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 만들기 - 미인 강박의 문화사, 한국에서 미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영아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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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유명한 말.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쁜 여자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굳이 따지고 들자는 건 아니지만 예쁜 여자는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태어나기도 한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당시 전성기였던 희선이 언니도 자기가 안 예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하여 충격이었는데...(립서비스일 수도 있겠다.) 주위에도 보면 예쁜 애들도 외모에 고민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도! 운동도 안 하고 유난히 몸이 귀찮아지는 시기에는 왠지모를 죄책감과 자괴감에 휩싸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거다. 하루쯤 운동 안 한다고 크게 살이 찌는 것도 아닌데, 내 안에 감시자가 끊임없이 쪼아댄다. 이 게으름벵이야, 돼지야!! 

내 마음 속에도 뚱녀가 산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다고 하니, 왠지 위안이 되기도 하고 다 불쌍하기도 하고.. (근데 옆에 사람한테 나 뚱뚱해보이지? 허벅지 굵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는 건 삼가주길 바란다.) 

  

이건 정말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우리도 스스로, 자기 몸에 대한 볼록거울을 갖고 있지 않을까.

 

외국에 안 나가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외모에 대한 집착이 정말이지 너무 심하다. 게다가 안목들도 어찌들 그리 높은지! 그렇게 예쁜 연애인들 한테도 항상 조금씩은 악플이 달려있다. 머리가 크다, 허벅지가 굵다, 살 좀 빼라, 성형티 너무 난다 등등. 성형해서 예뻐져도 뭐라 그러니 정말 어쩌란 말인가요....?? 

이렇게 그들을 비판한다고 해서 나도 상대의 외모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러지 않으려고 이성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일 뿐.  

 

물론 책에서는 이런 타고난 미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런 이상할 정도로 심한 집착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보면, 1920년대, 근대 시대부터라고 보면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어떻게 생겨야 미인인지에 대한 의견은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는 얼굴뿐만 아니라 '몸'에 대한 어떤 '기준'같은 것이 생겼던 것이다. 근대화라는 건 쉽게 말해서 서양과 비슷해진다는 것이고, 우리가 지금도 서양화된, 그러니까 시장을 개방하고 살게 된 것도 그때부터의 일이다. 

시장이 생기면 소비재도 필요하고 소비자도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비재에는 여성도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교육이니 뭐니 하는 새로운 개념이 생기고 사회생활이란 것을 하게 된 여성들은 옷도 양장으로 바뀌게 되는데, 양장의 문제(?)는 몸매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런 차림을 하고 교육을 받은 여자들은 '신여성' '모던걸' 등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름만 뻔지르르하게 붙여놓고 그들을 관음적으로 (특히,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와서는 여성이 소비재이자 소비자로 변하게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시작은 그랬다는 것이다.  

갑자기 사회에 이런 여성들이 돌아다니자(?), 그런 변화에 흥분한 사람들은 이제 외형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게 시작한다. 그 때가 좀 더 솔직한 시대였는지, 아니면 더 촌스러운 시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20,30년대의 기사는 요즘보면 몹시 자극적이고 노골적이다. 일단 이름을 다 밝히니깐. 

당시 지식인이라는 남성들은 신문에 당대의 유명한 '모던걸'들에 대한 품평을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배우, 정치인, 기자, 유학생인 여학생들이 들어가 있다. 게다가 지역별로 미인들의 차이점을 쓰는 한심한 짓들을 하기도 한다.(가장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다.)지식인이라고는 하지만 지금보기에는 천박할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고, 더없이 주관적이어서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하물며 이름이 호명된 당사자들은 어땠을까. 

약간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현재와 다른 표현법에 약간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양귀비 사촌도 아니었으나...라고 시작하여, 레코드계 미인,  민낮 환멸, 속살이 희고 깨끗..... 근데 민낯과 속살은 어찌본 걸까..?  

아무튼 20, 30년대는 예쁜 외모에 미쳐있어서 각선미를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 어떤 다리가 가장 예쁜 다리인지 등을 열심히 탐구하느라 열을 올리는데, 40년대에 와서는 조금 달라진다. 40년대는 일본이 국민총동원 체제로 바꾸어서 생산, 즉 아이를 많이 낳는 여성들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뻐지라고 했다가 갑자기 건강해지라고 말한다. 몸빼를 입고 운동이나 일을 열심히 하면서 대신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면 된다고!(나는 개인적으로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여 외면을 아예 무시하자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이런 애들이 얼굴 예쁜 거 더 따져요..쯧) 

 

요즘의 외모 따지는 경향은 근대에서 시작된 것이고 여성의 몸을 국가 마음대로 할라구 했었어요, 라는 얘기가 끝이 아니다. 오늘 날에도 이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사회인 오늘, 우리는 몸을 관리하느라 미용산업에 엄청난 돈을 붓고 있다. 간단하게는 헬스장으로 시작해서 마리***,쥬*스, 등의 관리실, 비만관리, 피부관리에 마지막으론 수술까지. 미인이 되려면 못할 짓이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인구 줄었다고 계속 애 낳으라고 위에 어르신들은 난리다. 못 키워서 못 낳는다고 말하는 여성들은 거의 독한여자 취급을 하면서. 

이제는 여성들에게도 일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씁쓸한 것은 아직도 외모의 중요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근대에도 미인 잘 팔리긴 했다. '미녀'라고만 하면 남편 죽여도 형벌이 낮아지고, 신문도 잘 팔렸으니까. 현대에도 미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회가 더 많다. 알바를 해도 '용모단정'하면 덜 힘들게 일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미녀가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서 미인이라고 좋아하다가고 경멸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녀는 괴롭다.  

그래서 내가 예쁜 여자로 만들어지고 싶은 욕망을 접으려는 순간...  

차청오라는 사람이 1927년 12월호 <별건곤>에 이렇게 썼다. p.248 

고래로 미인이 박명이 많다로 하였지만 그것은 미인인 까닭에 박명한 것이 아니라 온갖 여성 중에는 박명한 여자가 많지만 세상 사람이 잘 알지를 못하고 오직 미인만은 여러 사람이 잘 알게 되는 까닭에 그러한 말이 생긴 것이다. 자기의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서 신음하는 김정필같은 독부도 물론 박명한 여자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여자도 미인인 까닭에 박명한 것이 아니요, 감옥 속에는 김정필 이상의 무서운 죄악을 짓고 철창에서 신음하는 박명의 여자가 많지만 미인이 아닌 까닭에 세상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놔.. 사람은 죽어서 가죽을 남겨야 한다는데 미인은 그냥 쉽고만... 괴로워서 미인은 미인이라 좋은가보다. 그냥 만드는 거라면 나도 한 번 미인 만들어줘어~~~~!! 

 

 

덧붙임) 한국인 최초로 쌍커풀 수술을 받은 사람인 '오엽주'라는 여성이 소개되었는데, 이력이 몹시 화려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잠깐 교편을 잡았다가 미용사로 또 잠깐 일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최초의 한류스타가 되었었다가, 또 잠깐 들어와서 카페 여급을 했다가(이때 까페는 유흥업소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미용실을 열어서 유명해졌다.  

이렇게 정신없는 사이에 딸도 낳고 하였는데..(참 복잡한 인생인 듯) 아무튼 미용실이 잘 되어서 유명인사도 드나드는 사교계 유명인사같은 사람이었는데, 검색해서 찾아볼 만큼 흥미진진하다. 참... 나도 미인을 엄청나게 소비하는 사람이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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