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태평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친일지주일 것이다. 큰 욕심 없이 지신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그 삶이 부럽기는 하겠지만, 따라하고 싶지는 않았다. 계속 생기는 여러가지 작은 욕심들 때문에 고민스럽고, 남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남스럽고, 자신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하고... 정말 유쾌 상쾌 통쾌한 소설이다.
귀하게 자라던 어린 도련님 집안이 망하고 난후, 첫 직장으로 시골 학교 교사로 일하게 된다. 철 없고, 세상물정 모르고, 싸기기까지 없는 도련님은 그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갈까? 1890년대 일본 사회는 순수하지도 질서정연하지도 않다. 그런 세상을 향한 도련님의 행보는 거침없다. 그래서 유쾌하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도 미쳤고, 세상도 미쳐서, 날씨까지 미쳐버린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게 포장을 해도 구린내가 나는 것을 완전히 없앴 수는 없다. 그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어쩌면 약간 식상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강력한 문학적 상상력과 함께 결합해서 살펴보면 깊은 통찰력을 줄수도 있다. 남미 민중을 중심으로 한 시각도 독특하고 좋았다. 조금 중언부언 하는 점만 빼면...
1950년대 이탈리아 빈민촌에서 살아야 했던 10대들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과 소통했을까?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생생하고 솔직하게 소설로 그려냈다. 쓰레기와 배설물이 널려있는 곳에서 뒹글어야 했던 그들은 그 세상 그 자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훔친 돈도, 폭력과 섹스도, 사랑도, 어렵게 찾아온 안락한 삶도, 정치도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못했다. 어둡지 않게, 교훈적이지도 않게, 크게 감동적이지도 않게, 애써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는 빈민촌 청춘의 삶이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와서 살아왔던 10여 년의 삶은 신기하고 고통스럽고 가슴벅찬 삶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온 나라에서 겪은 무수한 경험은 자신을 돌아보게 했고, 한국과 방글라데시를 생각하게 했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활동가, 영화 연출가 겸 배우이기도 한 마붑 알엄의 얘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젊은이와 꿈과 도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