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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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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쯤 이었던 것 같다. 벌써, 13년 전, '동물농장'과 '1984'를 읽고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전해인가, 그 해, <동물농장>이 논술시험에 등장해 이슈가 되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읽어볼 수 있었다. 꽤 지났지만, 그의 상상력과 시대를 바라보는 날카로움, 세밀함에 감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왜 쓰는가>를 만나게 되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개인적인 생각과 주관, 통찰력을 잘 알 수 있다. 작가의 취향까지도 말이다. 조지오웰의 몇 편의 소설에서 느꼈던 날카로움은 에세이에서도 잘 나타나 있었다. 그는 세인트 시프리언즈 예비학교시절 공부는 잘했지만, 억압적인 학교 생활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버마에 인도 제국경찰로 근무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도 보여지듯, 그는 그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경찰을 그만 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코끼리를 쏘다>라는 에세이를 보면, 버마 경찰로 부임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훔쳐볼 수 있다. 코끼리를 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는데도,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중의 심리에 밀려 코끼리를 사살하게 된 조지 오웰.  

나는 내가 코끼리를 쏜 게 순전히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한 짓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 42p 

인간의 모순과 한계, 그것은 곧 제국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보여주는 작지만 큰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경찰을 그만 둔 후, 노숙자, 접시닦이 등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고 방송국 직원, 중등학교 교사, 헌책방 직원 등을 전전한다. 그 직업들 속에서 그가 써온 에세이들은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그러한 에세이들 중에서 29편을 묶은 것이 바로 이 책.  

그는 파시즘에 맞서 의용군이 되어 싸웠고, 영국의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의용군으로 스페인전에 참전했지만, 부상을 입고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영국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것은 <영국, 당신의 영국>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집안에는 비굴하게 아첨을 떨어야 하는 부자 친척도, 끔찍이 들러붙는 가난뱅이 친척도 있으며, 집안의 수입원에 대해 함구한다는 단단한 공모가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좌절을 겪고, 실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삼촌들이나 몸져누운 숙모들  손에 있다. 그래도, 집안은 집안이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공통의 기억이 있으며, 적이 다가오면 단결한다.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 - 영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107p 

공공연하게 부패와 타락이 계속되고 있으며, 허상과 가면을 쓰고 우아하게 구는 자신의 나라를 날카롭고 실랄하게 비판한다. 비유와 상징 속에서 풍자와 해학을 일삼으며, 좌로 우로 넘나드는 그의 비판은 무섭기까지 하다. 과연, 이시대를 살고 있는 지식인들은 이렇게 쓴소리를 하고 있는지, 문필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는지 반성까지 해보게 한다. 

전쟁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에서 그가 말하는 전쟁의 진실과 거짓. 결국, 거짓이 진실처럼 역사적 사실로 남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은, 스페인에만 적용되는 말같지는 않다. 이미, 전쟁 속에서 많은 왜곡과 거짓, 그것들이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미 기록된 진실된 역사마저 사실이 아닌 것처럼 바뀌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런 것들이 나로서는 대단히 두렵다. 이 세상에서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간다는 들곤 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그런 거짓들이, 아니면 그 비슷한 거짓들이 역사가 되어버릴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스페인내전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기록될까? 프랑코가 권좌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가 지목한 이들이 역사책을 쓸 것이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있지도 않았던 러시아 군대가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며, 학생들은 앞으로 그렇게 배울 것이다. 반대로 파시즘이 결국 패배하여 꽤 가까운 미래에 스페인에서 모종의 민주 정부가 회복된다면, 그때는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까?....(중략).... 아무튼 결국엔 '모종'의 역사가 기록될 터인데, 전쟁을 실제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그 역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온갖 실리적 목적을 위해 거짓은 사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 - 148p 

진실을 말하는 힘, 세상을 보는 통찰, 그리고 그 안에서 상황을 고찰하는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글을 쓰는 이가 어떤 자세를 갖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글로써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경험했던 모든 역사 속에서 나온 진실이리라. 부패와 타락, 부조리를 보아왔으나 수긍할 수 없었고, 힘있는 권력으로 자신을 감싸운 조국에 굴복할 수 없었고, 자신의 신념인 사회주의도 비판적인 자세로 보아왔던 조지 오웰.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거의 다 조립식 장난감 세트의 부속처럼 맞추어진 구절들로만 이루어진다. 그것은 자기 검열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솔직하고 힘 있는 글을 쓰려면 두려움 없이 생각해야 하며, 두려움 없이 생각하게 되면 정치적인 통념을 따를 수가 없다. 통념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는 동시에 너무 심각히 받아들여지지 않던 '신앙의 시대'에는 달랐을 것이다. 그런 시절에는 개인의 사고 영역 중 많은 부분이 그가 공식적으로 믿는 바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 있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 223p 

글쓰기에 대한 그의 신념이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풍자와 위트까지 갖춘 그의 글. 역사의 중심에 서서, 역사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다른 역사를 만든 것은 글의 힘이었다. 조지 오웰의 글의 힘은 대단했으며, 많은 반성을 하게 했다.  

