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셰프 레시피 - 스타 셰프들이 공개하는 특급 레스토랑 레시피 100가지
배예환 외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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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좋아하는 요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먹고 싶은 요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문득 생각나는 요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있는 요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한 세상. 입 안으로 들어가는 어떤 것에 집중하는 것도 당연. 웰빙, 웰빙 하며 더 맛있고, 더 좋은 것을 찾는 시대이니 만큼 맛과 멋, 그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요즘이겠지. 자, <오너 셰프 레시피>를 여는 순간, 맛과 멋 그 둘다 만족시키는 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것은 그냥 '요리'가 아니다. 셰프의 영혼과 철학이 담긴 요리다. 그래서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땀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숨길 수도 있는 레시피를 떡하니 내어놓은 그들은, 아마 변화를 멈추지 않는 셰프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만의 노하우가 담긴 요리의 레시피를 이렇게 공개하진 못할 터이니.


배예환 셰프, 이탈리안 레스토랑 <예환>



 
 
동화 속에 사는 딸기 공주 같은 배예환 셰프. 그녀의 웃음처럼, 그녀의 요리도 알록달록합니다. 오감으로 따뜻함, 행복을 경험해주게 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처럼 그녀의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따뜻할 것만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먹고 싶은 가지 그라탱. 사진부터 레시피까지 촘촘히 담아놨습니다. 건강과 색의 조화, 그녀가 말하는 행복과 따뜻함이 무엇인지 금방 깨닫게 됩니다. 

 
  
 시금치 쑥갓 볶음 광어 스테이크.
이름도 길고, 독특한 이 요리의 맛은 어떨지. 시금치와 쑥갓, 광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군침이 돕니다.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재료를 만나게 해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것도 셰프의 능력이겠지? 한점 물면 행복해질 것 같은 요리. 



사과 파이. 어쩐지, 내가 알던 사과 파이같지는 않다. 사과와 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얹어 구워낸 이 파이는 맛보지 않았어도 달콤함이 느껴진다. 재료가 곧 요리의 맛을 낸다는 셰프의 철학답게 예산 과수원에서 직접 수확한 신선한 사과를 썼단다. 사과 파이 한 잎 물고, 커피 한 모금. 그런 행복, 막 느끼게 해주는 디저트랄까?

닭가슴살, 채끝살, 안심, 새우, 관자, 토마토, 돼지 목살, 항정살, 연어, 광어, 대하 등등 아 이재료의 향연이란? 이탈리안 음식에 빠질 수 없는 토마토. 싱그러움이 가득한 샐러드. 구이 하나도 식상하지 않은 이 요리들. 그녀의 미소가 떠오르는 이 요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예환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만다.


유희영 셰프, 재패니즈 레스토랑 <유노추보>

 

 

그의 손은 어쩐지 입맛을 자극한다. 오동통한 손이 신뢰를 준다고 할까? 그가 써는 회를 낼름 집어 입안으로 넣고 싶다. 그만큼, 괜히 신선한 것 같고 맛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준다. 거뭇거뭇한 수염과 동그란 안경, 큰 단추가 달린 유니폼을 입은 그가 내놓는 요리라면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친해지고 싶은 친근감이 있다. 저기 저 오동통한 손에 무한한 섬세함도 숨어 있을 것 같단 말이다. 맛있는 일본 요리를 떡하니 내어놓을 것 같단 말이다.

 

 

참치 무침 산마 야마카케.
아! 이런, 야들야들한 이 빛깔에 사진 위에 혀를 붙이고 날름거릴뻔 했다. 부드러움과 신선함이 한껏 느껴진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산마는 어떻고? 당장 먹을 수 있는 요리도 아닌데, 요리가 내 앞에 떡하니 등장한 것처럼 '왜 이리 양이 작아?"하고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먹어보기도 전에 양을 탓하는 아쉬움이 벌써 솟아 오르는 거다. 이 섬세함은 어쩌고. 붉은 참치 아래 깔린 이 녹색 야채는 식욕을 더 자극한다. 사진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의 손끝에서 펼쳐졌을, 감동의 손놀림을 상상하며.

