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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딩 도어스
피터 호윗 감독, 존 한나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거의 7년만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 기분 전환 겸 몇 번의 강한 파마로 상한 머리카락을 없애버리려고. 머리를 자르기 전에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했다. 회사에서 잘리고, 지하철의 닫히는 문 사이로 들어간 기네스 펠트로가 남친의 불륜을 알게 되고 새출발을 하려고 머리를 자르는 장면! 아 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쁜 일인가! (게다가 기네스 펠트로는 예쁘다..쩝)
항상 영화는 현실과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누가 말했지.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그랬다. 현실이 좀 시궁창이었다. 그날은. 닫히는 문사이로 들어간 건 아닌데.... 미용사는 더럽게 불친절하고 무뚝뚝했으며... 머리도 별로 예쁘게 잘라놓지 못했다. 게다가 비싸기까지 했다. 에이, 며칠동안은 기분이 좋지 않다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 이제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다만, 머리가 그렇게 무거운지 실로 몇년만에 깨달았다. 머리가 정말 가벼워서 샴푸 광고처럼 막 흔들어보게 된다. 난 얼마나 많은 중력을 안고 살았던건지.
서두가 너무 길었다. 시놉시스만 보고도 이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거의 매일같이 내가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 내가 저 버스만 탔더라면..... 모두가 알다시피 떠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는 보여준다. 그 조그만 사건이, 그러니까 지하철의 닫히고 있는 문같이, 인생을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 아님 그렇게 믿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아직 미성년자였을때, 어떤 경로로....(엄마의 주민등록번호를 잠깐 빌려서) [언페이스풀]을 봤었는데, 불륜을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건전한 결심을 했으면 좋을텐데, 언제나 그렇듯 교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끝장면에 여자가 후회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그 바람이 안 불었더라면, 내가 그 택시를 탔더라면, 그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머 이런 후회를 하면서 그 상황을 그려보는 것. 그 장면이 제일 공감갔다.
물론 이 영화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슬라이딩 도어즈]는 운명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에 대한 운명. 근데 그 운명이란 게 또 별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한다. 인간지사 새옹지마?
영화가 닫히고 있는 문을 뚫고 탑승한 후, 탑승하지 않은 후에 대한 전망이 거의 뚜렷하게 갈리는 것 같지만,결국 둘 다 크게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점이 영화의 수준을 높혔다. 만약 이쪽은 해피엔딩이고 저쪽은 새드엔딩이었다면, 앞으로 버스를 놓친 아침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이제는 거의 자학하겠지. 악, 저건 내 운명을 바꿔놓았어!!
결국, 지나간 버스는 별 것 아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인생이 꼬여있으면 문제다. 영화에서 드는 예는 정말도 대표적인 경우. 잘못된 남자를 고르는 것 같은 문제 말이다. 지나간 버스는 인생을 별로 바꾸지 못한다. 그런데 근본부터 잘못된 문제는 인생을 영원히, 반대 방향으로 바꿔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