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아프리카 열린책들 세계문학 87
카렌 블릭센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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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아프리카로 부터 나온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풍요때문에 오히려 힘든 일을 당하고 있는 땅이긴 하지만.. 그게 어떻게 아프리카의 책임이겠는가. 자원이 인간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살다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을 부러워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프리카 땅을 놓고 서구 열강이 서로 물어뜯고 싸우다 전쟁까지 한 것을 보면 몹시 얄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납득이 되기도 한다. 가까운 곳에 자원이 펄펄 넘치는데 가만히 있을 놈은 없지. 


납득이 된다고는 하나 여전히 얄밉다.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원주민들을 대한다고 하지만 곳곳에 드러나는 서구 중심적인 시선으로 그들은 판단하거나 하인들을 다그치는 모습은 잘 읽고 있다가도 째릿-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몇 번이나 읽는 이유는 뛰어난 묘사와 인물에 대한 세밀한 시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에 대한 향수(?) 같은 걸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릴 때 류시화 산문집을 읽고 인도를 꼭 가겠다 마음 먹었었는데 지금은 별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이 마음도 언제 변할지는 모른다. 지금은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가지도 못하지만.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동식물은 바오밥 나무와 사자, 물소 같은 것이지만 작가가 묘사해 놓은 사슴 때문인지 꼭 사슴이 보고 싶었다. 서울 숲에서 우리에 있는 새끼 사슴 두 마리를 본 뒤로 더 심해졌는데 저번주에 일본 '나라'에 가서 봤다.(이런 걸 대리만족이라고 하나?) 교토,오사카, 고베, 와카야마도 갔지만 나라가 제일 좋았다. 하루 더 있었으면 좋았을 껄.. 이랬다.

나라 공원을 중심으로 우리 없이 아무 곳이나 활보하는 세상에 주인 같은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힐링이 따로 없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제일 예뻤던 아기 사슴. 센베를 줘봐도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으면서도 도망가지도 않았던 요오~물.


엄청 예쁜 포즈를 취해주었던 녀석. 분명 암컷일꺼야..



이렇게 예쁜 것들은 정말 얼굴만 예뻤다. 작가가 묘사한대로 믿을 수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센베를 사서 사슴한테 줄 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센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놈들이 참 많았고 한 입 주면 졸졸 쫓아와서 사람을 참 곤란하게 만들었다. 말이 통한다면 나한테 센베 맡겨놨냐?고 한 번 퉁박을 주고 싶기도 했다.

성격도 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다들 좋지는 않았던게 먹이를 주면 얼굴 정도는 한 번 만지게 해주는 녀석들도 있었고 먹이만 먹고 좀 쓰다듬으려고 하면 바로 뒷걸음을 깡총 뛰는 녀석, 새끼들에게 주려고 하면 중간에서 방해하는 넘들과 오히려 이쪽에서 먼저 주려고 해도 주춤주춤 오지 못하는 녀석. 그리고 사진에 찍힌 저 아기 사슴은 정말 먹이도 먹지 않고 그럼에도 나를 떠나지도 않고 예쁜 눈을 마주쳐주었다. 사진을 찍어 보란 듯이.

얼굴만 예뻐서... 정말 사람을 애타게 하는 구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신의 사자'라고도 한다는데 얘네들의 신비한 외형을 보면 별명이 이해가 된다.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행복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거기 살면 매일매일 갈텐데... 라는 아쉬움만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특별한 경험만 한 작가가 너무 부러워 그녀가 겪은 불행까지도 부러운 지경이다. 나도 드라마같은 삶을 살고 싶다. 아프리카 주민들의 지혜를 듣고 내 마당에서 동물이 뛰놀고 하늘이 다채로운 빛을 내며 눈동자를 아름답게 어지럽히는 생활을 누군들 안 부러워할까. 맛있는 커피는 덤이다.

크누센 영감, 현명한 하인이었던 카만테, 소말리아족 여인들, 불운한 사고, 원주민들의 풍속과 지혜 등 작가의 재능이 아니었다면 쓰이지 않았을 풍경이 그저 아름답다. (지금은 아프리카도 많이 변했겠지?)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이지만 언제나 나에게 베스트 챕터는 바로 룰루. 

룰루가 있는 챕터에 밑줄긋는 것은 힘들다. 거의 모든 게 밑줄긋기니까.
 



그때 룰루는 몸집이 고양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크고 고요한 자줏빛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다리는 어찌나 연약한지 앉거나 서면서 다리를 접고 펼 때마다 부러질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 귀는 비단처럼 매끄럽고 대단히 표현력이 풍부했다. 그리고 코는 송로버섯처럼 까맸다. 작은 발은 전족을 한 옛날 중국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토록 완벽한 존재를 소유한다는 건 드문 체험이었다. (p. 68)

하지만 룰루는 사실 온순하지 않았고 속에 악마가 들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천생 여자로, 공격에 온 힘을 쏟고 있을 때도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는 데만 골몰한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공격적이어서 아무한테나 덤볐다. 심사가 뒤틀리면 말에게도 덤벼들었다. 나는 함부르크에서 하겐베크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동물 전문가인 하겐베크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사슴이며 하다못해 표범도 믿을 수 있지만 어린 사슴을 믿으면 조만간 녀석이 등 뒤에서 공격해 올 것이라고 했다.
룰루가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요부처럼 굴 때조차 우리는 룰루를 자랑거리로 여겼지만, 우리는 룰루는 행복하게 해줄 수 없었다. 룰루는 이따금 몇 시간씩, 어떤 때는 오후 내내 집을 비웠다. 가끔씩 주위 환경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면 룰루는 집 앞 잔디밭에서 사탄을 향한 짤막한 갈지자의 기도처럼 보이는 출전의 춤을 한바탕 추어 기분 풀이를 했다. (p. 71)

룰루가 없는 집은 다른 집들보다 나을 게 전혀 없는 듯했다.(p72)

룰루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깊고 그윽한 자줏빛 눈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나는 신이나 여신은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마치 암소 눈을 가진 헤라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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