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유명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는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놀랐고, 또 슬퍼서 놀랐다. 어떻게 그만한 명성을 얻었는지 납득할 만했다. 

감성적인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슬플 때 무성영화를 보며 웃다가 우는 장면이 있는데, 이제 그게 좀 이해가 갈 듯도 했다. 요즘 이상하게 막상 청소년기에는 있지도 않았던 사춘기가 지금 왔는지 모든 일에 예민하게 굴고 의문을 갖는다. 그냥 성격이 더러워진 걸 수도 있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옆에 사람들이 괴로워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퍼레이드]는 몇 번 읽었다. 읽으면서 그 섬세함과 필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어제 밤을 세서 다 읽었더니 느낌이 또 달랐는데... 어제는 갑자기 너무 웃겨서 죽을 지경이 됐다. 갑자기 웃음은 나오는데, 죄책감도 들고... 그리고 슬픈 감정이 일었다. 어쩜.. 희극은 비극에 빚을 지고 있는 거다. 그것도 아주 큰 빚을.   

[퍼레이드]는 도쿄의 신혼부부용 오피스텔에서 같이 동거하는 다섯남녀의 이야기다. 지방의 초밥집 아들로 태어나 큰 세상을 보라고 도쿄에 보내진(?) 요스케, 열정도 괴로움도 없는 그녀의 인생에 큰 드라마를 심어준 인기배우이자 연인을 만나기 위해 상경한 고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낸 자칭 일러스트레이터 미라이, 유흥업에 종사하며 낮에는 남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이 취미인 사토루, 냉정한 성격이지만 남들에게는 항상 도움을 주는 것 같은 가장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나오키. 이들은 한명의 나레이터로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며 각자의 장을 차지한다. 

내가 심하게 웃었던 이야기는 요스케의 이야기다. 지방에서 도쿄에 대학에 오면서 선배의 소개로 이들과 생활하게 되는데, 그 사람좋은 선배와 그 여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선배의 여자에게 반해버린다. 계속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찾아간 그녀의 집 앞에서 맞닥뜨린 그들은, 그날로 깊은 관계까지 발전해버린다.  

다음 날 아침, 팬티 차림으로 나온 요스케를 노려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여자의 동생. 목례를 하고 어색한 자리에 앉은 그에게 여자는 토스트를 물려준다. 그런데 갑자기 요스케는 눈물을 흘린다. 그것도 주체할 수 없이 많이. 여자와 여자의 남동생은 그 난감한 상황에 놀라고, 그는 이제 입 속으로 들어오는 눈물까지 느끼게 된다. 빤스 차림으로 아침부터 남의 집에서 울고 있는 남자. 

그 장면을 떠올리니 미친듯이 웃음이 났다. 책을 읽다가 개그콘서트를 본 것처럼 깔깔거리고 웃기는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빤스 차림에 울고 있는 남자라니. 

몇 분간을 그렇게 웃고보니 왠지 슬펐다. 요스케는 쉽게 응석을 부리는 애교있고 단순한 남자이지만, 그는 줄곧 얼마 전에 죽은 중학교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초밥 집을 운영하는 그의 아버지가 무리하게 보내준 도쿄 생활에 은근 염증이 나기도 했다. 아니, 회의에 가까울 것이다. 그는 평생 아버지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고, 아버지는 또 좋은 선배를 만나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요스케는 결과적으로 선배의 여자를 탐했고 이런 복잡한 상황에 몰아쳐 좋아하는 여자의 집에서 한심하게 울고 있었다. 그게 슬픈 점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 장면만 놓고보면 미친듯이 웃음이 났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가독성이 좋아 쉽게 읽힌다. 재미도 있다. 반전도 있다. 비밀도 있다. 그런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그들 다섯이 하는 얘기가 이상하게 다 한 사람이 얘기하는 것 같다. 그들은 한명한명 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공동생활의 미덕으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면서 살아간다. 또 다른 사람의 심각한 비밀을 알아도 모르는 척 눈감아 주면서 살아간다. 그들은 동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누군가 나가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도 그 시절을 크게 추억할 일 또한 없을 것 같다. 냉정하고 냉혹한 이야기.  

 

공감의 밑줄긋기 

어쩌면 이 집의 공동생활은 그런 것들을 끌어들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야기해도 괜찮은 것만 이야기 하기 때문에 이렇게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도. p.38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익명을 부여받음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만약 내가 익명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과장에 과장을 덧붙인 위선적인 자신을 연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p.132  

최근 몇 년, 어쩐지 내 생각과는 다르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경향이 생겼다. 좀 더 설명하자면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인데도 어디를 어떻게 돌고 돌다 그렇게 되는지, 주위 사람들에게는 누군가를 배려해서 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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