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 아웃케이스 없음
소피아 코폴라 감독, 제이슨 슈왈츠맨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공주병은 있었는데 막상 실제하는 공주, 왕비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책 한 줄 안 읽었던 나에게 처음 마리 앙투와네트를 접했던 것은 그 유명한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였다. 머리가 원체 맹했던 나는... 사실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누가 만화가 쉽다고 했지?!


그래도 기억에 남는 건 당연히 남자보다 멋있는 오스칼과 그 옆에서 간드러지게 웃어대는 일라이자 머리를 한 철없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왜 공주라고 생각했을까?) 베르사이유나 마리 앙뚜와네트 같은 희안한 이국의 언어에 매료되어 조금 열심히 봤지만 워낙 어두운 내용에다 왕가라는 것 자체에 이해가 없어서 내용 자체를 크게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딱히 마리 앙투와네트라는 여자를 미워하지 않았다. 한편으론 슬픈 이야기다. 왜 이렇게 이해력이 떨어졌는지.. 엄마가 걱정했던 이유를 알만도 하군.


커스틴 던스트가 딱히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영화에서는 꽤 매력적이다. 몸매도 훌륭하고. 마리 앙투와네트가 실제로 주걱턱이 심하긴 했지만 꽤 미인이었다고 하던데 그걸 재현할 수 있는 헐리웃, 아니 서양 배우가 있을까. 워낙 다들 반듯반듯 예쁜데.


별 기대를 안 하고 본 영화를 홀리 듯 보았다. 여자라면 홀릴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꽃이든 과일이든 썩기 전에 가장 향기롭고 달콤하듯이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 귀족의 사치는 엄청 났다. 비용을 대는 쪽이 죽을 맛이지 쓰는 입장에서야 신이 나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서 주인공이 명품을 접하고 아름답게 변화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거나 미드 [섹스 앤더 시티] 에서 캐리가 옷방을 뒤지며 옷을 찾는 장면에 한번도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라면 별로 일 수도 있겠지만.


뮤지컬, 영화, 소설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 여인에게는 생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 오스트리아 출신의 공주가 대국 프랑스의 왕비가 되면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뻣뻣한 프랑스 귀족들은 지위상으로 아랫 것(?)들이지만 상대적으로 촌뜨기 외국 여자애를 은근히 무시하고 깔보며 대한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호박씨를 까면서 텃세를 부리고 심지어 시할아버지의 첩까지 어린 마리의 복종을 요구한다. 아침마다 아래 사람들에게 속살까지 보여야 하고 편이 없이 발가벗겨진 것 같은 궁중생활은 화려한 드레스와 요란한 음식과는 달리 몹시 힘겹다.


우유부단한 남편인 루이 16세는 가장 중요한 생산(?)적인 활동에는 관심이 없고 사냥에만 정신이 팔려서 젊은 여자 마리를 힘들게 한다. 후손을 잇지 못하면 왕비의 자리도 위태해지므로 마리의 어머니는 걱정이 된다. 본인이 제일 힘들테지만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끊임없이 닥달의 편지를 보내고 루이의 여동생이 먼저 후손을 낳는 등 마리의 궁중생활은 험난하기만 하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자신에게 도통 관심이 없는 남편에게 지친 마리는 다른 방면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한다. 요즘 (있는) 여자들이 카드를 팍팍 긁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요건이 갖춰진 궁전에서 원없이 온갖 치장을 하는 철없는 왕비. 초콜릿과 빵, 스위트 와인까지 마시면서 생각없이 그저 해피해피한 쇼핑 친구들과 감각적인 게이(?) 디자이너까지 갖췄는데 어떻게 이런 생활을 포기할 수 있을까. 만나면 즐거운 친구들과 생활하던 마리는 온갖 쾌락을 좇는다. 겜블링, 멋진 파트너와 파티에서 썸타기 등등. 


역시 너무 조급해하고 매달리는 것 보다 다른 것에 힘을 쏟는 게 시공을 막론하고 연애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 마음 놓고 즐거운 궁중생활을 즐기던 마리에게 다행히 딸이 생기고 또 아들이 생긴다. 딸이 생긴 마리에겐 이제 사치 대신 정원을 가까이 하며 심신의 안정을 찾는다. 사치 후의 정원에 심취하는 건 많은 연예인들이 그렇듯이 물질로 채울 수 없는 내면을 채워 주는 것을 찾아 도달한 최종점 같은 것이다. 정원에서 양과 닭을 키우고.. 화려한 옷 대신에 가볍고 부드러운 흰 면 드레스를 입고 딸과 함께 뛰어다니는 그림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유명한 그녀의 말년이 생각나 슬프기도 했다.


좀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남편으로나 왕으로서나 별로였던 루이 16세는 성난 군중을 가족과 함께 맨 몸으로 맞이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 식사를 한다. 


