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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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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애매할 때가 있다. 과연 도덕적인가? 도덕적이지 않은가?라는 논란을 두고 말이다. 도덕을 중시하라는 정부는, 가장 도덕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고.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보수주의와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앞장서서 부도덕한 일을 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끝나지 않을 도덕 이야기는 네버 엔딩 스토리로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사람들은 공공의 도덕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과연 개개인은 도덕적으로 살고 있을까? '신정환'이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 과연 대중이 바라는 도덕이란 무엇일까 의문을 가졌다. 공인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기대감 때문에 그를 비난한 것인지, 아니면 도박 자체가 도덕적이지 않아서 비난한 것인지.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그리고, 도덕이라는 관념은 지켜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사적인 결정권에도 많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곤 한다. 낙태를 허용하느냐, 마느냐는 생명을 보호해야한다는 도덕적 논란부터, 개인의 사적인 결정권이라는 문제까지. 도덕은 '정의'보다도 더 혼란스럽다. 또한, '도덕적'이라는 개념도 나날이 바뀌어가고 있다. '동성애'는 도덕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어느새 그것을 허용하고 있다.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럼 개인이 생각하는 '도덕'이라는 정의와 사회의 통념의 '도덕'이라는 정의는 달리 해석해야하지 않을까?  

마이클 샌델의 이 책에서는 정치, 자유, 종교, 사생활 등 많은 도덕적 관념들을 다룬다. 도덕이 왜 중요한 것이며, 관행과 제도에 입혀진 도덕적 철학까지 말이다. 그는 말한다.   

어쩄든 도덕률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부과하는 법이다. 그것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과 상황 그리고 단순한 경험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 우리는 특정한 인간, 즉 당신과 나, 우리들 개개인이 아니라 칸트가 말하는 순수실천이성에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우리, 선험적 주체에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우리라는 점이다. - 181p  

아! 그것다면 도덕이라는 것은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하는 신성한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기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우리 정부는 자신들은 도덕적이라고 하며, 도덕적으로 일을 실행하는 게 당연하다고 굳건히 말하는 데 행동은 그 반대로 하고 있다. 적어도 국민들이 느끼기에는 말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나, 의견의 차이가 있지만. 내가 한 국민을 대표하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런 정부는, 자신들이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믿는 것일까? 그것들은 누군가의 도덕적인 잣대에서 행해진 것일까? 여러가지 의문이 든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그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도덕적으로 행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일까?  

자원주의의 자유 개념에서 국가통치술은 일부 영역을 제외하면 더 이상 영혼통치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유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아의 권리를 연결하면 시민들에게 자치라는 습관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에 대한 오랜 논쟁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또한 좋은 삶의 본질에 대한 케케묵은 논쟁도 피해갈 수 있다. 일단 형성적 계획에서 자유를 배제하면 칸트의 말처럼 "국가 설립은 악마들의 국가라도 손쉽게 해낼 수 있는 문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도덕적 진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 294p 

경제적 성장만 이루어낸다면(그것도 부자들의 경제적 성장이지만) 그 목적 앞에서는 모든 부도덕한 행동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문제점을 설득시키려 하는 정부가 놀랍단 말이다. 비인간적 권력구조 때문에 고통받는 국민들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는 정부의 부도덕한 신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의 부도덕함에 대해 말이다. 종교, 복지, 교육, 제도 등을 아우르며 끊임없이 부도덕하게 굴고, 눈가림과 억지를 부리고 있는 정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말하는 도덕적 자유는, 도덕적이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부도덕하기 대문에 도덕적으로 자유롭다고 어이없이 말하는 것이다. 도덕에 대해 묻는 시민의식이야 말로, 작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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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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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세상을 만들고도, 반성하지 않는다. 어른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갓 어른이 된 그들에게 강요한다. 세상을 바꿀 힘은 너희에게 있다고. 누가 그런 힘이 반갑다고 말하는가. 필요없다. 이미, 만들어진 힘이 휘두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무슨 강요란 말인가. 대학 생활이 시작되자 마자 수많은 고민이 한꺼번에 밀려오는데 말이다. 

내 대학 생활은 어땠던가? 다행히도, 취업에 목매며 살진 않았다. 그랬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그것보다 급한 다르 무엇인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과도기 학번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거나. 2000년도 학번이 되고, 새로운 세상을 누리면서 난 무엇을 해야할 지 몰랐다. 그랬기에 그냥 무엇이든 했다. 하지만, 지금 대학생들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너무도 잘 안다. 그것을 잘 알기에, 그 안에 속하지 못하면 낙오자라 말한다. 그건 정말 슬픈 일이다. 