그가 묻는다.  "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글쓰는 모든 이들에게 그 물음은 돌아간다. "당신은 왜 쓰는가?" 
글 속에 행동을 담지 못하면, 그 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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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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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책을 읽을 자유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가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자신이 필요한 생각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고, 읽고 있는 책이 쌓여 생각의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책은 늘 곁에 있지만, 책장을 여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책장을 여는 순간 새로운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한다. 

로쟈, 이현우 씨의 신간이 나왔다. <책을 읽을 자유>. 책 한 권에 몇 권의 책이야기가 있는지,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방대한 양과 생각, 책에 대한 평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십년 동안 써 온 서평이라고 하나, 서평 하나에 책 한 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서평 하나의 길이가 구구절절한 것도 아니다. 스마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 가끔은 얄미울 정도로 책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자제한다. 그 책으로부터 얻은 생각만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의 서평들을 읽으면서, 내가 쓰는 서평 방식도 돌아보게 되었다. 구구절절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그처럼 생각을 정리하고, 몇 권의 책을 묶어 간결하고 단정하게 말하는 방법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떨지. 

그가 소개한 책은 거의 인문학이다. 간혹, 문학도 있지만 그것도 고전이다. 생각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 다는 듯, 성찰과 비판도 따라야 한다는 듯, 그의 거침없는 넘나듦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러 권'입니다. 우리가 좀 '덜 비열한 인간'이 되거나 더 나아가 '비열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면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 다수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인생이 아직도 비열한 인생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가 '책만 읽어서'가 아니라 '책을 덜 읽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충분히 읽지 않아서'라고 말해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 17p 

'비열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읽었던 것일까? 아직도 '책을 덜 읽었고', 아직도 '충분히 읽지 않아서' 계속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태자면, 아무리 매일 매일 책을 읽어도 '완변하고 충분히 읽었다'라는 마음은 갖지 못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책은 쏟아져 나오고, 또 이미 발간되었지만 읽지 못한 책이 많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반영하듯, 한 주제가 끝나고 나면 '로쟈의 리스트'가 간간히 등장한다. 읽고 싶은 책의 리스트들. 그것만해도 언제 다 소화될지 모르는 책들. 그에게 책을 읽을 자유는 끝나선 안되는 절대절명의 사명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읽은 책들, 읽고 나서 여기 저기 기고했던 글들이 모이니 작은 주제로 묶일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을 자유>에서는 책 읽기와 글쓰기, 교양, 고전, 행복, 인간의 본성, 고통, 정치, 사회, 역사, 폭력 등 방대한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의 스펙트럼은 번역에 대한 아쉬움과 비인기 책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책을 읽을 자유>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는, 책에 대한 내용이나 이 책이 좋다 나쁘다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다.  책을 읽고 다른 시각,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사유를 도와주는 것이다.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 그래서, 그의 책읽기를 자꾸 쫓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안나 카레니나'를 이야기하며, 행복의 의미를 논한다. 갖고, 갖고, 갖고를 반복하고도 행복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과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또한 '흰쌀밥에 고깃국'만 먹어도 행복하겠다는 시절이 있었지만, 그 몇 배를 뛰어 넘는 풍요에 도달하고도 아직도 행복을 좇고 있다면 우리의 '행복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사유 말이다.  

우리가 적어도 북한보다는 더 낫다고 으스대고 싶다면, '무지개 너머'를 좋는 일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따. '주홍글자'의 작가 호손은 이렇게 말했따.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너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 - 97p  

또한, 시대적인 흐름도 간과하지 않으며, 정치적인 생각도 가감없이 말한다. 권력에 대한 책을 읽고 쓴 서평에는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미국에 대한 우리 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돈'과 '권력' 그 거대함에 복종하는 세계(우리나라를 포함)에 책을 빌어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경각심, 무비판적인 태도, 맹신하는 습관 등을 바꾸기 위해선 책을 좀 읽어주시길 이라고 돌려 말하고 있다. 

