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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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를 마음의 고향으로 두고 있는 사람의 인생은 어떨까. 아니면 파리를. 아니면 뉴욕을. 


파리나 뉴욕은 워낙 화려한 동네라 동경이 일기는 하면서도 왠지 아픈 역사가 있는 프라하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는 어떤 풍경을 가지고 있을지 더더욱 궁금해진다.


서울을 동경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원체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의 배경이 프라하인 경우가 많아서 체코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어떤 애잔한 마음이 있다. 어느 나라 못지 않은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요네하라 마리를 알게 된 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큰 기쁨이다. 생소한 러시아(와 동부 유럽) 문화, 발랄한 문체, 해박한 지식, 유머 감각까지 빠지는 게 없다. 뭘 읽어도 재미를 보장하니 한 권 한 권 아껴서 읽고 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프라하에서 소비에트 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세 친구를 (엄청나게 노력해서) 재회한 후의 기록이다. 리차를 만났을 때는 따스함을, 아냐를 만났을 때는 왠지 모를 분노를, 야스나를 만났을 때는 눈물이 나왔다. 근현대 동유럽의 격동기 속에 휘말린 개인의 인생은 다양하다. 특히 아냐와 야스나의 부모와 그들의 인생은 너무나도 달라서 화가 났다.


아직 전쟁중인 나라에 살아서 그런지 공산주의라는 게 막연히 무섭기도 하고 사실 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런 논쟁 자체가 낡고 낡은 느낌이라는 것도 있고. 잘 모르니 할 말은 없지만 러시아나 중국, 동유럽은 아직도 나한테는 왠지 사납거나 팍팍한 사람이 사는 나라다. 기후탓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러시아에 대한 생각이 많이 중화된 것이 요네하라 마리의 글을 읽은 게 크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는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을 시기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축하하고 기뻐한다는 것. 외모를 가지고 놀리지 않는다는 것. 생각보다 아주 친근하다는 것. 하긴 술 좋아하는 사람들 치고 사람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


러시아에 대한 재밌는 얘기는 [미식견문록]이나 [팬티 인문학]에서도 잔뜩 확인할 수가 있다.


3장으로 나눠진 책은 각자 색깔이 있다. 그리스 출신의 리차는 그리스의 하늘색인 파랑. 깍쟁이에 거짓말쟁이 아냐에게는 빨간색. 베오그라드 출신으로 하얀 도시에 자부심이 있는 똑부러지는 야스나.


이 중 가장 가볍고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일화는 리차 정도다. 리차는 발랑까져서 남자를 볼 때는 이를 보라고 당당히 충고하는 귀여운 소녀였는데 오빠가 결혼을 잘못해서 집을 풍비박산을 내도, 자폐증 아이를 낳았어도 꿋꿋이 삶을 개척하는 강한 여자로 살고 있어 코가 뜨끈해졌다. 남편도 이가 아주 튼튼하고 바르다.


책 서두에서 러시아 속담에 '거저 받은 말, 이빨은 보지 마라' 라는 게 있다는데 남의 선조에 지혜에 감탄을 했다. 현대에도 유효해서.. 삐뚤삐뚤한 내 건강 상태에 속이 상하기도 했다. (요즘도 가지런한 이가 부와 건강의 상징이지..) 역시 유목민족의 지혜는 동물보는데서 참 뛰어나다. 


세 일화의 구성은 학창 시절에 기억했던 세 친구의 모습과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서 재회하는 장면이 있는데 남자를 줄 세워놓고 고르는 배우가 되고 싶었던 리차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 처럼 야나와 야스나도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 나름 반전도 있어서 줄거리는 여기서 끝. 학창 시절 이야기는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필터가 있어서 더 아름답고 재미있다.


마지막 야스나의 이야기는 너무 슬퍼서 구글로 확인해보기도 했다. 정말 전쟁이란 건 쉽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싸워준 이들에게는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새삼스레 생각했다.


페이스 북으로 진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불현듯 떠서 뜻하지 않게 괴로움을 받기도 하는 이 시대에 1995년, 전쟁이 일어나는 곳 바로 옆에서 친구를 수소문해서 만나는 이야기는 예전에 유명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을 재회하게 해주던 [TV는 사랑의 싣고] 보다도 더 애절한 느낌이 들었다. 


요네하라 마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뭔가 질투같은 감정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질투날만한 조건을 다 갖고 있었기 때문에. 1. 소신대로 사는 뭔가 자랑할 만한 가족, 2.내가 예전부터 동경하던 이국(특히 코 높은 애들 사는데) 문화 안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것, 3. 다른 나라 말 완전 잘 하는 것. 


그런데 학창시절에 생각보다 아주 힘든 일을 많이 겪은 것 같아 질투했던 걸 반성했다. 같은 공산주의라도 정책이 다르면 배척하고 더 미워하기도 하고, 그게 아이들한테도 영향이 가는 것이.. 그런 극심한 고독을 자기 의지와는 다르게 느껴야 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 안쓰러웠다. 


일본도 우리와 교육정책이 비슷해서 오지선다, ox를 고르는 시험 때문에 고생을 해서 한국 교육을 당연히 안 좋아하는데 적어도 저런 고통을 안 느껴봤던 나름 안정적인 학교 생활을 했던 것은 다행인 것 같다.



원제는 책에서 두번째 챕터인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이지만 한국판은 [프라하의 소녀시대]가 되었다.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만 세 명다 평등한 느낌이 들어 '소녀시대'가 더 좋다. 프라하는 구매력을 상승하게 하기도 했고. 



그냥 밀란 쿤데라 얘기가 있어서 밑줄긋기. (단언컨대 이것말고 진짜 재밌는 부분이 많다.)


"친해진 체코의 극작가 D씨는 "저렇게 진보를 거부하는 숙명론은 소름이 돋을 만큼 불쾌해"하로 토로했다. 덧붙여 "그래서 도프토예프스키도 싫어"라고도 말했다. 동방정교를 문화적 근본으로 삼은 러시아에게 국토를 유린당해 이 감정은 더 증폭된 것이리라. D씨뿐 아니라, 밀란 쿤데라를 비롯한 중부 유럽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창작 자세에는 이러한 감정이 곳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겨우 잠이 들었다." p. 222


중부 유럽(동유럽.. 동유럽 사람들은 '중부 유럽'이란 말을 쓰는 걸 좋아한다고.) 작가들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참고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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