나는 인간은 삶에 대해 새로운 질문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새롭게 살아갈 용기가 더 많아지는 존재라고 믿는다. 질문과 함께, 질문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인간은 새로운 사회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학생들과 함께 나눈 위로이자 희망이며 격려이다. - 27p 

지은이 엄기호 선생은 어쩌면, 지금 대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선생이 아닌가 싶다. 수업하기에만 급급한 교수들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못하고 토익 점수와 스펙을 향해 달려가다가 멈출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더 큰 상실감에 빠질 수 있다. 그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줄 사람은 분명 그 시간을 거쳐온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래도 좋은 직장에 가야한다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참혹할까? 이렇게 청춘을 응원하는 사람이 한 명쯤 있다는 것은 젊은 날의 위로이며, 격려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도 뭉클했다. 어쩌면, 내가 고민했던 것을 그들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도 고민하는 것을 그들이 고민하고 있다. 대학, 정치, 사랑, 학교, 돈. 그 안에서 허우적 거리며 누군가가 설정해놓은 기준에 들지 못하면 우울해 지는 청춘. 대부분 상위 1%를 원한다고, 나마저 그것을 향해 달려갈 필요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넌 그냥 네 길을 가도 된다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우리는 서로가 경쟁자일 뿐,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으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슬프다. 

입장이 다르다는 말은 삶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그 질문은 그들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견주어보아야 한다. 누군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내놓는 답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 26p 

우리는 모두 생각이 같지 않다. 그리고, 다 똑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다. 남이 원하는 대로 살 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우리는, 세상이 맞춰 놓은 길에서 조금 어긋난다 싶으면 불안해 한다.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조금씩 조금씩 생각을 잠식 당하며, 기준 안에 드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왔다. 

어찌 보면 학생들은 교육의 실체가 폭력이라고 교실에서 몸으로 깨달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교육이야말로 권력으로부터 가장 초월한 척하지만 권력의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육의 목적은 지식의 절달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요구하는 몸과 마음을 만들어내는 훈육이기 때문이다. 훈육이란 말 자체가 폭력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학생들은 가장 믿지 않는 말은 이 모든 것은 너를 위한 교육이고 사랑이라는 말, 바로 그 거짓말이다. - 120p

수많은 체면을 봐왔다. 나의 공부도, 담임의 체면이 되고, 부모의 체면이 된다. 반의 체면이 되고, 학교의 체면이 된다. 공부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대학만이 자유가 될 거라고 믿고 공부를 한다. 하지만, 대학에 왔을 때 거기서 또 불꽃튀는 싸움이 시작된다. 명문대가 아니다. 잘 나가는 과가 아니다 부터 또 시작되는, 서열, 계급, 그룹 싸움. 대학생들은 지쳐만 간다. 누구를 위해 그 싸움에 동참해야 하는 걸까? 그것 또한 깨닫지 못한다는 것.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참혹함이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는 게 참혹하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거쳤지만, 다시 시작되는 싸움은 많은 대학생들을 지치게 할 뿐이다.  

나는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인간이다. 내가 내 삶을 결정할 이유도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인생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며, 꿈이 무엇이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결국 나는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육되며, 그 손길이 닿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가축일 분이었다. 야생으로 되돌려 보내지면 다시 울타리 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가축이 되어버린 것이다. _ 명성-62p 

이 책 안의 청춘들은 솔직하고,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게 기쁘다. 아마도, 수업을 하며 조금씩 조금씩 깨닫고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바로 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단순한 고민이라 할지라도, 고민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찾는 것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 힘을 끌어준 엄기호 선생에게 나마저도 고마워졌다.  

착취를 당하는 이들에게는 착취하는 자들이 눈도 돌리지 않는 것, 즉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시간, 그리고 사람들이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느끼고 향유했던 감각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삽질과 열정은 다시 자본이 착취할 수도, 교환할 수도 없는 '순수한 유희'에서 만난다. -234p 

그들은 대학생은 '지성인'이라는 말에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말하고, 가끔은 '잉여'인간인 것 같아 열패감이 든다고도 말한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아가는 게 힘들지만 어쨌든 애쓴다. 자신을 모르는 것 같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안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있지 않다 하여도, 그들은 꿈이 있고 나아가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잣대로 그들을 재단하는 것은 우리다. 그리고, 그런 기준이 옳다고 강요하는 것도 우리다. 그들은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학원화 되는 학교가 아니라, 자신을 성찰할 수 있고, 사유하게 하는 학교를 원한다. 하지만, 외면하는 것은 우리다.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도 우리다. 

