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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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생생하긴 하지만 곳곳에 묻어나는 자기연민의 감정이 도무지 편하게 생각되질 않아서다. 기억의 특성상,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오래 남게 될 뿐더러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감성을 지닌 작가들은 거기서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전적인 글은 자기연민일 가능성이 많다. 

요즘 다시 프랑스 여자들의 자유로운 삶이 대두되는 모양인데, 말년에 40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그의 품에 안겨 죽었다는 뒤라스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국내에 번역이 다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각본과 사회 참여활동까지 여러 분야에서 두루두루 활동했던 정력적인 이 여인은, 어떤 이에게는 동경과 흠모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어떤 이들 중 하나가 나였는데, 어디서 끓어 오르는 건지 에너지가 넘쳐서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무척 부럽다. 게다가 동명의 영화 [연인]에 나온 제인 마치의 청순한 차림을 90년대 완전 잘나갔던 희선이 언니와 우희진 언니가 벤치마킹 했다니, 관심이 안 갈 수 없었다. 

영화도 영화지만, 원작인 소설은.. 슬프다기 보다는 아프다는 느낌이 든다. 남들과 다른 삶을 지향하던 나에게도 읽는 이까지 고통스럽게 하는 삶은 살았던 작가에게 동정이 가기까지 했다. 프랑스 령의 베트남에 살던 꼬마 숙녀는 가난하고 불완전하고, 애착과 집착으로 뒤엉켜 있던 가족 탓에 너무 일찍 어른이 되고 만다. 너무 일찍 늙어 버린 소녀는 메콩강을 건너는 배에서 부자인 중국청년을 만난다. 사실 소녀가 그를 꾀어낸 것이 맞다. 

성인도 되지 않은 백인 소녀는 식민지에서 그녀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매일 밤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고 그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큰 오빠만을 사랑하는 미치광이 어머니, 도저히 구제가 불가능한 큰 오빠, 그리고 그들에게 눌려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랑하는 작은 오빠. 가족은 소녀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고, 소녀의 중국 연인은 잠시 피난처가 되는 듯 하였다. 

어머니와 큰 오빠의 학대, 중국 연인과의 우울한 관계 속에서도, 소녀는 꿋꿋이 성장하였다. 어머니에게 경멸을 당하면서도 글쓰기를 갈망한 것을 보면, 그는 정말 글쓰는 것에 타고난 사람이었나보다. 

'누보로망'이라고 하여 어떤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아무튼 여타의 소설과는 형식이 많이 달라서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한다. 뭐 본인은 누보로망이다 뭐다 하는 형식의 구애에는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는데, 고통스러운 텍스트가 아니었다면 신선한 느낌이 들기도 했을 것 같다. 

여기, 한국 땅에서 붙박혀 살아 어린 시절을 외국, 이름도 생소한 곳에서 보낸 아이들이 몹시 부러웠다. 뭔가 다른 경험을 갖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의 다소 삐뚤어진 성격이나 방황도 향수병인가 하여 그것마저 부러워 한 적이 있었다. 근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몇 개의 언어능력이나 특별한 경험이 부럽기는 하지만, 이렇게 힘든, 특히 가족들만 의지 할 수밖에 없는데 가족들까지 날 힘들게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래서 급한 거 집어먹는 심정으로 도피처를 찾는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실로 오랜만에 무겁고 슬프고 아픈 글을 읽었다. 이래서 요즘은 가벼움이 미덕이라고 하나? 읽는 내내 왠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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