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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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때, 소심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예쁘장한 친구가 있었다. 호의가 고마워서 친하게 지냈었는데 알고보니 불만인자(?)여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아이는 대한민국 3자녀 가정에서 가장 흔한 구조인 딸딸아들 자녀에서 둘째딸이었는데... 그 나이대의 아이답지 않게 한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게 남달랐다. 그것만 빼면(가장 집중해서 들어야할 말) 나에게 잘 해주고, 전학간 다음에도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등 좋은 친구였는데, 이상하게 그 친구가 옆에 있으면 즐겁지가 않았다. 어린나이 임에도 소위말하는 기가 다 빨리는 느낌이라는 걸 받았다.

나는 10살이었고 2녀중 둘째라 막내의 혜택은 적당히 받고 살았고 눈뜨고 일어나서 학교나 쫄레쫄레가는 무비판적인 아이였으므로 다른 형제에 비해 눈에 띄게 차별받는 것이 어떤건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주위에 성격 좋은 애들을 보면 끼인(?) 둘째인 경우가 은근히 많다. 가끔 얘기를 들어보면 언니와 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못 받은 관심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여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잘 극복하여 사회생활을 굉장히 잘하고 있지 않나.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면 엄청나게 폭력적인 시선일수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계속해서 남의 불평을 듣고 싶지 않기에... 특히 자기의 가정의 불행을 끊임없이 이야기 하면 그 사람을 슬금슬금 피하고 만다. 

책을 읽으면서 10살, 한 때는 친했지만 매정하게 슬금슬금 외면했던 그 아이가 생각이났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다시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배운 것도 많은 사람한테 원래 세상이 그런거잖아요, 거참.. 피곤하게 살지 맙시다. 라는 몰상식한 아저씨들같은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결코, 네버 아니다. 실은 이렇게 용기있고, 열정넘치고, 신념에 반하지 않게 사는 것이 몹시 부럽기도 하거니와 자기 일로만 끝내지 않고 공익적인 활동을 펼치는 그녀에게 지지를 보내주고 싶다.  

정말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삶은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문제가 있으면 연대하자고 나서고 대안을 제시하고... 어쩌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에너지와 용기, 의지가 없으면 무척 힘든 일이다.  

스크린쿼터제 반대 시위에 때거지로 몰려나왔던 배우들이 언제나처럼 큰 관심을 받았지만 지지는 못 받았던 이유는 아마 평소 언행과 일치하지 않은 권리주장이라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 보였던 탓일 것이다. 

오지랖은 세계 최고인 것 같은 나라에 살면서 결혼 안하고 사는 것고 결혼을 하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여자는 더더욱. 게다가 같이 살면서 결혼은 안 하는 '발칙한' 일은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 잊을 만하면 오르내릴 일임에는 틀림없다. 외국인이랑 살면서 딸까지 낳았대, 하며 말이다.  

그래서 당당한 그녀를 더 지지해주고 싶다. 잘못된 관습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그녀를. 게다가 딸도 무척 귀엽다. 

정말 철들지 않아 안면도 안튼 독자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는 그녀가 부럽다. 평생 젊게 살길 기원하며.. 리뷰를 마친다.    

  

 

덧) 제목이 정말 멋있다. 누구였더라 암튼 유명한 사람이 한 말 같은데..."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더 멋있게 표현한 것 같다. 처음엔 제목의 승리라고 생각했으나 저자가 일단 좀 배운 사람이라 글을 잘 쓴다. 멋진 표현이 많았다. 줄쳐가며 읽으면 뼛속까지 도움이 될 수도. 

덧2) 나도 '월경(越境)'이 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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