청춘, 그 단어 하나에는 많은 것을 포함한다. 청춘 속에 있으면 아무 것도 무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청춘을 지켜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의 고민이, 그들의 두려움이 그들 것이라고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니 말이다. 원하는 삶을 살라고 하면서, 꿈을 가지라고 하면서, 열정이 최고라고 하면서 우리는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다. 우린, 이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격려하고, 위로해야 한다.


입학 시즌이다. 수능 점수에 맞춰, 인기 있는 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선배와 부모의 의견에 더 충실히 따르고, 대학이라는 간판을 따기 위해 눈치를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대학 1학년, 혼란과 혼란이 꼬리를 물고 찾아오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원하는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입학 하자마자 스펙을 채우기 위해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신들은 지나온 이라면 누구나 되돌아가고 싶은 청춘이라는 것이다. 빛나는 청춘 속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청춘아! 슬퍼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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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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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감정일까? 순수하게 사랑만 했던 때는, 언제였던가? 이젠, 사랑에도 많은 계산법이 따른다. 사랑 한 번 하기 위해, 누군가와 함께 하는 미래, 조건, 상황들을 따져보게 된다. 점점 구질구질한 계산법에 지쳐, 사랑을 했는지, 사랑을 하고 있는지, 생활이 되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사는 사람이 한 둘은 아니겠지. 

사랑의 형태나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에 따라 붙는 조건들은 천차만별이다. 정말, 이젠 조건없이 주는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하나도 오염되지 않은 '야성' 그 '야성'만으로 순수하게 사랑만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목수정은 <야성의 사랑학>의 서두를 열며 '한국남자들은 왜 더 이상 거리에서 그녀들을 쫓지 않나'라는 물음을 던진다. 잊고 있었으나, 기억나는 것. 방전되어버린 사랑들은 이제 자취를 감추고, 조건과 계산 아래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연애하는 사회는 행복하다.

이 명제를 앞에 두고, 우리의 사회는 과연 행복한 것인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도처에 장애물, 그래서 사랑을 멀리하는 건 아닌지. 하지만 역으로 그 장애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만든 벽이 아닌지 말이다. 그녀가 말하는 야성의 사랑학이란, 관습도 조건도 고정관념도 다 벗어던지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말이 쉽지, 세상을 살면서 어디 그런 사랑학을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사랑을 하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너무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삶에 바람처럼 찾아오는 사랑의 소용돌이가 내 심장을 두드릴 때, 눈앞에 평소 내가 그려 왔던 바로 그런 연인의 모습을 한 이가 지나갈 때, 준비된 훗날을 위해 직관이 말해 주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생물학적 욕망만을 직업여성들을 통해 해소하던 사람은 영영 사랑을 느낄 수 없거나, 그런 건 소설에나 나오는 거짓이라고 치부해 버리게 된다. 돋아 오르는 열정의 뿔을 칼로 계속 베어 내기만 하면, 어느 순간 열정은 자라나기를 멈추는 것이다. 그 자라나는 열정의 뿔의 이름은 바로 '야성'이다. - 45p

먼저,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는 것.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 그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하기도 전에, 사랑으로 가는 길을 닫아버리곤 한다. 그 설렘, 그 두근거림.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부정하는 것일까?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랑하고 싶다고.

일에 성공하는 이만큼 부러운 이도 사랑에 성공한 이라는 걸 잊곤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일도 필요하지만, 사랑없이 살아가는 건 황폐하고 메마르다. 우리 사회에서는 불쌍하게도 사랑을 배울 수 없다. 사랑을 배우기 전에, 성공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 성공하는 법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냥 좋은 대학에만 가면 되는 거다.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회적 지위와 명예, 돈을 갖게 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이미 우리는 많은 예들 속에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결국,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하고, 성공하는 법만 배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황폐하게 변한다는 걸. 

