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 탐미의 시대 유행의 발견, 개정판
이지은 지음 / 지안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시절 만화 깨나 봤다는 소녀에게는 익숙한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그때는 상식이고 의식이고 없을 때라서 그저 멋진 주인공을 입을 헤-벌리고 보는 것이 전부였는데, 거기 나오는 아리따운 공주님이 마리 앙뚜아네트였다는 사실을, 정말- 정말 나중에야 알았다. (오스카가 더 멋있어서 그런지 그밖의 다른 인물들의 사건이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캔디풍의 그림체였던 그 만화는 앙투아네트를 되게 재수없게(?) 묘사했었던 것 같다. 왠지 우울한 분위기 때문에 꼭꼭 챙겨보는 만화가 아니었던 까닭에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캐릭터가 나오면 자동적으로 눈을 째릿했던 것 같다. 

1789년, 서양의 역사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프랑스 시민혁명이 있었던 해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였던 마리 앙뚜아네트가 단두대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던 해이기도 하다. 또 오브제와 예술의 역사에서는 절망적인 해였다. 참 어떤 일에도 좋은 일만 생길 수는 없다. 항상 양면은 존재한다니! (특히, 많은 공예 장인들이 굶어죽었다고 하니 참 슬픈 일!)

남의 나라 왕비한데 비운의 왕비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여겨지기는 했는데, 한 여자의 일생으로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들긴 하다.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한 영화 [마리 앙뚜아네트]는 소박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그녀가 사람들의 오해로 역사의 시류에 휩쓸려가는 비애가 잘 드러난 점에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는 본인이 하지도 않은 말로 유명해져서, 나중에는 프랑스 혁명군에게 오스트리아 창녀로까지 묘사되기까지 한다. 그들은 상징적인 희생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적국 출신의 공주는 얼마나 좋은 대상인가. 

책은 마리 앙뚜아네트를 비롯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루이 14세, 로코코 시대의 화가 부셰 등을 다루며 흥미롭지만 그들의 삶에 이면에 집중한다. (루이 14세의 삶도 무척 흥미로왔다.)또한 유행의 발달하는 양상과 오브제 아트의 역사를 볼 수 있어서 눈이 즐거워진다.  

 

서양 미술사를 배울 때, 로코코 시대는 분량부터 몹시 적다. 그저 향락적이고 여성적인 시대, 그리고 그때 태어난 예술. 그 정도만 알면 된다. 로코코 시대에서 힘을 뺐다가는 다른 시대에서 힘들테니. 주제도 귀족들의 피크닉, 가벼운(?) 애정행각 등의 풍속과 가십거리같은 소재에 전반적으로 파스텔 톤의 그림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장식만 난무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대책없이 행복한 그림 앞에는 손쓸 길이 없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장식들은 또 어떻고. 군더더기를 싫어하고 실용적인 사람이면 까무러칠 장식은 로코코 공예품의 존재의 이유같은 것이다. 또한, 부셰는 살아 생전에는 인정받고 왕권 붕괴와 함께 몰락한 예술가라고 하는데... 위대한 화가들 중에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도 많이 있어서 그런지 그닥 동정이 되지는 않았다. 죽고나서 명성이 생기면 무슨 소용이요?!

르누아르의 대책없이 행복한 그림. 부셰의 대책없이 행복한 그림. 그래도 요즘의 사람들은 르누아르를 지지할테지? (나도 요즘 사람이라 굳이 따지자면 르누아르 쪽이 좋긴하다.) 

내게는 일본의 몇몇 여자애들만이 열광하는(불량공주 모모코 같은 분장하고 다니는 애덜) 풍조라 생각했던 로코코 시대의 양식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저자의 글솜씨도 무척 좋아서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각 테마마다 앞장에 붙어있는 그림 테두리를 금장(?)이라 고급스럽고 뒤 쪽에 관전 포인트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을 보니 책을 성의있게 만든 티가 난다. 

 

ps. 제목만으로 너무 보고 싶던 책인데 보관함에 담아놓고 끙끙 앓기만 했었다가, 작년인가.. 올해초인가.. 알라딘이 로고를 새로 바꿀 때 이벤트로 신청한 책이었다. 그 때 - 88만원 세대이지만 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보고라도 싶소! 라는 식으로 글을 남겼는데, 당당한 당첨자가 되었다. 

책이 배송되서 책과 함께 있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던 거 같다. -- 한때 기사딸린 이층집 사모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품었던 저로서는 뽈쥐님의 욕망을 그냥 지나칠 수 없네요. (까르르 넘어갔다)..... 재밌게 읽으시고 리뷰로 보답해 주셔요. 

저 마지막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며...(근 일년을 책장에 꽂힌 저 책만 보면 마음이 묵직하고 그랬다ㅠㅠ)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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