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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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감정일까? 순수하게 사랑만 했던 때는, 언제였던가? 이젠, 사랑에도 많은 계산법이 따른다. 사랑 한 번 하기 위해, 누군가와 함께 하는 미래, 조건, 상황들을 따져보게 된다. 점점 구질구질한 계산법에 지쳐, 사랑을 했는지, 사랑을 하고 있는지, 생활이 되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사는 사람이 한 둘은 아니겠지. 

사랑의 형태나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에 따라 붙는 조건들은 천차만별이다. 정말, 이젠 조건없이 주는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하나도 오염되지 않은 '야성' 그 '야성'만으로 순수하게 사랑만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목수정은 <야성의 사랑학>의 서두를 열며 '한국남자들은 왜 더 이상 거리에서 그녀들을 쫓지 않나'라는 물음을 던진다. 잊고 있었으나, 기억나는 것. 방전되어버린 사랑들은 이제 자취를 감추고, 조건과 계산 아래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연애하는 사회는 행복하다.

이 명제를 앞에 두고, 우리의 사회는 과연 행복한 것인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도처에 장애물, 그래서 사랑을 멀리하는 건 아닌지. 하지만 역으로 그 장애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만든 벽이 아닌지 말이다. 그녀가 말하는 야성의 사랑학이란, 관습도 조건도 고정관념도 다 벗어던지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말이 쉽지, 세상을 살면서 어디 그런 사랑학을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사랑을 하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너무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삶에 바람처럼 찾아오는 사랑의 소용돌이가 내 심장을 두드릴 때, 눈앞에 평소 내가 그려 왔던 바로 그런 연인의 모습을 한 이가 지나갈 때, 준비된 훗날을 위해 직관이 말해 주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생물학적 욕망만을 직업여성들을 통해 해소하던 사람은 영영 사랑을 느낄 수 없거나, 그런 건 소설에나 나오는 거짓이라고 치부해 버리게 된다. 돋아 오르는 열정의 뿔을 칼로 계속 베어 내기만 하면, 어느 순간 열정은 자라나기를 멈추는 것이다. 그 자라나는 열정의 뿔의 이름은 바로 '야성'이다. - 45p

먼저,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는 것.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 그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하기도 전에, 사랑으로 가는 길을 닫아버리곤 한다. 그 설렘, 그 두근거림.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부정하는 것일까?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랑하고 싶다고.

일에 성공하는 이만큼 부러운 이도 사랑에 성공한 이라는 걸 잊곤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일도 필요하지만, 사랑없이 살아가는 건 황폐하고 메마르다. 우리 사회에서는 불쌍하게도 사랑을 배울 수 없다. 사랑을 배우기 전에, 성공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 성공하는 법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냥 좋은 대학에만 가면 되는 거다.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회적 지위와 명예, 돈을 갖게 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이미 우리는 많은 예들 속에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결국,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하고, 성공하는 법만 배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황폐하게 변한다는 걸. 

결혼에도 등급이 필요한 사회에서 연애란 사치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랑의 행위를 억압하는 사회에서 자라날 수록 사랑을 숨기느라, 감추느라 급급하다. 혹시라도 부모에게 들킬까봐, 혹시라도 누군가가 손가락질 할까봐. 그렇게 꼭꼭 가둬둔 사랑은 건강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목수정. 그녀의 말에 백번 공감한다.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 

그녀는 힘껏 안아주는 남자와 사랑하길 바랐다. 그녀는, 애정이 결핍된 남자를 만나 크나큰 고통을 경험했다. 잘못 배운 사랑이,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 누군가의 인생에 치명타를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외친다. 사랑, 건강하게 하라고. 억압, 관습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그것은 남녀간의 연애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사랑, 친구와 친구의 사랑. 사랑은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하므로. 우리들의 사랑은 준 만큼 받아야 한다는 수적 계산이다. 또한, 자율적인 이야기를 거부하는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힘들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식을 억압하고, 부모에게 복종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랑을 주고받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창조적인 교감이다. 반면 도리는 창조성, 자발성, 상대성을 거부한다. 원인이 어떠하고 개별적 환경이 어떠하든 인간이 지켜야만 하는 기본적 약속, 이유를 불문하고 가야하는 일이다. - 139p

정말 유림에서 쫓아와 개발새발 할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의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어떤 형태로 묶여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이성을 잃고 헛소리라고 할 수만은 없다. 많은 자식들은 부모와 정서적인 교감을 못한채 수많은 강요에 치여 억울한 듯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한 첫 경험을 부모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숨겨야 할 모텔 뒷담화가 아닌 건강한 사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치한 어른, 유치한 부모가 되지 않는 방법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사는 것이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도, 아이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어린 시절에 가능한 많은 가능성을 접하게 해주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엔 그 어떤 실패를 할지라도, 따뜻하게 격려해 주는 것. 그러고선 재빨리 부모 스스로의 삶으로 돌아와 열심히 자신의 영역을 사는 것이다. - 202p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거리를 헤맨다. 룸싸롱에서 어린 여자를 찾고, 호스트바에서 어린 남자를 찾는다. 돈으로 육체적 욕망과 유희를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사랑에 목마른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기형적인 형태로, 변태적인 욕구로, 물질을 들이밀 뿐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지갑을 열지 않는 인색한 사람도, 어린 여자에게는 명품백과 차를 서슴없이 선물한다. 그녀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칭찬해주고, 시간을 내준다. 사랑하지 않는 줄 알지만, 사랑 비슷한 것이 필요한 사람들. 한 밤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만 진짜 사랑을 찾았으면 좋겠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 나를 둘러싼 세상은 급속도로 변모한다. 지나쳐 버리고 잊어버렸던 모든 지점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세상은 풍부해지고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반대로 해왔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상을 변혁하고, 그런 후에 나에게 사랑과 자유를 허락하려 했다. 지금까지의 혁명이 언제나 깃발을 꽂고 나자마자 뒷걸음쳐져 갖던 이유이다.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에 권태를 느꼈던 바로 그곳에서 지금은 열정을 느낀다. 무의미하고 텅비어 보이던 세상은 순간 의미와 모험, 위험, 선물과 이로운 우연들로 가득 채워진다. 사랑의 열정을 불태우는 것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처방이다. - 238p

자, 사랑을 하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사랑을 못하고 있다고 투덜거릴 필요가 없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습이 만들어 놓은 사랑의 틀에서 놀아나기 때문에 사랑을 못하고 있는 이가 더 많다. 아이와 사랑을 하고 싶다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와 함께 놀아야 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믿고, 결혼을 하고, 섹스리스에 빠져 다른 사람을 찾는 사랑. 그런 사랑 하지 말자.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좋아해달라고 강요하는 사랑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이 없다고 투덜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배워야 할 무엇이라고 할 때,
우리가 찾는 사랑의 원형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아는 것에서
그 배움은 시작된다. - 2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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