 



초콜릿 갈릭 페스토 도미 마쓰가와.
이름 한 번 길고 어렵지만,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재밌다. 생선에 초콜릿? 이런 조화가? 흩뿌려진 초콜릿이 굉장한 비법을 가진 소스같이 보인다. 맛의 섬세함은 이런 것인가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하얀 도미살과 브라운 빛 초콜릿의 조화라니. 도대체 이건 무슨 일인가요?
 



 
사이쿄이소 소스 쇠고기 가지롤.
난 가지가 좋다. 그래서 편협한 내 취향대로 여기 또 나타난 가지 요리를 들여다본다. 뭔가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가지처럼 보이지 않는 이 요리가 재밌다. 일본의 된장인 백색 된장으로 만든 소스를 뿌려 먹는다는 것도 흥미롭다. 각국의 요리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문화마저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또 즐겨 먹는 식재료까지 만나게 된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일수록 기대대고, 흥미롭다. 이 요리 또한 그랬다. 카시스, 그레나딘 시럽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양념들을 만날 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셰프들의 비법을 전수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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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페이지에는, 그의 손가락이 많이 등장한다. 굵고 다부진 손가락 끝에서 만들어진 요리들은 어쩐지 맛있을 것만 같다. 일본 요리를 떠올릴 떄 초밥, 회 정도로 머무른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 무지한 요리 상식이여. 믿음직한 오너 셰프의 요리만 봐도 우리는 많은 일본 요리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진경수 셰프, 프랑스 레스토랑 <라 싸브어>





고집쎈 장인 분위기가 난다. 정통을 고집할 것도 같다. 웃음기도 없이, 일에만 열중하고 있는 그는 맛이 틀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순수한 미각'에 '순수한 프랑스 요리'만 고수할 것이라는 것을 분위기를 통해서만도 느낄 수 있다. 보이는 대로 사는 사람답게 그는 일관성, 자신감, 심플함을 고집하며 레스토랑을 경영한다. 신뢰를 잃는 셰프가 되지 않기 위해 고집을 고수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프랑스 요리도 신기한 게 많다. 이건 아티초크 찜.
아티초크는 지중해 연안 바닷가에서 자라는 국화과 식물이란다. 꽃봉오리 부분을 따서 익혀 먹거나 갈아서 수프를 해 먹는단다. 통조림으로 판다고 하니, 집에서도 손쉽게 해 먹을 수 있을 것도 같으나. 사실, 진짜 맛은 셰프에게 맡겨야 하지 않을까? 뭐가 달라도 다를 테니 말이다. 색만 다르지, 혹 색을 뺀 무화과가 아닌가? 라고 살짝 착각한 요리다.




 
푸아그라 테린.
테린은 가금류나 육류, 돼지의 간, 생선, 게살 등을 갈거나 얇게 저며서 여러 가지 야채들과 버무린 뒤 직사각형의 틀에 층층이 쌓아 젤라틴처럼 굳힌 것이란다. 그걸 또 오븐에 굽는 모양인데, 이건 굽기 전 재료의 모양이다. 음, 푸아그라는 말로만 들어봤지 먹어본 적이 없다. 모양도 아름답고, 뭔가 달라보인다. 흥미와 구미가 당긴다.

 



갈릭허브크러스트를 얹은 양갈비 스테이크.
양갈비는 잘 조리하지 않으면 냄새가 난다. 하지만, 맛있는 곳은 살살 녹게 만들어주곤 한다. 그만큼 조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사진만 보고 있어도 맛있는 향이 난다. 아, 셰프가 만들어준 양갈비 구이를 레어로 먹는다면 얼마나 맛있을까? 잠깐 군침을 올려본다. 아무리 촘촘하게 써 있는 레시피라도 이건 못하겠다 싶다. 그래서 셰프는 장인이라고 할까?



 

구운 영계와 와인 소스.
어쩐지 쉬워보인다 생각해 머릿속으로 욕심을 내본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다소곳한 영계는 참 아름답다. 나이프를 들고, 배를 반으로 갈라 그 풍미를 즐기고 싶을 정도다. 닭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구운 영계라니. 간단하면서도 담백하고 맛좋은 요리는 언제든 환영이다!!

