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끝 제주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 김수열이 있습니다. 4.3의 절규를 얘기하면서도 아이들 속에서 희망을 노래합니다.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그 동안의 삶을 조심스럽게 돌아봅니다. 이런 저런 조심스러움 속에 지하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들어서다가 천장 들보에 정수리를 박치는 순간 “그래 나, 크다”라고 외칩니다.
평택에서, 기륭전자 앞에서, 광화문에서, 용산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에서나 달려가는 시인이 송경동입니다. 몸이 먼저 달려가서 뜨거워진 가슴으로 시를 씁니다. 그렇게 쓴 시들에는 심장 박동소리가 들립니다. 때로는 뜨겁게 뛰기도 하고, 때로는 차분하게 뛰기도 합니다. 그런 시들을 읽고 있으면 내 심장도 뜁니다.
고골의 매우 유쾌한 희곡입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암행 검찰관이 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온갖 구린내가 많은 이들이 안절부절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정보력을 동원해서 작당을 벌이고, 나름대로 근엄하고 치밀한 연극을 진행합니다. 타락한 관료사회에 대한 조롱이 매우 경쾌하게 벌어집니다. 한마디로 웃겨요!
아프리카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약간의 설레임을 준다. 뭔가 신비감을 주는 듯하면서도 색다른 이국적인 맛을 줄거라는 선입견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치누아 아체베는 이런 선입견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이지리아에서 영국 유학을 마친 청년이 그곳의 삶에 적응해하면서 타탁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한국의 소설에서도 흔히 보여줬던 얘기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현실적이고 보편적이다. 식민지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지식인의 삶은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조금씩 기울어져가는 과정이다. 나이지리아나 한국이나...
히틀러와 함께 나치즘의 대표적 선전 선동가였던 괴벨스의 삶을 세밀하게 추적한 평전입니다. 혁명의 반혁명의 혼란의 시기 속에서 나치즘은 어떻게 성장을 했고, 천제적 선동가였던 괴벨스는 어떻게 권력의 중심으로 떠올랐는지를 비판적이면서도 차분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악마가 아닌 인간 괴벨스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의 내면과 시대에 대한 추적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방대한 분량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내면과 권력과 시대의 초상이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