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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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제목만 보고 살까 말까 하다가 산 책이었는데 가족들의 모든 책이 뒤섞인 내 서재에서 조용히 있어야할 운명에 있었던 책이었다. 그러다 가격이 50%가 다운되자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 집어들었던 책이기도 했다.

내가 읽은 것 중, 가장 재미있고 잘 써진 에세이이며, 그리고 로맨스 소설보다도 더 로맨틱한 책이다. 

결혼을 하고 서재를 합치고 아이들이 책을 놀이도구로 삼고 블럭 쌓듯이 놀며, 가족들끼리 낭독 대회같은 것을 하는... 어쩌면 어릴 때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가족의 이미지였다. 그러므로 책을 읽으면서 너무 행복했고 웃음을 터뜨렸고 질투심에 부들부들 떨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책을 무척 안 읽는 아이였다. 우선 집에 재밌는 책이 별로 없었다. 순전히 위인전과 그게 아니면 역사 만화, 백과사전 아니면 아예 어른용으로 된 세계문학전집 등이 우리집 서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신 동화책과 알쏭달쏭 상식같은 가벼운 과학책(대부분 언니가 졸라서 산 것), 어린이용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이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에 새로 생긴 큰 서점에 세모녀가 나란히 가서 책을 하나씩 골라오곤 했는데, 거기서 내가 고른 재미있는 이야기 책만이 내가 여러번 읽고 선호했던 책이었다. 얼마나 여러번 읽었는지 그 때 읽었던 창작 동화집과 <트리캡의 샘물>은 언제나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정말 훌륭한 동화는 50세에 읽어도 재밌다는 말은 진실이다! 

스토리에 목마른 내가 나와 맞지 않은 책들로만 가득찬 우리집 서재에서 지루함을 느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나는 위인전을 별로 안 좋아했고 지금도 싫어하는 수준으로 안 좋아한다. 그 많은 위인전들 중에 읽었던 인물은 에디슨, 헬렌 켈러, 강감찬 뿐이었다. 에디슨은 스펀지에서 주기적으로 나쁜 인물로 나와서 날 실망시키고, 헬렌 켈러는 사회주의자였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사회주의자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무척 의외로 느껴졌을 뿐이다.)을 알았고, 강감찬은 탄생에 얽힌 지명인 낙성대와 키가 작고 못생겼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그가 공을 세웠던 전투는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다. 

엄마는 어릴 때 가끔 위인전을 잠에 들기전인 언니와 나에게 읽어주었고, 나는 도서 선정에 짜증을 느꼈지만 그냥 엄마가 옆에 있는게 좋아서 참고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는 위인전 따위는 읽어주지 않으리! 

그런 점에서 이들의 결혼생활은 무척이나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이야기 책으로 가득찬 서재에 꽂힌 책들을 '육체적으로' 느끼고, 그것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배운다니. 특히, 처음의 서재를 결혼시키는 장면에서 부부가 토론하는 모습은 무척 부러웠다. 영문학에 대한 지식은 많이 없지만 겹치는 책에 대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면서 싸울 수 있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 밖에도 재미있는 꼭지를 만나볼 수 있다.  책을 사랑하는 방식에 따라 '육체적 연인'과 '궁정식 연인'으로 분류하는 법에 대해서는 본인의 방식을 체크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어디까지를 표절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공유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이 에세이 집이 어떤 할리퀸 로맨스보다도 더 로맨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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