책 속에 완벽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 속에 철학과 사유, 성찰, 사건 등이 섞이고 머릿속에서 소화되기 시작하면, 자기만의 주체성을 갖게 된다. 그것은 무서운 폭발이고, 자아를 다시 꾸려 나갈 수 있는 힘이다. 책의 작은 날개짓이 세계를 뒤흔드는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읽은 책은, 그런 힘을 충분히 갖고 있는 것 같다. 지속적으로 생각을 다듬어 나가는 것, 그것은 '책을 읽을 자유'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계속되는 물음,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한 노력. 그것들이 책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책 안에 많은 답안들이 모여, 생각의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책벌레 이현우 씨의 생각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을 자유>의 가치는 크다. 하지만, 그가 읽은 책들을 훑고, 내가 책을 읽을 자유를 제대로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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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기 2011-11-16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읽을 자유"로 검색하다 이 글을 발견해서 제 블로그 글에 링크했습니다. 먼저 알리지 않고 히여 폐가 된다면 말씀해주세요. http://livros.tistory.com/11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역사는 왜곡 되기도 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배우기도 합니다. 아주 중요한 역사가 한 줄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진실인 줄 알고 배우는 역사는 알고보니 거짓말일 때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에는 어떤 진실이 담겨져 있을까요? 제발,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거짓말 말고요. 

 

 

 

  

 

전작 <나의 권리를 말한다>를 읽으며, 나의 권리에 대해 세세히 알 수 있었죠. 생활 속에서 모르고 지나치는 권리들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이제, <너의 의무를 묻는다>라고 합니다. 권리를 알았다면, 의무도 알아야겠죠?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자, 이제 우리의 의무를 공부해봅시다. 피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어요. 의무도 권리만큼 중요하니까요. 

 

 

 

 

 

 

4천원 인생을 읽으며, 그 처절함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노동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몸값 1000만 달러의 기자가 식급 8유로의 청소부로 살며, 그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고 합니다. 불안정한 삶 속에서 그가 느꼈던 많은 것들을 생생하게 듣게 될 수 있겠죠. 궁금합니다. 고작, 180일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그녀가 겪은 것들은 우리에게 반성을 가져다 줄 테니까요. 

 

 

 

 

 

대추리는 잊혀져 버린 것입니까? 벌써 7년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대학에 다닐 때, 들었던 마을 이름입니다. 이제는 잊혀져 버린 것입니까? 우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준 걸까요? 이제 다른 마을에서 다시 시작하는 그들. 그 지난한 기록들은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늦게라도, 이러한 보고서가 나왔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현대인이야말로 원시인이 아닌지요. 모든 것을 갖고도, 모든 것을 갖지 못해 안달하는 단순, 무식한 사람들. 정말 원시인으로 사는 어떤 부족들은 순수하고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잘났다고 떠드는 현대인이야말로 겁도 많고, 공격적이고 우스꽝스럽습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나를 잘 알아야 우리 후손들에게는 '원시인'으로서의 삶을 물려주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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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지니님. 11월 신간 주목도서는 10월 출간도서중에서 고르는 걸로 되어있는데요. 추천하신 책 중 3권이 11월 출간도서네요.

청춘의반신상 2010-11-05 09:27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수정해야 겠네요. 한 달 내의 도서라고만 생각했어요. ^ ^
 
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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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쓰레기 더미에서 잠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미 인간답게 산다는 말을 버린지 오래다. 그저 고된 노동과 매서운 폭력을 피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을 원할 뿐이다. 얼어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아버지에게 맞아죽는 것이 두렵다. 폭력이 두려워 인간답게 자는 것을 포기한 제이크. 이 아이가, 또 다른 한 아이를 만난다. 구두를 잃어버린 로사. 아니 새로운 구두를 원하기에 쓰레기 더미에 구두를 버리고 갔던 아이. 이 둘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어버리면 날 대리지도 못할 거고, 술 마시려고 내가 번 돈을 몽땅 훔쳐가지도 못할 거고, 그리고 돈을 더 벌어오지 않는다고 또 때리지 못할 거야. - 8p  
   

제이크의 생각이다. 그를 때리는 것은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술값을 대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일을 해도 굶주림에 시달리고, 씻지 못하고, 맞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일상에서 파업이 시작된다. 얼떨결에 참여하게 된 파업. 그 속에서 아이는 또 다른 고통을 경험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언니와 엄마는 공장에 다니는 로사. 그녀는 공부만이 새로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선생님에게 주입된 신념은 파업은 나쁜 것이라는 것. 하지만, 엄마와 언니는 파업을 한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모른 상황에서 주입된 신념은 그녀를 혼란에 빠뜨린다. 무조건 파업을 반대하고 나선다. 파업을 하면, 가족 모두가 배고파질 거라는 생각, 파업을 하는 자체가 나쁜 거라는 생각.