 

 


퐁당 쇼콜라.
녹아 흘러내리는 초콜릿이라는 뜻이란다. 와우, 만드는 과정이 참 아름답다. 얼마나 달까? 하지만, 후식은 달아야 하므로, 완성된 쇼콜라의 모양 또한 달짝지근하다. 샐러드, 메인 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정말, 침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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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잘 모르는 사람도 괜히 동경하게 되는 프랑스 문화. 예술의 도시이니 만큼 요리 또한 섬세함이 느껴진다. 셰프의 손길로 탄생된 많은 요리들을 보니 더욱. 색과 맛. 그 조화는 역시 프랑스 요리에서도 빠질 수 없나 보다. 요리 하나 하나에 셰프의 고집 또한 보인다. 그 고집, 나도 먹어보고 싶다!

 

여경옥 셰프, 차이니즈 레스토랑 <루이>

 


사람 좋아서 무엇이든 맘껏 퍼줄 것 같은 셰프다. 다다다다 음식을 손질할 때 보이지 않는 손은 여느 중국집 사장님과 똑같다고 느껴지지만, 그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스타다. 고급스러운 중식 요리부터 서민적인 요리까지 두루두루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그. 불꽃 앞에서 타오르는 셰프의 맛 또한 궁금해진다.




불도장.
이것이 그 유명한 불도장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보양식. '고행을 하고 있는 기인들도 이 음식의 향을 맡으면 참을 수가 없어 담장을 뛰어넘어올 것이다' 도황 황제가 불도장을 맛본 후 읊은 시란다. 닭가슴살, 송이버섯, 해삼, 전복, 돼지목살, 오골계, 샥스핀, 마른 관자, 도가니, 배춧잎까지. 이건 레시피를 보고도, 절대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육해공 재료들이 한 곳에 모여 춤을 춘다니. 흑. 과연 그 맛은 어떨까? 화려한 색은 아니나, 그 속에 담긴 것들은 너무도 화려하여 눈을 뗄 수가 없다.


 


발채 소스 전복.
발채는 중국 티베트나 몽골 등 고원사막 지대에서 봄철에만 자라는 이끼류란다. 이것을 말려 물에 불린 뒤 사용한다는데, 와우 이끼까지 쓰다니. 이 발채라는 이끼의 비밀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 비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귀하다는 전복과 만나는 것인지. 이미 알고 있는 중식 요리는 너무 짧은 지식이라는 게 느껴진다. 역시, 끝없고 다양한 세계는 어디에나 있는 법인데 우리는 너무 갇힌 정보 안에서만 버둥대고 있는 것 같다. 

 



통멜론 연시 시미로.
이것 또한, 특이하다. 디저트라고 하는데. 시미로는 열대작물인 카사바의 뿌리에서 얻은 식용 녹말 성분인 타피오카로 만든 디저트란다. 타피오카는 우리가 흔히 '버블티'라고 부르는 음료에 들어 있는 쫄깃한 알갱이라고 한다. 멜론과 연시의 만남? 어쩐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거기에 알지 못하는 재료까지 더해진다. 중식 요리의 후식 또한 익숙치 않아 신기하다.




 
파파야 멜론 코코넛 제비집 수프.
샥스핀, 전복과 더불어 중국 3대 진미라는 제비집. 제비집은 워낙 고급 요리라, 이 스프는 어떤 맛일까 상상만 해본다. 파파야와 제비집? 이것도 어쩐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역시 셰프는 만나지 말아야할 것 같은 재료를 만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면서도 믿게 만드는 것이 셰프의 능력이며 재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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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중식 요리들이 등장했다. 짬뽕, 자장면, 탕수육 등 기본적인 요리부터 생소한 요리까지. 역시, 사람은 알아야 한다. 수많은 요리 중 엄선해서 소개했다고 하니, 그럼 더 많은, 더 다양한 요리들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셰프들의 요리를 훔쳐보는 내내 재미있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혹시 이런 것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괜한 자만을 부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우선 먹어봐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셰프의 요리는 셰프에게 부탁해야 한다. 그들이 많은 음식을 내어놓았지만, 그들이 직접 만든 요리가 아니라면 그것은 아류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국의 음식을 만드는 셰프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한 번 배운다. 세상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세상의 많은 요리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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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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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군침을 흘리기는 처음이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나도! 회먹고 싶어!"를 외치며 허기짐을 느꼈다. 거기다 보너스는 인생의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달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듯, 바다 근처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듯 행복해졌다. 그런, 생생하고 잔잔한 느낌은 나를 마음 따뜻하게 했다.

