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
성수선 지음 / 오픈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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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토요일 3개월만에 뿌리 염색과 커트를 하러 단골 미용실에 갔다.

예전에는 누가 머리 만져주는 걸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좀이 쑤시고 특히 근황 토크가 고역이다.

미용사가 머리만 잘 하면 된다지만 커트 한끝이 다른 짧은 머리 스타일도 아니고 어차피 ‘머완얼‘(머리 스타일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겐 한 때 실력은 있지만 너무 사생활을 캐내려하는 분에서 지금 선생님으로 바꾼 전력이 있다.

그만큼 마음에 맞지 않은 사람과의 근황 토크가 힘들다.

아무리 내가 돈을 내는 쪽이라지만 상대편은 가위를 들고 있으니... 미용실 가는 게 은근한 스트레스다.

지금 선생님은 크게 뭘 묻지 않는 담백한 스타일이여서 부담없이 내가 가져간 책을 읽기도 하는데, 이번에 고른 책이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 다.

에세이의 미덕은 머리를 식히면서 가만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루한 염색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이번에는 잡지 대신에 맛있는 에세이집을 골랐다.

먹는 이야기를 머리를 자르면서 읽으려니 몇년 전에 갔던 미용실에서의 일화가 생각났다.

경기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친구 추천을 받은 미용실에 갔다.

그 미용실로 말할 것 같으면 장사가 너무 잘 되서 다른 일을 하던 딸도 미용 기술을 배워 2대째 가업을 이으며 업계에서는 드문, 일한만큼 가져간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후진 양성까지 한다는 훌륭한 미용실이었다.

소문에 비해 커트 값은 합리적이었고 주인 모녀가 타는 차도 외제차로 바뀌었다는 소문에 백 퍼센트 믿고 간 미용실에는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예술적인 가위질보다 주인의 금가락지에 가게의 문전성시를 판별하는 나는 속물이라네.)

2세로 보이는 분이 내 머리를 잘라주며 크게 불쾌한 것 없이(이 기술이야 말로 서비스업의 꽃이아닐까) 내 신상을 조금 늘어놓게 됐는데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고 말했다.

˝닭갈비를 먹으러 춘천까지도 가면서 왜 머리 자르러 경기도까지 오는 게 이상해요?˝

그 말에 나는 천 안에서 손뼉을 짝 치며 그렇네요!라고 눈썹을 움직이며 격하게 동의했다.

그만큼 맛집을 찾아 방방곡곡을 다닌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게 참 이상하면서도 당연했다.

닭갈비 먹으러 춘천이야 갈 수도 있지. 그건 너무 당연한 게 아닌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작가가 ‘겨우‘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러 목포에 가고 쫄면 한 그릇을 먹으러 태백에 가고 순대를 먹으러 제주도까지 내려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한테 손에 꼽을 맛집 하나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니 나는 여태까지 뭐하고 살았나.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메뉴를 바로 말하지 못하다니 삼시세끼 먹고 살면서 대체 나는 뭘 했다는 말인지.

올해 여름 운동 대회를 나간다고 약간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하면서 한번 입맛을 잃었더니 이상하게 요즘은 뭘 먹어도 시큰둥하다. 건강해지자고 한 운동을 무리하게 했더니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져 버렸다.

그랬더니 디자이너 선생님이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말한다.

˝머리가 많이 빠지셨어요. 저번에 오실 때보다. 저번이랑 약도 똑같이 탔는데 약이 남았어요...˝

충격. 머리숱 만큼은 적지 않다고 자부해왔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지금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며 비오틴을 먹니 비타민을 먹니 검은콩을 먹니 비상상황에 빠져있는데...

˝몸이나 마음이 허할 때 우리에겐 가끔 진한 고깃국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깃국물을 처방해 주거나 사줄 친구가 필요하다. 힘없는 손에 수저를 쥐여 주며 어서 먹으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식당의 매출고가 객당 단가와 좌석 회전율로 결정된다면 행복한 인생은 좋은 친구들과 좋은 만남의 선순환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요즘 부쩍 지치고 힘없는 친구에게 고깃국물을 사주자. 당신도 누군가의 명의가 될 수 있다.˝ p.208

머리숱이 줄었다고 비관했던 게 시합 끝났다고 소고기 사주고 그간 금주 때문에 괴로웠겠다며 열심히 소맥을 말아주던 친구들 얼굴을 떠올리니 무척 낯 뜨거웠다. 머리숱 줄었다고 징징거리니 빈말이라도 잘 먹고 다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겠다.

