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어 앉은 오후 - 제4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신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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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쓰기 전에 홍상수에 대한 이야기. 내 감상적인 친구 H는 남자를 어떤 기준으로 두 분류로 나누는 것이 취미인데, 그 중 하나가 "그 남자 홍상수 영화 볼 줄 알아?"이다. 

"좋아해?" 도 아니고, "볼 줄 아냐?"다. 

여자들도 그렇지만.. 특히 남자들 대부분이 홍상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듯하다.(H 주변에 남자가 많아서 그런지 그녀는 남자를 잘 안다(고 자부한다.). 믿거나 말거나) 

나도 홍상수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보고나면 왠지 불편하다고 해야할까 짜증스럽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상큼하고 깔끔한 영화는 아니잖수. 그런데도 몇 편 보긴 봤다. 혹자는 홍상수 영화가 일관되게 하는 말이 "남자는 다 찌질이고, 여자는 내숭이다." 라고 했는데... 과연...? 

홍상수 영화 중에서도 왠지(근거는 없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닮은 소설이다. 

  

......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항상 자랑이었던 딸의 죽음, 그 보상금으로 회사가 살아나게 된 남편의 일, 딸애가 죽고 딸과 사겼던 남자의 아내와 마주하는 일, 음식을 일부러 짜게 만드는 등의 싸움을 걸어도 반응이 없는 남편과 아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중년의 불은 몸을 하고 있는 '윤자'는 쓸모없고 비싸지 않은 물건을 훔친다. 

유난히 하얀 피부를 가진 은혜가 아닌 '은해'는 바닷가에서 태어나서 생활에 지친 엄마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자란다. 엄마는 두 번째 부인이었고, 배다른 형제들의 적의를 받고 살아 항상 조용하고 주눅들어 있는 느낌이다. 특별한 기술도 학력도 없는 그녀는 통신사에서 일하고, 아는 언니를 따라 에로 비디오를 녹음하기도 한다. 회사 회식에서 만난 어떤 남자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은혜가 아닌 은해라고 불러 주었고, 조금 사랑에 빠졌다가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 

그들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백화점 수영장의 회원으로 만나게 되는데, 윤자는 어쩐지 가느다란 몸매의 젊은 여자가 신경쓰인다. 은해는 그녀가 맘에 두던 같은 회사의 대리가 결혼을 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아무에게나 몸을 맡긴다. 불행한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 더 잘 일어나듯, 그녀는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 윤자는 그런 은해를 안아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인생이 참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거다. 그래서 이런 지리멸멸한 이야기에 왠지 위안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엄청 기구하고 사연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시종일관 위태롭다는 느낌이 든다. 갑자기 일상이 불안정하다는 느낌이 들 때, 괜한 신경질이 나고 신경이 곤두서는 것처럼.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 인생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여길 때, 그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흔히 자학이 있다. 한번도 자학을 해 본적 없는 사람을 없겠지만 의외로 자학에도 쾌감이 있다. 어느정도는. 심하면 불행해지는 거지만. 

두 여자는 스스로를 괴롭힌다. 힘든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 

그저 안 됐다는 기분만 들었으면 좋으련만. 이제 조금 알 것 같은 내가 스스로 안쓰러웠다. 홍상수 영화를 본 것 처럼 불편한 기분. 그게 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서 더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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