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치코와 리타
페르난도 트루에바 외 감독, 에만 소르 오냐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쿠바하면 몇 가지 키워드로 기억될 것이다. 시가, 춤과 음악, 체 게바라... 쿠바를 여행해 본 적은 없지만 쿠바를 여행한 사람들이 쓴 에세이를 읽으면 저렇게 멋진 키워드와 빈곤의 나라로 묘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철저한 이방인의 입장에서 묘사된 쿠바는 낭만의 땅, 아니면 연민의 땅이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쿠바와는 다른 생생한 쿠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정치 혁명이 사람들한테 미친 영향이나... 아무래도 그들이 그린 자신들의 모습만큼 생생하게 그리긴 힘들 것 같다.



영화는 거리에서 구두를 닦으며 살아가는 노인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회상에 빠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피아노 선율에 맞춰 늙은 손을 움직이는 이 노인은 왕년에는 반짝반짝 빛났던 천재 피아니스트 치코다. 노년의 치코는 쿠바의 이웃들이 집 안에서 싸우는 소리까지 들리는 빈민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가 만든 음악 '리타'와 함께 그의 젊고 화려한 인생이 시작된다.

젊은 날의 치코는 천재 피아니스트에 야망있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여자를 꽤나 울리고 다녔지만.. 리타가 노래하는 순간 치코는 알게 된다. 리타는 자신이 옛날부터 기다려온 사람이라는 걸. 열정적인 남녀답게 뜨거운 밤을 보내고 리타를 위한 노래도 작곡하지만 역시 여자 문제를 일으킨다. 미치게 쿨한 건지 둘은 다시 서로 공연도 하게 되고 행복한 나날을 잠시 보내지만 매력적인 리타에게는 뉴욕에 가자는 제의가 따른다.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1960년대는 뉴욕에서 쿠바의 음악과 맘보, 콩가가 대세여서 치코에게도 뉴욕에 갈 수 있는 길이 펼쳐진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와 미국 뉴욕의 차이만큼 갈라진 치코와 리타는 서로에게 다른 길이 펼쳐진다. 전형적인 이민자의 길을 걷게 된 치코. 화려한 뉴욕 주류 사회에서 인정 받은 리타. 뉴욕에서 '리타 라 벨'로 세련되어 진 리타는 치코를 버린다. (근데 여자 입장에서는 100% 이해가 된다. 누가 바람 피래?) 리타는 후원자(아주 떳떳한 사이는 아님) 의 지원으로 승승장구하게 되고 야망과 리타를 쫓아 뉴욕까지 온 치코는 부자들의 연회에서나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다.  


리타는 이제 '양키'가 다 되어 백인 주류사회에서나 라틴계 이민자들 사이에서나 어색해져버렸지만 여전히 강낭콩을 좋아하고 치코를 마음에 품고 있다. 화장실, 출입구까지 따로 써야하는 인종차별이 만연한 1960년대 뉴욕에서 그들은 라틴계 이방인으로서 서러운 일을 겪기도 한다. 결국 치코와 리타 사이를 질투한 후원자 론의 음모로 치코는 마약 밀매의 누명을 쓰고 쫓겨나고 리타는 술을 마시고 무대에서 인종 차별에 대해 서러워 하는 발언을 하고 예술가로서의 삶이 끝나게 된다.


이런 일을 다 모르고 조용히 쿠바로 돌아온 치코는 정권이 바뀌면서 재즈 음악을 연주하기 힘들게 되고 음악과는 상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그의 음악을 아는 젊은 예술가의 요청으로 그토록 꿈에 그리던 뉴욕에서 승승장구 하게 되는 노년의 치코. 그 사이 그의 친구 몬티는 이미 고인이 되어 뉴욕에 묻혔다. 치코는 수소문을 해서 리타를 찾는다. 그리고 노년의 리타와 치코는 47년만에 재회한다.



대사는 스페인 문화권답게 직접적이고 로맨틱하다. 재즈가사는 청승 맞아서 더 좋다. 남자를 상대로 몸싸움을 하는 라틴 언니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굵은 선으로 간단하게 표현한 그림과는 달리 계속 엊갈리는 운명이 좀 슬펐다. 이래도 가난이 죄가 아니라고..? 저런 일생의 사랑이란 게 진짜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의 해피엔딩에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 얼마 전 유행한 '비긴 어게인'도 그렇고 한때 국내에서 매니아층을 양상했던 '원스' 성공을 보면 이야기에 음악이 녹아들어간 영화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연인의 이름을 딴 곡을 만드는 이야기를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


* 스페인 문화권이 불타는 사랑만을 옹호하는 느낌인 것 같지만.. 마르케스도 그렇고 [치코와 리타]도 그렇고 47년 만에 완성되는... 노년이 되어서야 완성되는 사랑도 은근 많은 것 같다. 모두 용기 있어 보이는 라틴 사람들이라도 사랑은 참 힘든가보다. 


* 영화 [봄날이 간다]에서 유지태가 엄청나게 찌질한 표정으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같은 대사를 날릴 때 몇 년 전의 나는 어떻게 저렇게 찌질한 대사를 던지지? 라고 뜨악 하면서 소설 [한달 후 일년 후]에서 연인 베르나르가 그런 식의 대사를 날렸을 때 조제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요. 그럼 미쳐버리게 되요."라는 말을 했을 때 현명하다고 박수를 쳤었다. 여전히 조제가 현명한 것은 맞지만....... 이제는 왜 사람들이 유지태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명대사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봄날이 간다]는 참으로 많은 명대사를 남겼구나. 


정말 한달 후, 일년 후면 사랑도 사람도 다 변하는 구나.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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