   
  "제발, 엄마. 엄마랑 애나 언니는 파업하면 안 돼요. 다칠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폭도들이 난폭해질 거라고요."
로사는 차마 자신의 진짜 생각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우린 뭘 먹어요? 집세는 어떻게 내고요?
"로사 알겠니? 저들은 주급에서 두 시간만큼 임금을 깎겠다는 거야. 그건 우리에게서 빵 다섯 덩어리가 사라진다는 소리야. 일을 해도 내 자식들이 배를 곯고, 파업을 해도 내 자식들이 배를 곯지. 내가 뭘 하든, 우리는 굶주리는 거야. 일하고 굶느니 싸우고 굶는 게 낫지 않겠니, 응?" - 42p
 
   

엄마와 언니는 일을 하고도 굶주리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온몸을 바쳐 일하고도 공장주만 배부르는 세상에 사는 것이 너무나 신물나는 것이다. 하지만, 로사는 이해하지 못한다. 굶주림을 걱정하면서도 새로운 구두를 갖고 싶은 로사. 그녀에게 '빵과 장미'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그런 삶을 꿈꾼다는 것을, 로사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깨닫게 된다.

제이크는 파업이 길어지면서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도둑질을 하게 된다. 거리를 떠돌게도 된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집에 들어가면 술에 쩔은 아버지의 매질만 기다리고, 밖을 떠돌면 춥고 배가 고플 뿐. 어떤 현실적인 대안도 없는 제이크는 사회의 피해자다. 도움을 요청할 이도, 도움을 줄 이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성당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고도, 그 돈으로 아버지에 술을 사는 종속적인 삶. 그렇게 살아왔기에, 어떤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에 어린 아이는 부모의 노예가 되었다. 제이크는 탈출하고 싶다. 그리고 마침,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아이들을 '뉴욕'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노동자일 뿐, 노동자의 아이가 아니다. 이 참담한 삶을 벗어나고 싶은 제이크는 떠나고 싶어 한다. 그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모든 것이 자신이 사다준 술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아이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 로사의 뒤를 밟아 기차에 올라탄다.

그들이 당도하게 된 것은 버몬트. 첫 번째 목적지와 다른 곳. 제이크는 어떻게든 뉴욕으로 가 새 삶을 살겠다고 하지만, 버몬트에 도착했을 때부터 쉽게 떠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가정 안에서 다른 삶이 시작된다. 거짓말로 많은 것을 숨겨야 하는 로사와 제이크의 생활은 위태위태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따뜻한 말, 따뜻한 잠자리, 따뜻한 위로. 결국, 상처받은 제이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 하지만, 거짓말이 탄로나면 쫓겨나고 큰 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제이크. 그런 제이크를 안쓰럽게 생각해 거짓말을 자꾸 해주게 되는 로사. 그들의 우정 사이에, 제르바티 씨가 있다. 아들을 잃고 상처받은 제르바티 씨는 제이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 희망을 얻는다. 제이크 또한, 행복을 누릴 권리를 선물 받는다.

'파업'이라는 소재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 고통받는 아이, 가족들. 그들은 인간다운 삶을 원했을 뿐이다.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원했을 뿐, 근근히 버텨가는 삶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원했을 뿐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하지 않은가.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힘을 주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얻고. 이루어내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빵과 장미' 모두를 얻을 수 있었다. 힘을 합하다.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 과정. 인간과 인간이 연결된 끈까지도 느낄 수 있다. 

