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
소래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나의 생활기록부에는 항상 이런 말이 있었다. "매사에 밝고 명랑하며..." 웃는 얼굴밖에 별로 칭찬할 것이 없었던 아이에게 쓰일 수 있는 문구다. 나는 한편, 울보라는 별명이 있었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명랑어둠소녀'였었다. 책을 보니 내가 명랑할 수 있는 이유는 자주 울어서 였구나. 나는 외롭고 슬프면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댔다. 


엄마 욕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감정포장을 교육받았다. "'여자는' 항상 웃고 다녀야 돼.. 웃어야 남들한테 예쁨 받고... 웃지 않는 얼굴에는 침을 뱉을 수 있으며....어쩌고 저쩌고......." 웃는 얼굴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했던 엄마는 나를 걸핏하면 울고 웃는 애로 만들었다. (하지만 언니는 안 그랬던 걸 보니 딱히 내가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는 좀 그렇다.)


구직을 하고 회사를 들어오면서 깨달았다. 학교나 대외활동 경험같이 내가 얻은 것보다 타고난 것이나 잘 포장된 것이 중요하단 사실을. 물론 '어마 무지막지하게' 대단한 일이라면 조금은 사정이 달랐겠지만. 몇 달간의 백수 시간에서 온 마음 고생으로 나는 다행이도 바짝 말라있었고 엄마의 맹목적인 '미소' 교육 덕에 면접에서 효과는 있었다. 결국 여자의 능력과 자기관리란 몸매관리, 피부관리, 상냥한 태도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재확인하고 사회의 쓴 맛에 입을 쩝쩝 했다.


1930년대 경성. 최초의 근대화된 도시로 한 때 뻑하면 드라마와 소설의 단골 배경으로 채택되었다. 나 역시 관심이 많아 이런 저런 책을 몇 권 뒤져봤다. 30년 대 신문광고로 본 세상만사(?), 여자의 몸이 부각되기 시작한 30년대의 몸 담론... 그리고 망할 놈의 '명랑'까지.


급격한 도시화 때문인지 경성 이후로 반백년이 훌쩍 넘은 지금의 서울은 실상 무척 위태롭다. 맞벌이에 아파트만 줄곧 살았던 나는 방송에서 말하는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의 존재를 본 적도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황폐한 도시생활에 이미 익숙해서 곳곳에서 들리는 안 좋은 뉴스에도 그럴 법하다.. 고 넘겨버린다. 오히려 도시 평화에 힘쓰는 이들이 아직도 있음에 놀라는, 매정하고 꼰대님들께 자주 회자되는 네가지 없는 젊은이다.


그래서 30년대 경성을 살아온 분들은 어떻게 젊은 시대를 나셨나 했더니.. 요즘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더 멜랑꼴리함에 빠지고 '룸펜'이라고 하는 고학력 실업자들의 사정은 더 심했다. 인생을 요령껏 살기에 몰두하며 돈을 버는 법과 이성을 꼬시는 법을 알고 싶어한다. 돈을 버는 방법도 비슷하다. 빈대짓, 짠돌이짓, 채권을 사라느니... 한탕을 노리라느니. 이런 남자를 만나고 저런 남자는 피하라느니. 지금 보면 황당해서 웃긴 것도 있고 더 정확한 것도 있는 거 같다.


그리고 갑자기 들어친 근대화로 백화점과 카페의 등장, 그 전과 다른 서비스를 맛 보면서 요즘과 같은 진상도 탄생하게 된다.


당시에는 엘레베이터 걸, 데파트 걸, 버스 걸, 가솔린 걸 같은 단순 서비스직 여성이 생겨났고 '걸'들을 고용한 이유인 감정노동자도 이 때 탄생하게 된다. '걸'에게 요구하는 건 이거였다. "(예쁜 얼굴로) 명랑하라." 


'걸'로서 돈을 벌 수 있는 이들이 한정됐던 까닭에 여성들의 외모는 출중해서 그만큼 껄떡껄떡하는 사람도 많았나 보다. 어떤 걸은 이렇게 토로했다. "사람이 진땀이 나도록 물건을 뒤져보고 그대로 휙 돌아서며, 좀 흘기면 애교 없다고 시비하시는 손님은 깊이 반성해주셨스면 좋겠습니다." p. 157 


서비스업에 있는 사람답게 당부도 어쩜 이렇게 예쁘게 하는지.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진상들의 만행이 눈 앞에 바로 그려진다는 게 슬픈 일이다. (왜 반백년이 지난 지금도 손님들의 재수탱이 '갑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인가..)


일제시대 서울의 이름 경성. 경성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근대'시작의 시작으로 생겨난 도쿄와 아주 비슷한 이 도시의 존재는 '현대' 서울과 차이점이 거의 없다는 게 놀라웠다. 30년대에의 '걸'들은 전국적으로 고작 10-20%의 꽤 선택받은 여성들이자 야만적인 시대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걸'에게 강요되었던 '명랑'의 감정은 조선총독부의 '감정 정치'에서 온 것이다. 감정을 꾸며내서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전염시켜야 한다는 요지인데... 식민지 시대가 언제 끝났는데 아직도 명랑을 요구하는 것인지.


요즘의 감정노동자도 그 때 보다 덜 힘들까. 그렇지 않다. 스튜어디스, 연예인, 점원 그리고 타이피스트 걸인 나...는 입사 직후처럼 명랑하지 않다고 욕을 들어먹으니까 말이다.(사장 할아버지.. 내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엄청 유명하다.) 그리하여 이 망할 놈의 '명랑'에 혹사당하지 않기 위해 곧 회사를 떠난다. 바이 짜이찌엔.


 

* 사족 1 : 스펙 만능 주의와 이 나라에서 잘 나가려면 필요한 능력은 아직도 비슷하다. 예를 들면 1.영어를 배울 것(미국가서 3~4년 있다오라) 2.기자와 교제를 하면서 정보를 얻을 것 3. 무슨 집회든지 발기인에 들 것 4. 남 앞에서는 반드시 사회와 민족을 논하라....


* 사족 2 : 옛날부터 남여 서로 물어뜯는 건 비슷했다. '남자 무용론'에 반박하는 '여자 무용론'까지. 그러면서 속으론 이성의 애정을 얻고 싶어서 비법을 공유하고 연애를 못하는 사람들을 마구 비웃는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져서 조금 변한 것도 있지만 30년대 소위 연애 좀 해봤다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비법은 제법 수긍이 갈 만한 것도 있다.


담화는 상대자의 칭찬으로 일관할 것/ 남자는 우스운 이야기를 해서 여자를 웃게 하고, 여자는 서러운 이야기를 해서 남자를 쫄쫄 울게 할 것(뒤에는 모르겠다.)/ 어느 기회를 타서든지 자기의 특수 재질을 보여줄 일/ 피아노 계약을 즉석에 맺을 일(부를 과시한다.)/ 화장품을 사줄일 


1920년대에 동아일보에 '남편을 택하는 100가지 비결이라는 기사가 실렸다는데 48개 까지로 연재가 중단 되었다. 그럼에도 공감가는 것이 있었다.


3번. 여자같이 얌전한 남자와 결혼하지 마라. 그런 남자가 아내를 곱게 다룰 것이라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남자는 늘 아내를 박박 긁고 괴롭힌다.


12번. 재산이 넉넉하더라도 직업이 없는 남자와 결혼하지 마라. 남자는 한가해지면 술, 담배, 여자만을 생각한다.


13번. 여자보다 못 배운 남자가 여자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생각하고 결혼하지 마라. 그런 남자는 지식으로 여자를 못 누르면 주먹으로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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