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Mr. Know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는 주에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소설을 반쯤 읽고 연애 소설의 읽는 노인에 우리 할아버지를 대입해서 읽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였을 때 말고 이렇게 가까운 친척이 돌아가신 것은 처음이다. 다음날 교수님께 일방적인 메일을 보내고 옷가지들과 일기, 그리고 가방에 들어있던 이 책을 들고 함안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아침에 처음 부음을 들었을 때는 발작적으로 눈물이 났는데 하루 학교에 갔을 때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엄청 불경한 말이지만... 고속버를 타고 혼자 내려가는 길은 학교를 빼먹었다는 해방감과(그것도 합법적으로!) 미뤄두었던 잠을 자는 시간, 또 오랜만에 혼자서 여행하는 기분과 더불어 꽤 즐겁기도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는데 이미 첫 날 한바탕 울어서 그런지, 워낙 노인들이 많아 그런 데에 무덤덤해지신 건지, 호상이라 생각되서 그런건지, 주변은 온통 먹고 마시는 분위기여서 혼자 화장실에서 울어야 했다. 

................. 연애 소설읽는 노인은 아마존 부근에 살며 마을에서 가장 정글을 잘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노인이 젊었을 때는 이름이 무진장 긴 여인과 결혼도 했었다.(톨스토이 소설을 읽다가 이름때문에 쉽게 포기하곤 했었는데, 중남미 소설도 장난아니다.) 둘 사이에 아이가 들어서지 않자 마을 사람들의 소문에 휩싸여 마을을 나오게 되고, 둘은 직사리 고생을 하다 수아르 족과 친구가 되면서 정글의 법칙 같은 것을 알게된다. 독사에 물려서도 살아남고 아주 큰 뱀 2마리를 사냥하기도 한 그는 그들사이에 -그는 인정하지 않지만- 최고의 무사(?)가 된다. 그러던 중 부인을 잃게 되고 불행한 일이 자꾸 생긴다.  

...............문명이란 이름으로 계속 밀려오는 양키와 노다지 꾼들. 그로 인해 죽어가는 동물들과 아마존, 원주민. 양키에게 친구를 살인한 복수를 하러간 젊었던 시절의 노인은 생각보다 완력이 컸던 나머지 당황하여 그를 총으로 쏴 죽이고 만다. 수아르 족의 믿음을 배반한 -복수를 할 때에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화살로써 복수를 하면 그가 평온하게 죽어서 괜찮지만, 총같은 걸로 쏴 죽인 양키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어서 그의 친구는 구천을 떠돈다고 믿었다.- 노인은 방문만 할 수 있을 뿐 같이 생활할 수 없게된다. 

................그렇게 비참한 일을 겪고 즐거움없이 살던 노인은 어느 날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가끔 들어오는 치과의사는 노인을 위해 연애소설을 가져다 준다. 아름다운 연애 소설을.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 (72p.) 

................그즈음에 양키와 노다지꾼이 죽임을 당한다. 땀을 계속 흘리는 면장은 원주민들의 의심하지만 노인은 그건 살쾡이의 습격이라고 말한다. 새끼를 잃어버린 암살쾡이의 습격이라고. 원래 사냥을 하면 안 되는 시기에 그걸 몰랐던 외지인들은 가죽을 얻으려고 사냥을 했던 것이다. 분노에 찬 암살쾡이는 계속해서 인간에게 습격을 한다. 노인과 젊은 사람들, 면장은 그 놈을 찾아 나섰다가 결국 노인에게 그것을 맡기고 마을로 사라진다. 

................노인은 기억을 떠올린다. 큰 뱀 두마리를 사냥한 기억. 또 예전에 살쾡이에 대해 들었던 수아르 족 사람들에 조언. 그리고 그는 그 암살쾡이와 마주치고 정면 승부를 한다. 죽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숫살쾡이를 죽여주고 다시 자신을 노리는 그 암살쾡이를 총으로 쏴 죽인다. 그는 인간이 만들지 못 한 그 아름다운 생명을 보고 반성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편안히 연애소설을 읽을 수 있는 집을 향해 망신창이 된 몸을 이끌고 간다.   

...............만약 이 책이 언어 문제집에 나왔다면 이렇게 분류했을 것이다. [노인, 오두막, 암살쾡이, 아마존, 수아르 족 = 자연/ 면장, 양키, 노다지꾼들, 술집, 총 = 문명] 이렇듯 소설은 명료하다. 게다가 문명을 뜻하는 것은 무조건 부정적인 것임에 틀림없고. 

...............중남미 소설은 참 생소하고 매력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아마존, 정글하면 야생적이고 원시적인 느낌이 드는데 또 원주민은 자연 친화적인 느낌이 들고. 구도가 자연과 인간의 대립을 보여주는 것이니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독서법이 무척 흥미롭다. 요즘 '슬로리딩' 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노인의 독서방식은 그것에 부합한다. 언어를 하나하나 곱씹듯이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노인을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이렇게 독서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불과 일주일 전 만해도 살아계셨던 할아버지. 내일이 딱 일주일이 된다. 뭐 할아버지는 연애소설은 읽지 않으셨지만 책을 꼼꼼히 읽으셨고, 소설의 노인과 비슷하게 농부로써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셨다.  

화장을 하고 땅에 들어가신 할아버지를 보고 온 후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워낙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엄마 목소리도 못 듣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계속 마음이 찜찜했는데... 소설 속의 노인도 오두막에서 연애소설을 실컷 읽다가 평안하게 살다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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