결혼에도 등급이 필요한 사회에서 연애란 사치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랑의 행위를 억압하는 사회에서 자라날 수록 사랑을 숨기느라, 감추느라 급급하다. 혹시라도 부모에게 들킬까봐, 혹시라도 누군가가 손가락질 할까봐. 그렇게 꼭꼭 가둬둔 사랑은 건강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목수정. 그녀의 말에 백번 공감한다.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 

그녀는 힘껏 안아주는 남자와 사랑하길 바랐다. 그녀는, 애정이 결핍된 남자를 만나 크나큰 고통을 경험했다. 잘못 배운 사랑이,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 누군가의 인생에 치명타를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외친다. 사랑, 건강하게 하라고. 억압, 관습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그것은 남녀간의 연애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사랑, 친구와 친구의 사랑. 사랑은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하므로. 우리들의 사랑은 준 만큼 받아야 한다는 수적 계산이다. 또한, 자율적인 이야기를 거부하는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힘들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식을 억압하고, 부모에게 복종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랑을 주고받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창조적인 교감이다. 반면 도리는 창조성, 자발성, 상대성을 거부한다. 원인이 어떠하고 개별적 환경이 어떠하든 인간이 지켜야만 하는 기본적 약속, 이유를 불문하고 가야하는 일이다. - 139p

정말 유림에서 쫓아와 개발새발 할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의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어떤 형태로 묶여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이성을 잃고 헛소리라고 할 수만은 없다. 많은 자식들은 부모와 정서적인 교감을 못한채 수많은 강요에 치여 억울한 듯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한 첫 경험을 부모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숨겨야 할 모텔 뒷담화가 아닌 건강한 사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치한 어른, 유치한 부모가 되지 않는 방법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사는 것이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도, 아이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어린 시절에 가능한 많은 가능성을 접하게 해주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엔 그 어떤 실패를 할지라도, 따뜻하게 격려해 주는 것. 그러고선 재빨리 부모 스스로의 삶으로 돌아와 열심히 자신의 영역을 사는 것이다. - 202p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거리를 헤맨다. 룸싸롱에서 어린 여자를 찾고, 호스트바에서 어린 남자를 찾는다. 돈으로 육체적 욕망과 유희를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사랑에 목마른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기형적인 형태로, 변태적인 욕구로, 물질을 들이밀 뿐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지갑을 열지 않는 인색한 사람도, 어린 여자에게는 명품백과 차를 서슴없이 선물한다. 그녀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칭찬해주고, 시간을 내준다. 사랑하지 않는 줄 알지만, 사랑 비슷한 것이 필요한 사람들. 한 밤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만 진짜 사랑을 찾았으면 좋겠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 나를 둘러싼 세상은 급속도로 변모한다. 지나쳐 버리고 잊어버렸던 모든 지점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세상은 풍부해지고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반대로 해왔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상을 변혁하고, 그런 후에 나에게 사랑과 자유를 허락하려 했다. 지금까지의 혁명이 언제나 깃발을 꽂고 나자마자 뒷걸음쳐져 갖던 이유이다.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에 권태를 느꼈던 바로 그곳에서 지금은 열정을 느낀다. 무의미하고 텅비어 보이던 세상은 순간 의미와 모험, 위험, 선물과 이로운 우연들로 가득 채워진다. 사랑의 열정을 불태우는 것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처방이다. - 238p

자, 사랑을 하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사랑을 못하고 있다고 투덜거릴 필요가 없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습이 만들어 놓은 사랑의 틀에서 놀아나기 때문에 사랑을 못하고 있는 이가 더 많다. 아이와 사랑을 하고 싶다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와 함께 놀아야 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믿고, 결혼을 하고, 섹스리스에 빠져 다른 사람을 찾는 사랑. 그런 사랑 하지 말자.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좋아해달라고 강요하는 사랑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이 없다고 투덜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배워야 할 무엇이라고 할 때,
우리가 찾는 사랑의 원형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아는 것에서
그 배움은 시작된다. - 2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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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많은 디자인 씨 - 디자인으로 세상 읽기
김은산 지음 / 양철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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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디자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야 할 시대가 된 것은 아닐까? 멋진 디자인을 바라고, 반짝이는 디자인에 대해 감탄은 하지만 우리는 디자인에 숨겨진 것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 하나로 세상을 바꿨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디자인. 이제 그 디자인의 철학도, 의미도 깊이 들여다 봐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비밀 많은 디자인 씨>는 그런 의미에서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디자인의 사회적 의미에서부터 디자인에 담긴 국민성까지. 단순한, 디자인에 대한 지식일 거라고 예상했던 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디자인은 일상의 행위에서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사용자가 공감할 수 있다. 나오토는 먼저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습관적인 행위를 예민하게 관찰하는 데에서 디자인을 시작한다. 기능과 형태의 논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사물을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기억을 찾아내어 사물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한다. – 47p

생활 속의 디자인. 이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과제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더욱 섬세하게, 더욱 간결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젠 대량 생산하며 쏟아내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대중들은, 조금 더 특별한, 독특한, 멋진 것에 지갑을 열고 있다. 이미 디자인은 넘치고 있고, 그 넘치는 지점에서 벗어나 사람의 마음을 끄는 디자인. 그것에 주목하는 시대가 왔다.