마리 앙투와네트의 인생은 유명해서 영화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는 없지만 한 인물을 그리는 데는 그리는 사람의 시선은 중요하다. 영화는 소녀에서 여자로, 공주에서 왕비로 변하는 동안을 여자의 시선, 아니면 마리 앙투와네트의 시선에서 그린다. 어린 자신에게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자신을 욕하는 여자을 보는 마리. 문화 차이와 직급이 높아져서 개인적인 행동 하나 하나에 해석하는 이국의 사람들. 자신을 여자로 대하지 않는 어린 남편. 그 때문에 임신이 안 되자 닥달하는 어머니와 고소하다는 듯 보는 사람들.. 더구나 양국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자신은 어디 편을 들어야 할지 혼란스럽고 복잡한 정체성의 혼란까지. 힘든 생활에 지쳐 쾌락에 심취하게 되는 보통 여자로서의 마리 앙투와네트를 그렸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그녀가 실제로는 말하지 않았던 말로 군중을 화나게 했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안이한 대응은 더 큰 비극을 불러왔다. (강하게 변호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까?)


벌써 2년 전 처음 갔던 유럽 여행에는 파리가 끼어 있었다. 당연히 베르사이유 궁을 방문했던 나는 이것이 진짜 1700년대 후반의 궁이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2000년대에 사는 나는 그 방 중 하나보다도 무지막지하게 심플하게 살고 있는데! 역시 시대를 잘 타고나는 것보다 탯줄인가.. 같은 생각도 잠시 했다.  


이렇게 사치가 심하니 시민 혁명이 일어난 게 수긍이 참 많이 갔다. 하지만 여자라 그런지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도 한 번은 화려하게 살아 볼 만은 하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평생 아무 드라마도 없이 죽는 평범남녀도 많은데.


흔히 프렌치 시크라는 검정, 하양, 무채색의 스프라이트 대신 영화에서는 마카롱 같은 파스텔 컬러와 밝은 민트색과 핑크, 새하얀 실크같은 그저 소녀스럽고 행복하기만 한 밝은 색으로 화려한 그녀의 생을 그려낸다. 잔잔한 꽃 무늬, 여기저기 번쩍이는 금장식, 레이스, 깃털, 프릴, 힐, 뮬,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마카롱, 초콜렛, 떨어질 듯한 샹들리에, 여백없는 화려한 벽지.....  만으로도 눈요기는 충분하다. 


가끔 마리 앙투와네트와 친구들이 치장을 하는 장면만 돌려 볼 때도 있다. 감독이 유명한 스타일리스트라는데 스타의 리얼리티쇼를 보는 것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먹방을 보는 것과 비슷한 심리라고 해야할까.


프랑스 역사를 보면 참 통쾌한 순간이 있다. 바로 시민혁명. 그건 알다시피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그로인한 부작용도 있긴 했지만. 루이 16세는 능력없는 왕 같지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기 때문에 오히려 깔끔하고 멋있게 포장 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마리 앙뚜아네트도. 가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모로코와 네덜란드의 왕실의 막장 스토리를 보고 있으면 전혀 상관없는 나도 부아가 치미는데.. 차라리 그들이 운명에 저항하지 않고 꼿꼿이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야 말로 그들은 멋있게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리 앙투와네트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여자로서 그녀의 일생이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내가 당시에 버는 족족 세금으로 쪽쪽 빨리고 있던 시민이었다면 얘기가 많이 달라졌겠지?(지금의 신분(!)으로선 이게 더 현실적이다.)


내 일생을 적으면 소설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인이 많다. 하지만 진짜 자기 일생을 기록으로 남겼을 때 소설이 되는 여인은 드물다. 고귀한 출생, 아름다운 외모, 애정없는 결혼, 타지에서 외로이 시작된 결혼 생활, 성공적인 임신과 출산, 물질적인 풍요로움, 달관, 일생의 사랑, 천한 것(?)들의 역습, 꼿꼿하게 왕녀의 품위를 지키고 먹은 왕실에서의 마지막 식사, 단두대에서 마감하는 삶까지. 이것이 고작 38년을 살다간 여인의 삶이 계속 회자되는 이유가 아닐까.      



사족 : 그나저나... 옛날에는 무조건 얼굴과 가슴으로 쇼부를 봐야했던가. 다리가 예쁜 여자들은 참 억울하기는 했겠다...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얼굴이 너무 중요하니까 몸매만 좋은 숙녀는 사냥같은 걸 할때 사고(바람,, 낙마 등의)를 빌미로 치마를 훌렁 넘겨서 자기의 예쁜 다리와 엉덩이라인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참 남자 유혹하는 건 진짜 힘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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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뽈쥐의 독서일기 2015-01-02 19:35   좋아요 0 | URL
원작 소설이 따로 있었군요. 알라디너가 이렇게 정보력이 느려서야..ㅠㅠ
아마 요 영화는 여성 취향인 것 같아요. 옷, 구두 쇼핑을 좋아하신다면 눈이 막 호강하는 영화에요.ㅎㅎ

역시.. 아직도 다리보다는 얼굴하고 가슴인가요..? 씁쓸해라..ㅎㅎ

야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앞으로 자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