사람들은 때론 힘들면 여행을 떠나곤 한다. 마음이 허기져서, 상처받아 슬퍼서, 인생이 피곤해져서 떠나곤 한다. 마음이 공허할 때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다가 아닐까 한다. 겨울바다를 보고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람도 있고, 끝이 없는 바다 앞에 서면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사람도 있다. 바다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거기다 더해 많은 것들을 준다.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바다는 과한 욕심을 내지 않으면,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한다. 그 베품 앞에서 우리는 또 겸허해지곤 한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에는 수많은 어류들이 등장한다. 작가 한상훈 씨는 안 잡아본 물고기가 없을 정도다. 그 요리법도 꽤뚫고 있어 맛깔나게 설명한다. 게다가 삶이 담긴 에피소드도 엿볼 수 있다. 각각 소재에 얽힌 사연은 마음을 잔잔하게 하고 코끝마저 찡하게 한다. 찡하게 짠하달까?

갈치, 삼치, 모자반, 숭어, 문어, 고등어, 군소, 볼락, 홍합, 노래미, 병어, 날치, 김, 농어, 붕장어, 고둥, 거북손, 미역, 참돔, 소라, 돌돔, 학꽁치, 감성돔, 성게, 우럭, 검복, 톳, 가자미, 해삼, 마지막으로 인어까지 읽다가 배부를 이야기가 가득이다. 

한상훈 작가는 '생계형 낚시'를 한다. 생계형 낚시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물물교환을 하고 이웃에게 그냥 주기도 하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낚시인 것이다.

   
  물론 팔지는 않지만 생계형 아닌 것은 또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종종 주기도 하고 그리고 뭘 받으니까 물물 교환이다. 할머니에게 주면 마늘과 파, 고추를 주신다. 친구에게 주면 술을 사거나 또 다른 고기를 준다. 육지에 보내주면 돼지고기가 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옛날형 낚시인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 주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고기잡이 다녀온 사람은 으레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 "반찬이나 하소" 툭 던져주기도 하고 미안해서 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슬그머니 놓고 휭, 사라지던 모습 흔했다. 가난과 풍요를 분별없이 공유하는 것, 그게 공동체이다. - 58p
 
   

 그의 낚시 철학, 삶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의 낚시가 더 좋아졌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그의 재미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슬며시 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예전에는 "고등어를 어떻게 회로 먹어요?"라고 주로 반응했다. 살아서도 썩는다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요즘은 제주도 직송 고등어회가 왕왕 텔레비전에 나온다. 때문에 '아직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들어보니, 역시나 비싸다. 하긴 비행기 타고 간 게 값쌀 리가 있겠는가.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 못 사먹는다면 방법은 하나. 낚아 먹으면 된다 - 78p  
   

얼마나 명쾌한 결론인지. 아직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니. 비싸다고 불평불만 말고 바다로 나와 낚아 먹는 쉬운 방법이 있다니. 후훗. 자급자족하지 않고 소비하려는 현대인들에게 명치를 걷어차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에 맞물려 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밤바다라 볼락 낚시를 나갔을 때, 두런 두런 대화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낚시도 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도 훔쳐듣고 그것은 또 바다 위에서 얻은 이야기가 된다.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사업을 안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내가 말했잖냐"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잖소."
"먹고살기만 하면 뭐가 문제겠냐. 너무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게 문제지."
보아하니 형제가 밤낚시를 하러 온 모양이다. 육지에서 실패를 본 동생이 고향에 온 거라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
"형님 돈은 어떻게 해서든 벌충해놓을 테니 걱정 마시오."
"......"
"못 갚으면 어디 가서 콱 죽어버릴라요."
"너는 사업도 너무 서두르다가 말아먹더니 죽는다는 말도 꼭 그렇게 하는 구나."   - 104p
 
