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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플래닛 -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피터 멘젤 외 지음, 홍은택 외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배가 고프다. 엄마의 장기간 여행으로 제일 쉬운 볶고 굽는 요리만 계속 먹고 있다. 시원한 게 먹고 싶다. 일주일 사이에 엄마 없이 사는 티가 나고 있다. 요리책과 블로그를 뒤져 새로운 요리를 해보려고 했지만 능력밖의 조리법과 더운 날씨로 인한 무기력으로 콘프로스트와 통조림, 라면을 크게 이용하고 있는 상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요리책 같은 걸 뒤적이는 버릇이 있는데, 사진이 흥미로워 집은 책이다. 요리책은 아니다. 그냥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안 나와서 살짝 섭섭하긴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으로 동아시아는 퉁치고.. 아프리카든 아메리카 대륙이든 사람들이 한달치 먹고 마시는 음식들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왠지 그 가족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빈곤문제, 정치적문제(전쟁 등의 이유로..)로도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밥상 앞에서는 특히나 인간적인 모든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어떤 정치적 의도로 책을 쓴 것이 아니라고 하니, 해석은 독자에게 달려있다. 책은 특정 지역의 '보편적인'(검증이 필요한 말이지만.. 책이 논문이 아니니 봐주기로 하자.) 가족이 한달치 식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다음 장엔 그들이 자랑하는 특별한 레시피를 소개하고, 그들의 대략적인 일상을 소개하는 걸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평범'한 가족들은 스토리도 레시피도 특별할 것은 없다. 그래도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거라고 흔히 말하듯, 평범한 그들은 대체로 풍요로워 보인다. 빈곤한 국가에서도 일가족이 힘합쳐 사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백만가지 모습이라고 (톨스토이였던가..?) 말한 작가가 있었는데, 289% 동의한다.
책 중간에 있는 에세이도 읽어볼만 하다. 볶고 지지고 굽고 튀기고.. 취사하는 동물. 에세이에서 사람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고하는 동물이 아닌 취사하는 동물. 언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우리는 취사를 시작했고 그로부터 공동체도 형성된다. (물론 농경의 시작이 더 먼저이긴 하지만.)
요리가 즐거운 이유는 함께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만을 위해서 매일같이 정성껏 요리를 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재료를 고르고 취사를 하는 원초적인 행위가 소중한 것은 지키고 싶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끼니에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것 또한 그런 점에선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전쟁으로 난민이 된 가족의 일주일 치 식사는 배급품으로 채워져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의지 있는 강한 어머니가 있으니 언젠가는 그들의 식탁도 가득 채워질 거라고 믿는다. 세계는 지금, 이 시간에도 먹고 마시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기아보다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많아진 현재는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배고픈 사람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서 좀 그만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서기도 했다.
무엇보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