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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1. 제목의 승리입니다. 제목이 아니었으면 이 책, 안 샀을 거니까요. 요즘같은 장마철, 진짜 클 것이라는 태풍예보도 들려오고 대기 불안정한 날들 입니다. 파마도 예상한 날에 못할 듯 하고... 정말 제게는 슬픈 기상현상인 나날입니다.
원제는 Atmospheric Disturbances... 호- 다시보니 번역의 승리였군요.
2. 저자의 약력을 보니.. 오 스펙이 장난아닙니다. 집안두요. 아버지는 기상학 교수에 어머니는 국립재해기상연구소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군요. 작가 본인도 명문대 영문과에 들어갔다가 또 의대에 들어가 정신과 의사도 했었구요. 정도만 걸었다는 삶이 이런 거겠지요.
[대기불안정...]이 그녀의 처녀작이고, 아버지의 논문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과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평소 존경하던 마음으로 추모하기 위해 이런 요소를 넣기도 했다는 군요. 진심으로 부러운 가족입니다.
3. 재미요? 제목을 보세요. 이런 제목을 가진 책치고 재미가 있는 책이 있던가요? 대부분의 독자가 익숙치 않은 기상+ 심리정신과를 다루는 책에 재미라뇨. 게다가 챕터에 붙은 소재목들도 멋있기 그지 없습니다.
예를들면, '온대성 저기압에 의한 폭풍우가 치던 밤에', '초기의 찾기', '도플러 갱어 효과 발효', '두 번째 조사', '목적미상', '영구적이지 않을 목표' 등 등. 너무 멋있죠?
논문이었다면 이런 표현들이 깨나 시적으로 느껴졌을텐데... 문제는 이게 소설이라 조금 짜증스러웠다는 겁니다. 특히, 도플러 효과를 설명하는 부분은 인상을 찌푸리며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소설적인 요소로 가득합니다. 묘사는 충실하구요. 왜, 우리도 가끔 일상이, 자주보는 사람이 낯설어지는 이상한 경험을 종종 하지 않나요? 이런 낯선 느낌을 소재로 삼은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독특한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잘 써진 것도 맞아요.
이런 불안한 대기만큼.. 우리의 마음도 쉽게 불안해지지 않나요?
어릴 때는 잘 몰라는데, 요즘은 천둥 번개가 치는 게 참 무섭습니다. 그냥 괜히 불안하고 무섭고 그래요.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원시시대에, 왜 이럴 때 하늘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는지, 왜 제사를 지내고 그랬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엄마한테 이렇게 말했더니, 이제 니가 뭘 쫌 알게 됐구나... 하시네요.)
5.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생기없음이 불안하고 슬픈 마음이 듭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본 적도 없는 사막의 모래를 씹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상한 건 사막의 영상이 떠오른 것도 아니라 그냥 그런 퍽퍽하고 입자가 고운 가루를 물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건조한 느낌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그 자체로도 분명 매력이 있지요. 그런데 이런 광기와 불안, 고통을 다루면서 제게는 그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슬퍼요. 내가 감정없는 인간이 된 건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6. 저자는 지금도 기자로 활동하고 있고, 꾸준히 단편소설도 기고하고 있답니다. 이 소설로 미국문단을 이끌 젊은 작가 몇 명 안에 들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극적인 사건도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저력은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음 번에는 좀 생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것은 소재의 잘못으로 돌려도 될 것 같지만...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힘, 그것이 생겼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