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 전부터 고전이 읽고 싶어져 몇 권 샀다.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힘든 러시아 작가가 쓴 [롤리타]는 사실 작년에 산 책이었다. 도대체 롤리타, 로리타 하는 게 뭔가 해서. 

예상과는 달리 저급하거나 재밌는 내용은 아니었다. 작년에 거의 다 읽었다가 포기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이 놈(?)을 정복하리라 하며 꾸역꾸역 읽었다. 그리 가독성이 좋은 책은 아니다.

책을 읽기전에 제목만 보고 편견이 있었다. 롤리타? 어린 애들만 밝히는 아저씨들 얘기 아니야? 요즘도 연예계에 롤리타 콤플렉스니 뭐니 하더니.. 작년인가 무대에서 신나게 깜찍한 엉덩이를 흔드는 원더걸스의 소희가 중학교 졸업식을 한 영상을 보고 정말 요즘은 젊음이 권력이 맞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보통 사람들은 대게 중학교 시절이 가장 예쁘지 않을 시절인데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녀가 사실은 부럽다. 눈 찡긋 하나에 남자들이 우르르 넘어가는 것은 유치하지만 여자라서 행복한 상황임은 분명한 것이다.  

상관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다시 소설에 대해 말하자면, 소설[롤리타]의 처음과 끝은 롤리타를 부르면서 시작하고 끝난다. 오 롤리타!   

왜 그렇게 롤리타를 애타게 부르냐면 그녀는 화자 험버트의 딸이자, 애인, 첫 사랑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유일한 상대, 또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험버트는 앞서 말했듯, 첫 사랑에 상처가 있는 불행한 남자다. 12살 정도에 경험했던 첫 사랑은 그 열기가 체 가시기도 전에 소녀가 병으로 죽는다. 그리고 그는-결혼은 두 번이나 했지만- 평생 그 나이대의 여자애들에게만 사랑에 빠지게 된다. 

롤리타-본명은 돌로레스 헤이즈-는 두번째 부인의 딸이다. 처음부터 소녀의 엄마보다 소녀의 약간 천박하고 퇴폐적인 눈빛에 빠져 그 엄마하고 결혼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소녀의 매력을 질투한 엄마는 소녀를 계속 그에게 떼어놓으려 하고, 소녀가 캠프에 간 사이에 험버트의 일기장을 보고 만다. 롤리타를 찬양하는 내용이 가득 적힌 일기장을 보고 충격을 받은 소녀의 엄마는 우편물을 부치려고 달려나간 새에 사고를 당해 죽는다.(작품을 쓸 때 인물을 죽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 교통사고라고 했는데, 정말 유용한 팁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억눌렸던 험버트의 광기는 시작된다. 약간 퇴폐적인 성향을 가졌던 롤리타는 처음엔 장난으로 그를 유혹하지만 그런 생활이 몇 달, 몇 년간 계속 되자 성격에 이상이 생기고 삶에 의욕도 잃어간다. 그리고 그에게서 도망친다. 

사립 탐정까지 고용해서 롤리타를 찾던 험버트는 이상한 답변만 돌아오자 포기하고 평생 롤리타를 그리워하며 살려고 한다. 대답없는 이름을 부르면서. 그러나 몇 년 뒤, 롤리타에게서 편지가 온다. 아빠 전 결혼했어요. 임신도 했는데 너무 가난해요. 아빠가 돈을 주면 알레스카로 갈 수만 있다면 우리 가족은 대박날텐데! 아빠가 돈 좀 주세요. 뭐 이런 내용으로. 

소총을 갖고 간 험버트는 배가 이미 불러 있는 롤리타를 만나서 그녀에게 결국 돈을 주고 그간의 이야기를 한다. 그 동안 그녀는 퀼티라는 감독에게 영화에 출연시켜 준다는 말에 빠져 포르노 영화에 이용만 당하고 허름한 동네까지 오게 된 것이다. 험버트는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자신과 다시 풍족한 삶을 살지 않겠냐고. 그러나 그의 롤리타는 단호하게 그렇게 하긴 싫다고 말하면서 다시 퀼티가 불러주면 가겠다는 말을 한다. 험버트는 퀼티를 찾아가 소총으로 쏘아 죽인다.  

험버트는 파렴치한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격렬하고 자조적인 비애가 잘 표현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나쁘고 파렴치한 놈인지. 난 쓰레기야! 를 백만번 외쳐봐도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취향이 문제인 것이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것 처럼 롤리타를 사랑하는 것은 그에게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으니까. 끝이 보임에도 멈출 수 없는 사랑에 그도 어찌 보면 피해자인 것은 아닐까. 독자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고전의 반열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일방적이고, 거기에 광적이기까지한 사랑은 정말 모두를 힘들게 한다. 롤리타의 엄마와 그가 안 만났다면,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그가 롤리타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롤리타는 그렇게 불행한 임신과 결혼을 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딴 얘기....... 왠지 공공장소에게 이 책을 읽기가 민망했다. 친구에게 [롤리타]를 읽는다고 했더니 내용을 궁금해했다. 뭐 대충 아저씨가 어린 여자애들 사랑하는 얘기 있잖아, 했더니 그게 왜 고전이냐며 엽기다, 했던 친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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