑하지만 또 금방 그만큼 미워하게도 된다. 하지만 애정행각을 멈출 수 없다. 엠마는 지루한 생활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언제나 무리하게 돈을 써대는데다 레옹은 남자를 갑자기 잘 홀리는(?) 엠마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이런 돈은 다 엠마의 남편 샤를르에게서, 그리고 방물장수 뢰뢰가 써준 어음에서 나온다. 신용카드가 소비를 팍팍 늘이는 것 처럼 어음은 엠마의 소비를 무절제하게 만들었다. 


뢰뢰는 로돌프에서 레옹까지 엠마의 불륜 행각을 알고 있었지만 돈이 되자 소문을 퍼트리거나 하지도 않고 묵인한다. 그러다 갑자기 엠마에게 변제를 하라고 독촉하기 시작한다. 엠마는 여기에 갑자기 놀래고 환자들에게도 남편 몰래 진찰료를 청구하거나 아버지의 토지를 팔거나 한다. 물론 이런 것은 다 뢰뢰의 지시였다. 그리고 또 어느날 갑자기 등기를 보내와서 어마어마한 돈을 갚으라고 요구한다. 차압이 되고 연인인 레옹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고 옛연인인 로돌프에게도 부탁을 하지만 레옹과 로돌프가 도움을 줄 의지가 없다는 걸 느끼자 엠마는 약국에서 그녀를 흠모하고 있는 소년에게 부탁해서 비소를 얻는다.   

 


요약이라면 '여자의 불륜과 비극적인 결말' 이라고 엄청나게 간단하게도 요약할 수 있지만 '사실주의' 문학의 선두에 선 대표작으로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오히려 조연에 가깝다. 계산에 빠르고 언제나 웃는 낯을 하고 있지만 돈에는 무서운 방물장수 뢰뢰, 제대로 된 면허는 없지만 정보에 빠르며 과학을 믿는 출세지향적인 약제사 오메(약제사가 마을 신부와 언제나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장면도 볼 만하다). 또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잘생긴 마초와 결혼했던 샤를르의 어머니가 샤를르를 사랑하는 방식이나 교양을 모르는 샤를르의 아버지의 교육방식이 충돌하는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엠마는 처음에는 시골생활에서 벗어나려고 남편 보바리를 택했고 권태로운 시골 생활의 돌파구를 애인 로돌프로 찾으려 했으며 로돌프에게 버림 받은 처지를 레옹에게 보상받으려 했다. 만족을 모르고 드라마를 쫓아 다니다 비극적인 죽음을 택하고 주변 사람을 모두 비극적이게 만들어 버린 엠마를 욕만하고 끝내기엔 찝찝한 느낌이 든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위치에서 만족하면 행복해진다고, 내면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생각만큼 쉬우면 세상은 이렇게 불행한 사람으로 넘치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에도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를 부리는 사람이 가끔 한심해 보일 때도 있지만 나도 한 때는 소비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엠마처럼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서 도피성 선택을 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나는 엠마에게 동정도 비난도 하기 힘들었다.


엠마의 말로와 어리숙한 샤를르의 말로, 그들의 딸에게까지 이어진 불행은 씁쓸해서 슬프기까지 하다. 낙담한 샤를르를 위로해주는 사람보다는 불행한 그를 불편해하거나 거북스러워하는 사람에, 얼마 남지 않은 그의 가제를 훔쳐가는 가정부나. 워낙 외설스러운 소설로 유명했던 까닭에 예전에도 의도치 않게 평론도 많이 보게 되었는데(이래서 유명한 작품은 이미 알고 있는 느낌이 들게 된다니깐)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엠마가 왜 엠마로 적히지 못하고 보바리 부인으로 적혔는가에 대한 글이었다. 내용은 확실히 기억이 안나는데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가 자신의 의지와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이었다. 모두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그 당시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에도 엠마는 행복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한편, 그녀의 외도를 적극적으로 돕는 방물장수(?) 뢰뢰씨의 어움 남발은 요즘 예쁘장한 연예인이 기타를 들고 '넌 여자니까~'를 노래 부르는 핑크빛 대출광고를 연상시킨다. 기사를 읽어보니 여자들이 특별히 더 변제 의지나 능력이 좋지도 않은데 광고를 하는 이유는 일종의 금융상품일 뿐이라고 관계자는 답했다는데 사실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지 않나.


사실주의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라 그런지 심리묘사가 아주 훌륭하다. 뒷표지에 적힌 "보바리 부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했다던 작가의 세세한 묘사 능력에 감탄했다. 이래서 고전은 고전이라고 하는거지. 하지만 기대하던 외설스런 표현은 없다.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못 느꼈을 수도 있고. 


결혼 전, 그녀는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랑에 응당 따라야 할 행복이 오지 않으니 자기가 잘못 생각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엠마는 책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황홀이니 하는 것들이 정환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었다. (p.60)

게다가 그녀는 이제 무엇이건, 누구건 간에 경멸감을 감추지 않았고 때때로 사람들 모두가 옹호하는 것을 비난하고, 타락하거나 부도덕한 것을 옹호하는 등 기묘한 의견을 내놓아 남편을 깜짝 놀라게 했다.(p.104)

그러자 그녀가 읽은 책의 여주인공들이 생각났다. 불륜에 빠진 정열적인 여성들의 무리가 그녀의 기억 속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매와도 같은 그들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이제 그녀 자신이 이 이상적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긴 몽상이 실현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들을 그토록 선망해 왔는데 이제 그녀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녀의 복수심 또한 만족되고 있었다. 그동안 어지간히 고통받지 않았는가? (p. 238)

소문에 의하면 그가 아직 배 수선공이던 시절, 어느 날 밤 그가 비아리츠의 해변에서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어떤 폴란드 귀족 부인이 그에게 홀딱 반해버렸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그 때문에 파산했고 그는 다른 여자를 찾아 그녀를 남겨놓고 떠나버렸다. 이 유명한 연애 사건은 그의 예술적 명성을 해치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처세술에 능한 이 엉터리 배우는 광고 속에 자신의 육체적 매력과 민감한 영혼에 관한 시적인 문구를 잊지 않고 슬쩍 집어 넣었다.(p.322)

미소 뒤에는 항상 권태의 하품이 감춰져 있고, 기쁨 뒤에는 저주가, 쾌락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으며 최상의 키스라 할지라도 더욱 큰 관능에 대한 채울 수 없는 갈증만 입술 위에 남겨 놓을 뿐이다. (p. 410)

그는 마치 그녀가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녀의 취향과 생각에 맞추어 에나멜 장화를 사고, 흰 넥타이를 매고 콧수염에 화장품을 바르고, 그녀처럼 어음에 서명했다. 그녀는 이렇게 무덤 저쪽에서 그를 타락시켰다.(p.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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