현대 디자인 교육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디자이너 나즐로 모홀리나기는 디자인은 전문가들의 직업이기 이전에 하나의 태도라고 말한다. 삶의 방법이자 삶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 60p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다다르고 나니, 디자인은 단순히 소비의 개념을 넘어선 게 아닌가 싶다. 삶의 방법이자 삶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디자이너 나즐로 모홀리나기의 철학에 공감했다. 인간의 행위, 삶 자체도 디자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 철학, 목표를 따라 하루하루를 디자인 하듯이, 디자인도 책임이 뒤따르게 되었다.
서울 청계광장에 세워진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 이 똥 모양의 구조물은 작품이라고 하기에,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만큼의 비용 지불 가치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누군가가 그의 작품을 받아들이고, 돈을 지불했지만 그것은 청계천 광장에 맞는, 청계천 광장에 대한 철학이 담긴 디자인 구조물인지 묻고 싶다. 소요된 경비만 35억 원 정도. 서울 시민들의 동의는 얻었는지도. 사회적 책임을 무시한채 선택된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라 쓰레기가 된다. 이것은 작품을 만든 사람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그 디자인을 받아들인 자들의 태도도 닮겨 있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디자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관 관계를 고려하는 것도 디자인 과정의 일부다. 디자인은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 디자인은 사회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그러므로 디자이너 스스로 사회적인 역할과 윤리의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디자인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눈을 감는다면 디자인은 그저 지저분한 현실을 보기 좋게 포장하거나 깨끗하게 보이도록 외피를 덧씌우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반부룩의 말처럼 그런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컨베이어’에 불과할 것이다. – 194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좀 더 심하다고 본다. 가끔 디자이너들은 혼동하기도 한다. 내가 디자이너인가, 오퍼레이터인가의 사이에서 말이다. 타협과 협의의 차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디자이너는 그저 배치만 해주는 사람에 불과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것은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디자이너를 대하는 자세, 디자이너가 대하는 디자인의 자세가 달라지지 않고, 끌려다니는 것이 편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술적인 업무를 처리해주는 역할자가 될 것이다. 

유행을 만드는 디자인,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 유혹적인 디자인, 소비의 형태만에 집중한 디자인도 있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디자인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에코파티메아리나, 제이드 등은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디자인을 소비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에 환경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소비에 집중된 디자인들이 점점 진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정말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하는 디자이너’로 평가 받는 미국의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여느 선량한 시민의 역할과 다를 바 없다. 좋은 시민이란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자신이 속한 시대에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것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197

이 책이 다른 여타 디자인책과 달리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디자인을 통해 문화와 삶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디자인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의 삶이 이제야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디자인은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으며, 신념과 철학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되고 있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생각하기 앞서 우리의 생활을 고민하고, 사회를 고민하는 디자인. 디자인의 가치를 새롭게 짚어볼 수 있어서 의미있었다. 

디자이너가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것. <비밀 많은 디자이인씨>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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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와와!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라니. 구미가 팍팍 당길 수밖에 없다. 우울한 인문학 책들은 잠시 접어두고, 책을 열기만 해도, 에너지가 팍팍 느껴질 것 같은 이런 책. 12월의 책으로 지정되었으면 좋겠다.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는 무엇일까? 제목마저 끌리는 이 책!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건축에도 인문학이 있듯이, 음식에도 인문학이 있다. 인문학은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도 읽고 싶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읽고 난다면, 먹는 것 소홀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문학, 다양성을 위해 음식 인문학 책 한 권도 추천!!!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는.. 이 책. 그러고 보니 그렇다. 우리 말 단음절 어휘의 미학이라니. 이 책은 과연 어떤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을까? 말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일화와 예화 등도 숨겨져 있다니, 단어에 대한 깊은 탐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추천 도서들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해본다. 사회 비판 서적도 좋지만, 다양한 분야를 인문서평단에서 만나게 될 수 있길 바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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