   

바다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바다에 나간 이들 중 사연 없는 이가 어디있을까? 사람 사는 곳에 바다가 있고, 바다와 함께 사람이 산다. 바다에 나와 삶을 털어내는 형제의 모습. 눈을 감으면 그려진다. 그 깊은 바다에 형제와 함께 서 있는 듯, 그리고 볼락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떻게 먹는 게 맛있는지, 어떻게 하면 잘 잡을 수 있을지 말이다. 사람 맛에서, 생선의 맛으로 넘어간다. 이런 재미가 있다.
 

   
  낚시는 물었을 때와 물지 않았을 때, 두 가지의 인간이 만들어진다. 낚아내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백지장처럼 하얗게 기억이 없다. 생각은 사라지고 몸만 작용을 하는 것이다. 오로지, 도망치려는 물고기와 잡아올리려는 사람 사이 힘의 기우뚱한 균형, 줄이 터지기 직전까지만 허용하며 녀석을 지치게 하는 긴장의 순간들만 이어진다. 낚시에 빠진 동료작가 한 명은 이 순간을 오르가슴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툭.
채비가 터졌다. 세상에 줄 끊어진 낚싯대처럼 허무한 게 또 있을까. 낚시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몸에서 피가 쭈욱 빠져나가고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집안이 망하는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절망을. - 174p
 
   

몇 번 바다낚시를 해봤다. 대어를 낚은 것도 아니고 자잘한 물고기들이 배좀 채워보겠다고 낚싯대를 문 것이다. 툭 끊어지는 경험, 굉장히 허무하다. 하지만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허망함과 같을까? 생계형 낚시꾼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지만, 그가 써놓은 감정이 어쩐지 잘 느껴진다. 아마도 글 사이사이 낚시를 넘어 바다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이것은 보통일이 아니라는 그의  속삭임이 마음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어무이 아버지에게 문어를 잡숫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문어와 씨름한 아이, 새끼를 나은 고양이에게 노래미를 넣은 미역국을 끓여줬더니만 미역부터 쭉쭉 뽑아먹더라는 이야기, 시장에서 복국을 팔던 아줌마 이야기, 섬마을에 시집와 친정도 못가본 여인들의 이야기.

이 책은 어류들이 팔딱인다. 회를 뜨고, 탕을 끓이고, 얼리고, 지지고 볶고. 하지만 그보다 더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살아있는 이야기. 팔딱거리며 뛰는 물고기들보다 더 팔딱이는 사람 사는 이야기 말이다. 싱싱한 바다 안의 생물들, 싱싱한 바다 밖의 사람들.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도 따뜻해지고 즐거워진다. 그리고 군침이 돈다. 살아야 겠다는 군침, 먹어야 겠다는 군침, 잘 살아야 겠다는 군침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은 이 책이 주는 선물이며, 행복이다. 읽어보시라. 이 군침도는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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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이 글 읽고나니깐 슬슬 배가 고파오네요^^;;
생선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데ㅠㅠ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ㅋ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조지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1984년, 동물농장으로 많은 각성을 하게 했던, 조지 오웰. 그는 무엇을 쓰고, 왜 쓰는 것인지. 그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책. 
소설이 아닌, 생각을 담은 글에는 또 어떤 문장과 어떤 각성이 담겨져 있을까? 그의 글을 통해 어떤 다른 세상을 보게 될 지. 
꼭 읽어보고 싶은 책 중 하나다. 

 

  

2. <거꾸로 보는 고대사> - 박노자 

10년 전에 알게 된 박노자 그는, 뼛속까지 우리나라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우리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게 한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생각을 말하는 그가. 이번엔 역사 이야기를 하려 하나 보다. 그가 풀어 놓는 이야기는 또 어떤 것일지, 기대가 되고 궁금하다. 