확실히 행복한 돼지였을 때가 주변 사람들에게 훨씬 유들유들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시 건강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지. 스스로에게도.

책에는 작가가 애정하는 음식점에 대한 찬사에서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300페이지가 빼곡히 차 있다.

이쯤되면 음식 이야기는 약간 핑계인 것 같다.

제목처럼 먼저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로 밑밥(?)을 깔고 회사원으로서 사회생활의 꿀팁을 전수해주기도 하고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먹으면서 얘기하다 보면 어떤 얘기도 다 할 수 있으니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의 명문장으로 꼽히는 이 말은 자기계발서에 단골로 등장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간절함이나 열정도 중요하지만 ‘간단한 산수‘가 선행되어야 한다. 유명 모델의 사진을 붙여 놓고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 5킬로 그램 감량을 원한다면 일주일에 0.5킬로그램씩 10주 같은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책을 내고 싶으면 책상 위에 ‘베스트셀러 1위‘, ‘100만부 돌파‘ 같은 거창한 목표를 써놓고 간절히 원하는 대신 매일매일 일정한 분량르 써야 한다. 무엇을 하든, 간단한 산수가 먼저다.˝ p.81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처럼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하나 분명한 건, 우울할 때 먹는 음식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후회와 죄책감만 남을 뿐. 자꾸 싸구려 위로를 찾아 헤매지 말고, 감기처럼 우울한 감정도 지나가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면서.˝ p.191

˝편안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시며 낯선 여행지의 스타벅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만나는 순간 마음이 놓이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난 예측 가능한 사람이 좋다.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 어던 경우라도 최소한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 감정적으로 쉽게 동요하지 않는 사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쁜 남자‘ 따위 아무리 잘생기고 돈 많고 매력적이라고 해도 싫다. 앞에서는 까칠하게 굴지만 뒤에서는 챙겨주고 위해주는 ‘츤데레‘도 싫다. 피곤하다. 밀당같은 소모적인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p.229-230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어서 먹으라고 먼저 숟가락을 쥐여주는 사람이고 싶다.

사족 1. 결국 친구따라 간 그 미용실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부담스럽지 않는 미용사 님의 입담도 좋았고 확신에 찬 시원스런 가위질도 다 좋았는데... 층 많이 내지 말아달라는 내 주문에 레이어드 컷의 진수를 보여주셨다. 덕분에 머리는 가벼웠어요...

사족 2. ‘이름을 불러주세요‘ 꼭지에 나오는 마파두부 이름의 뜻을 읽고 너무 속상했다. 누구나 사랑하는 메뉴를 만든 대단한 사람이 죽어서까지 곰보로 불려야 하다니.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시기(90년대생 아님) 무려 학습 만화에서 나름 배려 있다고 생각한 아이가 빵집에 가서 곰보인 종업원에게 소보루 빵을 달라고 머뭇거리며 ˝소보루 누나, 곰보빵 주세요.˝ 라는 말이 버젓이 실려 있었다. 당시에도 좀 충격을 받았는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이게 무려 30년이 안 된 일이라니. 그런데 좀 발전하고 있는 건 맞나? 의문스럽다.

사족 3. 지금은 아마 종영했을텐데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진행했던 ‘캄브리아 궁전‘이라는 방송이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경제인들이 나와 그 분야의 동향이나 식견 등을 보여주는 매우 알찬 프로그램이었다. ([무취미의 권유]라는 책이 이 프로그램의 결과물인지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라카미 류의 비즈니스 잠언집‘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읽어보시길)

이상하게도 부동산 분야나 IT 분야의 고수들의 표정은 우리 본부장님보다도 근엄해서 신뢰는 갔다. 반면 빵공장 사장님과 프랑스 요리 쉐프의 표정은 너무 밝고 귀여워서 저 사람들이 비즈니스 전선에서 산전수전을 겪었던 사람들일까 의심되기까지 했다. 요리에 이상한 마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주방일이 굉장히 험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책에 나오는 유명 쉐프 왕육성 쉐프와 여경래 쉐프도 그 분들의 삶의 역경을 알기 전까지 너무나 인자한 인상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저 놀라웠다. 다시 요리에 취미를 붙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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