100년 전의 파업. 파업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 안에서 풍기는 따뜻함. 희망. 이런 것들 이외에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빵과 장미의 싸움을 돌아보게 한다. 시대가 흐르고, 예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더 나은 삶이 아님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빵을 구하지 못해 굶주리는 일은 계속 되고 있으며, 장미향을 맡을 여유나 희망조차 없는 이들은 많다. 우리는 제이크와 로사, 버몬트 마을 사람들, 제르바티 씨처럼 서로 연대해야 한다. 상처를 쓰다듬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빵과 장미'의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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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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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있어도 부족한 게 돈이라지? 사람 마음이 그런 것인지? 아님 이 물질로 가득찬 소비 세계 앞에서 욕망을 억누르기 힘든 것인지. 종종 '돈'으로 인해 생겨나는 일들은 인간의 존엄마저 무너뜨리곤 한다. 나 또한 '돈' 앞에서 자유롭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곳곳이 돈이며, 시간 시간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유쾌한 입담꾼, 인문학자,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 그녀의 유쾌발랄한 비판이 '돈'에까지 와닿았다. 한 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된 이 기획은 '돈'의 욕심과 탐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반성이라면 반성이랄까? 하지만, 쉽게 돈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에서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경제 교육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돈, 돈, 돈'이 판치는 세상이다. 땅 한 평도 돈으로 환산된다. 얼마나 더 많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을지에 따라 위로 위로 뻗어나가는 건물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900원 짜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인들은 수백만 원도 넘는 가방을 뽐내고, 빚으로 산 집을 뽐내며 대출금 때문에 허덕이고, 뭘 하고 싶어서 돈을 번다기 보다는 돈을 소비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세상. 이러한 상황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이러한 비판이 더 설득력 있었던 이유는, 그녀야 말로 '돈'을 제대로 쓰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비'는 그녀가 말하는 '순수증여'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욕심과 욕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욕망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도통 쉬워보이지 않는다. 

   
  자본은 화폐의 그와 같은 속성을 극단화한다. 돈이 돈을 낳는 것, 생식하는 화폐, 그것이 곧 자본이다. 자본은 자기 가치를 증식하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특히 금융자본은 이런 화폐의 ‘속성’을 최고의 형태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미다스 왕의 오래 전 예언까지 실현하고야 말았다. 금융자본은 한마디로 버블경제다. 버블이란 거품이요 신기루다. 다시 말해, 산업자본이 가지고 있었던 돈과 인간, 돈과 살림 사이의 최소한의 연관관계도 해체해 버렸다. 마침내 대지가 사라진 것이다! 어떤 목적도, 방향도 없는, 그리고 휴식조차 없이 무한을 향해 달려가는 화폐, 금융자본! 하여, 이 자본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순환계를 파괴하고 잠식해 버린다. 정신분석에서 죽음 본능이 하는 역할, 병리학에서 암세포가 하는 역할을 삶 전체, 세계 곳곳에서 수행한다. 요컨대, 자본과 생명은 본래적으로 정반대의 벡터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 필시 존재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 – 67~68p  
   

화폐, 이것이 부른 공포와 재앙. 갈곳 잃은 멧돼지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것은 멧돼지가 포악해서가 아니다. 그 깊숙한 곳을 파헤치면 결국 '신자유주의'가 파헤쳐놓은 자연, 망가져버린 생태계가 있다. 곳곳에서 파헤치고, 짓고 올리고, 팔고 돈을 불리고. 그것이 다 인 것처럼 모두가 재앙을 쫓는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멧돼지'라는 동물은 자본에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 뿐인가. 여기 저기 삽질을 해대며 파헤치고 있는 강바닥의 재앙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개발만이 경제를 살리는 길인지 정확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분별하다. 그것은 다 '돈' 때문임을 우리는 한다. 하지만, 막지 못하고 있다. 갈등 때리고 있는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한다면, 손에 돈을 쥘 인간들이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개발로 땅 값이 오르고, 개발로 건설사가 배를 불리고, 개발로 경제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거라는 착각에 빠지고. 결국 그 '돈'의 망령은 아이들의 소비행태까지 잠식해 나가고 있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가 '외식'이 아닌 '회식'이 된 세상이 왔다. 정말 부모들은 등골빠지게 돈을 벌어도 모자랄 판이다. 초등학교만 입학하면 양손 가득 안겨줘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휴대폰도 마련해 줘야지, 생일 파티는 물론이고, 방학 때마다 돈으로 덕지 덕지 칠한 캠프도 보내줘야지. 남들 하는 거 다해주다가 지쳐 쓰러진다. 더 웃긴 건 아이들은 감사해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사랑으로 느끼지도 않는다. 그냥 부모로서의 의무이다. 일반화된 아이들의 생활에 맞장구 쳐주지 못하는 부모는 능력없는 부모일 뿐이다. 그게 서러워 빚이라도 내서 키운다. 그야말로 행복과 평화는 '돈'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사람이 오면 더불어서 많은 것이 함께 온다. 밥과 공부, 그리고 또 다른 사람과 활동, 기타 등등. 현대인은 이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러니 평생 죽어라고 벌어도 항상 모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인복으로 해결한다면? 돈을 버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 151p  
   