 

3. <B급 좌파, 세번째 이야기> - 김규항 

B급 좌파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할까? 아니, 그동안 그가 해왔던 이야기는 동그랗게 모여 어떤 메시지를 줄까? 끊임없이 성찰하는 사람은, 진정 지식인이다. 또한, 누군가를 성찰하도록 돕는 이 또한. 그가 세상에 외친다. B급 좌파라고! 그의 B급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진진할 지 궁금하다. 

 

 

4. <팬티 인문학> - 요네하라 마리 

재기발랄한 그녀가, 또 한번 유쾌한 지식을 전달하려나 보다. <미식 견문록>, <마녀의 한다스>, <발명 마니아>, <문화 편력기> 등 그녀의 방대한 관심과 재치있는 문체, 유익한 정보.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그런 여인. 그녀가 이번엔 속옷으로 문화를 살펴본단다. 하하하. 그녀다운 발상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언제나 명랑했을 것 같은 그녀. 그녀의 신간에구미가 당긴다. 

5. <발달 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 - 호시노 요시이코 

책 제목만 들어도 강렬한 뭔가가 느껴진다. 발달 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이라니. 끔찍하면서도 솔직하다. 어른의 발달 장애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에 나온 후 한꺼번에 나타나는 어른의 발달 장애를 무엇일까? 몸만 자라고 생각은 자라지 못한 어른들이 사회에 나와 어떤 일을 한다면? 그래서 누군가를 괴롭게 함에도 알고 있지 못하다면? 와~ 이책을 읽고 나면 미성숙한 어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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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새롭게 시작될 8기 신간평가단 첫 도서가 어떤 책이 될지
알 수가 없네요^^ 각기 다른 모든 분들의 다양한 독서 편력을
알 수 있었네요. 생각보다 박노자 교수의 신간도 눈에 띄고요.
저도 박노자 교수의 책을 후보에 올렸는데..
이번 활동이 처음이라 사실 5권 정하면서 조바심도 나곤 했었습니다^^;;
평가단원분들의 페이지가 조금씩 공개될수록 이제서야 안정됩니다ㅎㅎ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ㅋ

비의딸 2010-10-07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달 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 강하게 끌리네요...
 
<피렌체, 시간에 잠기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피렌체, 시간에 잠기다 - 한 인문주의자의 피렌체 역사.문화 기행 깊은 여행 시리즈 2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어떤 도시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역사와 시간 속에 잠겨 있는 사람과 예술품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자꾸 잡아 끈다. 그곳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기운을 느끼고 싶기 때문일까?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곳에 느껴지는 어떤 아우라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피렌체는 매혹적이다. 중얼거리기만 해도 뭔가 고혹적인 느낌이다. 피렌체에 잠겨 있는 사람들, 예술품들 작가는 그런 것들을 마음껏 풀어 놓고 싶어 한다. 걷고 밟는 길 사이로 탄생했을 명화들, 명작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했을 예술가들. 피렌체가 숨기고 있는 500년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카라바조. 우피치 안에 숨겨진 그들. 피렌체에 버티고 있는 메디치의 궁전, 두오모, 바르젤로 미술관 등. 그 작은 소도시 안 곳곳에 숨겨진 시간들. 그것들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역사와 예술 작품의 배부른 탐험이 시작된다.  

