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많은 디자인 씨 - 디자인으로 세상 읽기
김은산 지음 / 양철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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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디자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야 할 시대가 된 것은 아닐까? 멋진 디자인을 바라고, 반짝이는 디자인에 대해 감탄은 하지만 우리는 디자인에 숨겨진 것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 하나로 세상을 바꿨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디자인. 이제 그 디자인의 철학도, 의미도 깊이 들여다 봐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비밀 많은 디자인 씨>는 그런 의미에서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디자인의 사회적 의미에서부터 디자인에 담긴 국민성까지. 단순한, 디자인에 대한 지식일 거라고 예상했던 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디자인은 일상의 행위에서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사용자가 공감할 수 있다. 나오토는 먼저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습관적인 행위를 예민하게 관찰하는 데에서 디자인을 시작한다. 기능과 형태의 논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사물을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기억을 찾아내어 사물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한다. – 47p

생활 속의 디자인. 이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과제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더욱 섬세하게, 더욱 간결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젠 대량 생산하며 쏟아내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대중들은, 조금 더 특별한, 독특한, 멋진 것에 지갑을 열고 있다. 이미 디자인은 넘치고 있고, 그 넘치는 지점에서 벗어나 사람의 마음을 끄는 디자인. 그것에 주목하는 시대가 왔다.

현대 디자인 교육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디자이너 나즐로 모홀리나기는 디자인은 전문가들의 직업이기 이전에 하나의 태도라고 말한다. 삶의 방법이자 삶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 60p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다다르고 나니, 디자인은 단순히 소비의 개념을 넘어선 게 아닌가 싶다. 삶의 방법이자 삶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디자이너 나즐로 모홀리나기의 철학에 공감했다. 인간의 행위, 삶 자체도 디자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 철학, 목표를 따라 하루하루를 디자인 하듯이, 디자인도 책임이 뒤따르게 되었다.
서울 청계광장에 세워진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 이 똥 모양의 구조물은 작품이라고 하기에,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만큼의 비용 지불 가치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누군가가 그의 작품을 받아들이고, 돈을 지불했지만 그것은 청계천 광장에 맞는, 청계천 광장에 대한 철학이 담긴 디자인 구조물인지 묻고 싶다. 소요된 경비만 35억 원 정도. 서울 시민들의 동의는 얻었는지도. 사회적 책임을 무시한채 선택된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라 쓰레기가 된다. 이것은 작품을 만든 사람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그 디자인을 받아들인 자들의 태도도 닮겨 있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디자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관 관계를 고려하는 것도 디자인 과정의 일부다. 디자인은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 디자인은 사회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그러므로 디자이너 스스로 사회적인 역할과 윤리의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디자인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눈을 감는다면 디자인은 그저 지저분한 현실을 보기 좋게 포장하거나 깨끗하게 보이도록 외피를 덧씌우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반부룩의 말처럼 그런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컨베이어’에 불과할 것이다. – 194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좀 더 심하다고 본다. 가끔 디자이너들은 혼동하기도 한다. 내가 디자이너인가, 오퍼레이터인가의 사이에서 말이다. 타협과 협의의 차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디자이너는 그저 배치만 해주는 사람에 불과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것은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디자이너를 대하는 자세, 디자이너가 대하는 디자인의 자세가 달라지지 않고, 끌려다니는 것이 편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술적인 업무를 처리해주는 역할자가 될 것이다. 

유행을 만드는 디자인,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 유혹적인 디자인, 소비의 형태만에 집중한 디자인도 있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디자인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에코파티메아리나, 제이드 등은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디자인을 소비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에 환경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소비에 집중된 디자인들이 점점 진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정말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하는 디자이너’로 평가 받는 미국의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여느 선량한 시민의 역할과 다를 바 없다. 좋은 시민이란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자신이 속한 시대에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것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197

이 책이 다른 여타 디자인책과 달리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디자인을 통해 문화와 삶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디자인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의 삶이 이제야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디자인은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으며, 신념과 철학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되고 있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생각하기 앞서 우리의 생활을 고민하고, 사회를 고민하는 디자인. 디자인의 가치를 새롭게 짚어볼 수 있어서 의미있었다. 

디자이너가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것. <비밀 많은 디자이인씨>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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