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의 힘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까지 사게 된 건. 일본 문학을 전공했다. 띄엄띄엄 공부하는 중에도 일본 근현대 작가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가 많아서 우울했다. 그 중 다자이 오사무의 예는 특히 이상했고 여자 입장에서 참 별로였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섯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는데 그 중 2번은 여성과 동반자살(한번은 시도)였다. 그러니 인간실격이 자전적 소설이 아닐 수가 있나. 


번역수업에서는 저작권이 없어지고 다작한 작가를 선정해야해서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작을 몇 편인가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우울한 인생 이력과는 달리 의외로 재기발랄한 글이 많아서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세련되고 현대적이기까지. 작가의 삶을 아는 게 글을 읽는 데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은데 특히 다자이 오사무의 경우는 더 그랬다. 글에서 어쩐지 슬픈 뜻을 숨기고 있다던가, 아 이런 경험이 이 사람을 약하게 만들었나 따위의 추측을 하면서 읽게 되서 순수하게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한학기 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소설들이 이제는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때 받은 인상만 기억하고 있을 뿐. 하지만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고 어찌어찌 졸업한 땡보 대학생활 보낸 사람의 반성인지 때때로 수업시간에 접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어라도' 읽겠다는 교양인 바람이 불곤 하는데, 언제나 열외였던 작가인 다사이 오사무의 책을 이번에 왕창 사게 된 건 굿즈와 이토 준지의 힘이었다.


[토미에]와 [소용돌이]로 유명한 이토 준지 만화를 중고딩 시절 벌벌 떨면서 봤고 오랜만의 신작에 큰 기대를 하며 오랜만에 만화책을 구매했다. 결과는 만화쪽이 대만족이다. 간만에 좋은 작품을 읽어서 너무 행복했다. 분위기는 몹시 괴기스럽지만. 요조의 공포를 이렇게 잘 표현할 작가가 이토 준지 말고 또 있을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노트의 일러스트는 만화책에 있는 것 몇 장이고 이토 준지 작가의 말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약간 실망하리라~)



















전부터 소와다리 출판사의 인간실격을 사볼까 하는 의사는 있었다. 우선 옛날 감성 그대로인 표지 디자인도 맘에 들었지만 그보다는 거의 한 권 가격에 한국어판 일본어판을 준다는 경제적인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였다. (mp3 파일도 제공한다는 메리트도 있지만 낭독 파일까지 다운받을 열의는 없고...) 하지만 마카롱 색을 뿜는 라벤더 노트에 이끌려 민음사의 인간실격까지 구매했다. 확실히 민음사 쪽이 가독성이 훨씬 좋다. 세로 읽기에 원서랑 같이 쉼표를 그대로 살린 소와다리 버전보다는 읽기가 수월하다. 딱히 번역 비판에 열의가 없는 사람이라 제대로 비교해보진 않았으니 구매에 크게 참고할만한 건 아니지만. 일단 표지도 에곤 쉴레 그림이 소설의 내용에도 딱이다. 참 신기하네. 


아무튼 소설 [인간실격]은 결론적으로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왜 이렇게 많이 팔리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알만하다고 생각했다. 공복감을 느끼면서도 힘든 식사시간을 보내는 요조, 인간이, 인간의 위선이 무서워서 일부러 익살을 떠는 요조, 본인의 광대짓을 들킬 때 가장 큰 공포를 느끼는 요조, 속이는 것이 부끄러운 요조, 싫다는 말을 못하는 요조,... 그런 면들이 끝내 타락의 길로 빠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런 자기연민이 불편한 건 왜일까. 게다가 자신에게 이상하게 여자가 꼬인다는 자아도취까지... 여러모로 참 안 맞다. 거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걸 알아서 그런가 본투비 자본가로 태어나서 너무 징징거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절제 안 되는 생활로 주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도 자기 감정만 소중한 꼴이라니. 그냥 시원하게 방탕하게 즐기든지 죄책감을 갖지 말든지 한 가지만 하지.


정신 병원에 까지 갇히는 상황에 가기까지 인간으로서 실격이라는 자각을 못 하는 자기 인식이 황당할 정도다. 물론 가까운 사람한테 속았다는 배신감이야 엄청나겠지만. 같이 죽자는 여자와 하루만에 같이 죽기로 하거나, 착한 담배 가게 아가씨와 어영부영 결혼을 해버리거나 같이 있으면 즐겁지도 않은 친구와 어울리며 술과 약에 취해 있는 걸 모두 거절 못하는 성격 탓이라는 요조는 결국 정신 병원에서 그 무서웠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요조는 큰 형의 명령에 따라 시골로 요양을 가게 되고, 요조는 여전히 어릴 때 처럼 하인들에게 능욕당하는 등의 굴욕적인 삶을 이어가지만 이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멍청하게 살아간다고 수기로 고백한다. 요조를 잘 알았던 바 마담은 요조를 참 착한 아이로 기억하며 그 아버지가 나쁜 게 아니냐고 혀를 찬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자기 연민적인 고백이 힘을 갖을 수 있는 건 역시 솔직함이다. 나약하고 못난 자신도 잘못이 있지만 결국 가장 화났던 일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난 일이라고 말하는 솔직함. 쪽팔려서 말도 못할 기둥서방 생활도, 자기 집에서 주는 돈 아니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여자에게 차 한잔 살 돈도 없는 처지 같은 것도 쓰는 솔직함. 솔직한 건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이상하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니까. 


그나저나 이런 책임감 없는 귀여운 남자에게 끌리는 위기의 여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좀 슬프다. 요조는 아무래도 이상하게 자신에게 여자들이 꼬이는 저주가 걸렸다지만 끼리끼리의 법칙으론 그저 비슷한 정신 세계를 가진 여자들이 많았다는 말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어느 작가가 다자이 오사무가 부럽다는 칼럼을 썼던 것 같은데 출처를 찾을 수가 없다. 요는 살아 생전이나 사후나 여자들에게 인기가 그렇게 많은 작가는 없었다 였다. 꽤 이름 있는 작가였던 것 같은데 결국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던 게 부러웠던 걸 보면 명예보다도 본능이 더 중요한 게 인간인 듯.  


어쨌든 밑줄긋기.


'시게코만은'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이 아이도 '갑자기 쇠등에를 쳐 죽이는 소꼬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뒤로는 시게코한테조차도 쭈뼛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p.91)


이토 준지는 이런 공포스러움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인 건 확실하다. 평소 작품에 나오는 남자들도 하나같이 다 병약하게 생겼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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