한 도시를 탐험하러 떠날 때, 그 도시를 알고 가는 것만큼이나 좋은 것은 없다. 피렌체로 떠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고 떠나는 것은 어떨까? 피렌체에 어디로 가면 전망이 좋은지. 교통편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은지부터, 무심코 지나치는 광장이 어떤 문학 작품에 묘사되어 있는지,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어떤 것인지. 세세하게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도시가 가진 기억들을, 작가의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피렌체에 담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역사와 문화가 소박하게 느껴지면서도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랑을 담아 쓴, 피렌체 묘사서라고 해두자. 가보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책 속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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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렌체.. 멋진 곳이지만 저에게는 아직 멀고도 험한 동경의 장소ㅠㅠ
이 책 읽고 싶네요. 글 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ㅋ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
임광명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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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무엇인가? 믿음, 신념, 인생, 힘...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종교는 삶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종교로 인해 세워진 건축물들은 무엇일까?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들은 종교 때문에 세워진 것들이 많다. 그 웅장함과 거대함 앞에서는 기가 질릴 지경이다. 내가 믿는 종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건축물은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된다.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는 우리나라에 있는 종교 건축물에 대한 탐방기다. 솔직히, 우리나라에 이런 건축물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특히, 교회나 성당의 건축물에는 관심을 갖지도 않게 될 뿐더러, 그 수만 생각해도 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건축물들은 의미도 있고, 건축적인 가치도 있다. 

 가보지는 못했어도, 상상이 되는 곳. 작가의 따뜻한 문체는 건축물 안의 포근함까지 감싸쥔다. 종교를 떠나, 그 건축물 안에 담겨있는 정신이 찾아가는 이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구포성당은 포근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 온갖 현란한 문양과 장식 등으로 사람을 한없이 위축시키는 서구의 성당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포근함이다. 그 포근함의 근원은 먼저 부드러운 곡선이다. - 65p

 
   

 하나의 건축물이 사람처럼, 온기를 느끼게 한다. 그 곳에 들어서는 이들은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라고 생각될 정도의 묘사.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공간을 체험하며, 그 느낌을 오롯이 전하는 작가는 편협한 종교인의 눈이 아닌, 건축물을 찾는 순수한 한 사람으로서의 묘사를 담는다. 그것은 종교 건축물에 거부감을 사라지게 한다.  

   
 

 숨을 고르고 계곡을 따라 다시 걷다 보면 비로소 절집으로 향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길을 따라 나무숲이 울창한데, 거기에 묻어 있는 가을색이 완연하다. 송광사 역대 고승들의 부도와 비를 모아 놓은 비름을 지나면, 마침내 일주문을 보게 된다. 짧으면서도 육중한 일주문을 넘어서면, 마침내 송광사 최고 경치라는 우화각을 마주하게 된다. - 146p

 
   

 천천히 다가가는 작가. 건축물 뿐만 아니라, 주변의 경치와 사물까지 읽는다. 마주하기 전의 그 설렘을 담아내고 있다. 빨리 끓어오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그리고 은밀히 그곳을 탐험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만종감리교회는 올해 95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교회지만, 지금의 교회 건물은 1997년에 연면적 912m² 규모로 완공된 새것이다. 
건축가 백문기 씨의 작품인데, 설계 당시 백 씨는 교회의 모든 건물을 땅 아래에 두고 지상은 공지(空地)로 둘 생각이었단다. 온전히 땅 속에 있는 교회, 한없이 낮아진 교회를 의도했던 것인데, 그 설계안을 본 교회 신자들이 "너무 교회 같지 않은 지나친 발상"이라며 반대해, 외벽은 겉으로 내면서도 교회의 실속은 지하에 두는 것으로 절충한 결과 지금의 모습이 됐다. 여하튼 만종감리교회는 교회당 건축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깨뜨린, 전혀 새로운 시도를 보인 것이다. -199p

 
   

그는 건축물을 찬찬히 둘러보는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목사를 찾아가고, 건축을 한 이의 사정을 파헤친다. 그 뒷이야기를 듣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종교 건축물이라고 왜 사연이 없겠는가. 우리는 그냥 볼 뿐, 그것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사연들은 차고 넘칠 터. 그는 그 궁금함까지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편협한 편견은 제대로 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깊숙한 곳을 파헤치면 재미없어 보이는 사물들도 재밌어진다는 사실. 종교 건축물을 종교의 의미로만 보지 말고, 시대의 가치로 건축물 자체의 의미로 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 말이다. 그가 소개한 건축물 하나 하나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 믿음으로 채워지는 곳이기에 그 숭고함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으로, 믿음으로 채워진 곳. 종교건축물 앞에서는 편견의 신발도 벗고, 배타적인 마음도 벗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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