그녀는 가까운 예로 <수유+너머>에서의 돈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밥과 공부를 함께 하며, 사람과 함께 '돈'의 필요함을 채우는 공동체. 돈의 노예로 살지 않고, 돈을 나누며 사는 공동체. 이것은 정말 유익하고 필요한 롤모델이다. 조금씩 조금씩 느리지만 천천히 이러한 공동체가 생겨난다면,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쉽게 벌고 싶은 돈'도 많은 문제를 자아낸다. 고생은 하기 싫고, 돈은 벌고 싶고, 뭘 해서 벌어야 하는지는 모르겠고. 고생은 피하고 싶은 현대인들, 대학에서 죽어라 토익, 토플에 집중해 대기업에 들어가면 재미없는 일을 하며, 무차비한 경쟁까지 견뎌내야 한다. 무조건 견뎌야하는 '직업'은 절대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비교적 돈을 많이 벌 수 있기에 견딘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우리 사회에도 절대 유익한 에너지를 줄 수 없다.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돈'보다 '재미', '즐거움', '행복'에 집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생의 핵심은 몸이다. 생각은 가능한 한 내려 놓고 몸을 주로 써야 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몸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그러면 그 에너지를 주로 정신적인 데 쓰게 마련이다. 여기서 태과/불급이 발생한다. 안 써도 되는 심력을 지나치게 쓰게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중적으로 어긋난다. 몸은 너무 안 써서 탈이고, 머리는 지나치게 골몰해서 탈이고, 결국엔 몸과 마음 둘 다 파탄에 이르고 만다. 실제로, 요즘 청년들은 거죽은 멀쩡한데 속은 다들 곯았다. 성인병, 노인병이라 할 것들을 이미 10대, 20대에 앓고들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생을 피하려고 몸부림치는데, 이건 정말이지 ‘작전미스’다. 거꾸로 해야 한다. 고생살이를 기꺼이 해야 이 모순들이 해소된다. 몸이 수고롭게 되면 마음은 절로 쉬게 된다. – 83p  
   

위부터 반성을 해야 아래도 변화할 텐데. 아니 아래가 변화해야 위가 반성하는 것일까? '돈' 때문에 거꾸로 가는 사회에서 무엇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점점 삭막해져 간다. 우리는 안다. 돈이 행복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을.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알면서 놓지 못하는 그 물질. 그것이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처에서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미숙 선생님은 언제나 이러한 반성을 끌어낸다.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킨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소유로부터 벗어나건 소유의 현장으로 들어가건,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유다! – 소유에서 자유로! 존재의 무게중심을 이렇게 옮겨 놓을 수 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순수증여라는 ‘비밀지’에 도전할 수 있다. – 194p  
   

물질 안에서 의식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태연해질 수 있다면. 내 것을 '우리'의 것이라고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돈의 순환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을까?

부록에 등장하는 친구들을 보며 어렴풋이 답을 알 것 같기도 하다. 44만 원에 행복해하는 김해완은 돈에 미래를 두지 않고, 자신에게 미래를 둔다. 44만 원으로 유쾌하게 사는 방법을 궁리한다. 시성의 보리기금 보고서는 '돈' 자체를 뿌듯하게 만들어준다. '돈'이 진정한 능력을 뿜는 것은 역시 '소유' 보다는 '자유'라는 말이 공감가는 부분이다.

   
  우리가 삶에서 하는 모든 일은 우리에게서 비롯된다. 재충전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신을 비우고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빈 그릇이 되는 것이며, 한쪽 손을 들고 축복을 받은 후에 다른 손을 열어서 그것을 통해 그 축복이 다른 이들의 삶 속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베어 하트,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1999, 298쪽) – 200p  
   

삶도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해야 잘 굴러간다. 꽉꽉 눌러담기만 하다가는 언젠가 '뻥'하고 터져버린다. '돈'도 마찬가지 아닐까? 축적하여 뽐내는 '돈'은 무가치하며, 재미없다. 자신에겐 한없이 사치스럽지만, 나눔을 모르는 사람은 탐욕스러운 돼지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돈'에 대한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할지 모른다. 돈으로 창조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삶. 그것을 꿈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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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6:39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